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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 법천사지 답사
도 정 기
봄이 완연한 4월 19일 경산박물관 문화사랑회의 문화유적 답사를 떠났다.
원주시 지정면에 위치한 소금산 출렁다리와 부론면의 법천사지를 답사하는 코스다. 오전 7시 30분 박물관 삼성현 동상 앞에서 탑승을 마친 전세버스는 위용도 당당하게 힘차게 원주로 출발하였다. 달리는 차창으로 바라보는 산의 여기저기에서 만개한 산복숭아꽃과 산벚나무 꽃도 보기 좋았다. 그러나 유난히 눈에 들어오는 것은 산자락에 무리 지어 헛 틀어지게 피어있는 좁쌀 나무의 새하얀 꽃이었다. 좁쌀 나무의 꽃은 나무의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좁쌀같이 꽃이 작다. 좁쌀 나무는 무리 지어 자생하기 때문에 만개하면 눈밭을 연상하게 한다. 그래서 가까이서 보기보다 멀리서 바라보는 것이 제격이다.
우리 일행을 실은 버스는 약 4 시간을 달려 11시 20분에 소금산 주차장에 도착했다. 넓은 주차장에는 전세버스와 승용차들로 가득 찾다. 금강산 구경도 식후경이라고 원주 한우식당에서 소고기 육회비빔밥으로 체력을 보충하고 출렁다리로 출발하였다. 해발 343m의 소금산(小金山)은 작은 금강산이란 이름으로 기암괴석과 섬강의 맑은 물에다 울창한 산림으로 원주의 명산이다. 그러나 인근에 있는 치악산의 명성에 가리어 이름조차 생소했던 산이다. 갑자기 이렇게 많은 관광객들이 모여드는 데는 이유가 있었다.
2018년 1월 11일에 개장한 출렁다리 때문이다. 1월 11일에 개장한 이래 2월 25일까지 한 달 보름 만에 방문객이 30만 명을 돌파하였다고 한다. 폭발적인 인기의 비결은 뚝 떨어진 절벽 봉우리를 이어놓은 국내 산악 보도교 중 가장 긴 길이 200m에 높이 100m로 밑으로 구멍이 송송 뚫린 철계단의 아찔함 덕분이란다. MBC 예능프로그램 <무한도전>에서 유재석이 벌벌 떨었다는 유명세 때문에 더욱 빨리 입소문을 탄 것도 한몫했을 것 같다.
출렁다리는 지름 40㎜ 특수도금 케이블이 여덟 겹으로 묶여 양쪽 아래위로 다리를 지탱한다. 특히 몸무게 70㎏이 넘는 성인 1천285명이 동시에 지나갈 수 있으며 초속 40m 강풍에도 견딜 수 있도록 설계했다. 아울러 이용객들이 짜릿함과 아찔함을 동시에 느끼도록 교량 바닥은 격자 모양의 강철로 제작했다. 주차장 가까이 있는 섬강의 다리를 연이어 두 개를 건너가니 바로 출렁다리로 올라가는 출발점이었다. 산은 급경사라 갈지자 모양으로 나무계단을 설치해 놓았다. 한꺼번에 많은 사람들이 몰려오는 바람에 몇 개단을 오르고는 멈추어서고 또 몇 개단을 오르고는 멈추어서 기다려야 했다. 출발점 안내판에는 출렁다리까지는 500m 거리에 25분 정도 소용된다는 무려 그 4배인 1시간도 더 걸려 도착했다. 안내판은 새까만 거짓말쟁이다. 일행들의 입에서는 이구동성으로 많은 산을 다녀보았지만 이렇게 많은 사람들로 산길이 막히는 것은 처음이라고 했다.
