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희 고향은 전라북도 면 단위에서도 10리길을
걸어서 학교에 다녔 했습니다
여름방학이 끝나고 학교에 가면 여름방학동안
서울을 다녀온 친구가 가장 부러웠고 그 친구의
사복입은 모습이 너무 부러움의 대상이였어요
교복이 좋은옷의 전부였고 교복이 외출복 이였거든요
큰오빠가 서울 신길동에 살고 계셨어요
엄마한태 졸라 오빠집에 가는것이 저의 꿈이였답니다
오빠집에 간다 하니 엄마는 참기름 갖가지 양념등을
싸주면 전주오빠네 집에서 하루밤 자고 고속버스를 타고
서울에 강남 터미널에 내리면 오빠가 대리러 왔습니다
오빠네는 언덕박이 단독주택의 한켠에 새들어 살고
있었어요(월세) 오빠는 고물상에 올케언니는 메리야스
만드는 공장에 출근을 하면 조카들(초등학생) 세명과
남산 개구멍을 뚫고 들어가 구경도 하고 버스도 타보고
신기함의 그 자체였답니다
지금 생각하면 얼마나 철없는 시절이였던지
집에 가고 싶은데 누가 대려다 줘야죠
오빠한태 졸라 터미널에 대려다 주면 고속버스타고
집에 왔답니다
개학하면 서울 다녀왔다고 자랑을 했어요
모든것이 신기한 서울 버스 공중전화박스
수돗물 매캐한 매연 저에겐 학창시절
무더운 여름되면 아련한
서울의 추억 입니다
첫댓글 그래도 서울버스 터미널에서 오빠를 만난 것 만으로도 다행입니다
통신사정도 어려울때이지요
기분이 째지시겠어요 ㅎㅎㅎ
안녕요 여산댁 님
올만에 뵙네요
저는 고향이서울은 아니지만
어린시절부터 서울서
생활해 서울이 고향이나
다름없지요
아련한 추억의 한소절
잘 보았습니다
8월 마지막 한주 월욜
즐거운 날 되시고요~^^
지금 오빠는 요양병원에
올케언니는 요양원에 계셔요
그때 생각해서 두분한태 잘하고 있어요
저는 어릴때 서울한번 못가봤어요.
그래도 여산댁님은 서울구경하셨구만요~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