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살롬의 죽음에 대한 다윗왕의 슬픔이 매듭지어지고나서...
드디어 예루살렘에서 멀리 떠나 있었던 다윗이 다시 왕궁으로 귀환하기 시작하는 장면입니다.
다윗 왕의 귀환은, 온 유다와 이스라엘 땅에 거하는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의 색깔과 신분을 분명하게 하도록 하는 시금석이 되었습니다. 다윗 왕에 대하여 어떠한 입장과 태도를 취하느냐에 따라 각 사람의 운명이 극명하게 갈리게 될 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미 다윗 왕 편에 서 있었던 사람은 끝까지 왕 곁에 머물러 있어야 했고, 다윗 왕 편에 서 있지 않고 압살롬을 따랐던 사람들은 돌이켜 다윗 왕에게 붙어야 했으며, 끝까지 다윗 왕을 지지하지 않고 반란을 일으키고자 하는 세력들은 결국 왕의 심판과 숙청을 받아야했습니다.
오늘 본문은 다윗 왕이 요단 저편에서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오는 과정을 그리고 있습니다. 점점 예루살렘 성으로 가까이 다가오는 과정 가운데 여러 부류의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에 대하여 왕이 어떻게 대우하고 처신하는 지를 아주 세밀하고 디테일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것은 마치 만왕의 왕 예수그리스도의 귀환, 즉 임박한 주님의 재림을 앞두고 일어나게 될, 사람들의 모습을 너무나 선명하게 예표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듯 합니다.
귀환준비부터 과정 중에 만나는 사람들을 하나하나 살펴보면서, 다가올 예수님의 재림을 어떠한 마음으로 준비해야 할 지 성령의 조명하심에 귀기울여 봅니다. 그리고 주님의 재림앞에 확실한 태도와 입장을 분명히 해야 할 것에 대하여 경각심을 얻고자 합니다.
1. 요압과 아마사
너희는 또 아마사에게 이르기를 너는 내 골육이 아니냐 네가 요압을 대신하여 항상 내 앞에서 군장이 되지 아니하면 하나님이 내게 벌 위에 벌을 내리시기를 바라노라 하셨다 하라 하여 (삼하19:13)
요압은 압살롬을 죽이고 다윗왕이 다시 이스라엘로 귀환하도록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다윗의 군대장관입니다. 그리고 아마사는 압살롬의 군대장관으로 압살롬을 보필했던 군대장관이었습니다. 인간적인 시야에서 볼 때는 볼 것도 없이 요압이 더욱 높임을 받고 아마사는 숙청이 되어야 마땅합니다. 그런데 다윗은 정반대의 결정을 합니다. 요압을 경질하고 아마사를 자신의 군대장관으로 삼은 것입니다.
다윗이 바라본 것은, 결과가 아니라 태도였습니다. 요압은 눈에 보이는 혁혁한 결과를 성취해 낸 인물일 수는 있어도... 왕의 명령에 고분고분 순종하는 태도를 가진 사람은 아니었던 것입니다. 오히려 아마사는 압살롬이 군대장관으로 임명한 후 끝까지 자신에게 맡겨진 직분을 충성스럽게 수행했던 순종적인 사람이었습니다. 다윗은 이러한 태도를 좋게 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도 눈에 드러나는 가시적인 성과와 화려한 믿음의 영웅담을 보시지 않고, 마음 중심을 보실 것입니다. 그 마음 중심이 하나님께 겸손히 순종하는 마음이 있는지의 여부를 보실 것입니다.
보라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도 있고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될 자도 있느니라 하시더라 (눅13:30)
주님 다시 오시는 날에 이런 일이 많이 일어날 것입니다. 누가 봐도 저 사람은 천국에 갈 사람이었는데 가 보니 찾을 수 없고, 누가 봐도 저 사람은 천국에서 못 만날 줄 알았는데 가 보니 있고... 사람들은 외모를 보고 하나님은 중심을 보시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들입니다. 자기 의로 점철된 요압이 아닌, 충성과 순종으로 점철된 아마사의 태도를 취해야겠습니다.
