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샘통문 Ⅲ-37]만수식당과 ‘111살’
아버지는 100회 생신을 맞아 음력과 양력, 두 차례 성대하게 생신상을 받으셨다. 양력생일은 증손자 증손녀 포함 슬하 총생들만 50여명이 모여 한정식집을 전세내 4시간여 즐거운, 다시 없을 시간을 보냈다. 본래 음력생일은 보훈요양원에서 차려줬다. 그곳에서도 최고령이다. 단지 최근래 일들을 금세 까먹는 것 말고는 치매(인지장애)증상이 오지 않았으니 이 얼마나 다행한 일이고 복받은 일인가. 이렇게만 사시며 장수(長壽)한다면, 게다가 자식들에게 금전적으로도 어떤 민폐를 끼치지 않는데, 이런 홍복(洪福)이 어디 있으랴 싶다. 단기 기억은 잘 못하시지만, 상수연(上壽宴)때 헌정한 <아버지-100년의 봄, 100장의 기억>과 잔치 이후 만든 <별책부록-총생들의 세상>이라는 감사앨범을 옆에 끼고 산다는 담당 간호사의 말을 들으면 흐뭇하기만 하다.
어제는 큰 누이동생 부부와 삼복지절을 맞아 면회, 외출을 해 냉면을 사드렸다. 무엇이든 가리지 않고 잘 잡수는 아버지를 보면 역시 ‘밥이 보약’이라는 생각이 든다. 저렇게 잘 드시니, <인간극장 2>에서 “아버지는 105살까지도 너끈하실 터이니 암 걱정 말고 가수 김성환의 노래나 불러보씨요”라고 한 내 말이 맞을 것같다. 요양원에 모셔다 드리려 식당을 나서는데 식당 간판을 보며 한 말씀 하시는데 우리 모두 깜짝 놀랐다. “식당 이름이 물이 가득찬다는 만수네. 가득찰 만, 물 수. 춘수만사택(春水滿四)에서 따왔구만” “아이고, 아버지가 입춘날에 써 기둥에 붙인 말인데, 그걸 기억하시네. 근디 만수는 만수무강(萬壽無疆)를 줄인 거래요” “그려. 그것도 맞네” “춘수만사택, 그 다음 구절이 뭔지 알아요. 도연명이 쓴 한시라는디. 하운다기봉(夏雲多岐峰)이라, 추량황국발(秋涼黃菊發)이요, 동한백설래(冬寒白雪來)로다. 알아요?” “몰라, 생각안나. 진작에 농판(기억력 바보를 뜻하는 전북지역 방언)이 다 버릿어” “농판이 아니라 당연한 거요. 백 년을 사셨는디. 아버지가 오수면에서도 최고령이랑개” “그려. 아는 사람이 하나도 없어. 다 가버렸어” “글도 106살 먹은 1920년생 철학교수도 있어요. 그 양반은 지금도 강의허고 댕닌당개” “그런 사람도 있것지” 이 정도만 소통이 되면 짱이다.
우리집 든든한 맏사위가 끼어들었다. “아버님, 인자 세 자릿수 넘겼응개 ‘111’까지 갑시다. 1자가 3개요” 이때 효녀상을 백 살 아버지로부터 직접 받은 큰 딸, 뒷자리에서 신랑 허리를 쥐어박으며 “아이고- 그것은 악담이요. 악담이잉” 큰소리로 말해 우리는 웃었다. 악담인가? 축원인가? 허나, 아버지는 무슨 말인지도 모르고 벌써 자울자울(조는 모양)하신다. 이미 희로애락(喜怒哀樂)을 초월(?)하신지 오래이다. 세상일은커녕 총생들의 일, 그 어떤 것도 궁금해 하지 않으신 것같다. 어머니도 생각나지 않은 것같은데, 사진을 보면 하나하나 이름까지 짚는다. 상수연때 찍은 이모 사진을 보여드리니 “쌍둥이어맨디”(이모가 쌍둥이를 낳았다)하신다. 그날 아버지는 95세 처제와 배 속에 든 증손녀들에게도 용돈도 줬다. 정말로 마지막일 것이다. 이건 정말 흔치 않은 일일 듯하다.
고향 선배가 내가 2007년 쓴 아버지에 대한 산문시를 읽고는 “효자같은디 전화받는 것보면 불쌍놈이 따로 없는 것같고” 하루에 대여섯 번 밥먹으라고 오는 전화를 퉁명스럽게 받는 것을 보고 하는 ‘지적질’이다. 자식이 일곱이나 있는데, 월말부부로 고향에 홀로 사는 내가 당신 마음에 콱 찍히신 모양이다. 나한테만 한다. “아이고, 고생이다. 밥 먹어야제”라는 말을 끼니끼니 들어보시라. 전라도 말로 ‘숭시러서’(번거롭고 귀찮고 성가시다는 뜻일 듯) 정신까지 산란해진다. 근디도 안오면 어디 아픈가, 무슨 일 있는가, 은근히 걱정도 된다. 내가 하는 전화는 귀가 약해 받지도 않는다. 똑같은 대답을 녹음해 전화가 오면 자동으로 들려드리게 하라는 충고를 벌써 여러 명에게 받았다. 나는 행복한 놈이 맞는가? 맞는 것같다. “맞아요. 나는 그냥 ‘글로만 효자’요. 말효자도 아니고 몸효자는 더욱 절대 아니랑개요. 글효자는 말짱 도루묵이요. 반성을 해도 잘 안돼요” 정말 100 허고도 111살까지 사실까? 아무리 건강한 노인들이라도 장수는 장담할 수 없다는데, 삐끗 넘어져 고관절에 금이 가거나, 폐렴이 걸리면 돌아가시는 것은 시간문제라는데, 아아. 우리들의 '큰 산' 아버지의 마지막은 우리에게 어떤 모습을 남기실까? 그것이 궁금하다. 9-10월 스포(스페인-포르투갈) 한 달 여행 중에는 돌아가시지 않으리라 믿는다.
덧붙임: 사진은 시적 다큐멘터리 사진작가 이반(69) 선생이 찍었다.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