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아침에 문자 메시지를 받았다.
지인이 보낸 새해 복맞이 떡이 안성 터미널로 도착할 것이라는 소식이었다.
엊그제 서로 안부 인사를 물었건만 웬 또? 라는 생각이 들어 바로 전화를 했으나 받지를 않는 거다.
하여 카톡으로 뭔 일 이래? 어쩌자고 또 떡을 보냈다는 말인지 싶어 궁금해 하며 서툰 의사 표시를 했으나
이 또한 답신이 없으므로그냥 떡을 받는 것이 좋겠다 싶어 터미널에 다녀왔다.
그야말로 무설재 신선이 좋아하는 떡이 고루 들어있었다....횡재한 기분이 들었으나
마음은 답신이 없는 사대명가- 02 3482 1233 - 쥔장의 속내를 알 수 없어 다시 한 번 잘 받았다는 전화를 했다.
그러자 그 쥔장은 흔쾌히 "보내 준 떡을 잘 먹어주는 것이 답례" 라고 했다.
괜히 울컥 했다....지난 해 추석에도 곱디 고운 떡을 보내줘서 추석 명절 차례에 얼마나 요긴하게 쓰였던지 생각하니
더욱 더 고마운 마음이 들었던 게다.
알고보니 그녀는 병원에서 치료를 받는 날이어서 전화도 카톡도 받을 수 없었다고 했다.
아쨋거나 원래 성격 그대로 쿨한 사대명가 쥔장의 배려로 맛있는 떡을 받아들고 보니 온갖 기억들이 꼬리를 문다.
어렵고 불편하기만 했던 시댁에서 30년 전에 분가를 하던 때가 꼭 이즈음이다.
날도 추운데 우리는 분가하는 것만으로도 좋아서 그 겨울 엄동설한에 시댁으로 부터 분가를 하고
화곡동이라는데서 처음 우리끼리 생활을 해내다가 다시 무설재 신선의 직장과 가까운 성남으로 둥지를 옮겼었더랬다.
그렇지만 처음 옮긴 곳은 사는데는 불편함이 없었지만 여러 여건이 탐탁치 않았으므로 마음 한 켠이 늘 불안했던 관계로
첫째 딸내미와 같이 또 임신중독증에 걸린 채로 둘째 아이가 어렵게 태어나자 더 이상의 불편을 감수할 수 없어
살 던 곳 근처의 가까운 아파트로 이사를 하게 됐다.
처음에 아파트에 입주하였을 때는 날아갈 듯 좋았지만 그 아파트는 완전 준공이 떨어지지 않은 상태로 불미한 일이 자주 생기기 시작했고
아파트 주민들이었던 우리는 허구 헌날 아이들 들쳐 업고 국회의사당이 있는 여의도로, 성남 시청으로 데모를 하러 다녔다.
그럴 즈음은 이미 일면식이 생긴 몇 몇 주민들끼리 친목을 도모하며 잘 지내던 시절이었고
우리는 또 아이들을 핑계 삼아 자주 서로의 아파트를 들락거리게 되었으며 결국엔 호형호제 하는 사이로까지 가까워져
한 사람이 어딘가를 출타할 일이 생기면 서로의 아이들을 맡기거나 맡아줄 만큼의 친분이 쌓이게 되었다.
하지만 늘 무슨 만남이거나 모임에는 유난히 친한 사람들이 있게 마련인데 이 방배동 떡집 "사대명"가의 쥔장과의 인연이 그러했다.
같은 아파트 살면서 비슷한 또래의 아이들도 친하게 지냈지만 본래 그런 모임에는 아녀자들이 더욱 더 활력을 찾는 법이요
그로 인한 남자들의 모임도 활성화 되어 잦은 만남을 이루던 차에 아주 친해진 우리는 거의 3인방 시절을 구가하곤 했었다.
툭하면 헤쳐 모여를 하고 특히 그집에는 쌍둥이 딸이 있었으므로 무설재 쥔장의 딸내미는 더욱 더 그집에 가는 것을 좋아했다.
그러다 각자의 이유로 그 아파트를 떠나게 되면서는 친밀도가 소원해지고 소식도 드문드문 듣는 사이로 변해갔다.
