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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외군요. 평생 다시 보지 않을 사람처럼 대하시더니?”
“평생 다시 보지 않을 사람처럼 이라니. 많이 섭섭하셨나 보군 데스칸테 공.”
후안의 말에 가드미온은 여유 있게 받아 쳤다. 성의 차갑고 음울한 공기를
마신 후안은 더 이상 두 아이의 탄생에 들떠있는 아버지가 아니었다. 그토록
오래 후안을 피했던 왕이 이젠 그를 불렀다. 이건 결판을 내자는 그의
암묵적인 신호다. 그것을 후안이 모를 리 없다.
가드미온은 잔뜩 격식을 차린 모습이었다. 여전히 성직자 같은 검은 옷을 입고
있었지만 화려한 금 귀걸이를 한쪽 귀에 달고, 섬세한 손엔 반지 여러 개를
끼고, 화려한 왕관을 쓰고 있는 그의 모습은 과거 루벳 국왕 못지 않게
사치스러웠다. 루벳국왕이 자신을 치장하는데 쓰던 돈들은 모두
브리와 혼인 후 디에고를 뒤이어 후안이 보내준 돈에서 나온 것들이었고, 이는
가드미온도 마찬가지다. 마치, 돈을 빌려간 채무자가 주인 앞에서 그 돈으로
위세를 떠는 모습. 자신을 비꼬는 것 같았기에 후안은 묘하게 기분이 상했다.
하지만 기분과 상태를 드러내지 않는 건 그의 특기 중 하나였기에 그의
모습은 여전히 여유롭고 아름다운, 델프라의 상인이었다.
“자 그럼 본론으로 들어가죠. 저는 급합니다. 전하께서 저를 무시하던 수 많은
시간 동안 답답해서 혼났습니다.”
“그래, 쌓인 게 많았을 것 같아. 하지만 듣지 않아도 알겠어. 상세를 내려달라 이거지?”
“정확히 짚으셨습니다 폐하.”
가드미온은 피식 웃었다. 더 이상 소년의 모습을 찾아 볼 수 없는 그의
얼굴에서 흐르는 웃음은 마치 후안을 비웃는 것 같아, 그는 포커페이스를 유지
해야 할 의무 아닌 의무를 잊고 그만 미간을 구겼다. 그의 표정 변화에
가드미온은 즐거워했고. 턱을 괸 그는 거만하게 말했다.
“대답은 경도 알고 있을 거야. 안 돼.”
“궁금한 게 그것이 아님을. 폐하께선 알고 계실 겁니다.”
싱긋 후안이 웃었다. 가드미온의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졌다. 하지만 그의
얼굴에선 묘한 여유가 떠나지 않았다. 마치 이미 승리한 것 같은 승리자의
얼굴. 속이 뒤틀린다. 허나 후안도 가드미온도 모두 그들의 심경을 표정에
담진 않았다. 만약 귀를 틀어막고 이들의 대화를 보기만 한다면 아마 친밀한
공작과 왕, 매형과 처남의 다정한 대화라고 착각 할 것이다.
“그래, 이유를 말해달라 이거지?”
후안은 고개를 끄덕이지 않았다. 그의 옅은 미소로 이미 대답은 끝났다.
가드미온은 거만한 얼굴로 후안을 바라보다, 한쪽 입 꼬리를 올려 빙긋
웃었다.
“대답하지 않을 거야. 스스로 느껴.”
의미심장하고 두리뭉실하여, 가드미온과 별반 친분이 없는 후안은 쉽사리
추측할 수 없었지만 그의 말이 더럽게 기분이 나빴고, 좋은 의도가 아님을
알아 차릴 수 있었다. 그는 확신했다. 왕은 반감을 갖고 있다. 그 누구도 아닌
누님의 남편인 자신에게. 후안은 가드미온을 바라보며 출산을 앞둔 그의 왕비
비앙카를 떠올렸다. 벨스의 약혼녀. 자신에게 살의를 갖고 있는 마녀 같은
여자. 그녀의 영향도 없지 않아 있을 것이다. 벨스, 벨스. 빌어먹을 악연.
