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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갈등에 대한 21세기의 대안 / 황필호
가종(加宗): 종교 갈등에 대한 21세기의 대안
동서의 차이
일반적으로 학자들은 서양인의 마음은 ‘이것이냐? 저것이냐?’(Either-or)로 표현되지만 동양인의 마음은 ‘이것도 저것도’(Both-and)로 표현된다고 말한다. 서양인은 언제나 하나의 특정종교에 속해야 한다고 생각하며, 이런 상황에서 개종이란 과거의 모든 신앙을 깡그리 버리고 전혀 새로운 신앙을 받아들이는 것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동양은 그렇지 않다. 예를 들어 한국과 중국에서 군자(君子)는 유불선 삼교(三敎)에 능통한 사람을 지칭해 왔다. 그래서 서양의 여행자들이 중국에서는 한 사람이 유교·불교·도교라는 세 종교에 동시에 소속될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심히 당황했으며, 중국인들은 이 세 종교를 각기 다른 대안적 종교로 간주하는 서양인의 안목으로 보지 않고 오히려 중국인의 지속적인 삶 속에서 상호침투하는 힘의 영역과 비슷한 것으로 생각해 왔다는 사실을 아주 천천히 깨닫게 되었다.
대안으로서의 가종
종교경험을 포함한 모든 인간문화는 누적적(累積的)이다.
예를 들면, 유교는 오늘날 한국에서 민족적 도덕심의 마지막 보루로 남아 있다. 그래서 우리는 일단 ‘모든 한국인은 심정적으로 유교적’이라고 말할 수 있다. 또한 한국인은 그들이 기독교인이나 불교인이 된 이후에도 이런 유교적 심성을 그대로 가지고 간다. 이렇게 한국인에게 있어서 모든 종교적 경험은 누적적이며, 그래서 한국인은 배타적인 개종(改宗)보다는 포괄적인 가종(加宗)을 더욱 선호하게 된다.
우리가 개종보다 가종을 선택해야 되는 또 다른 이유로 옥스포드 영어사전에 개종을 ‘어떤 사람에게 특별한 종교신앙을 갖게 하는 것, 특히 거짓이나 오류로 간주되는 종교로부터 참으로 간주되는 종교의 신앙을 갖게 하는 것’으로 정의했듯이 개종은 거짓으로부터 진리에로의 변화가 아니라 ‘거짓으로 간주되는 것’으로부터 ‘참으로 간주되는 것’으로의 변화가 될 뿐이다.
그래서 모든 종교인은 항상 자신의 종교를 떠나 다른 종교를 선택할 가능성을 가지고 있으며, 그는 이런 개종을 통해 시간이 지나면서 자신의 새로운 종교경험을 옛날의 경험에다가 더욱 추가할 수도 있는 것이다.
하나의 모범으로서의 한국
이런 상황에서 나는 한국이 종교간 대화의 가장 이상적인 상태에 대한 하나의 모범이 될 수 있다고 제안한다.
많은 학자들은 현재 한국의 종교 상황을 ‘종교 백화점’이라고 성격짓는다. 적어도 기독교, 불교, 유교, 무교(巫敎), 신종교의 5개 종교가 다같이 성행하면서도 비교적 평화롭게 공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우리가 현재 세계 어느 곳에서도 발견할 수 없는 독특한 현상이다. 물론 특히 최근에 들어와서 이를테면 기독교와 불교 등의 지역적 마찰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가?
나는 가종(加宗)에 있다고 믿는다. 한국인들은 무의식적으로 무교(巫敎)신앙을 가지고 있으며, 그 위에 다시 유교도덕을 추가하고, 다시 이 무교신앙 및 유교도덕 위에 불교신앙 혹은 기독교신앙을 추가한다.
역사적으로 볼 때 한국인의 마음을 처음 사로잡은 종교인 무교신앙은 현재까지도 일반 사회생활 뿐만 아니라 모든 종교에 강력히 존재하고 있다.
무교 다음에는 중국에서 유교가 들어왔지만 한국인은 유교를 받아들이기 위해 지금까지 가졌던 무교신앙을 송두리채 버리지 않았다. 또 뒤이어 불교가 들어왔지만 불교를 받아들이기 위해 무교적 및 유교적 신앙을 버리지 않았다.
그 다음에 기독교가 들어왔는데 이 경우에 특이한 일이 벌어졌다. 물론 한국인들은 새로운 기독신앙을 받아들이기 위해 지금까지 가지고 있던 무교적·유교적·불교적 개념을 송두리채 버리지 않으면서도 기독교를 반불교적인 입장에서 수용했으며, 이런 사실은 나중에 불교를 반기독교적으로 만들었다.
한국인들이 지금까지 지켜온 중용을 앞으로도 지킨다고 가정한다면, 나는 미래의 모든 한국종교가 한국적일 뿐만 아니라 무교적·유교적·불교적·기독교적으로 되기를 바란다.
미래는 개종의 세계가 아니라 가종의 세계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마지막 단계에서 한국인은 모든 종교 위에 또 하나의 종교를 첨가하게 될 것이며, 이 마지막 종교는 아마도 한국에서 발생한 ‘한국교’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 마지막 한국적 민족종교가 천도교·원불교·단군교·통일교 중에서 하나가 될 것인지, 앞으로 태어날 새로운 신종교인지를 예언할 수는 없다. 하여간 이 마지막 단계에서 무교적·유교적·불교적·기독교적·한국적으로 될 것이며, 그래서 각기 다른 종교의 모든 지혜 소유권의 확장은 절정에 도달할 것이다.
종교 복수주의를 넘어서
이제 우리는 신(神)중심주의와 도(道)중심주의의 구분, 하느님의 인격성과 원리의 비인격성의 구분, 서양과 동양의 구분을 모두 초월해야 한다.
모든 종교는 우리의 종교경험을 더욱 풍요롭게 만들며, 그래서 우리는 한 종교로부터 다른 종교로 개종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이런 정신은 정산종사의 법어인 『세전』(世典)에 잘 나타나 있다.
“신앙의 길은 타력신과 자력신을 아울러 나아가는 것이니, 신앙의 대상을 우러러 믿고 받들어 나아가는 것과 자기의 성품 가운데 모든 이치가 본래 갖추어져 있음을 발견하여 안으로 믿고 닦는 것을 병진(竝進)할 것이다.”
여기서 종교의 모든 구별은 사라진다. 타력신앙과 자력신앙, 인격성과 비인격성, 신앙의 대상과 신앙의 원칙, 신앙(신 중심)과 수양(도 중심), 즉 ‘신앙의 대상을 우러러 믿고 받들어 나아가는 것’과 ‘안으로 믿고 닦는 것’의 구별은 존재할 수 없다.
이제 우리는 종교적인 순례를 하면서 우리들의 종교적 경험을 추가하거나 감소시킬 수 있고, 더욱 보충하거나 삭감할 수 있고, 증가시키거나 감퇴시킬 수 있다. 즉 우리는 그것을 더욱 풍요롭게 하거나 더욱 초라하게 만들 수 있고, 이것은 전적으로 우리의 선택이다. 만약 우리가 가종의 개념을 받아들인다면 현재 우리가 세계 도처에서 목격하고 있는 수많은 종교분쟁과 전쟁은 존재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한국종교학회장, 강남대 종교철학과 교수>
지난달 21일 원광대 숭산기념관에서 ‘미래사회와 종교’란 주제로 열린 정산종사 탄백기념 국제학술대회 발표내용을 나상호 기자가 요약·정리했다. 편집자주
원불교신문 2000.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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