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시내간첩단,노골적으로 공격하다(1)에 이어짐-------------------------
4. 국가기관수뇌부의 남침용 땅굴 은폐 실태.
1) 묵살의 배후는 있다. --------------------------
민간탐사자들은 88년 초부터 13년 간이나 땅굴문제로 군 관계자들과 투쟁을 해왔다. 민간인들은 땅굴탐색 작업 시 발견된 결정적인 땅굴 증거를 ◇ 지하에서 녹음된 사람 목소리와 각종 작업소리 ◇ 지하 96m 암반 속에서 빼낸 시멘트 덩어리 ◇ 지하 36m 암반 공간 속에 잠수부가 들어가 촬영한 영상 ◇ 지하 37m 암반 속에서 수거한 갈대, 실, 은박지 뭉치를 군 당국에 제시했다.
그러나 군 관계자들은 민간인들이 조작한 것이거나 땅굴과 무관한 것이라며 묵살했다. 그러면서 신고한 민간인들을 오히려 사기꾼이나 정신병자로 매도하곤 했다. 이와 같이 땅굴신고를 묵살하는 배후에는 막강한 유력 인사들이 있기 때문이다.
2) 김진영 육군참모총장의 땅굴 은폐 실상. -------------------------------------------
△ 92년도 월간조선과 SBS에서 땅굴문제가 보도되자, 정보부관 박 모 대령에게 진상확인 특명을 지시했다. 박 대령은 7일간 조사 후 신고자 정지용 등을 찾아와 "땅굴민원은 사실이다 귀대 후 총장님에게 보고하겠다"고 말했다.
몇일 후 김진호 육본 정보참모부장은 기자회견을 갖고 [보도된 땅굴민원은 사실이 아니다]라고 발표했다.
박 대령은 김진영 총장에게 [땅굴민원은 신빙성이 있다]고 보고했고, 이 후 함구령이 떨어졌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당시 국방장관 과학보좌관 윤여길 박사 증언〉
△ "민원인 정지용 등과 전화 또는 접촉하지 말라 부득이 만났다면 그 내용을 나에게 즉시 보고하라"고 지시했다. 육군 참모총장이 일개 민간인을 경계할 필요가 있는가?
〈육본 축성과장 등의 증언〉
△ "민원인 정지용을 사법조치하라"는 지시로 육본 내 5부 합동 조사위원회가 설치됐으나 무산됐다. 아무런 비행을 잡지 못했기 때문에 이 같은 김진영 육군 참모총장의 특명은 무산됐다. 〈육본 탐지과장 김영대 대령의 증언〉
△ 노태우 대통령은 땅굴문제가 언론에 보도되고 국회에서 문제가 야기되자, 김성환 비서관을 통하여 그 진상을 조사케 했다. 김 총장은 신라호텔에서 김 비서관에게 "군인들이 땅굴울 찾으면 훈장을 타고 진급을 하는데 묵살할 리가 있느냐?"는 등 직접 나서서 설득함에 따라, 대통령 특명을 무산시켰다.
△ 윤여길 박사가 국방부장관 과학보좌관으로 재직 시, 민원인과 육본 탐지과 양측을 조사한 바, "군 관계자들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윤 박사는 이 문제를 제기하고 땅굴민원이 신빙성이 있음을 설명해 주려고 김진영 총장을 2번이나 만나 설득했으나 [민원인은 사기꾼]이라며 인신공격만 가했다. 윤 박사는 김진영 총장을 상대로 설득이 불가능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땅굴이 나오면 땅굴 책임자가 옷을 벗겠다고 말하니 밑에 사람들이 땅굴을 찾겠습니까?"라고 말하자 "땅굴이 나오면 내가 옷을 벗어야지 왜 그 장교가 옷을 벗어요?"라며 탐지과 요원들보다도 한 술 더 떴다.
△ 윤 박사는 행주산성 땅굴 작업장에서 땅굴징후를 감지한 후 최세창 국방장관에게 보고했다. 장관은 민원인이 제시하는 곳, 1 개소를 포크레인으로 파헤쳐 땅굴 유무를 확인하라고 지시했다. 그러니 김진영 총장은 눈가림이 가능한 시추작업만 했을 뿐 절개작업은 피했다. 그 후 윤 박사는 더 이상 땅굴문제에 관여치 못하도록 대전으로 전격, 전출됐다가 사직하고 말았다.
