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조명
천지에서
길 잃고 헤매이던 영혼
창백한 반쪽 얼굴로 오늘을 비추어 본다
바다를 돌아돌아 머나먼 지평선 끝자락
가문비 낙엽송 원시림 숲 지나
자작나무마저 하얗게 누워버린
설한雪寒의 백두白頭에도
한 많은 민초民草들이 모진 뿌리 내려
해맑은 새끼들로 꽃피우고 있다
아! 나는 누구인가
피 끓어 뛰는 가슴
휘 돌아보지 못한 옹졸함
타인의 아픔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러나 오늘 두 뺨을 적시는 이 끈끈함
불러도 불러도 안개 속에 흩어지는 메아리뿐
그들과 내가 정녕 남이 아님인가
평화의 날개
녹슨 철조망 넘어 유라시아 기차에 몸을 싣고
덜컹거리는 역사의 회오리 잠재우며
이제는 따듯한 시베리아 초원을 달린다
그 옛날 태초의 어머니가 떠나온 바이칼
뼛속 깊이 시린 호수를 온몸에 담고
태양이 다시 뜨는 신세계를 달린다
한 세기 전 연해주에 일구어 온 생生
황량한 서아시아에 내동댕이쳐진 이들의
자유와 평화를 목 놓아 불러본다
이제 그 메아리 카파도키아 시리아를 건너
사하라 사막까지 울리어 앙골라 초원에도
코끼리 눈망울에 비둘기 날고 있다
겨울 소나무
겨우내 눈서리에도 푸르름 간직한 채
늘 푸르게 살라 하네
뿌리까지 언 발 내보이며
혈관을 얼리지 말라 하네
인고의 세월
옹이 허리 곧추세우고
어리석은 낙망에 빠진 자
슬기 찾으라 하네
깎아지른 절벽 바위에서도
하늘 우러러 고개 치켜들고
절개 있으라 하네
기상 품으라 하네
헐벗은 신의 손으로
삶을 기워가며
사육신 넋 낙낙장송되어
뭇 새들 쉬어가라 하네
수묵화水墨畵
화선지에 스며드는 발묵潑墨
수줍음 가득 숨겨진 나신裸身
새하얀 세상에 두루마기 무명치마
말총갓 검은 물동이
침묵이 내려앉아 안온安穩하다
매梅
혹독한 눈보라 위에 피워 낸
아리따운 절개여 청순함이여
춘향의 넋인가 눈망울인가
꽃은 가엾으나
실한 열매 맺는구나
난蘭
간드러져 휘어진 자태
순박한 누나의 향기
범접할 수 없는 기품
안으로 안으로만 사모하는
신비의 여인이여
국菊
아름다우나 화려하지 않은
멀어질수록 가슴 속 그리움
빼어났노라 피는 꽃들 떠난
늦가을에 찬 서리 머금고
떠난 이를 그리는 꽃이여
죽竹
하늘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노라
휘어질지언정 결코 꺾기지 않는
지조와 절개 고고한 선비
비우고 또 비워 가벼운 육신
그대는 고고한 딸각발이
박쥐 보살
새도 아닌 쥐도 아닌 너는
어느 세상에 동물이냐
기울진 종용의 인간사보다
안온한 행실의 소유자여
밤을 도와 살아가는 너는
양심 있는 동물이더냐
허물 감추고 대낮 활보하는
족속은 아닌 게지
절반의 하루를 동굴 속에서
갈구하는가 묵도하는가
속세를 떠난 무아지경의 너는
고행수도 보살인 게지
영욕 따라 돌고 도는
혼돈 속 눈 시린 세상
차라리 거꾸로 보는 네가
현명한 족속일 게다
설마雪馬
설마를 타고 미지의 세계를 달립니다
눈 내리는 설원
캄캄하고 험준한 산중
태양이 내리쬐는 사막
때로는 헤어날 수 없는
나락으로 떨어지기도 합니다
여민 옷깃 사이로 봄이 찾아옵니다
소리 없이 내리는 보슬비
새싹 위에 은빛 구슬을 타고
활짝 핀 봄꽃으로 다가옵니다
설마는 우리를 헤섪게 하지만
풀잎에 영롱한 이슬입니다
우리는 오늘도 설마를 타고 달립니다
설마는 고삐가 풀려 있지만
그 말을 탈 수밖에 없습니다
어두움 속 무거운 시름이 가득하면
잠시 초인으로 다가오는
마지막 믿음이기 때문입니다
어제와 내일을 조우遭遇하며, 끝없이
삶의 쓰레기를 태우는 작업
오늘날 인간 사회는 과학이 눈부시게 발달하여 토끼가 떡방아를 찧던 달나라에 인간의 발자국을 남기는가 하면 손바닥만 한 핸드폰 하나로 세상 돌아가는 모든 일을 꿰뚫 수 있고 뿐만 아니라 의학은 인체의 뇌를 비롯하여 얼굴, 폐, 간 등 장기臟器를 모두 바꾸어 다른 사람을 만드는 시대에 살고 있다.
