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13일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대한 민국 임시정부 수립 기념식이 있었다. 해마다 그러했지만 여야의 대선 후보 경선 에 쏠린 국민적 관심 때문에 주류언론이 외면한 이날 기념식은 더욱 초라했다. 대한민국은 헌법전문에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하고 있음을 명문화하여 대한민국의 뿌리를 임시정부에 두고있다. 대한민국의 뿌리인 임시정부는 그 역사를 잃어버리고 허구한 이름만 남아 습관적인 기념식만 하고 있는 실정이다 임시정부역사의 기초가 되는 임시정부의 활동기록문서를 아무도 챙기지 않아 임정기록문서가 어디에 있는지를 아무도 모른다
1919년 3.1운동직후 수립 된 임시정부는 1945년 해방 될 때까지 정부기구로 활동하면서 27년 동안 민족의 대표기구로, 독립운동의 최고기구로 활동한 기록문서가 없다. 임시정부의 기록은 1932년 4월 윤봉길 의사가 홍구공원 의거직후 일제경찰들이 상해의 임시정부사무실을 급습하여 안창호 등과 같은 주요 임정 요인을 체포하고 980여종에 달하는 임시 정부문서를 압수해가 정부 수립 후 1932년까지의 기록을 모두 잃었고, 임정요원들이 1945년 11월23일 환국 할 때 13개의가죽가방에 담아온 임시정부기록문서들은 경교장 에 보관 되여 오다가 김구선생이 시해 당한 후 정부의 방관으로 여기저기로 옮겨다니다가 6.25 전쟁으로 모든 기록들이 행방불명이 되여 1932년에서 1945년까지의 기록 자료집을 모두 잃었다
재임 중 불신임으로 물러나기는 했지만 우리 나라 초대대통령을 역임한 이승만도 임시정부의 대통령을 역임했고, 러시아 공산당 이동휘도 임시정부의 국무총리를 역임했던 임시정부는 헌법을 비룻 하여 대통령령. 교령. 국무원령, 부령등 각종 법령을 제정공포하고 대한민국임시 정부 종보 라는 관보까지 발행했다. 한국정부는 우리 나라를 강점한 일제 통감부와 조선총독부의 법령은 물론 과도기의 미군 군정의 자료까지 수집하여 자료집을 발간했지만 대한민국의 법통을 계승한다는 임시정부의 자료는 아직까지 방치 되여 정리가 되여 있지 않다.
북한에서 만든 영화에서는 "백범 김구 주석이 김일성 주석에게 임시정부의 관인을 넘겨주려 고 했다는 장면이 나온다고 한다 임시정부의 관인은 지금 어디에 있는가? 임시정부가 환국할 때 경교장으로 가져 왔지만 지금은 그 관인이 어디에 있는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언젠가 우리가 건설할 통일조국의 정통성의 뿌리와 근거는 근세사의 전환기였던 임정역사의 법통이 매우 주요한 사안으로 등장할 것이다
전란과 정변의 물결의 파고에 방치된 유적들
대한민국 임시 정부 환국 56년이 되던 지난 2001년 11월23일, 하오 4시 서울 4.19 혁명기념관에서 1,123명의 발기인으로" 대한민국 임시정부 청사복원 범 민족 추진위원회"의 결성대회가 있었다 정치권의 민주당의 정대철 상임고문, 한나라당의 이부영 의원. 그리고 해외 한민족을 대표하여 필자가 공동의장으로 취임한 범 민족 추진위원회는 결성선언문을 채택하고 정치 경제 문화 사회 종교계의 지도자들을 고문과 지도위원으로 그리고 추진위원으로 구성하여 지금 삼성의료원 부속 건물로 의사 휴계실로 쓰이고있는 경교장을 건국기념유적지로 복원하기 위한 범 민족 운동을 펼치기로 했다. 임시정부청사 복원 범 민족 추진위원회 는 선언문에서 도약의 21세기를 위하여 자주독립의 나라. 민족통일의 나라건설을 위하여 민족사의 전환기였던 임정의 역사유적을 보존해야 민족자주의 터전을 마련 할 수 있다고 선언했다 뿌리복원에 대한 노력은 문민정부시절 김덕룡 정무장관이 , 국민정부 때는 이수성 전 국무총리가 백범김구선생 기념사업위원회를 통하여 사라진 역사를 복원하겠다고 각각 노력 하였으나 눈에 보이는 인기 있는 사업이 아니어서 모두가 중단되고 이름들만 남아 있다 그나마 기념사업위원회의 해외 지부 중 뉴욕지부에서 백범활동사진을 모아 미주지역에 순회전시회를 하여 잊혀 가는 선각자의 발자취를 일께운 것은 잘한 일이다. 상해시 에 유적지로 등록이 되여 있는 상해 임정청사는 도시계획으로 헐리게 되였으나 상해정부는 도시계획을 변경하면서까지 우리 임시정부청사를 유적사물로 유지 보존하고 있다고 한다. 1945년 11월23일 대한민국임시정부청사로 시작 돤 경교장은 광산업자 최창학이 1938년에 완공하여 죽정장 이라 이름하였으나 1945년 8월15일 임시정부 환국 준비위원회가 인수하여 1945년 11월23일 임시정부청사로 사용되면서 김구선생이 이름을 경교장 이라 했다.
