벚나무잎
미처 가을이 오기 전부터 색깔을 바꾸고 길 위로 떨어지는 나뭇잎이 있다. 한여름 장맛비를 견디지 못해 길 위에 널브러져 쌓인 그들을 밟고 지나가기란 여간 스산한 느낌이 아니다.
벚나무 잎새다. 이른 봄에 화사하게 세상을 밝히는 부지런함으로 기력을 다 쏟아버렸는지 낙엽도 먼저 든다. ‘빨리 살고, 일찍 죽는다’(Live fast, die young)라는 ‘삶의 속도 가설’을 증명이라도 하려는 보인다.
시나이산 수도원을 찾은 어느 작가는 “세상이 나무 한 그루, 거대한 포플러이며, 나는 가느다란 줄기에 매달린 초록빛 잎사귀라고 생각했다. 신의 바람이 불면 나는 나무 전체와 더불어 뛰고 춤추었다”라며 자신을 돌아보았다.
나무에 매달려 있는 잎새 하나가 우리의 개체면 너무 하찮은 존재다. 가을이면 생애를 다해야 하는 그 주기가 너무 짧다.
왜 모든 생명은 늙고 병들어 죽고 마는 것일까. 조너선 실버타운의 《늙는다는 건 우주의 일》을 보면, 나이가 들면 미래세대를 위한 기여가 감소한다고 한다. 노년이 되어 은퇴하게 되면 세포를 손상하고 신체 유지를 방해하는 돌연변이가 누적되는데, 무서운 사실은 노화를 일으키는 돌연변이가 젊은 시절의 번식에 유리하다면, 자연선택은 돌연변이를 선호한다는 주장이다. 결국 또 다른 세대의 등장을 위해 노인들은 그 자리를 내주어야 한다는 논리다.
벚나무는 이런 자연의 섭리를 재치 있게 이해한 듯 ‘빨리 살고, 일찍 죽는 길’을 택한 모양이다.
우산 아래에 선 나이가 되니, 감각기관을 하나둘 잃어가고, 몸짓도 굼뜨게 작동한다. 요즘 읽는 책들의 제목도 자연스레 뇌과학, 기억 찾기와 같은 분야로 노년 시대에도 품위를 잃지 않고 살아가려는 몸부림이다.
설령 이름도 붙여지지 않은 나무 잎새 하나에 불과하더라도, 가을빛에 잠시 아름답게 물들다 떨어지는 낙엽이 되고 싶다. 그때 저녁노을이 붉은 광휘를 걸치고 마중 나올지도 모른다.
2026.9.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