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모의 죽음] 1601~1603년경
캔버스에 유채, 369×245cm, 루브르 박물관, 파리
화면에는 붉은 휘장이 쳐진 실내에 눕혀진 성모의 시신, 그를 둘러 서 슬퍼하는 예수의 제자들, 그 앞에 앉아서 울고 있는 막달라 마리아가 보인다. 복음서 외경에 따르면 성모는 죄가 없기 때문에 고통 없이 숨을 거두었고 그후 3일 동안 잠을 자듯 평화롭게 누워있다가 승천했다고 한다. 이 때문에 성모의 죽음 주제 그림은 ‘잠’이라는 뜻의 ‘도르미션(Dormiton)’이라고 불린다.
이 작품은 본래 가르멜 수도회의 교회 산타 마리아 델라 스칼라(Santa Maria della Scala)의 체루비니 채플(Cherubini Chapel) 제단화로 그려져 설치까지 되었지만 곧 철거되었다. 철거된 이유에 대해 기록자마다 다른 설명을 하고 있는데, 그 중 성모가 맨다리를 드러낸 단정치 않은 모습이라는 설, 모델이 화가의 애인이었던 매춘부 혹은 물에 빠져 죽은 창녀였다는 설 등이 있다. 요는 ‘여인 중에 가장 복된’ 마리아의 죽음을 치장하는 것이 전혀 없었다는 것, 성자의 죽음이 평범한 사람의 죽음과 너무도 닮았다는 사실이었다. 마리아를 신앙의 모델로 삼고 있던 가르멜 수도회로서는 모델이 창녀라는 말까지 나오는 작품을 제단에 두고 보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거부당한 다른 작품들처럼 이 그림도 곧 다른 주인을 찾았다. 당시 로마에 체류 중이던 루벤스가 자신의 후원자인 만토바 공작에게 구입을 권유했지만 결국 작품은 찰스 1세의 손에 들어가 영국으로 갔고 후에 루이 14세에게 매각되어 현재 루브르에 있다.
이 작품 제작을 전후한 시기에 카라바지오는 특히 많은 범죄 사건들을 일으켰다. 그의 작업 속도는 빠른 편이었지만 꾸준히 작업하지 않아 작품 수는 많지 않다. 보통 보름쯤 작업을 하면 한두 달은 칼을 차고 하인과 함께 테니스 경기장 등을 다니며 싸움이나 논쟁에 끼어들었다는 기록이 있을 정도다. 그러다가 1606년 5월에는 내기 테니스 경기를 하다가 싸움이 나 상대방을 칼로 찔러 죽이고 본인도 큰 부상을 입게 된다. 그는 나폴리로 도주했다가 1607년에 말타(Malta)섬으로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