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Daum
  • |
  • 카페
  • |
  • 테이블
  • |
  • 메일
  • |
  • 카페앱 설치
 
카페정보
카페 프로필 이미지
예수 그리스도의 향기
카페 가입하기
 
 
 
카페 게시글
♡ 。자유게시판 나눔 강력한 비판을 받아야 마땅한 한국교회지도자들
Hamaha 추천 0 조회 224 07.07.30 10:03 댓글 30
게시글 본문내용
 
다음검색
댓글
  • 07.07.30 12:19

    첫댓글 다 팔아서..^^.. 이미 제가 언급했습니다만.. 청년들을 타락시켰다고 그래서 잘못된 길로 가게했다고 소크라테스가 재판을 받는 것과 비교할 수 없는 것이라고 함을 말했는데.. 아주 심오한 철학가가 신학에 대하여서 잘못된 안경을 쓰고 더듬거린 글을 올렸군요.. 글을 올린 분의 견해는 어떤지 궁금하군요.. 아무 코멘트가 없으니 신중하신 것 같기도 하고.. 그런 맹인의 안경으로 선교의 실재를 분별하다니.. ^^ 사고충격으로 정신적 공항상태에서 나온 말이니하고.. 그냥 넘어가도록 하지요 뭐.. 실제적이지도 않는 말을 함부로 유포하다니.. 피납사건에 대한 고통보다도 좀더 사유의 경건이 필요한 때라고 봅니다.

  • 작성자 07.07.30 12:55

    저는 옮긴이입니다. 글쓴이는 아니지만, 이명신님께서 구체적으로 "실제적이지 않는 말" 이 무엇인지 알려주시는 것도 참고가 되고 고맙겠습니다. 참고로 저는 제3세계의 현장을 적어도 실제적으로 수없이 접하는 전문직에 있기 때문에 "Peter K" 필명님의 글은 상당히 구체적이며 공감하고 있기 때문에 이곳에 옮겼습니다.

  • 07.07.30 23:22

    아주 정확하게 질문하시는군요.. 그런 가운데서도 분명하게 생각의 차이가 있다는 것이 또한 명확하게 된 것같습니다. 저의 실제관이라고 하는 것을 규정하기 전에 실제에 대한 기준을 먼저 생각해야 하겠지요.. 님께서는 실제라는 것을 어떤 것으로 생각하시는지요.. 지금의 언급되어지는 현상들 선교현장들에서 얻게되어지는 경험의 판단에서 비로소 실제적인 의미로서의 확신을 하시는 것같습니다. 제가 님의 실제관을 잘못읽었는가요.. 그것에 대하여서 답변하시면 구체적으로 논의가 진행될 것같습니다.

  • 07.07.30 23:39

    그리고 아직 사태가 어려운 상황이기 때문에 되도록이면 글쓰는 것을 자제하려고 했고 또한 알바스토로스7님과 같이 마음을 찢는 시간을 가지고 싶습니다.

  • 07.07.30 23:41

    지금 사태에 있어서 목회자의 잘못이라고 하는 것의 시비를 가려야하는 시점은 아닙니다. 일단 기도하고 일이잘 마무리 되고 난 다음에 논해도 늦지 않습니다. 선교지에서 있게되어지는 옳지 못한 일에 대하여서 환멸을 느낄 수 있지만 그러한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선하심이 나타나실 수 있도록 힘쓰고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 07.07.30 23:45

    다원주의적 개념에서가 아니라도 하나와 여럿의 문제가 혼동되어지는 글이라고 함을 말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말하는 것은 신학사조의 혼탁함에 있어서 있게되어지는 신앙고백적 순수하지 못함이라고 하는 것이 여러 갈래로 있을 것을 생각해야 할 것인데 분당 샘물교회의 교단에 이해도 없이 합동과 통합측의 견해라고 하는 것에서 이입적으로 해석해들어가는 것이 전혀 객관적이지 않은 측면을 읽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 07.07.30 23:46

    더욱 공감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이미 하나님께 드린 것을 세상에 임의적으로 매각한다는 것이 정적인 측면에서 생명을 위한다는 것으로 정당화되어지지 않습니다.

