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16일(월) 이사야 30:27-33 찬송 494장
27. 보라 여호와의 이름이 원방에서부터 오되 그의 진노가 불 붙듯 하며
빽빽한 연기가 일어나듯 하며 그의 입술에는 분노가 찼으며 그의 혀는 맹렬한 불 같으며
28. 그의 호흡은 마치 창일하여 목에까지 미치는 하수 같은즉 그가 멸하는 키로
열방을 까부르며 여러 민족의 입에 미혹하는 재갈을 물리시리니
29. 너희가 거룩한 절기를 지키는 밤에 하듯이 노래할 것이며 피리를 불며
여호와의 산으로 가서 이스라엘의 반석에게로 나아가는 자 같이 마음에 즐거워할 것이라
30. 여호와께서 그의 장엄한 목소리를 듣게 하시며 혁혁한 진노로 그의 팔의 치심을
보이시되 맹렬한 화염과 폭풍과 폭우와 우박으로 하시리니
31. 여호와의 목소리에 앗수르가 낙담할 것이며 주께서는 막대기로 치실 것이라
32. 여호와께서 예정하신 몽둥이를 앗수르 위에 더하실 때마다 소고를 치며 수금을 탈 것이며
그는 전쟁 때에 팔을 들어 그들을 치시리라
33. 대저 도벳은 이미 세워졌고 또 왕을 위하여 예비된 것이라 깊고 넓게 하였고
거기에 불과 많은 나무가 있은즉 여호와의 호흡이 유황 개천 같아서 이를 사르시리라
(개역 개정)
- 앗수르에 대한 심판 예언 -
앞에서 애굽을 의지한 유다에 대한 책망과 심판 경고를 주고(1-7절)
이어 하나님의 위로와 회복 약속을 주었던(18-26절) 이사야는
이제 오늘 말씀에서 유다에 대한 하나님의 징계 도구였던
앗수르에 대한 심판을 예언하고 있다.
본문 내용을 보면, 먼저 27-29절은 앗수르를 심판하시기 위해
임재하시는 하나님의 위엄과 하나님을 맞는 그의 백성들의 기쁨을,
30-33절은 하나님의 심판으로 인해 낙담하고 절망하는
앗수르의 비참한 종말을 기록하고 있다.
북이스라엘을 B.C.722년에 멸망시키고 남유다에 대해서도 끊임없이
공격해 왔던 대적 앗수르의 멸망은 곧 유다의 구원이었다.
본문은 이러한 앗수르의 멸망이 유다가 의뢰했던 애굽에 의해서가 아닌
오직 하나님의 권능에 의해서 이루어질 것임을 보여준다.
그리고 이 예언은 실제로 B.C.612년 바벨론 제국에 의한
앗수르의 수도 니느웨성의 멸망으로 성취되었다. 이는
① 구원은 오직 여호와 하나님께로서만 말미암는다는 것(45:17; 욘2:9; 욜2:32)과
② 그러므로 어떠한 경우에도 이 세상 것을 의뢰해서는 안되며
오직 여호와만을 앙망하고 신뢰해야 한다(시32:10; 단9:18)는
간단하면서도 매우 의미심장한 교훈을 준다.
29절) 「너희가 거룩한 절기를 지키는 밤에 하듯이 노래할 것이며
피리를 불며 여호와의 산으로 가서 이스라엘의 반석에게로
나아가는 자 같이 마음에 즐거워할 것이라」
먼저 27.28절을 보면 열방을 향한 하나님의 위엄과 진노,
그리고 그에 근거한 심판 집행을 묘사하고 있다.
이는 아마도 예루살렘을 포위하고 있던 산헤립의 앗수르 군대가
하나님의 사자에 의해 완전히 괴멸되고 산헤립 또한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고국에서 살해된 사실을 염두에 둔 예언으로 보인다.
당시 예루살렘을 포위하고 있던 앗수르 군대의 군사들의 수가
얼마나 되는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엄청난 규모였다는 사실만큼은 분명하다.
