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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강희 이야기
"강희야, 이거 어떤 언니가 전해주래."
소연이가 나에게 쪽지를 내밀었다. 나는 그것을 펼쳐 보았다.
옥상으로.
"누구야?"
"누가 불렀는지 알아?"
옆에서 희진이와 슬아가 쫑알거렸다. 이 쪽지를 준 사람이 누군지 내가 어떻게 알까. 쪽지를 건네 받은 소연이도 모르는 언니라고 했다.
"가지마, 괜히 일진 언니들이면 어떻게 해."
둘이서 나를 붙잡았다. 찜찜하기는 했다. 신원도 알 수 없는 언니가 옥상으로 올라오라니. 애들 말대로 일진 언니들이 불렀으면 어쩌지? 내가 일진 언니들을 무서워하는 건 아니지만 부른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싫다. 기왕이면 안 마주치는 게 나을 언니들이 아닌가. 내가 성깔이 좀 더러워도 일진에서 소문이 날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일진에서 너 영입하려고 그러나?"
내가 성깔이 있다고 한들 그 정도는 아닌데.
"갔다 올게."
"강희야!"
"안 돼에...!!! 흑흑."
어디에 끌려가는 건 아니란다. 하여튼 구슬아, 오버하기는. 오버가 취미인 인생이라고. 돌아보니 희진이도 나를 안타까운 눈으로 보고있었다. 뭔진 잘 모르겠으나 찝찝하다. 그냥 돌아설까? 허나 이미 늦었다. 나는 옥상문을 열었다. 그 곳에서는 일진 언니들이 담배를 피우며 나를 흘겨보고 있었다. 대여섯 되는 언니들인데 한 언니를 제외한 나머지 언니들 교복 길이가 짧고 타이트했다. 그 중 어떤 언니는 교복이 살에 파묻혀 곧 터지기 일보 직전이기까지 하다.
"왔다, 차강희."
한 언니의 말에 다른 언니들도 나를 보며 담배를 껐다. 그들의 명찰이 모두 노란색인 것으로 보아 3학년이 틀림없었다. 일진애들이 말하던 잘나가는 언니들인가보다. 다들 포스가 있어보이는 게 가히 위협적이었다.
"차강희?"
그들 사이에서 여전히 담배를 피우며 나를 보고 있는 한 언니가 보였다. 분위기와 카리스마로 보아 저 언니가 저들 중 짱인 것 같다. 역시 일진짱은 다르군. 아무래도 저 언니가 불렀나보다. 교복만은 다른 언니들과 다르게 단정했다.
짱 언니가 담배 연기를 뿜으며 나에게 다가왔다. 그 덕에(?) 그 언니의 이름을 알았다. 신정원. 짱언니의 이름이었다. 조금은 들어본 것도 같다. 난 이 언니를 잘 알지 못하니 설마 때릴려고 부른 건 아니겠고, 애들말대로 일진 스카웃인가? 곤란한데.
"야, 저년 저번에 세치기 한다고 갲랄한 년이잖아!"
빨간색으로 염색한 머리를 분수 높이만큼 묶은 일진언니였다. 저 언니... 기억난다. 매점에서 세치기해서 뒤로 가라고 했더니 지랄한 언니였다. 역시 일진이었구나.
"정원아, 내가 저년 아는데 저년은 안돼."
빨간 언니가 나를 흘기며 뭔지 모르는 것에 반대를 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일진 스카웃인 것 같다. 그런 거라면 나도 그다지 관심은 없다. 나도 안돼. 누가 허락할 줄 알아?
"왜, 괜찮은데. 쟤라면.... 훗."
묘하게 웃는 짱 언니. 아무래도 맞는 것 같다. 내 예감... 짱 언니가 담배 연기를 마지막으로 내뿜고 담배를 꺼버린 뒤 나에게 말했다.
"언니가 부탁 하나만 해도 될까?"
부탁? 일진에 가입하라는 거?
"예원이 알아?"
예원이? 걔가 누군데?
"모르나 보네. 예원인 내 동생이고 1학년 7반이야. 남자한테 꼬리치고 다닌다고 여자애들이 싫어해서 현재는 친한 친구하나 없는 왕따이고."
그래서 그게 나랑 무슨 상관인데?
"그래서요?"
"예원이랑 친하게 좀 지내줄래?"
"예?"
***
1학년 7반으로 갔다. 7반 복도에서 서성거리며 신예원을 찾았다. 많은 아이들 가운데 혼자 자리를 지키고 앉아 음악을 듣고 있는, 딱 봐도 외로워 보이는 여자애가 보였다. 신예원, 그 아이였다. 예쁘게는 생겼다. 남자애들이 한번쯤은 좋아할만도 하겠다. 내가 남자라도 눈은 돌아갈 것이다.