“결론만 말하고 가겠습니다. 전하께서 상세를 낮추지 않으시겠다면. 저도
지원을 끊겠습니다.”
“그럼 누님과의 결혼은 철회하지.”
하마터면, “개소리 집어 치워!” 라고 말할 뻔 했기에 후안은 어금니를 굳게
깨물 수 밖에 없었다. 거만하고 뻔뻔한 얼굴의 가드미온은 생글생글 예쁜
웃음을 멈추지 않으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누님과의 결혼, 공작이라는 타이틀. 이 두 개와 당신의 돈을 거래한 것
아니었어?”
“폐하께서 제 아내의 남동생이시고, 존경하는 루벳 국왕폐하의 뒤를 이은
분이라 제 호의가 지금까지 이어졌던 것뿐. 루벳 국왕폐하께서 돌아가시면서
제 의무는 끝났습니다.”
“이젠 내가 왕이야. 내 마음대로 못할 게 뭐가 있어?”
꺾이지 않는 후안의 기세에 가드미온은 조금 악이 받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자 후안은 가소롭다는 듯 싱긋 웃는다.
“저는 마음대로 못하실 겁니다.”
오만이라고 칭하기엔 지극한 사실이었기에 가드미온은 그 이상 말을 잇지
않았다. 다만 이것으로 확실했다. 오늘 데스칸테 공작과 가드미온 데 위더
왕의 친분은 끝이다. 둘 사이에 어떤 도움도 원조도 없을 것이다. 가장 먼저
후안의 지원이 끊어질 것이고 그 다음은….
후안은 피식 웃었다. 그도, 두려울 것이 없다.
“그래, 저와 적이 되시겠다. 뭐 저와 적이 되셔도 나라를 잘 운영하시겠다면.”
“공이 없는 5년간 잘 굴려왔어.”
“5년동안 제가 없긴 했어도, 제 돈은 꼬박 폐하를 도왔습니다.”
“상관없어. 앞으로 더욱 상세를 쥐어짜면 되니까.”
비열한 웃음의 가드미온이 말했다. 허나 후안은 그의 말엔 콧방귀도 뀌지 않은
채. 여유 있는 어조로 말을 이었다.
“만약, 어마어마한 상세로 저의 돈을 모두 긁어가시려는 속셈이셨다면
포기하세요. 적어도 20년은 더 걸리실 터이니. 아마 그 때쯤이면 이 나라의
상업은 무너지고 돈이란 돈은 이미 외국으로 나간 뒤겠지요.”
더 이상 있을 필요가 없다 느낀 것인지 후안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를 으득
간 가드미온이 그를 바라본다. 말하는 것 하나하나 얄미울 지경이다. 그럴 리
없다 생각하면서도 가드미온은 그의 말에서 불길한 예감을 느꼈다. 그는 물론
가드미온의 적이긴 하지만 그 쪽으론 전문가가 아니던가. 어쩌면 그의 말대로
될 수가 있다. 상업국가인 델프라의 상업이 무너진다. 이는 나라가 무너지는
것을 뜻한다.
“꼴도 보기 싫어. 당장 나가!”
그가 흔들렸다. 이에 후안은 승리의 미소를 지어 보이며 유유히 자리를 떠났다.
그는 왕을 향해 허리도 숙이지 않았고. 그렇다고 인사말을 건네지도 않았다.
