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샘통문 Ⅲ-36]모처럼 ‘착한 일’ 한번 하려다…
고향에 있으면서 내가 할 일 중의 하나가 1년에 두 번 가족산소 벌초를 하는 일이다. 내일은 숙부의 기일, 사촌동생들이 추모예배를 오겠다한다. 새벽 5시 1시간 반정도 벌초를 하다. 벌초를 하며 매번 느끼는 것은 ‘풀을 이길 장사는 없다’는 거다. 산소든 밭이든 논두렁이든 풀이 자라는 속도는 무서울 정도이다. 순식간에 사람의 허리까지 자라는 저 풀들을 어이할꼬? 처서 지나면 자라는 속도가 줄어든다고 하지만, 그것도 사실 말뿐이다. 엊그제 잡글에도 썼지만, 생업에 지장만 주지 않으면 자라거나 말거나 신경쓸 것은 없다. 왜냐하면 ‘눈이 오면 다 죽으니까’. 그러나 어디 그러한가? 집 옆 묵혀놓은 밭의 풀의 무성함을 보면, 첫째 오가는 동네사람 창피하여 예초기를 들 수밖에 없다. 나 욕 얻어먹는 것은 괜찮은데, 백 살된 우리 아버지가 나 때문에 욕을 먹어서야 될 일인가.
아무튼, 산소 벌초가 끝날 즈음, 예초기 상태가 불량하다는 것을 알아차려야 했다. 그것도 모르고, 모처럼 동네를 위하여 ‘착한 일’한번 해야겠다고 작정했다. 동네 입구 길옆 무성한 풀들이 얼마 전부터 신경이 쓰였기 때문이다. 예초기를 들이대고 신나게 200여m 풀들을 작살내는데, 예초기가 그만 아작이 났다. 날과 연결된 부분이 부러진 것이다. 만약에 날이 나를 향해 날랐다면, 죽기 아니면 까무라치기였을 게 분명하다. 아찔한 순간이다. 이런 엄청난 위기에 부닥치고, 그것을 피했을 때 우리 형제들은 ‘할머니 고맙습니다’를 절로 하는 버릇이 있다. 할머니는 28살에 청상이 돼 두 아들과 50년의 풍상(79세 별세)을 헤쳐오시며 진안 마이산 천지탑에 총생들의 무병무탈만 빌고 빌었다. 그 공덕일 거라는 믿음 때문이다. 언젠가 고속도로에서 바퀴가 펑크나 차가 돌았을 때에도 가드레일을 받고 차가 섰을 때, 형과 나는 똑같이 ‘할머니 고맙습니다’를 외쳤다. 차가 선 직후 뒤에서 물밀 듯 차들이 몰려온 일촉즉발의 상황이었다. 제법 큰 돌멩이가 뒤통수를 가격하기 직전에도 할머니의 음성이 들려와 고개를 숙여 위기를 벗어난 실례도 있었다.
언젠가 지방신문에서 ‘일일선실천운동본부’라는 시민단체 이름을 본 적이 있다. 일일선은 무엇인가? ‘하루 한번 착한 일을 하자’(一日善)는 뜻일 듯. 보름 전쯤 작년 발간된 나의 졸저 <찬샘별곡> 재고가 몇 백권 도착했다. 몇 권씩 사 지인들에게 선물하겠다는 친구들에겐 1권에 1만원만 주라며 저자 사인을 해주는데 재미가 붙었다. 저자의 덕담이랍시고 쓰는 문구로 ‘日日善/날마다 착한 일’ ‘日日新/날마다 새로움’ ‘日日好/날마다 좋음’ ‘日日仙/날마다 신선’‘日日仁/날마다 어짊’ ‘日日慧(혜)/날마다 슬기로움’ 등을 번갈아 쓰고 있다. 一日은 하루를 뜻하지만, 日日은 날마다를 뜻한다. 매일(每日)이라 하면 한문투가 아니라고 배웠다. ‘一日淸閑 一日仙’은 하루동안 마음을 깨끗이 갖고 한가롭게 지내면 그것이 바로 하루의 신선이 된다‘는 뜻이다. 여기에서 一日을 日日로 대체하면 ‘날마다 신선’이 된다는 뜻이니, 얼마나 좋은 것인가. 나의 미지의 독자들이 졸저를 읽으면서 위에 든 덕담의 마음가짐을 갖고 날마다(日日) 하루를 맞이(臨)한다면 좋겠다는 저자의 마음을 읽어주면 좋겠다.
좌우지간, 아침나절 찰나같은 시간에 예초기 앞대가 부러지면서 자칫 인명사고까지 날뻔한 일을 떠올리면(아주 드문 사건일 듯), 할머니의 공덕 때문인지 아니면 모처럼 착한 일을 하겠다는 마음이 기특해서 하늘이 봐준 것인지 운좋게 피한 것만은 사실이다. 어찌됐든 고마운 일임에 틀림없다. 예수님 산상수훈(山上垂訓)의 ‘팔복(八福)’를 떠올리는 것은 아무래도 오버일 것이다. 하하.
덧붙임: ‘일일청한 일일선’이라는 명구(名句)를 안 것은 고1때 서당에서 <명심보감>을 배우고부터이다. 무조건 이 말이 좋아서 고2 수학여행때 설악산에서 나무에 인두로 글자를 새기는 분에게 이 명구를 써달라고 해, 오랫동안 책상 앞에 붙여 놓기도 했다. 그때는 한문을 몰라 ‘매일청한 매일선’라고 썼는데, 한학자 한 분이 ‘매일은 어법에 맞지 않으니 일일로 해야 한다’고 했다. 유홍준 님이 ‘인생도처유상수(人生到處有上手)’를 처음에는 ‘인생도처재상수(人生到處在上手)’라고 했는데, 고명한 청명 임창순 선생이‘있을 재’가 아닌 ‘있을 유’자를 써야 한다고 훈수를 했다는 일화가 생각나는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