  • 07.07.30 23:49

    그리고 분당 샘물교회의 매각처분을 함부로 말하는 것도 이미 다른 곳에서 상처받은 것으로 해석하는 가운데 객관성을 잃은 것입니다. 즉 여럿이라는 개념으로 하나를 해석함에 있어서 하나의 특수성과 개별성에 대한 이해를 전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 07.07.30 23:51

    이러한 것은 철학적으로도 신학적으로도 혼란된 합리성을 따르는 결과라고 하는 것을 지적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가운데서 벌써 실제적이라는 개념이 이미 신학사조 또는 철학적 신학사조의 불건전함에서 비롯되어질 수도 있는 여지의 선교행태에서의 상처로 좀더 쉽게 말하면 진보적 개념의 선교에 대한 이해가 되어질 수 있는 것으로 보수적 개념에서의 선교적 입장을 임의적으로 판단하는 경향을 볼 수 있는데 그것이 객관성을 가진 것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보수와 진보 그리고 교단의 입장의 차이 대동소이하게 생각하는 보편의식은 개체적인 교단적 입장이라고 하는 것을 무시하고 접근하는 것은 실제적이지 못한 것입니다.

  • 07.07.30 23:57

    잘 알고 계실 것으로 생각할 때에, 엘리야에게는 하나님을 믿는 자가 아무도 없다고 생각한 적이 있습니다. 현실적인 측면에서 선교라는 이름으로 행하는 악한 자들이 가라지들이 있다는 것을 저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것에 무릎을 꿇지 않고 목숨을 내놓고 일하시는 분도, 비록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하나, 계시다는 것을 믿습니다. 그런데 아주 속된 표현으로 주의 종들에 대한 단정적 정죄는 정적으로는 영웅처럼 공감을 받을 수 있으나 곰에게 찢겨질 수 있다는 것을 조심해야 할 것입니다.

  • 07.07.31 00:01

    가라지들이 철모르는 젊은이들을 선동해서 위험지역에 보냈다는 그러한 생각들과 그것이 그들의 뱃속을 채우기위한 것이라고 여러 경험이라는 배경으로 단정적 입장을 취하는 것은 현상적인 개념으로 굴속에 엘리야의 일시적 잘못과 같다는 것을 지적합니다. 그는 철학자는 아니었어도, 마치 청년들을 선동했다는 측면에서 보상하라는 재판은 철학적으로는 이야기되어질 수 있고 여러 경험적으로 이야기 되어질 수 있다고 하여도 하나님 앞에서는 그의 은밀한 신실한 종들도 같이 있다고 할 때에 그 신원을 갚는 날에는 그 철학자들의 판단으로서의 선동적 파송의 죄를 묻는 것에 오히려 심판하심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 07.07.31 00:42

    정리하면, 지금까지의 선교현장에서의 느끼게되어진 옳바르지 못한 모습들이 있다는 것으로 그러한 경험적 보편의식으로 한 개체교회의 선교에 있어서의 사고에 대한 입장을 판단함에 있어서는 불필요한 이입적 판단이 있다는 것이 첫째로 실제적이지 못한 판단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 07.07.31 00:18

    구체적으로는 흔히 선교지에서 있게되어지는 신학사조의 흐름의 혼탁함과 그에 따른 선교의 아름답지 못한 것은 비단 이번사건을 해석하는 데 결정적으로 비교되어질 수 있는 것만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신학적 입장을 이해하고 그것에서 비롯되어지는 선교의 입장이 바르지 못하다 그러한 판단을 하는 것이 보편을 지향하는 경험적 판단이라고 하여도 열어놓아야 하는 입장임을 기억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 07.07.31 00:22