2. 시므이
다윗이 가로되 스루야의 아들들아 내가 너희와 무슨 상관이 있기로 너희가 오늘 나의 대적이 되느냐 오늘 어찌하여 이스라엘 가운데서 사람을 죽이겠느냐 내가 오늘날 이스라엘의 왕이 된 것을 내가 알지 못하리요 하고 시므이에게 이르되 네가 죽지 아니하리라 하고 저에게 맹세하니라 (삼하19:22-23)
시므이는 일순위로 죽어야 할 사람이었습니다. 왜냐하면 다윗이 압살롬에게 쫓겨갈 때에 그는 다윗에게 대놓고 재를 뿌리며 욕하고 저주했던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다윗 주변의 모든 군대장관들이 한목소리로 당장 죽여야 한다고 이를 갈고 있을 때에 다윗은 그를 죽이지 않고 너그러이 용서해 줍니다. 다윗이 그를 용서하게 된 이유는 그가 돌이켜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다윗 앞에 엎드려 용서를 빌었기 때문입니다.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목되었은즉 화목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으심을 인하여 구원을 얻을 것이니라 (롬5:10)
우리 역시 시므이와 같이 주님과 원수되었던 자들입니다. 시므이처럼 대놓고 욕을 하진 않았어도 마음으로 원수되어 주님의 십자가를 외면했던 자들입니다. 그런데 주님 앞에 나아와 이전의 잘못을 회개하고 믿음으로 주님을 받아들이기로 마음먹었을 때 과거의 죄를 묻지 않으시고 용서해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게 된 것입니다. 주님 다시 오시는 그 날에도 시므이와 같이 원수되었다가 회개하고 주님 품에 안길 사람들이 있을 것입니다.
3. 므비보셋과 시바
내 아비의 온 집이 내 주 왕 앞에서는 다만 죽을 사람이 되지 아니하였었나이까 그러나 종을 왕의 상에서 음식 먹는 자 가운데 두셨사오니 내게 오히려 무슨 옳음이 있어서 다시 왕께 부르짖을 수 있사오리이까 왕이 저에게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또 네 일을 말하느냐 내가 이르노니 너는 시바와 밭을 나누라 (삼하19:28-29)
다윗이 압살롬에 쫓겨 다닐 때에 사울의 사환 시바는 므비보셋이 왕궁에 남아 사울왕조를 다시 일으키고자 한다고 거짓으로 음모를 꾸며 다윗에게 허위보고를 합니다. 그리하여 다윗은 므비보셋의 모든 밭을 시바에게 줍니다. 억울하게 오해를 사게 된 므비보셋은 자신의 진실된 마음을 표현하기 위해 다윗이 왕궁을 떠난 기간동안 수염도 깎지 아니하고 옷도 빨지 않았습니다. 결국 므비보셋의 해명으로 오해가 풀려 시바에게 주었던 밭을 다시 절반을 떼어 므비보셋에게 줍니다.
다윗은 일찌기 요나단과 맹세한 언약이 있습니다. 그것은 요나단에게 속한 자들을 보호하고 끝까지 선대하겠다는 약속입니다. 이 약속때문에 므비보셋은 날마다 왕의 밥상에서 함게 먹었던 것이고, 시바도 마땅히 처벌받아야 하지만 죽지 않고 살려둔 것입니다.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의 행한 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좇아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 (딛3:5)
우리 모두는 므비보셋처럼 죽은 개와 같은 자요, 시바와 같이 간사하고 속이는 자였습니다. 그러나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의 언약으로 말미암아 거듭나고 구원받아 일방적인 은혜 안에 거하는 자인 것입니다.
4. 바르실래와 김함
청컨대 종을 돌려 보내옵소서 내가 내 본성 부모의 묘 곁에서 죽으려 하나이다 그러나 왕의 종 김함이 여기 있사오니 청컨대 저로 내 주 왕과 함께 건너가게 하옵시고 왕의 처분대로 저에게 베푸소서 왕이 대답하되 김함이 나와 함께 건너가리니 내가 너의 좋아하는 대로 저에게 베풀겠고 또 네가 내게 구하는 것은 다 너를 위하여 시행하리라 하니라 (삼하19:37-38)
바르실래는 다윗이 압살롬에게 쫓겨다닐 때 먹을 것과 씻을 것과 숙소를 제공하며 호의를 베풀었던 길르앗 사람입니다. 다윗은 그의 따뜻한 친절을 잊지 않고 함께 왕궁에 가서 살자고 제안합니다. 하지만 바르실래는 나이가 많아 오히려 자신을 짐만 되는 늙은이라고 겸손히 거절하며, 대신에 자신의 아들 김함을 왕과 함께 거하도록 부탁합니다. 이러한 바르실래의 부탁을 다윗은 그대로 시행합니다.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아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 (마25:35-36)
마지막 날, 주님은 이름 없이 빛도 없이 사람들을 사랑하고 대접하고 섬긴 자들의 모든 호의를 기억하시고 선으로 갚아주실 것입니다. 바르실래처럼 새 하늘과 새 땅에 들어가기 전에 죽었다가 공중강림의 그 날에 무덤에서 일어나 들림받고 하늘로 올라갈 사람이 있을 것이고, 김함처럼 왕과 함께 산 채로 들림받아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될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주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며 살아가는 모든 성도들이 하늘로 들림을 받게 될 것입니다.