마치 자신이 위풍당당한 왕처럼 걸어 나섰다. 이 나라 최고의 권력자인 왕의
선전포고에도 굴하지 않고 당당한 그를 보며 가드미온은 굴욕감과 함께 묘한
경외감이 들었다. 만약 그가 비앙카의 복수는 제쳐두고 나라와 자신을 위해 저
자와 손을 잡는 것도 꽤 나쁘지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허나, 그는 이미 약속했다. 저 자를 죽일 것이다. 저 자를 죽인 후, 저 자의
천문학적인 돈이 나라의 돈으로,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그의 상단이 나라의
상단이 된다면. 후안을 또 다른 태양으로 두고 왕의 자리에 머물지 않아도
된다. 비앙카도 웃을 것이다. 이래저래 생각해도 그가 밑지는 일은 아니었다.
‘흥, 그 콧대 언제까지 가나 보지.’
가드미온은 생각했다. 하지만 분한 건 여전했다. 기분 나쁜 사내다. 후안은.
거친 마차소리가 들리자 알리시아는 금새 미소를 지었다. 이윽고 읽던 책을
덮은 알리시아는, 흘러내린 긴 머리를 귀 뒤로 넘긴 뒤 화장대 앞으로
달려갔다. 계절 두 개가 바뀐 사이 그녀의 머리는 많이 길었다. 더 이상
탐스러운 머리결의 아름다운 생머리를 질끈 묶는 것으로 가리지 않는
알리시아는 그녀의 건강한 피부색과 잘 어울리는 진분홍의 드레스를 입은
자신의 모습을 이리저리 바라보다 끼익, 열리는 문소리에 서둘러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미소.
"입었어?"
라이넌은 인사대신 웃으며 말했다. 알리시아는 보란 듯이 한 바퀴 돌아보더니
그 앞에서 생긋, 미소를 지어 보였다. 밖엔 비가 왔다. 코트와 모자를 벗은
라이넌은 역시, 라는 얼굴로 알리시아를 바라봤다. 그녀에게 잘 어울리는
드레스다. 라이넌은 곧 만족한 미소를 지어 보였고. 그런 그의 목에
알리시아는 안겼다.
그 날 알리시아는 물었다. 단순히 데스칸테 상단에 대한 정보를 캐기
위해서라면 꿈 깨라며, 차갑고 단단한 어조로. 그러나 라이넌은 넘어진 그녀를
안아 올려, 침대에 눕히곤 말했다. 「남자가 여자를 호텔에 데려갔는데. 단지
졸려서였겠어?」아무 말도 못하는 알리시아는 라이넌을 바라보지 않은 채
거절의 의사를 내보였지만 라이넌은 괘념치 않은 채 그녀의 입술을 덮쳤고,
그것이 시작이었다.
"하루 종일 뭐했어?"
"공부했어요"
알리시아를 안아 올린 라이넌은 침대로 향했다. 알리시아는 달콤하게,
라이넌의 입술에 입을 맞추었고. 곧 그에 의해 침대에 누웠다.
"당신 서재에 가서, 델프라어로 되어있는 책들도 읽고."
마치 벗기기 위해 존재하는 듯한, 진분홍의 드레스가 연한 초콜릿 색
알리시아의 부드러운 살결을 타고 흘렀다. 드러난 동그란 어깨를 키스로
적시곤, 라이넌이 말했다.
"훌륭해."
"당신도,"
짧은 대답 후 자신의 농염한 입술로, 라이넌의 입술을 적신 알리시아는 곧
그를 끌어안았고. 자신의 가슴에 얼굴을 묻은 라이넌의 갈색머릿속에 손을
넣어 헤집었다. 그의 열렬한 애무에 알리시아는 질끈 눈을 감았고, 점점
구름에 뜬 것 같은 기분에 시트를 꾹 쥐었다. 그리고, 그 손을 라이넌의 큰
손이 덮었다. 서로 깍지를 낀 두 사람. 그러다 문득 눈을 뜬 이 물감을 느낀
알리시아는 작게 눈을 떴고. 라이넌의 부드러운 애무가 그녀의 가냘픈 허리를
공략할 쯤 그녀는 라이넌의 손가락에, 커다란 다이아 반지가 끼워져 있음을
확인했다. 조세핀과의 약혼 반지. 알리시아는 갑자기 라이넌의 애무가 선사한
황홀경이 가심을 느낄 수 있었다. 그녀는 그의 애무에, 작게 소리를 내는 한편
라이넌의 새하얗고 섬세한 손가락을 차지한 그 반지를 서서히 빼어두었고
그래도 마음에 들지 않는지 결국은 손가락으로 튕겨, 마호가니 나무 바닥에
멋대로 뒹굴게 내버려 두었다.