하지중장의 미군정이 공식적으로는 임시정부를 인정하지 아니 했다고는 하나 대부분의 군정정무를 임시정부와 협의하여 1949년 6월까지 임시정부의 역할을 다했다 그후 민족의 선각자 김구선생은 민족 자주독립국가의 꿈을 안고 안두희의 총탄에 맞아 세상을 떠난 곳이 경교장 이다 그후 자유중국대사관으로 쓰이다가 6.25 때에는 의료진의 주둔지로, 수복 후 에는 미군특수부대가, 그후 베트남 대사관으로 사용되다가1968년 고려병원에서 인수하여 현재 삼성병원 본관에 연결하여 의사들의 휴계실로 쓰이고 있는 실정이다. 백범 김구선생관련 단체가 여럿이 있지만 금반 대한민국 임시정부청사복원 범 민족추진위원회결성에 주도적 역할을 한 백범사상실천운동연합의 김인수 위원장이 15년에 걸친 경교장의 국가지정 문화재 지정청원 노력 끝에 그나마 국가 지정 문화재가 아닌 서울시 유형 문화재 제129호로 지정 받았다. 국가지정 문화제지정과 관련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다는 헌법규정에도 불구하고 임시 정부수립 일은 1919년 4월13일로 인정을 하면서도 임시정부활동 종료시점이 규정 되여 있지 않다. 백범 사상 실천 운동연합에 보내온 2001년 7월7일자 국사편찬위원회회신에도 임시정부의 활동종료시점을 비상국민회의가 탄생한 1946년 2월1일로 보는 의견과 임시정부의 주중화 대표단 그리고 구미위원회의 활동이 1948년까지 지속 되여 임정활동의 종료시점을 1948년까지라고 하는 학계의 견해가 있어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견해를 밝힐 수 없다고 입장을 보류하고 있는 실정이다. 따라서 임정활동의 종료시점이 역사적으로 판정되지 아니하여 국내에 유일하게 남아있는 임시정부 청사인 경교장이 국가지정문화제로 지정이 안되고 있는 이유이다.
민주 공화 이념의 법통과 통일조국의 미래
우리 나라의 조선왕조가 몰락하고 일제의 식민지시대에 접어들면서 독립운동과 함께 민주주의를 향한 임정이 수립되었다. 나라의 주인이 왕실과 사대부의 지배계급에서 백성이 국가의 주인이 되는 민주공화제를 지향하는 임시정부의 법통에서, 민족이 주체가 되는 민주주의로 출발한 대한민국도 조선왕국의 법통을 계승하지 않고 임시 정부의 법통을 계승한다고 헌법전문에 선언하고 있다. 조국의 독립이 지상과제였던 임시정부에는 앞서 말한 러시아공산당의 이동휘가 임정의 국무총리를 역임하고, 미국의 이승만이 대통령에 추대 되여 이념과 이데올로기를 초월하여 임시정부가 운영 되였던 것이다. 남북이 갈라져 이념과 이데올로기로 동족상잔의 피 어린 과거를 접고 우리가 세울 통일조국에는 근세사의 법통을 있는 우리의 뿌리를 확실히 찾아야 할 것이다 지난 50년 동안 우리는 급한 일 때문에 가장 중요하게 지키고 보존해야할 역사를 모두 잃고 말았다. 지금이라도 정부는 대한민국을 세운 역사의 뿌리를 찾아 복원하여 건국이념을 구현하는 기초자료인 임시정부의 자료와 유적을 발굴 보존하여야 통일조국을 건설할 때 대한민국의 투명한 정통성을 가질 것이다
Chairman ,Korean Diaspora Foundation
대한민국 임시정부청사복원 범 민족추진 위원회 공동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