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계의 민주화 인사 김영삼 전 대통령과 종교계의 민주화 인사이던 故 문익환 목사가 서먹한 사이가 되어버렸…… 다고 파다하게 알려져 있지만[1] 정작 당사자들은 물론이고 언론 보도 등에서도 출처를 찾을 수 없는 일종의 카더라 통신이자 도시전설.
1983년 5월 18일, 김영삼은 광주 민주화 운동 3주년을 기념하고자 희생자들을 위령하고 독재에 항거하는 뜻에서 단식투쟁에 돌입했다. 그는 구속인사의 전원 석방과 해금, 해직 교수 및 근로자와 제적 학생의 복직, 복교, 복권, 언론자유, 개헌 및 국보위 제정 법률의 개폐 등을 요구하며 단식을 계속했다. 5월 25일 서울대 병원에 입원하였고, 링겔 치료를 받았으나 6월 9일까지 단식을 멈추지 않았다.
당시 신군부 정권은 김영삼을 가택연금하여 사실상 구금시킨 상태였으며 언론도 철통같이 통제하여
[2] 이 일이 외부로 새나가는 것을 막으려 했지만 결국 백기를 들고 억압을 풀게 된다.
세간에 퍼진 도시전설의 골자는 다음과 같다. 당시 김영삼 총재를 걱정한 문익환 목사가 사전 연락 없이 김영삼을 방문했는데, 김영삼이 단식투쟁을 하는 방문을 열며 "여~ 김영삼 동지. 수고가 많습니다!"라고 외친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은 보름달 빵과 우유……라는 것. 이것은 일본의 Korea 조작설만큼이나 꽤 유명한 카더라 통신이 되었지만 정작 제대로 된 출처는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으며, 단지 재미삼아 떠벌리기엔 명예훼손죄에 걸리기도 쉬운 위험한 내용이기도 하다.
사실 민주화 투쟁 당시 두 사람의 위치를 감안해보면 문익환 목사의 김영삼 가택 기습방문이 가능한 상황이었는지조차도 의문스럽다.
[3] 두 사람이 이렇게 격의없이 만나는 것은 정권이 일부러 허용해주지 않는 이상은 어렵다고 볼 수 있다. 게다가 김영삼이 단식 끝에 중태에 처한 것은 부정할 수도 없는 사실이다.
이런 루머가 언제 어떤 식으로 유포되었는지에 대한 뚜렷한 경로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으며, 다만 단식 투쟁으로부터 10년도 더 지난 90년대부터 확산된 것으로 보아 아무래도 3당합당을 비롯한 여러가지 사건으로 반감을 갖게 된 이들 혹은 지역감정 조장자들로부터 악의적인 의도로 유포된 것으로 추정된다. 김구라가 인터넷 방송 시절 이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그런데 다른 사람도 아니고 사건과 관련된 인물 중 한 사람인 문익환 목사의 아들인 문성근이 2012년 1월 나는 꼼수다에 출연해서 김용민의 질문에 이 사건은 사실이라고 밝혔다. 타임머신이 필요한 순간일지도....하지만 문성근씨 역시 문익환씨가 위에 서술한 가택연금 상황을 무슨 방법으로 돌파하고 들어갔는지에 대한 명확한 설명은 하지 못했기에[4][5] 100% 신뢰하기엔 무리가 있다.
당시 병원에서 검사한 결과 소금과 물만 먹었다는 기록도 있다.
그런데 사실 이건 모두 성립 가능한 이야기이긴 하다. 요는 시간의 문제이다. 시간 순으로 설명하자면,
5월 18일, 김영삼은 성명을 발표하고 단식투쟁을 선언한다.
5월 25일, 정부는 김영삼을 서울대학병원으로 이송한다. 이 때 김영삼은 치료를 거부하고 단식을 계속한다.
5월 29일, 정부는 가택연금 해제를 발표하고, 상도동 자택과 병원에 있던 정보원들을 모두 철수시킨다. 그리고 국내외 기자들과 동조자들이 김영삼을 만나게 된다. 이 때 단식으로 마른 김영삼의 모습이 방송과 언론을 타게 된다.
6월 9일, 김영삼은 교계와 그외 인사들의 설득을 받아들여서 23일간의 단식을 중단하게 된다.
즉, 5월 29일부터 6월 9일까지의 기간동안은 감시자도 없고, 예고없이 만날 수 있는 시점이 형성되는 것이다. 이 시기동안 문익환이 김영삼을 방문했다면, 보름달빵 사건이 성립될 여지가 있기 때문이고, 이건 위의 병원기록과도 상충되지 않는다.
[1] 실제 1987년 대선에서 문익환 목사는 김대중 지지를 공개적으로 천명했다. 이를 미루어 볼때 김영삼을 그다지 신뢰하지 않았다는 것은 사실인듯 하다. 물론 보름달빵의 진실여부는 저너머에...
[2] 당시는 소위 보도지침의 의거해서 독재정권에 불리한 기사는 일체 못나가게 하던 시절이다. 하지만 재치있는 일부 기자들이 신문 구석 가십란에 '모 재야인사의 식사문제가 화제다' 식으로 모호한 몇개의 문장을 집어넣었고, 행간을 읽는데 도통한 독자들은 '누군가 단식하고 있구나'하고 알아차렸다고 한다.
[3] 당시 조선일보에 연재중이던 '고바우 영감'에서도 김영삼 저택 근처에서 강도와 마주친 고바우 영감이 가택연금중인 김영삼 저택 근처에 잠복해 있던 경찰들에게 구조(…)된다는, 다시 말하면 경찰서 못잖게 경찰들이 철통으로 감시 근무한다는 사실을 비꼰 묘사가 있을 정도.
[4] 내용 자체가 김용민의 질문에 대해서 문성근이 한 말은 딱 한 마디 "사실입니다" 이거 하나였다.
[5] 이후 김용민이 나는 꼽사리다 3화에서 언급한 것에서는 서울대학병원에서 만났다고 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6] 주진우 기자가 시사저널 시절에 한나라당 취재갔다가 나온 이야기인 듯 싶다.
첫댓글 서울대병원에서 문익환목사님이 단식격려 방문하다 봤다고 2000년초반에 집안 어른들 이야기에서 들었습니다.
주석 6에서 6은 없는데 주석만 있네요;;
개드립일 가능성이 더 크다는 거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