두 연인은 신음소리와 호흡이 가득한 그 방에 유난히 반지의 소리는 컸다. 꽤
무거운 반지였기에 금방 그 빈자리를 알아차린 라이넌은 줍기 위해 몸을
일으켰지만 곧장 알리시아도 따라 일어나 다시 그의 품에 안기고, 그의 입술을
적시고 그를 눕힘으로써, 그것을 저지하였다.
"하루 종일 보고 싶었어요. 목소리도 그립고, 손길도 그립고, 견딜 수
없었어요."
그녀의 귀여운 말에 이어진 열렬한 키스에 라이넌은 조세핀은 이미 잊어버린
듯 다시 알리시아를 끌어안았다.
몇 번을 뜨거운 희락으로 가득 채운 두 사람은 밤이 깊어서야 휴식을 취했다.
알리시아는 가슴까지 이불로 둘둘 가린 다음 라이넌과 후희를 즐기고
싶어했다. 그러나 라이넌은 시트로 골반을 감은 뒤 서둘러 침대 밑을 포함하여
찾기 시작했다. 바로 반지를. 알리시아는 샐죽한 얼굴로 침대에 앉아 그를
바라봤다. 헝클어진 검고 긴 머리를 쓸어 내린 그녀는 못마땅한 표정이다.
"찾았다."
라이넌은 곧 커다란 반지를 허공에 던진 후 다시 잡곤, 웃으며 알리시아의
곁으로 돌아왔다. 엔드 테이블 위에 반지를 올려둔 라이넌은 언제나처럼
알리시아를 품에 안은 채 누우려 했지만, 알리시아는 차갑다 할 정도로 그의
손을 뿌리쳤다. 언제나 후희를 즐기던 그녀였기에, 라이넌은 의아한 듯
바라봤다. 허나 곧 후회한 듯 알리시아는 다시 라이넌을 따라 누웠고 그의
품에 안겼다.
"여전히, 전하께선 나를 찾나요?"
전혀 상관없는 후안의 이야기가 갑작스럽게 튀어나왔다. 마치 무언가를
의도하듯. 그러나 라이넌에겐 아무런 변화를 볼 수 없었고 오히려
"그래, 이제 슬슬 가봐야 하지 않아? 물론 있는 건 내 곁에 있고. 손이 많이
부족한 가봐. 하긴, 원래 사람을 믿지 못하는 성격이니 사람 쓰기가 힘들 거야.
같은 길드다 보니 이제 슬슬 눈치가 보인 달까?"
"내가 가길 원해요?"
"가고 싶었던 것 아니었어?"
어쩜 이렇게 내속을 모를까. 원망스러운 눈으로 라이넌을 쏘아본 알리시아는
그의 품에서 벗어났다. 그러자 라이넌이 묻는다.
"뭐야, 이제 정말 내가 녀석보다 좋아진 거야?"
"놀리는 거에요?"
"아냐. 기뻐서. 고마워 나 같은 놈을 좋아해줘서."
싫다는 알리시아를 거칠게 끌어온 라이넌은, 그녀가 으스러져라 끌어안았다.
그 다음 대답은 잇지 못한 채. 알리시아는 그대로, 라이넌의 품에 묻어있었다.