7반으로 다시 찾아간 것은 3교시 쉬는 시간, 희진이와 슬아를 데리고였다. 이번에는 신예원을 불렀고, 의아한 얼굴로 나와서는 나를 보았다. 눈도 크고, 예쁘고 갸름하며 말랐다. 가까이서 ㅂ니 여신이 강림한 듯했다. 여자애들이 질투할만도 했다. 남자애들이 좋아하긴 하겠다.
"단도직입적으로 얘기해도 되지?"
내가 빙빙돌려서 말하는 걸 싫어한다.
"니네 언니가 너랑 친하게 지내라던데?"
"에?"
"그래서 너 어떤 앤가 보러 왔어. 얘네랑 같이."
예원이가 우리를 보았다. 이 아이도 좀 황당했을 것이다. 잠시 당황하던 그 아이, 이내 활짝 웃는다. 웃는 것도 예쁘다.
"나랑 친하게 지내고 싶다고 했다며?"
그 아이, 미소를 짓는다.
"난 차강희고, 얜 장희진, 얜 구슬아. 반갑다."
"응."
"잘 부탁해. 장희진이야."
"너 진짜 이뿌다. 구슬아야~ 히히. 너 근데 진짜 이뿌당~ 히히."
슬아는 예원이가 마음에 들었나보다.
"신예원이라고 해."
이 아이 아무리 봐도 말투나 행동이 남자를 꼬실 것 같아보이진 않는다. 내숭? 내숭이라도 남자를 꼬실 것 같아보이진 않는다. 그러기엔 이 아이가 대범하거나 여우가 아니니까. 이렇게 착하고 숫기가 없는 애가 남자를 꼬신다고? 그러기엔 이 아이는 수줍음이 많고 소심하고 내성적인데?
3교시 쉬는 시간 첫만남을 갖고 점심 시간에는 함께 밥을 먹으로 갔다. 예원이와 내가 같이 앉고 슬아와 희진이가 같이 앉았다. 예원이는 많이 어색해했다. 그것은 우리도 마찬가지이긴 했지만 어색하지 않으려고 애썼다.
"너 남자 많다며? 사귀는 애 있어?"
예원이가 고개를 저었다.
"임자 있는 애 꼬시는 게 특기라는데 정말이야?"
예원이가 난감해했다. 역시 이 아이 순진했다. 꾸밈없고 순수한 아이였다.
"하하하."
수줍어하고 난감해하는 예원이가 웃겼다. 귀엽기까지했다. 이 아이 정말 순수한 애였잖아?
"내가 보기에 넌 임자있는 애 꼬실 애 같아보이진 않는다. 내가 남자라도 너한테 한번쯤은 눈돌아갈 것 같기는 한데, 글쎄.... 누굴 꼬시기엔 넌 너무 소심해. 그런 건 여우 같은 애들이 하는 건데 넌 여우과는 아니고 곰인데? 큭큭."
예원이가 빙긋 웃었다.
"여자애들의 질투란 하여간 알아줘야 한다니까? 남자애들도 짝사랑이나 했겠지. 당연히 남친있을 거라 생각하지 않겠어? 대시도 못하고. 그 중에 마음에 드는 애 있었어?"
예원이가 고개를 저었다.
"아직까지는."
"것봐. 어디서 쭈구미 가자마들이 고백이나 했겠지. 예원이가 아무나 사귀겠어? 한번쯤은 혹할만 하나 감히 건드리지는 못하는 거라니까. 여자애들의 질투란. 쯧쯧."
예원이가 피식 웃었다.
"앞으로 수업 시간을 제외하고 뭐 중석식이나 쉬는 시간, 등하교 때는 같이 다니면 되는 거지? 수업 시간이야 어쩔 수 없지만. 그리고, 누가 너 괴롭히면 얘기해. 죽여버릴 테니까."
"강희 이래뵈도 중학교 때 좀 놀았어~ 일진은 아닌데 좀 놀았어~ 킥킥."
"강희도 무서운 아이야."
예원이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며 키득거렸다.
<작가의 말>
진짜 오랜만에 연재하네요ㅎㅎㅎ 옛날 사람이라 공감대가 많이 형성될 수 없을 거 같다는 생각도 들지만 그래도 모처림 새로 시작하는 것이니만큼 한번 해보려고 합니다. 누군가는 그래도 꾸준히 읽어주지 않을까 하는 마음을 담아서요^^
첫댓글 꾸준히 올려주시면~ 꾸준히 완결까지 따라갑니다. 파이팅!
즐감해요
강희의 대범함이 일진애들이 알아서 자기 동생좀 지켜달라고 할정도로 인정받는가봅니다
잘보고 갑니다~
풋풋해지는 느낌ㅋㅋ
기대되요!
재밌어요~ 끝까지 잘 보겠습니다!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