    두번째로는 엘리야의 파라독스와 같이 세상의 권세가 무서워,국가가 도와주지 못할 것에 대한 것에 대한 염려로 교회가 성의를 보여야 한다는 것도 그 입장이 이미 진보적인 입장으로 보수진영과는 전혀 인식의 차이가 있다는 것을 전제로 이미 주관적 입장을 취하고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즉 그것을 회개해야 굴밖으로 나갈 수 있는 엘리야의 모습을 갖출 수 있다는 것입니다. 즉 진보적개념의 인기주의는 굴속에서 못벗어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그것이 글의 실제적인 판단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 07.07.31 00:28

    주의 택한 엘리야라고하면 국가의 통치자 이세벨을 두려워할 것이 아니며, 또한 하나님께 바친 것을 사람들의 육신의 생명이라는 것을 위해 임의적으로 처분한다는 것이 이미 하나님께 드린 것을 자기 마음대로 하겠다는 엘리의 아들과 같은 모습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러한 모태적신학과 신학사조는 목이 부러질 것입니다. 가라지들의 선교열전이라는 것이 있을 수 있습니다. 바리새인들의 바다는 건너는 것이 그것일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경험적으로 알지 못하는 신실한 종들도 많다는 것을 알 때에 전반적인 판단을 내리는 것은 진정 이시대의 엘리야는 아니라는 것을 기억해야 할 것이 실제적인 판단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 07.07.31 00:31

    답변글로 쓰려고 했으나.. 지금은 조용히 주의 세미한 음성과 그의 뜻하심을 바라보면서 기도하는 것이 더 실재적이고 하나님의 질서를 따라서 일반 국가적인 측면이나 또는 그외 허락되어질 수 있는 노력들을 경주하는 것이 더 옳다고 봅니다. 그래서 댓글로 조용히 넘어가고자 합니다. 진보적인 인기주의의 판단의 냄새가 역겹게 보입니다.

  • 07.07.30 13:44

    그렇게 비판받음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그래야 저도 여러분들이 바라는 개혁의 대상이 되겟지요 저는 시골에 있다가 오니 가끔씩 눈팅하다가 조금씩 한국의 현주소...교회 개혁이 뭔지 알아가게 공부 호되게 합니다 미자립교회에 일년내 부업하며 장사하고 노가다 공사판 다니며 ...가정과 교회 섬긴다고 한마디로 말하면 먹고 살기 바빠서 농사하고 일한다고 그 바쁜중에 왔더니 개혁칼에 아야하다가 볼리 다보면서 하루 지나도 그리 나쁘지만은 않네요 제가 할말을 잘들하시니 말입니다 그래도 저는 목사로 불러 주시고 이렇게 싸잡아 욕을 먹으니 영광입니다

  • 07.07.30 15:28

    보여지는 내용은 상당히 맞는것 같으나...그 속에 담긴 내용은 과연 하나님의 뜻과 같은지...왜 조용히 있다가 어떤 문제가 생기면 그 문제가 전부인양 매도하는지...기도하지않고...사랑하지 않고...협력하지 않고...돌아서 먼저 돌을 던지는지...신학도 모르고 철학도 모르지만 하나님의 마음을 천만분의 일이라도 알것만 같기에 ...제마음이 찢어집니다...

  • 작성자 07.07.30 16:13

    "알바트로스7" 님께 조용히 질문을 드립니다. "기도하지 않고, 사랑하지 않고, 협력하지 않는지, 돌아서 먼저 돌을 던지는지" 어떻게 판단하실 수 있습니까? 무슨 근거로 그러한 판단을 하실 수 있는지 알고 싶습니다. 글을 쓴 "Peter K.님" 과 인격적인 교제를 한번도 한 적이 없으신 분이 무슨 근거로 그렇게 말씀을 하실 수 있는지 제가 알고 싶습니다. 저는 인격적인 교제를 한번도 한적이 없는 분들이 "기도하지 않고, 사랑하지 않고, 협력하지 않고, 돌아서 먼저 돌을 던지는지.." 라는 판단의 뿌리를 정말 단순하게 알고 싶으니 조금이라도 대답해 주시면 감사를 드리겠습니다.