오늘의 대화는 유독 싱거웠다. 원래 둘은 많은 이야기를 했다. 라이넌이
알리시아에 키스 한 이후, 수많은 일상이야기와 달콤한 대화들, 키스, 그리고
수많은 섹스도. 하지만 단 한번도 서로 꺼낸 적이 없었다. 조세핀은. 그녀의
이름은 그 둘 사이에 건드려서 안될 치부처럼 곪아 터지기 직전의 고름과도
같은 존재였다. 허나 점점 라이넌을 사랑하게 될수록, 점점 후안이든 상단이든
공작부인이든 잊혀질 수록, 내가 있어야 할 곳이 여기라는 생각이 들 수록.
옆에 더 있을 싶을수록. 알리시아는 조세핀이란 이름을 꺼내고 싶었다.
허나 그는 부담스러워 할 것이다. 막말로 라이넌이 결혼을 전제로 알리시아를
만난다는 보장은 없으니까. 그는 이미 다른 여자의 약혼 남이다. 사정에 따라
내일이라도 결혼할 수 있는. 어쩌면 시작부터 이 사랑의 끝은 정해져
있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직은 불길한 미래를 생각하기 싫었다.
이상하게도 예감이 좋다. 그의 곁에 영원히 있을 수 있을 것 같은 예감.
그러나 그 예감과 함께 밀려오는 묘한 불안감. 치대듯 알리시아는 라이넌에게
더욱 안겼다. 부드러운 알리시아의 머릿결을 기분 좋게 쓸어 내리는 그의
손길이 유난히 슬프게만 느껴지는 밤이다.
정확히 7일의 시간이 흘러, 브리는 이전의 몸을 회복할 수 있었다. 수척하고,
마른 건 여전했지만 다시 돌아온 생기와. 그녀가 낳은 두 아기가 선사해주는
웃음에 그녀는 더욱 아름다워졌다. 조금 더 쉬라는 에르웬의 권유도 마다하고
브리는 눈을 뜨자마자 서둘러 지긋지긋한 잠옷을 벗고 푸른색의 두터운
드레스를 입은 뒤, 숄을 걸친 채 아기들의 방으로 향했다. 아이들의 방은
가까웠다. 침실의 나와 복도를 지나면 곧 나오는 방으로, 언젠가 헤렌부인이
쓴 적이 있는 곳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6년이나 흘렀기에, 그녀의 흔적은
부드러운 양털 양탄자뿐이었고. 모든 것은 바뀌어있었다. 붉은 벽지는 따뜻한
연노랑으로 바뀌어 있었고 양털 양탄자 위엔 푸른색과 분홍색의 요람이
나란히 놓여있었다. 그리고, 그 위 창가에서 바람이 불어 커튼이 흔들거릴 때
같이 몸을 흔드는 아기자기한 모빌. 그녀의 화장대가 있던 곳엔 기저귀가 잔뜩
든 나무 서랍이 자리했고 안락의자 두 개와, 긴 소파 하나가 빈 자리를 매웠다.
그리고 이 곳에서 거의 하루를 보내는 브리를 위한 높은 책장과 자수도구가
놓인 테이블 등. 어느새 완벽한 아기 방이 된 그 방은 카라멜처럼 달콤한
아기들의 냄새가 났다.
브리의 등장에 어린 공자와 공녀를 돌보던 하녀들이 재빨리 일어나 인사를
했다. 그런 그녀들에게 짧은 미소를 남긴 브리는 서둔 걸음으로 요람으로
향했다. 브리는 아기들을 따로 떨어뜨려 놓은 게 못내 아쉬웠다. 침실에 두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지만, 후안은 아기들의 울음소리를 이유로 침실에
요람을 들이는 것을 반대했다. 하는 수 없이 일어나는 대로 아기들의 방에
오는 브리는, 아침 식사부터 이 방에서 해결하였고. 피곤해지기 전까지는 이
방을 떠나지 않았다.
“자아, 로렌초.”