그리고 성경은 하나님의 맹렬한 진노의 심판으로 죽은
앗수르 군사의 수가 무려 18만 5천에 이른다고 적고 있다.(사37:36)
이는 예루살렘 성의 규모로 볼 때 그 성을 포위하고 있던
앗수르 군대 전체가 아닌가 생각된다.
당시 앗수르 군사는 예루살렘을 포위하고 있던 군사들 외에
다른 곳에도 더 있었는데 그들 외에 예루살렘을 포위하고 있던
앗수르 군사들은 거의 괴멸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앗수르 군사들이 다 괴멸된 가운데서도
예루살렘에 거하고 있던 유다 사람들은 모두 안전하였다.
29절은 예루살렘 거민들이 앗수르 대군으로부터
온전한 보존과 승리까지도 주실 것임을 나타낸 말씀이다.
여기서 ‘거룩한 절기’란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탈출할 때
처음 지켰던 유월절을 나타낸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때 하나님은 애굽에 장자 재앙을 내리셨는데 하나님의 지시에 따라
문에 어린 양의 피를 바르고 그 안에 거하였던 이스라엘 자손들의 집은
죽음의 사자가 넘어감으로써 아무도 재앙을 당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너희가 거룩한 절기를 지키는 밤에 하듯이 노래할 것’이라는 것은
하나님께서 심판을 베푸실 때 예루살렘을 포위하고 있던 앗수르 군은
죽음의 사자로 인해 몰살을 당하지만 예루살렘 거민들,
곧 하나님의 백성들은 온전하게 보존될 것임을 지적한 것이다.
이러한 본문의 말씀 중 과거 하나님의 심판으로
자신들의 장자들이 죽임을 당하였던 애굽이나 이사야 당시 예루살렘을 포위하고
공격하던 앗수르 군은 모두 불의한 세상과 악한 세력을 상징한다.
그리고 이스라엘 자손이나 예루살렘 거민은 하나님의 언약 안에 살며
하나님이 보호의 인을 치신 성도들을 상징한다.
또 앗수르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나 애굽에 임한 장자 재앙은
불의한 세상에 대한 하나님의 종말론적 심판을 예표한다.
따라서 우리가 이러한 사실을 통하여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세상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의 양면성이다.
즉 세상 가운데 하나님의 심판이 내려질 때 세상에 속한 자들은
파멸을 면치 못하지만 하나님의 자녀들은 온전하게 보존되어
승리의 노래를 부르며 구원의 기쁨을 누리게 된다.
물론 우리들 역시 세상 가운데 살아가며 세상 사람들과 더불어
하나님의 심판의 자리에 설 것이다.
그러나 우리들은 그러한 심판의 희생물이 되지 않는다.
하나님은 온 세상을 심판하시지만 당신의 백성인 우리들에 대해서는
아주 특별한 은혜를 베푸시며 안전하게 보호하시며
의와 구원의 자리로 인도하시기 때문이다.
이러한 심판의 양면성을 성경이 가르치는 것은
우리로 하나님의 심판 앞에서도 당당하고 의연한 삶을 살도록 하기 위함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은혜와 구원에 합당한 삶을 살아야 한다.
하나님의 보호를 확신하고 하나님의 인치심을 굳게 지키며 살아야 한다.
하나님만을 붙들며 하나님께 기도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오로지 하나님의 언약 위에 굳게 서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하나님의 인치심 안에, 하나님의 보호하심 안에 거해야 한다.
그처럼 행하는 자들은 장차 임할 심판의 날 찬송을 부르며 승리의 개가를 부를 것이다.
감사와 감격의 고백을 올려드리게 될 것이다.
우리 모두 이처럼 복된 삶, 승리의 삶, 구원의 삶을 살기를 소원한다.
「인자가 자기 영광으로 모든 천사와 함께 올 때에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으리니
모든 민족을 그 앞에 모으고 각각 구분하기를 목자가 양과 염소를 구분하는 것 같이 하여」
(마25:31-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