한 번에 천명도 넘는 사람이 동시에 건널 수 있다는데도 다리 입구에서 길게 줄을 서서 기다렸다 건너야 했다. 다리위에서는 100m 아래에서 유유히 흘러가고 있는 섬강과 절벽의 기암들을 감상할 수 있었다. 다리 이름과 같이 좌우와 위아래로 출렁거려 조금은 긴장이 되었다. 오래 머물면서 아름다운 경치와 짜릿함을 느껴보고 싶었지만 떠밀려 가야만 했다. 내려올 때는 15분밖에 걸리지 않았다. 출렁다리를 개장한 지 3개월 정도밖에 되지 않았는데도 산은 여기저기에 허연 속살을 드러내고 심한 몸살을 알고 있었다. 이대로라면 아마 1년도 못 버티고 중병에 걸리고 말 것 갔았다. 관광객 유치를 위해서라지만 무분별한 난개발은 자제해야 할 것 같았다. 오후 2시 20분경에 주차장에 도착하여 잠시 휴식을 취하고 다음 코스인 법천사지로 출발했다. 소금산 출렁다리는 관광이었다면, 이제부터는 오늘의 주목적인 문화유적답사다.
법천사지는 원주시 부론면 법천리의 도로변에 있는 절터다. 40여분을 달려 도착하니 이곳이 절터였음을 알리는 안내판 하나만이 슬슬 히 길목을 지키고 있었다. 아직 발굴이 진행되는 듯 둘레를 허술한 울타리가 출입을 막고 있었다. 300여 미터를 길 따라 돌아서 법천사 동쪽 영당(靈堂) 구역에 있는 지광국사현모탑비가 있는 곳으로 갔다. 탑비가 있는 구역은 어느 정도 정비가 되어 있었다. 출입할 수 있는 통로도 만들어져 있다.
문화재청 홈페이지에 의하면 법천사지는(사적 제466호) 신라 말에 산지 가람으로 세워져 고려시대에 이르러 대대적으로 중창된 사찰이다. 화업종과 더불어 고려시대 양대 종단이었던 법상종의 고승 정현이 주지로 있을 때 법상종 사찰로 번성하였으며, 국사(國師)였던 지광국사 해린이 법천사로 은퇴하면서 크게 융성하였다가 조선 임진왜란 때 전소되었다. 이제 겨우 발굴작업을 하여 이곳에 절이 있었다는 흔적들만 남아 있었다. 발굴터를 보니 아주 엄청난 규모의 절이 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국사가 고려 문종 24년에 이 절에서 입적하자 그 공적을 추모하기 위해 사리탑인 지광국사현모탑(국보 제101호)과 탑비(국보 제59호)를 법천사 동쪽 영당(靈堂) 구역에 세웠다. 우리나라 묘탑 가운데 최대 걸작으로 평가되는 탑은 일제에 의해 수탈되었다가 경복궁으로 옮겨져 있으며, 탑비만 남아있다.
지광국사현모탑비는 화강암석으로 만들어진 전체 높이 4.55m, 비신 높이 2.95m의 규모가 큰 탑비다. 거북받침돌 위에 비 몸돌을 세우고 왕관 모양의 머릿돌을 올려놓았다. 거북은 목을 곧게 세우고 입을 벌린 채 앞을 바라보고 있는데, 얼굴은 거북보다 용에 가깝다. 턱 밑에는 길다란 수염이 달려 있고, 등껍질은 여러 개의 사각형으로 면을 나누어 그 안에 왕자를 새겨 장식하였다. 비 몸돌의 앞면에는 국사의 행장과 공적을 추모하는 글을 새겨 놓았고, 뒷면에는 1,370명의 제자들 이름이 기록되어 있다. 앞면 우측 아래쪽에 파손되어 보수한 흔적이 보였다. 특히 뒷면의 파손이 심한 편이다. 비 몸돌의 양 옆면에는 구름과 어우러진 두 마리의 용이 정교하고 사실적으로 조각되어 있다. 머릿돌에는 바짝 들려진 네 귀에 귀꽃이 달려 있고, 그 중심에 3단으로 된 연꽃무늬 조각이 얹어져 있다. 탑비의 주인공인 탑은 아직도 객지를 떠돌고 탑의 주인을 칭송하는 탑비 만이 상처 입은 몸으로 외롭게 주인을 기다리고 있다.
지광국사현모탑은 일제강점기에 수탈되었다가 반환되어 경복궁 동문인 건춘문 근처로 옮겨졌다. 이후 동문 가까이에 조선총독부 박물관이 세워지자 박물관 경내에 있게 되었다. 한국전쟁 시 포탄의 피해로 옥개석 이상이 조각나 흩어져 있는 것을 1957년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재건 보수공사를 실시하여 현재 위치로 복원되었으며, 이때 탑신 상면에서 방형의 사리공이 발견되었다.