로잘린이 곤히 자는 것을 확인한 브리는, 아빠를 꼭 닮은 코발트 블루의 푸른
눈을 뜨고 너무나도 작아 감격을 일으키는 그 작은 손가락을 꾸물거리는
로렌초를 안아 올리고 곧 가죽 의자에 앉았다. 엄마를 알아 보는 것인지, 이제
겨우 색깔을 구분할 수 있는 어린 로렌초는 엄마의 손가락을 꼭 쥐었고. 이는
브리를 기쁘게 했다. 로잘린이 틈만 나면 무섭게 울어 젖히는 것과 반대로
로렌초는 무척 순한 아이다. 이 아이가 울 땐 오직 고통을 느낄 정도로 배가
고프거나, 참을 수 없을 정도로 몸이 불결해졌을 때뿐. 혹 그런 이유로 울어도
브리나 후안을 보면 금새 뚝-, 하고 그치고 귀여운 손을 뻗는 그야말로 순하고
순하며, 애교가 많다.
후안은 그런 아이를 보고 분명 자라나면 유명한 바람둥이가 될 것이라며
진지하게 예견했고. 브리는 아기를 두고 그런 소리를 하는 후안을 따끔하게
노려보았다.
곧 눈치 빠른 에르웬이 하녀들을 데리고 방을 나섰다. 이에 빙긋 미소 지은
브리는 곧 문이 닫히자 조심스레 앞섬을 풀었다. 다른 부인들처럼 유모를 두어
그녀의 젖을 먹이라고 에르웬은 말했지만, 세 번째 아이는 늦게 얻는 한이
있더라도 아기들에게 꼭 모유를 먹일 것이라는 브리의 생각은 단호했다. 곧
풍만해진 브리의 한쪽 가슴이 드러났다. 로렌초를 단단히 안은 브리는 조금은
서툰 포즈로 아기에게 젖을 물렸고. 용케도 로렌초는 새하얀 젖을 물었다.
엄마의 가슴 위에 그 작은 손을 얹은 아기의 모습은 천사와도 같았다.
감성적인 성격의 브리는 금방 눈물이 날 것 같아 아랫입술을 꾹 깨문 뒤,
자신의 금발처럼 갈색 빛이 도는 로렌초의 머리칼을 어루만졌다. 잃어야 했던,
요아킴의 생각도 간절했고 그와 더불어 건강한 두 아기에게 고마움이 솟는다.
“식사시간인가?”
흠칫 놀란 브리가 어깨 너머를 바라봤다. ‘탁’소리와 함께 문이 닫히고 후안이
들어왔다. 이상하게도, 그녀의 볼은 빨갛게 달아오른다. 서둘러 자세를 돌린
브리를 보며 후안은 피식 웃었다. 귀엽기도 하지만 우습기도 했다. 적어도
후안은 가릴 사이는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브리에겐 그것이 아닌 듯 그녀는
새침한 목소리로 말했다.
“노크 좀 하지 그랬어?”
후안은 브리의 말에 대답하지 않은 채 그대로 아기의 요람으로 향했다.
로잘린은 인기척도 느끼지 못한 채 곤히 잠에 빠져들었으나, 후안이 차가운
손가락으로 통통한 볼을 꾹꾹 누르자 귀찮아 진 것 인지 인형 같은 표정이
찡그려졌다. 그런 변화를 보고 피식 웃은 후안은 배를 덮지 않은 아이의 작은
담요를 끌어 덮어준 후 턱을 괸 채 말없이 바라보다 말했다.
“잘 자네. 얜 나보단 널 닮은 것 같아.”
앞섬을 다시 여미고, 어느새 배가 부른지 입을 뗀 로렌초를 어깨에 묻은 채,
반듯하게 안고 있던 브리가 웃으며 후안을 바라봤다. 그는 기어코 어린 공녀를
깨워야 직성이 풀릴 것인지 자는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기도 하고 아이가 쥔
자기의 손가락을 흔들기도 하는 둥 –그것도 꽤 즐거운 얼굴로- 브리가 마음에
들지 않는 짓말 골라서 했다.
