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지는 보조금… ‘저가 전기차’ 가속 페달
보조금 삭감-폐지한 獨-스웨덴
전기차 판매 작년보다 크게 줄어
폭스바겐-테슬라 ‘3000만원대’ 도전
K전기차도 보급형 모델 개발 속도
독일 폭스바겐이 최근 공개한 전기차(EV) 콘셉트카 ‘ID.2all’이 업계의 관심을 끄는 이유는 가격 때문이다. 폭스바겐은 양산 시점을 2025년으로 정한 이 콘셉트카 가격이 2만5000유로(약 3300만 원) 미만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현재 유럽 등에서 3만5000유로 이상으로 판매되는 한 단계 상위 모델인 ID.3보다 1만 유로 이상 저렴하다. 토마스 셰퍼 폭스바겐 최고경영자(CEO)는 “대중에게 전기차 접근성을 제공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는 2020년 3만 달러(약 4000만 원) 미만의 ‘반값’ 전기차를 3년 내에 내놓겠다고 공언한 바 있다. 업계에서는 테슬라의 신차 공개가 임박했다고 추정한다.
2년 내 ‘착한 가격’의 전기차를 살 수 있는 시대가 도래하는 셈이다. 전기차 구매 보조금을 폐지·삭감하는 국가가 점차 늘면서 보급형(저가) 개발 경쟁에 불을 댕겼다는 분석이 나온다.
● 보조금 폐지·삭감 가속화
19일 자동차업계에 따르면 유럽 최대 자동차 시장 중 하나인 독일은 올해 전기차 보조금 상한선을 6000유로에서 4500유로로 1500유로(25%) 삭감했다. 차량가 4만 유로 미만의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차량(PHEV)에 대한 보조금(최대 6750유로)은 아예 폐지했다. 더 나아가 내년부터는 보조금 상한액을 3000유로로 더 줄인다는 계획이다.
지난해 전 세계 전기차 판매량은 802만 대로 전체 완성차의 9.9%를 차지했다. 독일의 정책 변화는 전기차 시장이 가파르게 성장하면서 보조금 정책의 명분이 약해지고 있어서다. 하지만 전기차 모델들의 가격이 대부분 비싼 편이어서 보조금이 사라지거나 줄어들 경우 소비자들은 부담이 늘어나게 된다.
유럽자동차공업협회(ACEA)에 따르면 독일의 1월 전기차 판매량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3.2% 감소한 1만8136대였다. 같은 기간 PHEV는 53.2%가 줄어든 8853대 판매에 그쳤다. 지난해 11월부터 전기차 보조금 혜택을 종료한 스웨덴도 1월 전기차 판매량(4202대)이 1년 전보다 18.5% 줄었다. ACEA는 “구매 보조금 삭감이 판매량 감소의 주된 원인이 됐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올해 보조금 지급을 중단한 중국 또한 1월 신에너지차(전기차, 하이브리드차, 수소차) 판매량은 36만 대로 전월보다 43.8% 줄어들었다. 자동차업계 관계자는 “경기 침체에 보조금 혜택까지 감소하면서 당분간 전기차 소비 환경이 악화할 수밖에 없다”며 “미국 또한 인플레이션감축법(IRA)에 의해 자국산 전기차에만 혜택을 주다 보니 사실상 보조금 혜택을 받지 못하는 수입차 업체들이 많다”라고 말했다.
● 한국 전기차도 ‘가격 경쟁’ 확산
고성능·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중심으로 개편하고 있던 현대자동차그룹도 가격 경쟁력 강화라는 과제를 안게 됐다. 현대차 ‘아이오닉5’와 기아 ‘EV6’ 등 주력 모델들은 4만 달러 안팎이어서 보조금을 받지 못하면 고객들의 구매 부담이 클 수밖에 없다.
에너지 전문 시장조사기관 SNE리서치에 따르면 1월 중국을 제외한 전 세계 80개국에 등록된 전기차(순수전기차+PHEV) 중 현대차그룹 차량은 2만4000대였다. 전년 동월 대비 17.1% 감소한 것으로, 시장 점유율도 4.3%포인트 줄었다. 유럽만 따져도 현대차의 1월 순수전기차 판매량은 작년 5708대에서 올해 4368대로 23.5% 감소했다. 이에 현대차그룹도 저가 소형 모델 개발에 속도를 내는 것으로 알려졌다. 기아가 내년에 먼저 소형 전기차를 출시할 것으로 전해진다.
김필수 대림대 미래자동차학부 교수는 “각국의 전기차 보조금 정책은 대부분 전기차 판매량이 급성장한 2025년을 기점으로 삭감하거나 철폐할 것을 예상하고 만들어졌다”면서 “지금까지는 품질 경쟁이었다면 앞으로는 전기차의 ‘가격 경쟁’ 레이스가 시작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재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