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27일 결혼한 딸의 기증으로 간 이식 수술을 받아 이제 3개월이 됐습니다. 작년 11월 말 3개월 마다하는 초음파 검사에서 이상이 발견되었고 MRI 검사에서 간암으로 판명되어 12월 서울대 병원으로 옮겨 색전술을 받았으나 바로 정맥으로 흘러 효과가 없기에 담당의사의 제안과 딸의 적극적인 권유로 이식 수술을 받고 3월 19일 퇴원하여 순조로운 회복을 하고 있습니다. 5월 23일 외래 시에는 GOT/GPT 가 12/9 이고 T.Bil 이 0.6 이며 몸무게도 수술 전 64.5Kg이 수술 직후 58.5Kg까지 내려 갔다가 원상태로 회복이 되었고 혈압 체온 모두가 지금까지 정상으로 나타 나고 있습니다.
B형 간염의 첫 발병은 84년 봄이었으며 98년 가을 간경화 진단을 받았습니다. 이때 제 자신이 느낄 정도의 복수가 있어 6개월간 이뇨제 처방을 받았습니다. 식단에 관한 교육도 받았고 저염식을 권장했으나 저는 아예 무염식을 실천했습니다. 무염식도 육류나 빵, 과자 등에는 소금이 들어 있으니 소금이 부족할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 한 것입니다.
참고로 저는 나이 30에 신체검사에서 당이 있어( 그 당시 소변 검사로 ) 콜라 사이다 같은 청량음료를 끊었으며 집에서 만드는 음식에도 가급적 설탕을 사용하지 않도록 했습니다. 커피도 그때부터 블랙으로 즐기고 있습니다. 나이 40에는 20년간 피우던 담배를 끊었으며 53의 나이에 간경화로 인한 복수로 소금을 끊고 마시는 물의 양을 줄였습니다. 소금이 많이 들어 가는 김치와 국은 가급적 먹지 않았고 국도 소금이나 간장을 전혀 넣지 않고 만들어 먹었습니다. 음식점에서 소금 끼 없는 음식 찾기가 힘들면 두부나 계란을 부쳐 달라고 요구했습니다. 그래서 인지 수술 전까지 복수를 뽑거나, 간성혼수, 위 출혈 같은 것은 없었고 위내시경 검사에서도 정맥류 형성이 아직은 괜찮다고 했습니다.
혈당이 정상이던 많은 분들이 수술 후 혈당이 높아져 인슈린을 사용하는데도 저는 수술 후에도 괜찮았던 것은 아마도 설탕을 30년 이상 절제해 왔기 때문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참고로 수술전 저의 혈당은 공복시 70 식후 120 정도에서 수술후 공복120~140 식후170~190 정도였습니다.
소금이나 간장이 들어가지 않은 국을 먹기가 처음에는 힘들었습니다. 국내에서 웬만한 갈비탕이나 설렁탕 집에 가면 이미 간이 되어 있습니다( 대부분은 거기에 다시 소금을 더 치지만 ). 간이 전혀 없는 갈비탕을 먹을 때는 정말 힘들었지만 6개월 정도 지나니 익숙해 졌습니다. 간 없는 콩나물 국도 마찬가지 입니다. 김치, 국, 찌개 만 조심하면 다른 음식은 간이 있어도 국에 비하면 소금의 절대량이 적어 괜찮다고 봅니다.
간경화가 진행되어 감에 따라 설사 빈도가 잦아지고 외식 때 음식이 청결하지 않다고 느끼면 여지없이 설사로 이어지곤 했습니다. 처음 간염 때부터 피곤함을 느껴 왔지만 작년 가을부터는 조금씩 더 피곤함을 느꼈고 몸무게는 같은데 허리둘레가 늘어나는 것이 복수가 증가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무렵 간암 진단을 받게 된 것입니다. 저는 조금 피곤하다는 것을 느끼는 것 외에는 회사 생활에도 별 문제는 없었습니다. 다만 가만히 앉아 있으면 잠이 오고 재미없는 회의에는 나도 모르게 졸게 되는데 간이 나쁜 것을 알고 이해를 해줬습니다.
