동축사
동축사는 울산지역의 고찰로서 신라의 불국토사상이 반영된 성지이다. 신라 진흥왕과 인도(西竺) 아육왕의 정신적 만남이라는 역사적 배경을 가지고 있는 곳으로, 아육왕이 배에 실어 보낸 석가삼존불의 모형을 봉안하기 위해 세운 사찰이라는 연기설화를 간직하고 있다.
‘동축’이라는 이름에서도 이곳이 범상치 않은 불국토임을 짐작할 수 있다. 즉 불국토의 고향인 인도가 서쪽의 나라이기에 서축(西竺)이라 하였듯이 이와 대비되는 이름으로써 동축(東竺)이라 칭하였던 당시 신라 불국토사상의 일면을 살필 수 있는 것이다. 이는 신라에 석가모니 과거불 시절부터 7처(處)의 절터가 존재하고 있었다는 불연국토라는 사상이 내재되어 있는 것으로, 인도 아육왕을 이상으로 삼아 그의 족적을 쫒으려는 진흥왕시대 신라 불교문화의 부흥과도 연결된다. 이곳 동축사에 올라 섬암 주변의 해묵은 송뢰(松籟)를 들으면, 멀리 불국토의 이상을 구도하던 진흥왕과 아육왕의 만남이 느껴진다.
또한 해안지역의 지리적인 위치와 마골산(麻骨山)이라는 산이름은 관음이 사는 백화산이 연상되듯, 동축사는 관음 기도도량으로 알려져 있기도 하다. 도심에서 벗어나 심신의 여유를 가질 수 있는 유서 깊은 곳으로, 이곳에 올라 해뜨는 동해를 바라보면 아름다운 경관을 맛 볼 수 있다. 일찍이 동축사가 자리한 이곳은 울산 동면8경 중 축암효종(竺岩曉鐘)ㆍ섬암상풍(蟾岩霜楓)이라 하여 시인묵객의 발길이 잦았던 곳이다. 특히 동축사 정상의 관일대(觀日臺)는 섬암이라 하여 동축사의 종소리와 함께 해뜨는 동해바다를 조망할 수 곳으로 유명하다.
관일대에는 남목을 다스렸던 감목관 원유영(元有永)이 새긴 ‘부상효채(扶桑曉彩)’라는 글이 있는데, 이는 ‘해뜨는 동쪽바다에 있다는 아름다운 빛을 내는 신성한 나무’라는 의미이다. 진흥왕시대 동축사에서 발한 빛이, 서축에서 오는 아육왕의 불상을 인도한다는 상징적 의미를 가지고 있는 듯 여겨지기도 한다
동축사 안내석
동축사 오르는 길목에 바위들
동축사 오르는 돌계단
동축사 입구
동축사 전경
동축사 요사
동축사 삼층석탑
시도유형문화재 제11호
동축사는 『삼국유사』의 황룡사 장륙조에 의하면, 인도의 아육왕이 인연 있는 국가에서 장륙존불이 이루어지기를 기원하여 황철 5만 7천근과 황금 3만분을 배에 실어 띄울 때 함께 보냈다는 1불과 2보살의 상을 모시기 위하여 신라 진흥왕 34년(573)에 처음 건립하였다고 전해지는 절이다. 그 후 경순왕 8년(934), 고려 정종 때, 조선 세조 3년(1457), 1931년, 1975년,2005년에 고쳐 지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 동축사 삼층석탑은 신라의 전통양식인 중층기단 삼층석탑이다. 화강암으로 된 이 탑의 기단은 면석이 모두 없어져 원래의 정확한 높이를 알 수 없다. 탑신부는 몸돌과 지붕돌이 모두 한개의 돌로 되어 있으며, 몸돌에는 네 모퉁이에 기둥을 본 떠 새겼는데, 지붕돌의 받침은 1·2층은 5단이나 3층은 3단으로 되어 있다. 상륜부는 노반과 보개만 얹혀 있는데, 돌의 재질이 탑신부와 다른 사암계통이어서 이 석탑이 여러 차례에 걸쳐 고쳐졌음을 알 수 있다. 2005년 현 위치로 옮겨 기단부의 일부 부재를 첨가하여 복원 하였다.
동축사 대웅보전
동축사 대웅보전내
동축사 범종각
동축사 신축당우
동축사 산령사, 고성전, 독성각
동축사 고성전내
동축사 산령사내 산신탱
동축사 독성각내 독성탱
동축사 찾아가는 길
고속도로에서 방어진 방면으로 들어서면, 70번 지방도를 따라 방어진 순환도로가 나오고, 그 길을 따라 주전ㆍ남목방면으로 접어들면 남목사거리에 동축사 표지판이 시원스럽게 걸려 있다. 이곳에서 동부초등학교 방면으로 1.5㎞ 들어서면, 벽산유토피아 아파트가 나오고 그 길이 끝나는 지점에 버스정류장과 함께 산으로 오르는 가파른 콘크리트길이 나타난다. 주차장에서 1.2km라는 표지석을 보고 오르막길을 오르면, 숨소리가 거칠어 질 무렵 간이주차장이 나오고, 여기서부터 절까지 잘 놓여진 308개의 돌계단으로 10여 분 올라가면, 신라 고찰의 동축사와 만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