  • 07.07.31 00:38

    인격적 교제라.. 하나님과의 인격적 교제가 있는 것이 형제들의 인격적 교제를 비로소 말할 수 있다고 봅니다. 제가 답변할 이야기는 아닌 것을 알고 있으나 본 글에 입각한 답변을 요구받은 자로서 진보적 개념 하나님께 드린 것을 육신의 위급함에 임의적으로 처분하라고 하는 개념에서 인격적 교제라는 것의 비로소 실상을 말할 수 있다고 보십니까.. 엘리의 아들과 인격적 교제라는 것이 성도의 교제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Hamaha 님이 그렇다는 것이 아니라 글을 쓰신분과의 교제를 그렇게 정의하신다는 전제하에서 답변하시기 바랍니다.

  • 07.07.31 11:00

    적어도... 기도하고...사랑하고..협력하는자에게 저런 글이 나오는것을 보지 못했습니다..왜냐구요...그것은 하나님께 기도로 물어보십시요...왜 기도하고..사랑하고..협력했으면 더 비판하고 잘못을 목소리 높여 이야기해야 하는데 그런 분들은 자신의 잘못이요 자신의 죄인양 ..다시 금식하며 눈물로기도하는지..저도 모릅니다..다만 그게 하나님의 방법인것을 알고는 있습니다..형제님들...1분 논쟁하기 위하여 1시간은 기도해 보셨나요? 기독교는 신학이 아닙니다..종교가 아닙니다..예수님께서 피로 사신 생명입니다...제발 예수님의 십자가상의 모습을 다시 한번 맘에 담고 기도해 보세요...누구의 글이나 사상이 아니라 성경의 말씀으로

  • 07.07.31 11:05

    한가지만 사족을 달겠습니다...비판하는것이 모두 잘못되었다는게 아닙니다..다만 믿음이 약한자나 크리스챤이 아닌분들이 비판의 글을 통하여 실족하거나 교회를 잘못 판단할까바 염려스러울뿐입니다...그래서 게속 말씀 드리지만 제발 기도하시고..기도하시고....모든것은 먼저 기도하시고......제발..

  • 작성자 07.07.31 10:30

    "(이명신님의 글 중에서) 하나님께 바친 것을 사람들의 육신의 생명이라는 것을 위해 임의적으로 처분한다는 것이 이미 하나님께 드린 것을 자기 마음대로 하겠다는 엘리의 아들과 같은 모습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정말 놀라운 발언을 하시군요. 돈이나 건물은 하나님께 바쳐진 것이고, 성도는 육신의 생명에 불과한 하찮은 것으로 표현하시는 님의 사상에 입을 벌일 뿐입니다. 긴 글을 올리셨지만. 단 두 줄에서 님의 가슴 속에 얼마나 대단한 교리적인 이데올로기가 숨어 있는가를 파악할 뿐입니다.

  • 07.07.31 12:22

    여전히 단순논리로 접근하시는군요.. 님께서 언급한 것을 제가 그렇다고 언급했는가요.. 단정적으로 말씀하시니 참 경솔하시다는 생각이 듭니다.

  • 작성자 07.07.31 10:35

    이명신님의 가슴 속에 들어 있는 건물은 하나님께 바쳐진 것이고 성도는 죽어도 상관이 없는 육신의 생명에 불과하다는 그 논리를 누가 가지고 있었습니까? 바로 예수님이 오셨을 때 모든 종교지도자들이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들을 향해서 예수님께서 무슨 말씀을 하셨습니까? 돌 위에 돌하나가 남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건물 안에 예수가 있습니까? 아니면 구원받아 선교현장에 가 있는 그들의 생명 속에 예수가 있습니까? 하나님께 드린 건물을 육신의 위급함에 임의적으로 처분할 수 없다는 극악무도한 교리적인 이데올로기가 오늘날 한국교회를 건물신앙에 미치도록 하는 개판으로 만들고 있는 것이지요.

