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금함의 정량 외 2편 / 이인원
호두알처럼 동글동글한 여유를 손안에 굴려보는 모처럼의 호사, 문득 반질반질 길든 호두알 속이 궁금해지는 딱 그만큼이 오늘 내 궁금함의 정량 그렇다고 정말 망치를 찾아 깨어본다면 바보 입이 궁금하다고 라면에 밥까지 말아먹지 않듯이 아름다운 소식을 위해서는 그저 앞에 놓인 튀밥이나 집어먹으며 호두알만 계속 굴리면 된다 바싹 바싹 귓전을 간질이는 뻥튀기소리를 즐기면서 호두알 표면이 얼마나 더 반들거리나 잠시 살펴보면 된다 그러다가 보면 세상 궁금해진 어린 싹이 스스로 빼꼼 고개를 내밀듯 어느 날 불쑥 저 문을 밀치고 반가운 얼굴 들이닥칠 것이므로 그때까지, 한 티스푼 정도의 느긋함만 보태면 된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심도 너하고 나하고의 그리움의 정량도 딱 이만큼이라면 견딜 만하겠다
피정
조금 먼저 내린 눈송이가
조금 뒤에 내리는 눈송이에게
말없이 어깨 내밀어주는 아침부터
조금 늦게 당도한 어둠이
조금 일찍 도착한 어둠의 어깨에
말없이 머리를 기대는 저녁까지
꽁꽁 잘 뭉쳐진 고요 한 덩이만으로
조금도 목마르지 않은 날
내일은
조금 빨리 왔던 내가
조금 천천히 오고 있는 네게
말없이 자리 비워주는 날
너무 커다란 냉면 그릇
그때
그쯤에서 그만 너를 놓쳤어야 맞다
그리고 지금 막 냉면그릇을 집어든 속도만큼 잽싸게
나를 주워 올렸어야 했다
설거지하다 놓친 냉면그릇 하나
절망의 바닥을 친 울음 온몸으로 울고 있다
얼른 집어 들자 뚝 그치는
가을 무 자른 듯 단면이 깨끗한 이 울음소리,
그때 나는
너무 커다란 냉면그릇을 들고 있었다
울음소리보다 더 질긴 너를 들고 있었다
나보다 더 무거운 절망을 들고 있었다
바닥을 칠까 두려워 아예 바닥을 들고 있었다
—시집『궁금함의 정량』2013
이인원 : 1952년 경북 점촌 출생. 숙명여자대학교 졸업. 1992년 《현대시학》으로 등단.
시집『마음에 살을 베이다』『사람아 사랑아』『빨간 것은 사과』『궁금함의 정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