“그렇게 괴롭히면 나중에 성격이 모나져.”
“내 딸은 성격이 모나도 상관없어. 내 딸이면 못생겨도 정혼자가 들끓을 테니.”
아직 트림을 하지 않은 로렌초의 작은 등을 조심스럽게 쓸어 내리며 브리가
후안에게 다가왔다.
“어머 로잘린은 못생기지 않았어. 봐봐, 아직 아기인데도 콧대며 눈매며
또렷하잖아? 분명 예쁜 아가씨가 될 거야. 그리고 난 돈보고 달라 드는
정혼자들은 사양이야.”
유독 흥분을 하는 브리를 보며 후안은 그런 그녀가 귀여워 죽겠다는 듯 웃어
보이며 양 볼을 꼬집었다.
“그래, 내가 잘못했어. 이제 로잘린 차례야?”
“아직.”
여전히 로렌초를 안은 브리가 말했다. 그녀는 찡그린 얼굴의 로잘린을 보고
가여워 죽겠다는 듯 울상 짓다. 다시 후안을 매섭게 바라봤다. 그런 그녀의
시선을 모른 척 하고, 자는 아기위로 딸랑 이를 흔드는 후안. 결국 브리가
자신의 분홍색 실내용 구두로 그의 발을 짓이긴 뒤에야, 후안은 자는 아이를
깨우는 짓을 멈추었다. 곧 어린 아기의 트림소리가 들리고, 다시 한번
로렌초를 꼬옥 안아준 브리는 푸른색 아이의 요람에 조심스럽게 로렌초를
뉘였다. 그리고 이미 후안에 의해 서서히 잠에서 깨는 로잘린을 안아 올리기
전, 낮게 한숨을 내쉬고 이마에 손을 짚었다. 소파에 앉아, 그런 그녀를
지켜보던 후안은 못마땅한 얼굴을 잠시 거두고 말했다.
“공주님이 아이를 돌보는 건 어울리지 않아.”
그런 그의 말에 브리의 미간이 구겨졌다. 그녀는 실망했어, 라는 문장을 눈에
담곤 후안에게 말했다.
“성에서부터 생각했어. 내 아이는 내가 직접 기르기로. 난 공작부인이 된지
오래고 귀부인이기 전에 우리 쌍둥이들의 엄마야. 어울리지 않다니? 정말 후안
못됐어.”
그녀의 그런 말에 후안은 다시 딱딱한 얼굴이 되었다. 그는 꽤 진지한 어조로
브리를 바라보며 말했다.
“할 얘기가 있어.”
허나 그와 동시에 거칠게 아기방의 문이 열렸고, 후안의 매서운 시선에 기가
꺾인 에르웬이 브리를 잠깐 바라보더니 말을 이었다.
“큰일 났습니다 전하.”
막 입을 열려던 후안은 어서 용건만 말하라는 듯 무서운 눈으로 에르웬을
바라봤다. 그는 누가 자신의 말을 자르는 것을 극도로 싫어했고, 에르웬도
가엾고 그런 후안도 이해하는 브리는 축 처진 숄을 다시 보기 좋게 올리며
브리가 말했다.
“무슨 일이지?”
브리를 바라보며 잠시 머뭇거린 에르웬은 겁먹은 얼굴이 되어 후안과 브리를
번갈아 바라보더니 곧 힘겹게 말을 이었다.
“아네.. 아니지, 루야드 백작부인께서 급히 뵙기를 청하십니다. 아무리
돌아가시라고 해도 저희 말은 듣지 않으시고 막무가내십니다.
어찌하면 좋을까요?”