  • 07.07.31 12:26

    이렇게 상대방의 글을 읽을 때에 논점이탈로 논의를 이끌어가는 것을 볼 때에 걱정이 됩니다. 저도 예배당을 신격화하는 것에 대하여서 비판적인 사람입니다. 그리고 예배당을 팔아서 그들에게 가서 협상하면 그들이 받아준답디까.. 그리고 님의 눈에는 예배당 맹신주의자들 밖에 보이지 않습니까.. 이렇게 단순한 논리로 복잡한 세상을 판단하다니.. 님의 눈에는 개판으로 보일지 몰라도 주님의 눈은 그래도 그들을 향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들 중에는 님의 판단을 받지 않는 신실한 자들이 있다는 것을 왜 생각하지 못하시며 조심이 없으십니까.

  • 작성자 07.07.31 10:48

    하나님께 바쳐진 것의 우선순위를 들라고 하면 성도의 생명이며, 그 성도의 생명이 이 땅에서 훈련받고 예배드리고 성장하기 위하여 교회건물이 필요하고 목사가 필요하며 조직과 프로그램과 돈이 필요한 것이 아닙니까? 악한 삯꾼들은 전부 꺼꾸로 가르치고 있지요. 거대한 건물과 조직과 프로그램을 위해서 성도의 생명은 철저하게 희생당하는 비인격적인 삶을 강요받고 있었던 한국교회의 성도들이었습니다. 이것은 2천년 전이나 지금이나 다를 바 없습니다. 또 한 명이 순교를 당하였고, 나머지 21명이 죽어가고 있는데 건물을 팔겠다는 각오로 몸부림이라도 쳐야 하는 것이 아닙니까?

  • 07.07.31 12:30

    님의 분별없는 입장이 인기성 발언밖에 안됩니다. 한국교회의 아픈 모습을 판단하면서도 그 가운데서 주의 뜻하심이 나타나신다는 것을 살펴볼 수 있는 안목이 있으시기를 바라겠습니다. 일부 님의 판단과 같은 자들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목회세미나의 한자료에서도 그러한 것을 직접 본 기억이 있기에 공감도 갑니다. 하지만 우리가 알지 못하는 가운데서도 신실한 자가 있다는 사실을 전적으로 부인하지 못한다면 말씀하심에 다 싸잡아서 이야기하심은 옳은 것이 아니라고 봅니다. 물론 진보적 입장이시라는 측면에서, 견해를 달리하시겠지만 말씀하실 때 좀 객관성을 가지시고 조심해서 말씀하시길 바랍니다.

  • 07.07.31 12:33

    Hamaha님, 제가 처음으로 단 댓글의 내용이 해석하면 저의 아래 댓글의 내용이라는 것을 생각하시길 바라고 그러한 내용을한마디로 요약했으니.. 실제의 개념이해를 인간의 육신의 생명으로 단정짓는 것만으로는 실제의식을 바르게 인식하지 못하셨다는 것을 말씀드립니다.

  • 작성자 07.08.01 00:01

    이 명신님, 만약 목회자이시라면 솔직히 너무 불쌍합니다. 그 가슴을 가지고 목회를 하시니 얼마나 힘이 드시겠습니까? 평신도이시라면 충분히 이해를 하겠습니다. 님의 가치관으로 보면 예수님의 가르침은 전부 인기성 발언이며 진보적 발언입니다. 님과 같은 자들의 의식 때문에 한국교회가 건물 짓는데 미쳐 있으며, 예수생명의 존귀성을 팽개치고 있는 것이지요. 무엇이 객관적인지, 무엇이 주관적인지, 무엇이 실상인지, 무엇이 허상인지 개념 자채를 알지 못하는 교리-교권주의자들 때문에 한국교회가 어려움을 당합니다. 소리없이 사역하는 분들을 부정하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교권주의자들보다 무분별자들이 더 안타까울 뿐입니다.

최신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