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는 왜 절벽에 서 있는가?
鄭 木 日
마애불(磨崖佛)은 바위에 새겨놓은 불상이다. 한국의 깊은 산 속에는 삼국시대 때부터 화강암에 새겨진 마애불을 볼 수 있다. 산 정상 부근 어디쯤 절벽에 새겨진 마애불은 언제 누가 새겨 놓은 것일까. 산 속에 숨어 있는 벼랑은 태고의 정적을 안고 있다. 아무도 손대지 않은 채 비어 있는 암면岩面을 보면, 영원불멸의 모습을 형상화해 보고 싶은 충동을 일으킨다. 산 속의 절경 속에다 마애불을 새김으로써 가장 자연스런 예배처를 조성하고 싶었을 것이다. 석공(石工)은 사찰의 요구거나 혹은 자발적으로 마애불을 새기고 싶은 충동을 느꼈으리라.
보아줄 사람이 없다고 하더라도, 마음에 드는 형상을 그려놓고 싶었다. 그것은 일생을 통해 얻은 완성이어야 한다. 하늘과 땅과 인간이 공감하는 깨달음이며 사랑이어야 한다. 석공의 마음속에 부처상이 떠올랐을 것이다.
부처상을 절벽에 새기는 작업은 큰 모험이 아닐 수 없다. 그는 수많은 나날을 보내면서 절벽 앞에 서서 고뇌하였을 것이다. 화창한 날씨 속에서만이 아닌, 비바람 속에서나 눈보라 속에서, 천둥 번개가 칠 때에도, 절벽 앞에 서 있어야 했다. 부처상을 바위에 새기는 일은 인간의 힘으로선 불가능하다는 걸 절실하게 느끼곤 하였을 것이다. 깨달음의 미소를 새기는 일이 아닐까. 자신이 깨달음의 미소가 되지 않고선 마애불을 새길 수 없다. 천혜의 절벽 공간에 허투루 부처상을 그려놓을 순 없다.
미켈란젤로는 유모의 젖을 빨 때부터 조각가의 끌과 망치를 사랑하게 되었다고 말할 정도로 천부적인 조각가이다. 그는 로마 시스턴 성당의 천정화(天井畵) ‘천지 창조’를 그리는 순간부터 절망했다. 신이 아니면 천지창조를 어떻게 그릴 수 있단 말인가. 그는 하늘의 영감과 힘을 빌리길 간구했다. 자신이 신이 되지 않고는 천지창조를 그릴 수 없는 일이었다. 신이 되어 천지창조를 그려나가는 동안, 머리엔 눈발이 날리고 얼굴엔 절망과 환희가 무수히 교차했다. 그는 꼬박 천정에 매달려 누운 채 그림을 그리는 일에 혼신의 힘을 다 기울였다. 천지창조를 위해서 죽는다면 기꺼이 생명을 버릴 각오였다. 천정화를 그리면서 목이 굳어지고 눈이 침침해질 때마다 ‘이 그림만 완성하면 생명을 버려도 좋다’는 기도를 올렸다.
무명의 석공은 바위 절벽에 마애불을 그리는 것이야말로 자신이 부처가 돼야 하는 것임을 알고 절망했을 것이다. 석탑이나 석등을 만들 때와는 또 다른 경지의 작업이었다. 자신을 버리고 모든 것을 버려야 징과 망치를 들고 절벽 앞으로 나갈 수 있다. 그래야 비바람과 천둥 번개 속에서 절벽에 매달려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고 마음속에 떠오르는 무상의 모습을 새길 수 있을 것이다.
어째서 깨달음의 미소를 절벽에 새겨 놓은 것일까. 훼손되지 않게 손이 닿지 않는 절벽을 신성 공간이라 생각했다. 하늘과 땅, 자연에게 먼저 보이고 싶은 게 아니었을까. 길이 막히고, 절망의 끝에 선 사람이라면 찾아올 것이다. 자비의 미소가 필요한 사람이라면 오게 될 것임을 믿었다.
바위를 다듬는 부조 형식의 마애 기법은 입체적으로 돌출시켜 조각한 것과 얇게 조각한 것이 있다. 도톰하게 부조한 안면에 몸을 선각으로 표현한 것, 큰 바위를 몸으로 삼아 입체에 가깝게 두상을 결합한 경우와 전체를 선 새김만으로 묘사한 방식 등 다양한 새김기법을 보여준다.
