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대생의 눈으로 영화 보기
전염병, 잘 알면
두렵지 않다
컨테이젼
서울공대 상상 예비 공대생을 위한 서울공대 이야기 2020 Winter vol .31

글: 김택민, 기계항공공학부
3 / 편집: 박보경, 전기정보공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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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으로 사람들에게 가장 큰 공포감을 심어 준 것은 전쟁도, 기아도 아닌 전염병 이었습니다. 중세시대 유럽 인구 약 30퍼센트의 목숨을 앗아간 흑사병부터 1918년에 발병해 제1차 세계대전보다 많은 인구를 희생시킨 스페인 독감, 최근에는 중증급성 호흡기 증후군(SARS)과 메르스, 코로나19에 이르기까지 전염병은 우리 인류를 끊임없이 괴롭혀왔습니다. 전세계가 코로나19의 위협에 노출 되어있는 지금, 2011년에 개봉한 스티븐 소더버그 감독의 <컨테이젼(Contagion, 전염병)>이라는 영화가 재조명 받고 있습니다. 이 영화는 극적인 연출을 하기보다는 전염병의 발생과 창궐 과정을 사실적이고, 과학적으로 묘사하여 보통의 재난 영화와는 다른 분위기를 풍깁니다. 제작진이 영화를 위해 미국질병통제예방센터(CDC, Center for Disease Control and Prevention)와 세계보건기구(WHO, World
Health Organization)에 자문을 구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과학적인 고증이 매우 잘 되어 있고 현실보다 더 현실 같은 장면들도 있습니다. 어떤 장면들인지 함께 알아보시죠! 아직 영화를 안 보신 분들은 기사의 내용이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니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전염병으로
마비된
사회의
길거리

생필품이
이미 없어진 마트의 모습
● 재생수를 알아야 전염병을 잡는다!
영화는 미네소타에 사는 베스가 홍콩에 출장을 다녀온 뒤 병으로 죽으면서 시작합니다. 그리고 그녀의 아들을 포함해 그녀와 접촉했던 사람들도 같은 증상으로 죽습니다. 그리고 베스가 공항에서 만졌던 신용카드, 문고리, 엘리베이터 버튼 등 일상의 접촉들로 바이러스가 미국 전체와 전 세계로 퍼지게 됩니다. 당국은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역학조사관을 파견하여 바이러스의 전파 과정을 조사합니다.
영화 초반부에 역학조사관 미어스 박사가 전염병에 대책을 세우려면 우선 바이러스의 재생수를 알아야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재생수(R0, Basic reproduction number)란 바이러스에 감염된 사람 한 명이 평균적으로 더 감염시키는 사람 수를 말합니다. 즉, 재생수가 클수록 전염성이 강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영화 내에서 MEV-1이라고 명명된 바이러스는 재생수가 2입니다. 감염자 1명이 평균적으로 2명을 더 감염시키는 것이죠. 유명한 전염병들의 재생수는 에볼라가 2, 중증급성 호흡기증후군(SARS)가 4, 2009년에 유행한 신종플루가 1.5입니다. 그리고 지금 유행하는 코로나19의 재생수는 세계보건기구에서 1.4에서 2.5 사이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재생수를 계산하기 위해 잠복기, 환자의 감염 기간, 감염 가능 인구 등 고려해야 할 변수가 많습니다. 이 방법은 실제로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SARS)와 코로나19의 재생수를 추정할 때 쓰였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재생수를 전염병 대책에 어떻게 사용할까요? 만약 재생수를 1보다 작아지게 한다면, 전염병은 자연스럽게 소멸할 것입니다. 여기서 유효 재생수(R, Effective reproductive number)라는 개념이 등장합니다. 유효 재생수는 면역인 사람들 (Recovered)을 제외한 인구 비율에 재생수(R0)를 곱한 값입니다. 예를 들어 재생수 3인 전염병이 있는데, 인구의 절반이 면역이라면 유효 재생수는 3×1/2 =1.5이겠죠. 따라서 유효 재생수를 1 이하로 낮추어서 전염병을 없애려면 사람들에게 백신을 투여하거나 감염자를 치료해서 면역인 사람들(Recovered)의 비율이 전체 인구의 1-1/ R0 이상이어야 한다는 것을 간단한 수식 계산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즉, 재생수를 알아야 전염병이 얼마나 빠르게 퍼져갈 것인지도 파악할 수 있고, 백신을 얼마나 보급해야 하는지 또한 결정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영화 속에서 미어스 박사가 재생수를 강조한 이유를 이제 알겠죠?