△ 민원인이 제기했던 연천군 구미리 관할(25사단) 사단장 출신 김무웅 소장이 민원인과 동참하여 땅굴징후를 직접 감지한 후 땅굴민원이 신빙성있다고 보고했다. 군단장 진급이 유력시되던 김무웅 소장도 역시 전격적으로 전역되었다.
△ 국방부 군비통제실 차장, 이부직 준장은 민원인을 초청하여 군 내 주요 보직자 15명을 모여놓고 땅굴 설명회를 가졌다. 김 총장은 이 사실을 보고 받고는 대노하여 이 장군을 징계위에 긴급히 회부했다. 그 후 이 장군은 결국 강제 전역 당했다.
△ 군 내에서는 윤여길 박사, 김무웅 소장, 이부직 준장과 같이 땅굴문제에 개입하면 불이익을 당하게 된다는 분위기가 조성되어 땅굴문제가 불거져도 모두들 관심을 피했다.
△ 경기도 연천군 아미리에서 민원인들이 땅굴작업 시, 지반이 침하된 현상이 발견됐다. 관할 28사단장, 한,미야전사 부사령관, 군단장이 현장에 긴급히 출동하여 검증한 결과, 땅굴징후임을 감지했다. 군단장은 즉시 군단예하 공병여단에 지시하여 절개작업이 강행 되었으나 갑자기 작업이 중단됐다. 군단장의 땅굴 발굴작업을 중단시킬 수 있는 위치는 김진영 육군 참모총장 뿐이다
△ 민원인 정지용은 김진영 육군 참모총장과 부하 4명을 상대로 땅굴징후를 묵살한 혐의가 분명하다면서 [직무유기 및 이적행위]로 검찰에 고소장을 냈다.
고소한지 3일 후 육본 탐지과장은 "고소를 취하하지 않으면 구속시키겠다"고 협박해 왔다. 3개월 후 육본 고등검찰관 강성일이 고소인 조사를 한 후 "민원인 요청대로 절개작업해서 땅굴이 발견되면 피고소인들을 어떻게 해주길 원하느냐"고 물었다. 민원인은 "고소를 하게되면 자신들의 잘못을 깨달을 것이라고 기대했기 때문에 땅굴이 발견되더라도 처벌은 원치 않는다"라고 답변했다. 검찰관은 "땅굴이 나오면 인지사건으로 처벌한다. 조서 외 이면사항을 부장님께 보고하겠다"고 말했다.
조사를 마친지 7일 후 강성일 검찰관에게 전화를 한 바, 갑자기 35사단으로 전출된 사실을 확인했다.
△ 민원인 정지용은 94년 11월 위 사항을 땅굴백서인 [서울 아르덴느의 공포]에서 자세히 제시했다. 6년이 지난 현재까지 김진영 총장 등 관련자들은 일체 대응치 않고 있다. 민원인을 무고 또는 명예훼손으로 고소를 제기하게 되면, 오히려 자신들의 죄상이 드러나기 때문에 침묵을 지키고 있다고 본다.
3) 권영해 전 안기부장의 땅굴 은폐 실상. ------------------------------------------
권영해씨는 안기부장 재직 중 김영삼 대통령의 지시로 땅굴민원을 제기한 민간인 7명과 함께 땅굴 검증작업을 실시하여 민간인들이 제시한 대로 북의 땅굴이 수도권 깊숙이 남침한 징후를 확인했음에도, 이를 은폐하고 대통령께 사실무근으로 허위보고를 한 바 있는 등 국가의 안보를 극히 위태롭게 한 중대한 범죄를 자행하였다. 그가 땅굴을 은폐했다고 입증할 수 있는 구체적 사례를 제시한다.
△ 95. 1. 10. 권영해 안기부장은 김영삼 대통령의 지시를 받고 독지가로 위장하여 민원을 제기한 민간인 7명과 함께 땅굴 검증작업을 실행했으나 작업도 하기 전에 땅굴이 없는 것으로 모의한 사실이 판명되었다.