5. 유다 백성과 이스라엘 백성
이스라엘 사람이 유다 사람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우리는 왕에 대하여 십분을 가졌으니 다윗에게 대하여 너희보다 더욱 관계가 있거늘 너희가 어찌 우리를 멸시하여 우리 왕을 모셔 오는 일에 먼저 우리와 의논하지 아니하였느냐 하나 유다 사람의 말이 이스라엘 사람의 말보다 더 강경하였더라 (삼하19:43)
압살롬이 죽자 압살롬을 따르던 이스라엘 백성은 자기 살 길을 찾기 위해 다윗에게 달라붙습니다. 다윗을 따르던 유다 백성을 오히려 멸시하며 자기들의 세력을 자리매김하기 위해서 숟가락을 얹어 놓는 데에 혈안이 되어 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먼저 다윗왕을 왕궁으로 모셔오기로 제안했다는 것과 이스라엘 열 지파의 숫적 우세를 내세우며 유다백성을 압박하지만... 처음부터 다윗을 보필하고 따랐던 유다백성을 압도할 수는 없었습니다.
적은 무리여 무서워 말라 너희 아버지께서 그 나라를 너희에게 주시기를 기뻐하시느니라 (눅12:32)
하나님의 나라는 숫자에 있지 않습니다. 아무리 적은 무리라 할지라도 주님을 신실하게 따르는 자들에게 하나님 나라가 상속되며 그들이 바로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왕노릇할 자들입니다. 자신의 잇권을 따라 이리 붙었다 저리 붙었다 하는 박쥐같은 사람들은 마지막 날에 바람에 나는 겨와 같이 흩어져 버릴 것입니다.
결국 압살롬을 따랐던 이스라엘 사람들은 세바의 선동으로 즉각 다윗을 배반하고 세바에게 붙습니다(삼하20장). 이처럼 마음에 정함이 없이 왔다리 갔다리 하는 신앙, 하나님과 세상을 겸하여 섬기는 양다리 걸친 신앙은 결코 하나님 앞에 통하지 않습니다.
-------------------------
다윗 왕의 귀환 과정에서 알곡과 가라지가 나뉘고 있습니다. 쌀에 물을 부으면 알곡은 가라앉아 가라지는 수면위에 드러나듯이 예수님의 재림이 가까와올수록 알곡 신앙과 가라지 신앙이 구분되는 현상이 나타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신앙의 현주소를 밝히 알려주시는 이 마지막 때에 자신을 돌아보아 하나님 앞에 참믿음으로 바로 서야 합니다. 복음이 진정 실제가 되어야 합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모든 인류에게 재림을 앞두고 베푸시는 마지막 은혜인 줄 믿습니다. 마라나타!
가라사대 내가 은혜 베풀 때에 너를 듣고 구원의 날에 너를 도왔다 하셨으니 보라 지금은 은혜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 (고후6:2)
<적용>
하나님 앞에 내 자신이 올바른 믿음으로 서 있는지 스스로를 돌아보며 더욱 겸손히 하나님 앞에 무릎꿇고 나아가는 시간을 가져야겠습니다.
<기도>
사랑하는 주님, 감사합니다. 다윗 왕의 귀환 과정에서 만나는 수많은 인물들 속에서 재림의 귀한 복음의 진리를 깨닫게 하심을 감사드립니다. 신랑되신 주님의 재림을 앞두고 어떠한 신부로 준비되어야 할 지 명확한 청사진을 보여주심을 감사드립니다.
아마사와 같이 충성된 자로 살게 하소서.
시므이와 같이 돌이켜 회개하는 자로 살게 하소서.
므비보셋과 같이 은혜입은 자로 살게 하소서.
바르실래와 같이 사랑으로 섬기는 자가 되게 하소서.
김함과 같이 왕궁에 거하는 자가 되게 하소서.
유다백성과 같이 처음부터 신실하게 주님만을 따라가는 자가 되게 하소서.
다시 오실 나의 주, 나의 신랑되신 주님을 오늘도 기다립니다.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마라나타!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날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예수님 믿고 영접함으로 구원받으시기 바랍니다.
지금이 바로 은혜받을 만한 때입니다.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고 싶은 분은
아래 영접기도문을 그대로 읽으면서 기도하세요.
예수님을 간절히 원하는 마음으로
그분을 믿고 입으로 시인하시기 바랍니다.
<영접기도문>
하나님 아버지, 저는 죄인임을 시인합니다. 예수님께서 저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 부활하신 사실을 믿고 감사드립니다. 제가 주님을 원합니다. 지금껏 하나님을 떠나 제 자신이 제 삶의 주인이 되어 살아왔던 모든 과거를 회개합니다. 이제 예수님을 제 삶의 주인으로 믿고 제 마음에 모셔 들입니다. 제 마음에 들어오셔서 제 삶을 다스려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하늘우체통 전도지로
영혼구원의 사역에 동참하세요.
전도지를 배포하는 것만으로도
놀라운 전도입니다.
www.heavenlypostbox.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