문학 또한 시대에 따라 화두와 장법章法이 새로이 변천해 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문학, 장르를 좁혀 현대 시에서 푸시킨의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엘리엇의 「황무지」, 타고르의 「기탄잘리」… 한국 현대 시의 초기 작품인 김소월의 「진달래꽃」, 박목월의 「나그네」, 한용운의 「님의 침묵」, 김영랑의 「모란이 피기까지는」, 윤동주의 「서시」, 이상의 「날개」, 정지용의 「향수」, 서정주의 「무등을 보며」 등등 주옥같은 수많은 시들이 밤하늘의 별처럼 이 시대 우리에게도 가슴 설레게 한다. 어찌 보면 시 세계에서는 시차를 느낄 수 없는 것 같다. 문학은 시공時空을 초월하는 학문이요 예술이 아닐까?
나의 시심이 싹트기 시작한 것은 전쟁으로 폐허가 된 전후 암울한 시절 초등학교 사학년 때인가 싶다. 처음으로 등사기를 밀어 교지가 창간되었고 내가 쓴 동시가 거기에 실리게 되었는데 60년이 훌쩍 지난 지금도 그 글이 기억된다.
갈대
길가에 갈대는 나와 친한 친구야
내가 학교 갈 때면
공부 열심히 하라고
손짓해 줘요
길가에 갈대는 나와 친한 친구야
집으로 올 때는
잘 가라고
손짓해 줘요
그 후 중학교를 마치지 못하고 서울로 올라와 주경야독하며 청소년기를 보내면서 아름다운 꽃을 향하여 손을 내밀 비위조차 없었고, 도시의 새로운 건물이 높이를 더 할 때마다 그저 비켜서서 방관자적 입장으로 항상 무엇인가에 쫓기어 종종거리던 젊은 시절, 삶의 무게에 눌리어 사유思惟마저 담지 못한 텅 빈 가슴은 삶의 꼭두각시였다.
울혈을 억누르며 사십여 년 동안 책을 만드는 지성의 목수 일을 해 오면서도 정작 나의 꿈을 실현할 설계를 제대로 세우지 못하는 우愚를 범해 사색의 시간마저 허투루 보내어 뒤늦게 황폐했던 나의 내면세계를 바로 세우는 일이 여간 어렵지 않았다. 젊은 시절 미래를 꿈꾸며 새로운 길을 모색해 보고자 간간이 일간지 신춘문예에 시랍시고 응모하였으나 몇 차례 위로의 심사평만 날아올 뿐 희망이 보이지 않았다.
우리 떠나자
빌딩 숲 사이를 오가는 분주한 하루
밤늦은 거리를 헤매는 시대의 치한들
반쯤 박힌 빔들이 별들을 받들고 섰다
오늘도 갇혀버린 대머리 아이들
불놀이로 밤을 잊은 거리
끝내 한바탕 분탕질로 끝난다
이제 기름때 옷을 벗고
우리 떠나자
가고 또 가도 언제나
우리의 아침은 들끓고 있다
눈부신 태양은 또다시 떠오른다
창을 열면 상큼한 햇살
우리는 날마다 희망을 먹고 산다
버짐 먹은 유년의 머리에
녹색 물감 덧칠하고 이제
잃어버린 산맥으로 떠나자
가끔은 숨 고르고 태백산을 오르며
반짝이는 은어와 쉬리도 만나러 가자
이브의 설레임
눈을 뜨면 풀잎에 이슬같은
영롱한 설레임을 만납니다
오늘은 무엇을 할까
또 누구를 만날까
설레임이 하루를 스쳐갑니다
때로는 실망과 무거운 절망
고독과 슬픔 괴로움과 그리움
즐거웠던 행복의 시간도 모두
설레임이 가져온 실루엣입니다
설레임은 꿈을 잉태하고
사랑을 만들고
새로운 에너지를 만들고
그 동력은 새 하늘을 열어 갑니다
설레임은 창조자가 이브에게 준
사랑이라는 선물입니다
시 시계는 사랑과 상처의 향기
시는 나룻배를 스쳐 가는 강바람
해와 별 그리고 바다 꽃나무 바위….
시는 설레임으로 만난 바람의 노래입니다.