작업을 시작하기 전, 안기부 간부 이남구 외 3명은 땅굴징후가 발견된 의정부식당에 모여 "이번 작업에서 정지용이를 매장시킨다. 여관, 식당 종업원과 작업인부까지 우리 사람으로 포섭하라"는 등, 모의하는 말을 우연히 듣게 된 식당 주인 이국진씨가 알려줌으로써 밝혀졌다. 그 후 안기부 이남구씨는 정지용에게 "앞으로 작업 시 여관과 식당을 고정해 놓아라"고 주문했던 것이 이를 뒷받침해 주었다.
△ 95. 2. 14. 의정부와 동두천의 미군기지 주변에서 땅굴작업을 한 결과, 민원인이 제기했던 대로 땅굴징후가 확인되자, 안기부는 정지용을 강제로 연행하여 엠버서더 호텔에서 2박3일간 불법으로 구금 조사했다.
당시 안기부 조사관은 구속 운운하며 [앞으로는 절대로 ◇ 땅굴작업을 하지 않는다 ◇ 땅굴에 관한 책을 쓰지 않는다 ◇ 대통령께 진정서를 내지 않는다]는 각서를 요구하여 써준 후 "그렇다면 현재 진행 중인 작업을 어떻게 하느냐?"고 묻자 수사 책임자는 "대충하고 끝내라"고 답변했다.
대공 수사관 출신인 정지용은 이러한 조사 행태로 볼 때, 안기부가 아니라 북의 공안기관에서 조사하는게 아닌가? 하는 의혹이 갈 정도로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 훈방된 후 동두천 작업장에 돌아오니, 동참했던 정명환 예비역소장을 비롯하여 작업했던 민간인들 공히 "앞으로의 작업은 기관에 절대 알려선 안된다"고 말 할 정도로 극도의 불안을 감추지 못한 상태였음에도 "이번 작업은 대통령의 특명으로 하는 것이니 계속 강행하자"며 작업을 추진하자, 안기부 이남구씨는 협박조로 "정지용씨는 서울에서 조사 받을 때 지시를 못 받았느냐, 앞으로 현장에 나오지 말고 여관에서 대기하라"며 작업 진행을 제지하였다.
△ 동두천 절개작업 시, 안기부 이남구씨는 절개작업 라인을 멀리서도 확인할 수 있도록 홈을 파고 하얀 횟가루를 뿌려 표시한데 이어, 정체불명 자들을 데리고 와 video와 사진 촬영을 해 간 후 1주일간 이유 없이 지체타가 작업을 시작하였으며, 이남구씨는 "절개 작업은 표시한 라인을 벗어나서는 안된다"라고 강조하기도 하고, 포크레인 업자인 이만덕씨를 은밀히 불러 "절개작업 시, 정지용의 말을 들어서는 안된다. 우리 지시대로 하라"고 말했다고 한다.
또한 절개작업 중 민간업자들이 안기부감독관들의 현장 부재 중 임을 틈타 표시된 라인을 벗어나 땅굴징후가 발견된 곳으로 파내려 가자, 이 사실을 어떻게 알았는지 작업 중인 업자를 핸드폰과 호출기로 급히 다른 곳으로 불러내어 "지금 당장 작업을 중지하고 장비를 현장 밖으로 빼내라"며 큰 소리치는 바람에 모든 작업이 중단되었다.
위 행위로 비추어 볼 때, 안기부는 대통령의 지시대로 땅굴민원의 사실여부를 규명하려고 했던 것이 아니라 애초부터 [땅굴이 발견되어서는 안된다]라는 각본을 설정하고 땅굴을 은폐시키기 위한 방향으로 추진되었음이 확실히 입증되는 것이다.
