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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하수와 백합
 
 
 
카페 게시글
시 해석 및 시 맛있게 읽기 스크랩 동네 치킨집을 위한 변명/ 이상국
은하수 추천 0 조회 560 17.07.27 08:14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동네 치킨집을 위한 변명/ 이상국 


 

눈이 오다 그치고 어쩌다

한잔 생각이 간절한 저녁,

 

가게들이 더러 셔터를 내리는 그 시간에

마누라 눈치를 보아가며 기어이

후라이드 반 양념 반을 주문한다면

치킨집 주인도 좋아하겠지

 

벌거벗은 채 차례를 기다리던 닭들도

얼른 기름 가마 속으로 들어가며 몸을 풀겠지만

저녁 내내 어정거리던 알바 청년은

얼마나 신이 나서 골목길을 달려오겠니

 

거기다 소주나 맥주 천쯤 같이 시킨다면

초저녁부터 갑갑한 통 속에서

사내들의 오르내리는 목젖과

출렁이는 뱃구레를 그리워하며 그것들은

오토바이 뒤에 매달려 몸을 흔들겠지

걸그룹처럼 춤을 추며 달려오겠지

 

- 시집 달은 아직 그 달이다(창비, 2016)

......................................................................


 시인이 그 개념을 정확히 알고 썼는지 그냥 일반적으로 치킨집을 통칭한 건지는 알 수 없으나 엄밀하게 동네치킨집은 프랜차이즈 브랜드 치킨집과 변별 되는 일반 자영업자가 운영하는 업소를 의미한다. 그 동네치킨집도 조리방식은 과거의 전기구이 통닭 위주에서 브랜드 치킨집의 조각튀김 닭으로 거의 전환되었다. 평론가 김현의 생전 단골이었던 반포치킨1977년 영업을 시작한 이래 40년이 지난 지금까지 전기구이 마늘치킨이 대표메뉴다. 하지만 브랜드치킨의 효시인 KFC1984년 서울 종로에 매장을 열면서 한국에 처음 진출한 이후 모든 치킨집은 프라이드치킨이 대세가 되었다.


 그 치킨이 생맥주의 안주로 각광 받으면서 치맥이 한국인 음주 문화의 한 축을 이루게 되었다. 특히 2002년 월드컵은 치맥 역사에 획을 그은 사건이다. ‘치맥이 여름철에만 어울릴 것 같지만 꼭 그렇지는 않다.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에서 전지현이 눈 오는 날엔 치맥인데라는 대사 한마디로 한국인은 물론 중국인들에게까지 치맥 열풍을 불러일으켰다. 볶아서 먹는 닭고기에 익숙한 그들에게 맥주와 함께 먹는 프라이드치킨은 새로운 입맛을 자극했던 것이다. 그동안 치맥은 창업 프랜차이즈 부분에서 효자 노릇을 톡톡히 하면서 이제 대중과 소비자 속에서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았다.


 현재 등록된 국내 치킨전문점 프랜차이즈 회사는 2백여 개에 달한다. 이 가운데 활발히 영업활동을 하고 있는 회사는 10%인 약 20여개 정도다. 이들 중 많은 치킨업체들이 대구에 몰려 있다. 멕시칸, 멕시카나, 처갓집양념치킨, 땅땅치킨, 최근 회장의 여직원 성추행 논란으로 물의를 일으킨 호식이두마리치킨,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가맹사업법 위반혐의로 경고조치를 받은 교촌치킨도 대구에 기반을 둔 회사다. 가히 치킨의 성지라 불릴 만하다. 그런 연유로 대프리카대구에서는 5년째 매년 여름 '치맥축제'가 열리고 있다. 올해 대구치맥페스티벌은 지난 19일 두류공원을 비롯한 대구 곳곳에서 개막하여 23일 어제 성황리에 폐막했다.


 축제기간 치킨 43만 마리와 맥주 30가 소비되었다고 한다. 100만 명 이상의 인원이 참여했다는 분석이고 성공적이란 자체 평가가 있다. 그러나 ‘Be Together! Be Happy!’의 슬로건에 걸맞게 동네 치킨집들도 호황을 누리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높은 임대료 부담에 원자재가 불안정, 상권 과밀화, 이번 최저임금 대폭 인상도 큰 틀에서는 바람직한 지향이지만 개별 사업자들에겐 압박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날이 갈수록 매출은 줄어드는데, 장사 때려치우란 얘기 아닙니까?"라며 씩씩거리는 업주도 보았다. 프랜차이즈 본사의 갑질에다 이렇게 가면 배달 알바생보다 시급이 낮다는 계산이 나온다며 투덜댄다.

 

모두가 같이 잘 살 수 있는 길은 없는 걸까. ‘눈이 오다 그치고 어쩌다 한잔 생각이 간절한 저녁’ ‘후라이드 반 양념 반을 주문한다면 치킨집 주인도 좋아하겠지당연히 그러리라. 치킨집 주인뿐 아니라 저녁 내내 어정거리던 알바 청년은 얼마나 신이 나서 골목길을 달려오겠니’ ‘차례를 기다리던 닭들도 얼른 기름 가마 속으로 들어가며 몸을 풀겠오토바이 뒤에 매달려’ ‘걸그룹처럼 춤을 추며 달려오겠지이렇듯 동네 치킨집을 위한 변명으로 선량한 상상만 가동해도 주인의 한숨소리는 멈추리라. 시인은 시 한편에 원고료 십만 원쯤 따박따박 받고 그 돈들이 따뜻한 소비로 이어지고 치킨집 주인은 그 여유로 시집 한권을 사서본다면 그게 바로 선순환 경제인 것을.



권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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