● 바이러스는 계속 변한다!
영화에서 앨리 핵스톨 박사가 MEV-1 바이러스의 배열과 기원을 밝혀냈습니다. 바이러스를 구성하는 유전물질의 염기서열이 박쥐, 돼지의 그것과 같으며 변이가 매우 빠르게 일어나서 사람 세포와 쉽게 결합한다는 것을 알아냈습니다. 현실에서도 코로나19와 같은 새로운 바이러스가 심심찮게 출몰하고,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는 매년 조금씩 다른 모습으로 우리를 찾아오곤 합니다. 바이러스는 어떤 특징을 가지고 있길래 이렇게 변이를 쉽게 일으킬까요?
바이러스는 유전물질을 포함한 작은 단백질 덩어리입니다. 자기 자신은 무생물이나 다름없고, 숙주 세포 안에서만 생명 활동을 합니다. 바이러스는 유전물질인 DNA 또는 RNA와 이를 둘러싼 단백질 껍질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바이러스는 숙주 세포에 침투한 뒤에 자가 복제를 시작하는데요, 이 복제 과정에서 변이를 일으킵니다. 특히 RNA로 이루어진 바이러스가 변이를 잘 일으킵니다. RNA 바이러스는 복제과정 중에 오류 발생이 빈번하고, 이를 자체적으로 수정할 수 있는 기능이 없기 때문입니다. 오류들이 쌓이면 바이러스는 점점 숙주 세포에 친화적인 구조로 변하고, 숙주가 사람이라면 전염성이 점점 강한 바이러스로 탈피하게 되는 것이죠. 영화에서는 아프리카의 한 에이즈 환자에게서 바이러스의 변이가 일어나 재생수가 2에서 4로 증가한 신종 바이러스가 창궐합니다. 전염성이 급격하게 늘어난 것이죠. 그리고 지금 현실에서 유행하는 코로나19 바이러스 또한 변이를 쉽게 일으키는 RNA 바이러스입니다. 심각한 변이가 일어나기 전에 퇴치가 되기를 바랍니다.