△ 95. 3. 15. 위와 같은 대통령의 지시가 무산된 후 95. 3. 23. 안기부 모 국장은 민간탐사자 7명을 장충동 산유화 한정식집으로 초대하고 향응과 함께 1,400만원을 제공하였다. 또한 정지용은 별도로 불러서 "땅굴작업으로 가산까지 모두 투입한 애국자임을 알고 있다. 앞으로 사업을 하라 우리가 도와 주겠다. 이는 내 말이 아니라 위의 방침이다. 이 사실을 외부에 발설치 말라 만약 누설되면 정 선생도 기관에 근무했으니 어떻게 되는지 잘 알 것이다"라고 회유성 협박을 하였다.
△ 95. 9. 4. 정지용은 5개월 동안이나 아무런 소식이 없어 권영해 부장 앞으로 내용증명을 보냈다. [안기부에서 땅굴징후를 확인하고도 대통령께 허위 보고하고, 앞으로 민간인들에게는 땅굴작업을 하지 못하도록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정당한 사유가 있다면 순응할테니 해명해 달라]고 요구했으나 응답이 없었다.
△ 95. 9. 21. 안기부 모 간부가 당시 창간된 자유일보 천금성 주필에게 정지용의 연락처와 함께 "그를 만나면 좋은 취재자료가 있다"고 알려줌으로써 천 주필은 안기부의 갖은 회유와 협박을 감내하면서 안기부의 땅굴 은폐실태를 3회에 걸쳐 상세히 보도했다.
위 보도는 현장에서 땅굴을 은폐한 안기부 직원의 성명을 게재하고 "땅굴을 은폐한 안기부"라는 제목으로 대서특필했음에도, 안기부의 아무런 항의나 조치도 없었다.
△ 96. 2. 2. 정지용은 [안기부에서 땅굴을 은폐한 의정부 및 동두천에서 민원인의 의도대로 재 작업을 하여 땅굴이 발견되지 않으면 어떠한 엄벌도 감수하겠다]라는 내용과 함께 405쪽의 땅굴 은폐증거 자료를 첨부하여 권영해 안기부장 등 11명을 이적행위로 고소하였다.
96. 3월 초, 서울지검 공안부 강익중 검사가 고소인을 조사한 후 "이런 엄청난 문제를 거짓 고소하겠는가? 등골이 오싹해진다"고 피력했다. 조사를 받은 후 고소 사실과 안기부의 땅굴 은폐문제에 대하여 청와대와 각 기관에 탄원서를 제출했으나 각 기관 공히 묵묵부답이었고, 위 문제를 제기하는 유력 인사들에겐 피고소된 안기부 이남구 과장이 찾아가 허위 해명으로 일관했다
또한 대검에 고소한지 1년 10개월이 지난 후 갑자기 육본 탐지과장이 "고소를 취하하지 않으면 안기부장께서 구속시키겠다고 한다"는 등 협박하여 97. 11. 14. 서울지검에 공갈 협박 및 직권남용 혐의로 추가 고소했다.
△ 97. 3. [월간 Advice]를 창간한 후 안기부의 땅굴 은폐문제를 취재하는 천금성 편집인을 상대로 안기부 언론반 직원들이 취재 중단을 요구했으나 관철되지 않자, 권영해 부장은 남정판 언론특보를 직접 보내 보도관제를 했다. 천금성씨를 찾아 온 남 특보는 "부장님께서 직접 보내셨다. 나도 곧 이 곳을 떠난다. 내가 떠난 후 보도하던지 하라"고 말했다. 얼마 후 남 특보는 공보처차관으로 전보되었다.
△ 97. 7. 24. 예비역장군 등 유력 인사들과 함께 [남침저지비상대책위원회]를 발족시키고 97. 8. 30.자 중앙일보 2면에 [수도권 땅굴 발굴작업에 전 국민이 동참, 남침을 막읍시다]라는 제목의 5단 광고를 게재하고 초판이 배포되자, 안기부는 가판에 배포된 신문을 회수하고 2판부터는 다른 광고로 대체토록 불법 조치하는 등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언론에 땅굴문제가 보도되지 않도록 차단시켰다.
△ 이러한 사실로 미루어 보아 앞으로는 언론보도가 불가능하다고 판단하여 9년간의 일기 450쪽의 땅굴백서를 완료해 놓고 권 부장의 땅굴 은폐진상을 폭로하려다가 동 책자를 안기부 비서실장에게 전달하였다.