물론 거리가 멀어지면 마음의 거리도 멀어진다는 말이 마치 진리인 듯 우리 또한 그러하였지만
우연한 기회에 3인방의 아들내미 결혼식에서 다시 재회하게 되어 요즘은 그래도 안부 정도는 알고 지내는 사이로 관계 회복이 되긴 했다.
워낙 친하던 강원도 촌년이라 불리우는 중간 징검다리 광록이 엄마의 역할이 가장 컸으므로 그녀에게도 고마워 해야 할 일 터.
무설재 쥔장과 달리 성격 좋고 마음자락도 넉넉한 그녀는 웬만한 인연은 자르는 법 없이 너도 나도 너나들이로 잘지내고 있었던지라
자르지 않은 인연과는 늘 소식을 주고 받고 있었던 까닭에 그 덕분에 결혼식 하객으로서 우리가 다시 재회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살다보면 숱하게 많은 변수 앞에 노출되게 마련이고 그 변수들은 족쇄가 되어
3인방의 관계 개선에는 별로 힘이 되지 못한 채 여전히 먼거리 인연으로 살아가고 있었다.
서을과 성남과 안성...이 거리가 사실은 별로 먼 거리도 아닌데 이상하게 자주 만나지도 못했다는 말이다.
어쨋거나 겨우 안부를 전하다가 그녀가 제 2의 인생으로 떡집을 시작한지 꽤나 되었다는 말을 작년에서야 듣게 되었다.
하지만 서울이라는 거리만큼의 체감도가 떡집을 자주 애용하는 처지가 되지 못할 정도여서
늘 마음이 불편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여전히 별 일 아니라는 듯이 툭툭 떡을 보내오곤 하니 그 또한 민망할 일이긴 하였다.
하여 서울로 올라가면 신세는 갚으리라 생각하였어도 차일피일 이었고 그녀로서는 그 마음을, 쥔장의 속내를 알지는 못할 것 같아
일단 지면을 빌어 고마운 마음을 전하는 것이고 실제로 먹어본 떡은 장난 아니게 맛있기도 했으므로 다시 한번 고맙다는 말을 전하는 것이다.
아마도 제 마음처럼 온갖 정성을 다해 떡을 빚는 것이라 생각하면서 제 정성으로 빚었을터요
늘 한결같았던 그녀의 마음 씀씀이 역시 퇴색하지 않았으므로 오늘은 더욱 더 그녀의 마음이 진하게 다가오긴 한다.
원래 요리도 잘하고 살림도 잘했던 그녀인지라 그녀가 만들어내는 떡은 안봐도 이미 비디오이긴 하다.
하지만 더욱 감동스러운 것은 어느 날 불편해진 몸을 감수하면서 제 자신보다 더 떡을 사랑하며 자연 그대로의 재료를 이용하여
온전한 조상들의 떡을 만들어내기 위해 고심하는 그녀의 마음을 알기에 더욱 더 고맙다는 말이다.
하지만 그것도 몸이 힘들어지자 당사자보다 더 본격적으로 떡을 배우게 된 남편과
원래 정보통신학을 공부했던 딸내미가 전격적으로 관련 부분인 식품영양학이나 조리학에 대한 공부를 다시 해내며 학위를 또 다시 따냄은 물론
궁중 음식과 폐백 음식, 이받이 음식으로는 이미 내노라 할 만큼 이름을 널리 알리게 되어 참으로 다행중에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암튼 올 설 명절 선물은 기분좋음으로 받게 되었다.
이런 저런 연유로 선물을 주고 받는 소시민들의 작은 꾸러미 행렬은 참으로 보기에도 좋다.
의미는 있되 의도가 없는 선물이란 저절로 미소짓게 하므로
첫댓글 오호~! 떡을 별로 안좋아 하긴 하지만 그래도 전번은 알아두어야겠네요.
쓸일이 생길듯도 해서리~!
ㅎㅎ 맛도 모양도 보장합니다.
한때 나랏님이 된 청와대 쥔장들에게도 납품하였던 떡이고
딸내미 김유미가 윤숙자 궁중 음식 명인에게 공부도 하여 전통음식 전문가이기도 하여 폐백이나 이받이는 더욱 더 장담한다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