간암을 통보 받고 첫 번째 문제는 가족에게 어떻게 알리느냐는 것이었습니다. 아내가 어떻게 생각하고 아이들은 어떻게 생각할 것인가. 아이들은 둘 다 결혼을 했으니 충격이 가고 시간이 지나면 그들의 바쁜 생활로 돌아 가겠지만 혼자 남겨지는 아내는 지금까지 모든 것을 둘이서 의논하며 살아 왔는데 이제 환갑인 60의 나이로 혼자 있기에는 너무나 긴 시간이 남아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12월 2일 오전 MRI 결과를 통보 받을 때 아내는 검사한 사실도 모른 채 그날 저녁 비행기로 오래 전부터 계획했던 홍콩에 있는 아들의 생일축하를 겸한 홍콩 여행을 떠나기 위해 공항 떠날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아내에게는 공항 Boarding Gate에서 탑승을 기다릴 때 아들에게는 생일 다음날 이야기 했습니다.
( 곧 바로 한국에 있는 딸에게 연락이 가고 이 후로는 딸이 주도하여 병원을 옮기고 이식까지 오게 된 것입니다. 저는 근무하던 회사에서 가까운 안산 고려대 병원에서 간경화 진단과 간암 진단을 받을 때까지 7~8년간을 다녔으며 간암 치료를 위해 입원 예약을 하였으나 아내와 아이들이 집에서 가까운 곳에서 간병을 해야 한다는 이유로 서울대 병원으로 변경하였습니다. )
2월 27일 8시 45분을 지나면서 병실을 나왔고 수술 침대의 등 받침이 따뜻하고 포근하다는 것을 느끼면서 의식이 사라졌으며 눈을 뜨니 벽 시계가 6시 35분 간호사의 이야기는 5시 36분에 도착하였다는 것이고 아내는 딸은 회복실에서 3시반 경에 병실로 옮겨 왔다고 했습니다. 그리고는 다시 눈을 뜬 것은 시계가 1시를 지날 때였습니다. 28일 새벽 1시, 그리고는 눈을 뜨고 감기를 수십 번 2시가 되어서야 완전히 정신이 들었습니다.
제 경우 환상은 너무나 아름다웠습니다. 눈을 감았다 뜨는 순간 강렬하고 선명한 색채가 눈 앞을 지났고 KBS 음악 방송을 24시간 내내 틀어서 그런지 음악에 따라 중세 유럽의 도시가 보이고 템페스트 같은 장중한 음악이 흐르면 추운 겨울 러시아 혁명군들이 텐트에서 일어나 말 탈 준비를 하는 것 등등 아내가 면회 시간에 오면 아름다운 유럽의 도시를 보라고 소리 치면서 눈을 뜨면 사라지고 보이지 않았습니다. 지금도 그 때의 환상을 다시 경험하고 싶을 정도로 아직도 황홀 합니다.
가스가 나오면서 장이 정상적으로 활동하니 견딜 수 없는 고통이 동반되었고 나중에 변이 나오기 시작하면서 조금씩 고통이 줄기 시작 하였으나 복부는 철판을 대고 볼트로 조인 것처럼 무겁고 답답하게 느껴졌습니다.
3월 9일 열흘 만에 이식 병동으로 옮겨 처음 한 일은 화장실 가는 것이었습니다. 천정이 팽 돌고 다리가 풀려 주저 앉을 것 같았지만 중환자 무균실에서 제일 민망했던 것이 간호사들이 변을 치우는 것이었기에 수액 받침대로 붙들고 이를 악물면서 갔었습니다.
수술 후 검사에서 의료진이 원하는 수치가 나왔으나 유독 FK 농도가 6~7정도로 낮게 나와 타크로벨( 프로그랍과 같은 성분 )을 4에서 4.5,-> 5,-> 5.5로 용량을 늘리다 결국 최대 한도인 7/7 을 먹게 되었습니다( FK 농도 9~10 정도 나옴 ). 5월 23일 외래에서 PD는 1알 타크로벨은 6/6 알로 한 알씩 줄여 처방이 나왔습니다. 헤파빅은 3월 29일 10,000 단위를 투여 했으나 그 후 검사마다 농도가 1,000 이 넘어 투여하지 않고 있으며 다음 외래일인 6월 20일 검사 결과에 따라 투여 여부를 결정한다고 합니다.
외관은 사람들이 놀랄 정도로 온몸이 하얗게 변했고 눈동자가 맑아졌으며 손과 피부가 촉촉하며 부드러워 지고 간으로 인해 몸에 생겼던 검 버섯 같은 반점들이 색이 옅어지거나 사라져 버렸습니다. 평지를 걷는 것은 오래 걸어도 괜찮으나 계단을 오르는 것은 아직은 3층 정도만 올라도 숨이 찹니다. 사람들이 저를 보고 좋아졌다고 하고 저도 그렇게 느끼고 있습니다. 그러나 중환자실에서 꼼짝 못하고 누워 있을 때 문득 괴테의 파우스트가 생각나는 것입니다. 젊음을 위해 영혼을 파는 것처럼 이제 나도 건강을 위해 내 몸을 의사와 면역 억제제에 죽는 날까지 엮어 버린 것은 아닌가 하고.