그 후 신임 언론특보 김시복씨가 천금성씨를 찾아와 [땅굴백서문제]와 정지용의 동정을 파악해 갔다.
△ 마지막으로 권영해 부장이 직접 나서서 땅굴문제가 확산되는 것을 차단시킨 사례를 제시한다.
국방부장관 과학보좌관으로 재직하면서 민간인들의 땅굴문제를 직접 조사한 후 최세창 국방부장관에게 "민간인들의 땅굴민원은 신빙성이 있다. 사실은 육본이 거짓말하고 있다"고 보고한바 있는 윤여길 박사가 정지용 등 민간탐사자들을 적극적으로 후원하다가 강제 사직 당한 후 대우중공업 부사장으로 재직 중이었다.
윤 박사는 대통령이 지시로 검증작업 중이던 의정부와 동두천 현장을 은밀히 방문함으로써 안기부의 땅굴 은폐진상을 알게되었으며, 권 부장의 측근으로부터 "권 부장께서는 땅굴징후가 발견되었다는 보고를 받은 바 있다"는 사실을 듣게 되었다.
이 사실을 전해들은 후 주위에 이 사실을 발설한 바 있는데, 얼마 후 윤 박사는 업무와 무관한 러시아로 갑자기 발령이 나서 회사 안에서도 의아해 했다 한다.
그런데 6개월이 지난 후 비로소 인사권자인 김우중 회장으로부터 직접 인사의 배경을 들음으로 밝혀지게 되었는데, 당시 권 부장이 김우중 회장을 찾아와 "윤 박사를 해외에 내보내라 그 대신 이권을 주겠다"고 제의하여 윤 박사를 인사 조치하였다는 것이다.
이렇게 권 부장이 윤 박사를 해외로 보내도록 한 행위는, 자신의 땅굴 은폐문제가 더 이상 확산되는 것을 차단시키기 위한 긴급 처방이었음이 여실히 드러난다.
그렇다면 권 부장은 무슨 이유로 4,500만 국민의 생명과 국가안보에 치명타를 줄 수 있는 수도권에 깊숙이 침투한 땅굴 상황을 아무런 대책 없이 은폐했을까?
△ 프랑스 미테랑 대통령의 친구인 국방장관이 독일의 간첩이었고 황장엽씨가 밝힌 대로 "남쪽의 권력 깊숙한 곳에 북쪽 사람이 있다"고 지목한 장본인이든가
△ 그렇지 않다면 민간인들의 공로를 가로채기 위한 공작으로 추진했다가 미수에 그친 것으로 판단된다. 그 이유는 땅굴작업 종료 후 안기부는 육본과는 별도로 수 십억 원의 거액을 들여 수도권지역에서 땅굴 탐색작업을 벌렸다고 한다.
5. 결론. ---------- △ 북한은 1개 축선을 완료하는데 수 억 불씩 투자되고 장기간 소요될 뿐 아니라 한번 발견되면 국제적으로 비난받고 무능화된다. 이를 보호하기 위해서는 그 동안 부식해 놓은 세력들을 총동원하여 저지할 것이다.
△ 과거 냉전시대에 소련과 민족이 다름에도 불구하고 영국, 독일 등에서 장관급 이상의 거물급 간첩들이 체포되었고 미국도 CIA 방첩책임자가 소련의 간첩이었다. 우리는 남,북이 같은 민족이어서 간첩 부식이 쉬웠을 것임에도 불구하고 남한에서는 장관 등 거물급이나 정보수사기관의 간첩은 단 한 명도 검거된 적이 없다. 이는 북한의 대남 공작이 치밀한데 반해, 우리는 너무 허술하기 때문이다.
△ 적성세력은 공격적이며 의지가 강한 반면, 우익세력은 보신주의로 연약하고 피동적이다. 그러나 적성세력에게 지면 모든 것을 잃게 된다. 온 국민이 각성하여 적성세력이 활동하지 못하도록 분위기를 쇄신시켜야 한다. 끝 **기업인과 사업자들은 애국심을 발휘하여 MBC에 광고를 내지 않아야 한다. 국민의 힘으로 MBC를 OUT 시켜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