경주 남산은 마애불을 가장 많이 만날 수 있는 곳이다. 남산엔 불상 중 입체로 된 것이 29체이고 바위 면에 새긴 마애불상이 51체이다. 큰 것은 10m 가량 되는 것도 있지만, 보통 4~5m 되는 게 많다.
삼릉골 육존불은 암벽에 모든 세부를 선각으로만 처리한 특이한 기법으로 회화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간결한 데생에서 부드럽고 우아한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
상선암 마애대좌불은 거대한 암반의 벽면에 6m 높이로 양각된 여래좌상으로 남산에서 두 번째로 큰 불상이다. 얼굴 앞면과 귀 부분까지는 원만하게 새긴 반면, 머리 뒷부분은 투박하게 바위를 쪼아내었다. 불상의 몸 부분은 선이 거칠고 억세게 조각하였고, 좌대 부분은 희미하게 사라져버린 듯한 모습이다. 나는 이런 모습이 부처가 바위 속에서 나온 순간을 표현하였다고 생각한다. 마애대좌불 앞에서 바위의 문을 열고 나온 그를 본다. 그의 미소는 침묵에서 나온 것인가.
우리나라 산 속 절벽에 무명의 석공들이 정과 망치로 수 만 번씩 두드리고 선을 새김질하여 마애불상을 조성해 놓은 것을 본다. 산에 가서 그 마애불을 만날 수 있다는 건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동틀 때 마애불이 짓는 미소와 저녁노을을 받고 반쯤 내려 깐 눈으로 무상무념에 빠져 있는 표정을 본다.
마애불은 길을 잃고 방황하는 사람이나, 삶의 고비에서 절망하는 사람에게 미소로서 말해 준다. 절벽이 길이 되고 자비의 미소가 되는 법을 가르쳐 준다.
마애불 앞에서 합장하며 고개 숙인다. 길 없는 절벽에 깨달음의 길과 자비의 미소가 된 무명의 석공을 생각한다.
서정 수필의 대가 정목일은 1945년 경남 진주에서 태어났다. 1975년에 『월간문학』에 수필이 당선되었고, 1976년 『현대문학』에 수필 추천을 완료하였다. 현재 계간 수필 전문지 『선수필』을 발행하고 있다.
1995년에 현대수필문학상을, 2005년에 제1회 GS에세이문학상 본상을, 2007년에는 제44회 한국문학상, 2008년에는 제1회 경남수필문학상을, 2009년에는 제2회 조경희 수필문학상과 제2회 문신저술상 대상을 수상했다. 저서로는 『남강 부근의 겨울나무』,『별이 되어 풀꽃이 되어』,『만나면서 떠나면서』,『모래알 이야기』,『달빛 고요』,『깨어 있는 자만이 숲을 볼 수 있다』,『대금 산조』,『별 보며 쓰는 편지』,『가을 금관』,『마음꽃 피우기』,『실크로드』,『침향』,『마음 고요』 등이 있다.
[예스24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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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에 부처를 세우는 일은 그 자체가 고행이다. 하지만 그곳에 구원과 종교가 있다. 무명의 석공은 목숨을 걸고 절벽에 매달리지 않으면 그 일을 해낼 수 없다. 미켈란젤로도 가설물인 높은 비계에 누운 채 목이 뒤로 젖혀지는 고통을 감내하며 천장화를 그려야 했다. 그러나 그들은 곧 또 다른 절망에 부딪힌다. 감히 인간이 어떻게 신의 경지를 창조하겠는가.
석공이나 미켈란젤로에게 신의 형상을 창조하는 일은 자신의 능력의 한계를 직면하고 영감과 예지를 구하며 조금씩 신의 경지를 향해 나가는 길이다.
정과 망치가 깨뜨리는 것은 자신일 것이다. 의심과 불안과 탐욕을 수없이 망치로 내려치고 정으로 쪼을 때 시공을 초월한 바위의 문을 열고 나온 부처의 미소를 깨달을 수 있으리라. 저 위태하고 아찔한 벼랑은 자신이 구현하고자 하는 신을 가장 가까이 만날 수 있는 장소이다.
마치 벼랑에 서 있는 것처럼 시대가 어렵다. 그러나 부처는 상징처럼, 은유처럼 미소를 지으며 세상을 내려다보고 있다. 벼랑 끝이 출발점이라는 메시지가 들리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