40년 동안 ‘나를 만드는 책’을 만든 것이 아니라 주로 ‘삶을 위한 책’을 만드는 일에 매진하다 보니 지천명의 나이에 겨우 정신줄을 찿아 오랫동안 소중히 모아두었던 국문학서, 역사서, 고사성어, 민속사전, 속담, 시론, 시 해설집, 시문학사, 국내외 시인들의 시집 등을 탐독하면서 뒤늦게 시 쓰는 작업을 다시 시작하게 되었다.
이때 ‘시가 무엇인가?’ ‘어떻게 써야 하는가?’에 대해 고민하던 나에게 “많은 상식을 배경으로 체험을 요구하며 내면세계를 그려내도록” 채찍질해 준 이는 고 이충이 시인으로 그는 평생 문학 계간지 『시와산문』을 통하여 젊은이들의 시 쓰기를 뒷받침해 주고 격려해 주었다.
더불어 김재황 시조 시인의 격려와 20여 년 동안 <광화문> 시동인들의 열정에 힘입어, 청소년 시절에 긁적이던 습작을 더듬으며, 삶의 여행길에서 설렘과 목메임으로 ‘아려오는 우리 근대사와 나’를 뒤돌아본 대로 느낀 대로 200여 편을 써서 시집 『천지에서』 『겨울 소나무』 두 권을 발간하였다.
우리 민족의 영산 백두산에서 사나운 눈보라에 누운 자작나무며 양지에 피어난 이름 모를 하얀 꽃들, 바로 근대사에서 고향을 떠나 간도를 유랑하던 우리 민초들이 나의 눈시울을 적시게 했다.
그 후 연해주를 떠나 시베리아-유라시아에서도 버려졌던 우리 민족의 모습을 보았다. 이어 구소련의 국가들로 독립을 위하여 희생을 치렀던 아제르바이잔-조지아-성서 아라랏산의 나라 아르메니아, 중세 지배자 오스만의 터키를 지나 지금도 화약 냄새가 풍기는 보스니아-슬로베니아-세르비아, 지중해 평화의 나라 크로아티아-그리스-이탈리아-프랑스-스페인, 그리고 북미 대륙-고대 유적과 멕시코만의 휴양지 멕시코-쿠바 등지에서도 나라 잃고 처절하게 살아온 우리 민족의 눈물겨운 노래가 들려오는 듯했다.
그러나 아직도 나를 찾는 작업을 끝나지 않았다. 더불어 ‘나의 작품 세계’ 운운하기가 여간 부끄럽지 않다.
거울에 내 얼굴을 비추어 본다. 아직도 어색하고 무표정한 낯선 모습. 이제라도 그와 함께 울고 웃으며 가슴 속 대화를 나누고 싶다.
앞에서 언급했던 필자의 의도와는 달리, 흔히 ‘시인을 시대의 대변자’라 하는데 그 까닭은 그 시대에서 새롭게 태어나는 언어와 사물, 그리고 일상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을 관념적으로 투영하여 민들레 홀씨처럼 널리 흩날리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필자가 지나온 시절의 시들을 돌이켜 보면, 주로 시대적 체념과 고발, 자연과 사랑을 노래하던 시대와 독재에 항거하여 저항시가 요원燎原의 불길처럼 울분을 노래하던 시대를 거쳐 왔지만, 이제는 잊혀가는 추억 속의 아련히 남겨진 흔적과 치열한 삶들의 현장에서, 다가올 지구의 환경까지 사랑의 눈빛으로 바라보고 싶다.
이어령 교수가 남긴 『흙 속에 저 바람 속에』에서부터 노후에 이르기까지 늘 새롭게 바라보며 탐구하는 자세로 ‘어린아이의 굴렁쇠가 세계의 화합’을 이루어낸 서울올림픽에서 우리 문화, 철학, 역사의 온고지신溫故知新을 가슴속에 새겨, 금빛 태양이 떠오르는 희망의 아침 바다에서 설레는 가슴으로, 때로는 물새들 노래하는 호숫가에서 꽃과 나비 벌들, 풀잎의 이슬, 숲속에 사는 작은 생명들, 아니 이 세상 모든 사물에 담긴 큰 뜻을 헤아려 보려 한다. 도시와 벽지, 전쟁과 평화, 가상의 세계와 현실 등 사람이 사는 모든 공간을 들여다보는 체험과 ‘사람을 만드는 책’ 읽기를 통해 신경림 시인의 말처럼 “눈이 어두워지니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이더라.”는 혜안을 찾아, 나는 세상에 어떤 존재일까? 내면세계를 새롭게 직시하며 새로운 세계와도 조우遭遇하여 생동감 있는 이데아의 이미지를 그리는 작업을 게을리하지 않아야겠다.
죽는 날까지 삶의 쓰레기를 태워 한 알의 진주를 만들어 보려는 꿈을 내려놓지 않으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