첫댓글 어엇 !! 가드미온하고 후안은 안돼요 !! 그리고 알리시아랑 라이넌이랑 잘된건가요?? ㅋㅋ 둘의 사이을 한마디로 하자면 불륜..? 맞나요 ?ㅋㅋ 아 !! 저 걱정해 주신거 감사해요 ㅎㅎ 위로가 마니마니 ?어용 ;; 근데요 오늘 버스에서 같이 잇었는데, 개가 저보고 "니가 그러니까 은따당하지 -_-"이러는거예요 ㅠ ㅠ (키 짝은애요)그말 듣고 기분이 팍 ! 상했다는 ㅠ ㅠ 솔직히.. 같이 노는 애들끼이 욕하는애가 개걸랑요 ;;(위에랑 동일)아무튼 오늘도 재미있게 읽고 갑니다 ㅋㅋ
지금은...뭐 잘된거죠? 약혼녀도 있는데 그렇죠! 불륜이라고 보심 될것같습니다 ㅎㅎㅎㅎ 그 친구는 정말 못됐네요! 사람을 무시해도 정도가 있지. 진짜 그러다가 나중에 큰코다칠거에요. 제 말이 위로가 되셨다니 다행입니다. 남일같지가 않네요~ 괜히 또... 제가 오지랖이 넓어서 흐흐;; 재밌게 읽으셨다니 감사합니다. 고마워요 매번♡♡♡
삭제된 댓글 입니다.
어제 이미 면접보셨겠네요. 좋은 결과 나왔을거에요 ♡♡♡
점점재밌어져용ㅎㅎ라이넌과알리시아 잘어울릴네요 -_-* 가드미온 급얄밉ㅋㅋ 후안이 통쾌하게 잘 대처했네요 ㅋㅋ 다음편 너무기대되요*-_-* 건필하세요!!
가드미온 점점 얄미운 캐릭터가 되는걸까요 ㅋㅋ 다음편 오늘 오전에 올리려구요 감사해요♡
아네트도 좋고 다 좋으니까 그냥 비앙카만 죽어버렸으면 좋겠어요.ㄲㄲ<<사악 그 자체
오 아네트 이미지 제대로 반전됐네요!ㅎㅎ 이제 그 자리를 비앙카가 차지하게 됐군요. ㅎㅎㅎ 비앙카가 죽는다.. 음..
아네트는 왜 또 나왔데 샤방한 씬에 말야..-_-..재미있어요!!
이유는 다음편에! ㅎㅎㅎ 감사해요♡♡
아 쌍둥이들이 너무 귀여워요 근데 왜 아네트는 나왔지 이 다정다감하고 하고 인 부분에서
쌍둥이들 많이 귀여워해주세요 으히♥ 아네트야 뭐,... 전문아닙니까!ㅋㅋㅋㅋ 감사해요 ♡♡
우와~~ 쌍둥이!!!!!!!!!! >_< 너무 좋아요!! 후안~ 가드미온 한방 먹여!!!! 아! 님 저 이제 주말에밖에 컴터를 못해요ㅠ_ㅠ;; 시간나면 틈틈히 볼께요!!!!!! ㅠ_ㅠ 그니깐 절 잊지마세용~~~ㅠ_ㅠ 흑흑;; 후안, 브리ㅠ_ㅠ
주말! 그렇군요. ㅜㅜ 에이~ 제가 님을 잊을리가 없죠! 잊지 않고 계실태니까요 만약 시험때문이시라면 시험 꼭 잘보시구요, 열심히하세요 ♡♡ 감사합니다 ^^
우와진짜 보면 볼수록 너므너므 재밋어요히히>_< 히제이님 더 건필하시길 바라구욤 후안한테 아네트가 말해서 아네트가 죄도 좀 씻구 후안도 위험을 피했으면 조켓네요 ㅁㅐ번 감사합니다..이렇게 재밌는 소설을 읽을 수 있게 해주셔서
꼬마악녀님 반가워요♡♡ 오히려 제가 더 감사하죠, 빈틈많은 제 소설을 항상 꼬박꼬박 읽어주시는 님께 무한 감사드립니다. 다음편 늦어서 죄송하구요 ㅠㅠ 고마워요 매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