● 바이러스보다 무서운 것은 두려움!
영화에서 전염병으로 인해 시민 사회는 혼란에 빠집니다. 엄청난 속도로 늘어나는 감염자로 인해 모두 공포감에 사로잡혀 생필품 사재기 현상, 공공 서비스의 마비, 약탈과 강탈이 빈번하게 일어나는 등 사회가 붕괴되는 지경에 이릅니다. 이 상황을 이용하여 주머니를 불리려는 악덕 블로거 앨런이 ‘개나리액이 치료제’라는 거짓 정보를 흘리고, 사람들은 이 거짓 정보에 선동되어 서로 싸우고 개나리액을 무력으로 빼앗기까지 합니다. 영화에서는 바이러스보다도 사람들 사이의 불신, 이기심으로 인해 망가진 사회가 더 큰 위협으로 비춰집니다.
전염병으로 인해 사회가 혼란해진 이유는 정확한 정보 전달의 부재가 가장 큰 원인입니다. 영화에서 정부는 시민들을 불안하게 할 필요가 없다며 공식 발표를 미룹니다. 간간이 보도되는 뉴스 또한 유용한 정보는 없고 신뢰성을 잃었습니다. 그리고 거짓된 정보를 유포하는 몇몇 사람들로 인해 시민들은 더욱 혼란에 빠집니다. 영화에서만 일어나는 일들이 아닙니다. 코로나19의 창궐 초기에 중국 당국은 감염자와 사망자 규모 등의 자세한 발표를 미루었습니다. 빠른 정보 전달이 되었더라면 각 나라에서 미리 방역 대책을 세워서 피해를 줄일 수 있었을 것입니다. 메르스가 우리나라에 발생했을 때는 바셀린을 코에 바르면 예방할 수 있다는 소문이 퍼지며, 한 편의점의 바셀린 매출이 2.2배 증가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과학적 근거가 전혀 없고 오히려 폐렴을 유발할 수 있다는 전문가의 소견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최근 펜벤다졸이라는 동물용 구충제가 항암제로 효과가 뛰어나다는 근거 없는 소문이 퍼져 품귀 현상이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익숙하지 않은 질병의 위협에 진실된 정보가 무엇인지 판단하기보다 눈앞의 불안함을 해소하려는 사람들의 심리가 반영된 사회 현상들입니다. 따라서 전염병이 발생하면 당국에서 국민들에게 정확한 정보를 전달하여 두려움을 해소하고, 전염병의 확산 속도를 늦춰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전염병보다 무서운 것은 익숙하지 않음에서 나오는 우리의 ‘두려움’이 아닐까요? 그리고 검증되지 않은 민간요법들보다 손을 잘 씻고, 마스크를 잘 쓰고 다니며 위생 관리를 철저히 하는 기본 습관을 들이는 것이 현실적으로 전염병 예방에 도움이 될 것입니다.

영화
속
MEV-1 바이러스의 단백질
구조
영화를 통해서 생각해 보았으면 하는 점!
영화는 마지막 장면에서 전염병의 시작을 보여 줍니다. 에임 엘더슨이라는 기업의 숲 개발로 인해 박쥐가 서식지를 잃어 인근 돼지 농장으로 도망가고, 그곳에서 돼지와 박쥐의 배설물이 섞여 변종 바이러스가 탄생하였고, 이 돼지를 요리한 요리사와 악수한 베스가 최초 감염자였음을 보여 주며 영화는 끝이 납니다. 영화는 MEV-1 바이러스가 지구를 그대로 놔두지 않고 자꾸만 파괴적인 방식으로 이용하려는 인간에게 선사하는 자연의 경고라는 교훈을 줍니다. 하지만 이는 영화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닙니다. 온실가스로 인한 지구온난화와 기후 변화, 미세 먼지로 오염된 공기, 어패류에 쌓여가는 중금속 등 인간의 잘못으로 인한 환경 파괴의 결과가 결국 인간에게 돌아오고 있습니다. 전 세계를 두려움에 빠트렸던 MERS, 코로나19, 신종플루와 같은 전염병도 우리의 잘못으로 인한 결과는 아닌지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별점 및 총평 ★★★★★
초호화 캐스팅에 배우들의 명품 연기가 빛나는 영화입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화려한 영화를 기대했지만, 다큐멘터리와 같은 연출에 제 들뜬 마음도 차분해졌습니다. 그러나 차분한 마음으로 보아야 더 좋은 영화였습니다. 과학적 고증이 잘 되어있어서 전염병이 퍼지는 과정을 위화감 없이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전염병이 진행됨에 따라 점차 무너져가는 사회의 묘사가 압권이었습니다. 그리고 붕괴된 사회에서 볼 수 있는 다양한 인간 군상 또한 영화의 훌륭한 감상 포인트였습니다. 죽을 때까지 주변 환자를 챙겨주는 미어스 박사, 오로지 돈을 위해 다른 사람들을 위험하게 하는 블로거 앨런, 자신에게 임상 시험을 해 가며 백신을 개발하는 앨리 핵스톨 박사 등의 등장인물들이 재난 상황에 처한 다양한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 주었습니다. 과학적 고증도 뛰어나고 스토리에 어울리는 차분한 연출과 뻔하지 않은 등장인물들까지 겸비한 영화라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시청했습니다.
코로나19가 유행하는 지금 상황을 돌아볼 수도 있는 이 영화, 추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