지난 5월 30일 있었던 서울대 병원 간이식인회 총회에서 이남준 교수님의 강의에서도 이식 환자는 간염이나 암이 재발할 경우 면역력 억제로 인해 병의 진행 속도가 더 빨라지기에 B 형 간염에 의한 환자는 수술 초기에 고용량 헤파빅과 제픽스(헵세라)를 병용 투여하여 재발 예방을 한다고 합니다. 바꿔 말하면 이식 후 병에 걸리면 일반인 보다 치료가 더 어려워지는 것입니다. 이 곳 카페에서는 간 이식의 장점을 앞세우며 권장하는 분위기인데 제 생각은 간 이식은 마지막 선택인 것 같습니다. 남은 평생을 면역 억제제를 복용하는 것이야 큰 문제 아니지만 다시 중병에 걸리면 거부 반응을 억제하기 위한 면역 억제제가 덫이 되어 정상적인 치료를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런 이유로 이식 환자는 병에 걸리지 않도록 또한 상처가 생기는 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하고 만일의 경우를 위해 병원과 쉽게 연결 되는 곳에 있어야지 외국 특히 선진국이 아닌 곳에서 생활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는 상당한 제약이 될 것 같습니다. ( 저는 외국에서의 일을 생각하고 있기에 )
언젠가 결국은 간이식을 해야 한다고 판단하면 하루라도 빨리 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지만 그러나 사람마다 병의 진행이나 치료의 반응이 너무나도 다르기 때문에 가급적 최대한 현상 유지를 목적으로 상황을 지켜 보고 판단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수술 시기는 저도 님과 같은 생각 이랍니다. 간경화 였는데 이식수술후 면역억제제 복용으로 암이 생겨 항암 치료 받고 계신분,수술후 18개월 병상에 계시다가 담도관 갖고 퇴원후 이뇨제 복용,이제는 복수 차서 신장투석....3년동안 치료비 10억쯤 들었다고 하심. 수술후에도 예후가좋지 않으신 분들도 조금은 계십니다. 저는8개월 지났는데 아직도 외래가면 입사 면접시험 보는 기분이랍니다. 몸이 조금만 이상해도 식구들이 걱정하고, 세월이 지나면 괜찮아 지겠지만.... 앞으로는 건강하시고,행복하게 사십시요.
아무 합병증 없이 잘 회복되고 계심을 축하합니다.전 오늘로 4개월 지났어요.저도 아직은 아무 탈 없이 잘 견뎌왓는데 앞으로 가 걱정 돼요 이식한 모든 분이 장래에 대한 염려가 문제인거 같아요 그냥잊고 생활 하자니 이식한걸 있고 덜 조심하게되고 ...그냥 이런 저런 신경 안쓰고 살수있는 신약이 개발 되었으면 하는 바램도 가끔은 합니다 . 건강하세요
첫댓글 앗..저도 갔었습니다..마스크 한분이 2~3분 정도 게시던데요.. 건강 하십시요..
수술 시기는 저도 님과 같은 생각 이랍니다. 간경화 였는데 이식수술후 면역억제제 복용으로 암이 생겨 항암 치료 받고 계신분,수술후 18개월 병상에 계시다가 담도관 갖고 퇴원후 이뇨제 복용,이제는 복수 차서 신장투석....3년동안 치료비 10억쯤 들었다고 하심. 수술후에도 예후가좋지 않으신 분들도 조금은 계십니다. 저는8개월 지났는데 아직도 외래가면 입사 면접시험 보는 기분이랍니다. 몸이 조금만 이상해도 식구들이 걱정하고, 세월이 지나면 괜찮아 지겠지만.... 앞으로는 건강하시고,행복하게 사십시요.
아무 합병증 없이 잘 회복되고 계심을 축하합니다.전 오늘로 4개월 지났어요.저도 아직은 아무 탈 없이 잘 견뎌왓는데 앞으로 가 걱정 돼요 이식한 모든 분이 장래에 대한 염려가 문제인거 같아요 그냥잊고 생활 하자니 이식한걸 있고 덜 조심하게되고 ...그냥 이런 저런 신경 안쓰고 살수있는 신약이 개발 되었으면 하는 바램도 가끔은 합니다 . 건강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