2005년 국립중앙박물관이 용산으로 신축 이전하면서 궁내 대부분의 석조물들도 함께 옮겨졌으나, 이 승탑은 이전 시 파손의 위험으로 인하여 그대로 남게 되었다고 한다.
탑비와 나란히 있던 탑이 있던 자리에는 ‘아름다운 절정, 영혼이 머문자리’란 안내판이 설치되어 있었다. 그 내용중 '아름다워서 슬픈 영혼을 위하여'란 가슴 징하게하는 글귀를 옮겨본다.
‘ 이 탑은 우리 민족의 수난과 아픔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일제 강점기에는 아름답다는 이유만으로 수탈되어 현해탄을 건넜고, 한국전쟁 때에는 포탄에 온 몸이 찢어지는 큰 상처를 입었다. 그 쓰라린 역사에서 스님의 영혼이 어느 한 순간인들 편한 날이 있었으랴! 제 자리를 떠난 지 100여 년, 아름다워서 슬픔 탑과 탑비, 스님의 영혼이 이제 이곳에서 다시 만나 아픔이 영원히 치유되길 빈다.’ 라고 적고 있다.
번창했던 사찰을 어떻게 복원할 것이며, 탑은 너무나도 큰 시련과 깊은 상처를 입어 집을 찾아오기도 버겁다니 한 몸인 탑과 비가 유행가 가사처럼 ‘어느 세월에 너와 내가 만나 점 하나를 찍을까.’ 안타깝기만 하다. 스님의 영혼이 이곳에서 다시 만나 영원히 함께 하는 날이 하루빨리 오기를 빌어본다. 임진왜란과 강점기 때 수난의 역사와 동족전쟁의 상처가 얼마나 깊은 것인 줄 다시 한번 느꼈다. 평화롭기만 했던 산골의 사찰까지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남겼다고 생각하니 돌아서는 발길이 무겁기만 했다.
답사를 마치고 돌아 오는 내내 마음이 착잡했다.
두 번 다시는 이런 비극이 되풀이되지 않기를 염원해 본다.
첫댓글 좋은 곳 잘 다녀오셨네요. 많이 배웠습니다. 한 번 가봐야 겠다는 기대로 가슴이 부품니다. 감사합니다.
지광국사 현모탑비의 아픈 역사에 대하여 자세히 배우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말로만 듣던 출렁다리와 법천사지를 답사하시면서 보고 느끼신 바를 너무나 상세히 알려주서셔 현장을 보는 느낌입니다. 좋은 내용 많이 배우고 도움이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가 볼만한 소금산 출렁다라와 탐방명소 법천사지 안내를 잘 해 주신 글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최상순드림
소금산이 작은 금강산이었군요.. 법천사지와 지광국사 현모탑비에 대한 글에서 문화재에 대한 선생님의 사랑이 느껴졌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저도 소금산, 소금산 하기에 암석에 염분이 섞여 있는 산인가 했었는데, 오늘에야 그 유래를 알았습니다. 지광국사 현모탑비에 얽혀 있는 슬픈 역사도 잘 배웠습니다. 감사합니다.
선생님 덕분에 법천사지에 대하여 많이 배웠습니다. 감사합니다.
법천사지의 역사와 탑의 수난사를 상세하게 설명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소금산 출렁다리에 대하여 공부 많이 하였습니다. 우리 산악회에서 5월 산행지로 되어있어 관심있게 읽었습니다. 범천사지는 복원되어야 할것 같습니다. 임란 1차 때는 피해가 적었지만 정유재란때 극심한 피해를 입었습니다. 일본의 만행이 곳곳에 남아있어 불자로 아픔을 공감하며 잘 읽었습니다.
소금강 줄다리가 유명하다하여 우리팀에서도 다음 기회에 방문키로 예정되어 있는데 미리 정보를 얻게 되어 다행입니다. 관광은 오래 머물면서 풍광을 감상해야 제 맛인데 주마간산 격으로 지나간다면 아쉬움이 크겠습니다. 법천사지 역사에 대한 자세한 설명도 잘 앍었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