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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다 보면 한 계절 다 가는 두꺼운 책과 주머니에 들어가는 작은 책
- 두꺼운 책
읽다 보면 짧은 봄이 다 지날 것처럼 두꺼운 책들.
대통령이 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의 책이 서점에 깔려 있다. 펴보면 다급하게 만든 티가 난다. 지루한 말과 지켜지지 않을 약속이 쓰여 있다. 대통령을 하고 싶다면 책이라도 진작 써두는 건 어떨까. 버락 오바마처럼. <내 아버지로부터의 꿈>은 버락 오바마가 30대인 1995년에 쓴 책이다. 인도네시아와 하와이에서 유소년기를 보낸 흑인과 백인의 혼혈아 버락 오바마가 로스쿨을 거쳐 사회운동가가 되기까지의 과정이 실려 있다. 미국에서 정체성을 찾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사려 깊은 기록이며, <가디언> 선정 베스트 논픽션 100에 뽑힐 정도로 훌륭한 책이다. 그나저나 오바마는 대선도 두 번이나 이기고 농구도 잘하고 글도 잘 쓰고 못하는 게 없다.
두께와 페이지 수 41mm, 713페이지
다 읽으려면 <대통령의 시간>이나 <안철수의 생각>을 읽는 시간보다는 조금 걸린다. 훨씬 덜 지루하기 때문이다.
한 구절 “아득한 목소리들이 나타났다가 사라지고 다시 나타났다. 어머니와 외조부모님이 어릴 적 내게 들려준 이야기들이 떠올랐다. 한 가족이 자기 존재를 설명하려고 애를 쓰는 그런 이야기들이었다.”
야구 선수는 영화배우나 정치인처럼 미디어가 만들어낸 스크린 속의 영웅이다. <볼 포>는 그 영웅 중 한 사람이 스크린을 찢고 나와 들려주는 자신과 업계의 뒷얘기다. 선수들은 얼마를 받는지, 진짜 훈련장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야구계에 얼마나 바보 같은 사람이 많은지, 하지만 그럼에도 야구가 얼마나 큰 기쁨을 주는지. 이 책은 야구계의 치부를 냉소적인 필치로 솔직하게 드러낸 걸로 유명하다. 그런데 읽다 보면 그 이상의 뭔가가 있음을 알게 된다. <볼 포>는 사람이 그의 인생을 걸고 뭔가를 해낼 때의 짜릿함에 대한 책이다. 야구팬이 아니어도 이 책을 즐겁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두께와 페이지 수 37mm, 711페이지 다 읽으려면 금요일 밤부터 일요일 밤. 야구 다 챙겨 보는 시간을 빼더라도.
한 구절 “그렇다. 나는 계속 던질 것이다. 선수는 야구에 인생을 쏟지만, 사실은 야구가 그 선수의 인생을 만들어주고 있었음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딱딱한 책이다. ‘현대 건축: 비판적 역사’라니, 제목부터 고자세다. 내지에 두꺼운 종이를 써서 책을 들었을 때의 느낌도 딱딱하다. 내용 역시 부드럽지 않다. 현대 건축이 어떤 개념과 배경에서 만들어졌는지에 대한 이야기다. 읽기 쉽다고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건축은 기술과 공학과 예술과 환경과 규제와 역사와 사상의 산물이다. 원체 쉽게 말하기가 쉽지 않다. 그걸 감안하면 어려운 책치고는 괜찮게 쓴 편이다. 도면과 사진이 많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두꺼운 내지에도 이유가 있었던 셈이다. 모든 건축적 디테일에 나름의 이유가 있듯. 뭔가를 깊이 좋아하려면 한 번쯤은 이런 텍스트를 들여다봐야 할 때가 온다.
두께와 페이지 수 43mm, 838페이지 다 읽으려면 당신의 의지가 얼마나 딱딱하냐에 달렸다.
한 구절 “오늘날의 건축 사업은 자본 투자의 흐름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또한 전 세계를 무대로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유명 건축가들이 몸소 보여주는 것처럼 건축은 지역적인 동시에 세계적인 작업이 되었다.”
여러모로 월터 아이작슨의 <스티브 잡스>와 반대다. 작가는 지금까지 그 평전을 비롯해 여러 책에서 나온 잡스의 이미지는 진짜 잡스와 다르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하다못해 색깔도 흰색 대신 검은색, 표지의 잡스 얼굴까지 늙은 잡스 대신 젊은 잡스다. 잡스가 어떻게 스스로의 모순을 극복하고 자신을 쫓아낸 조직으로 돌아가 다시 성공했는지가 이야기의 뼈대다. 월터 아이작슨의 책과 비교했을 때 이 책의 에피소드가 훨씬 자세하고 이 책의 작가들이 잡스에게 훨씬 더 관대하다. <비커밍 스티브 잡스>는 확실히 흥미롭고 자세한 논픽션이다. 하지만 이 책이 잡스의 공식 전기였다면 아이작슨의 <스티브 잡스>처럼 많이 팔리지는 않았을 것 같다.
두께와 페이지 수 38mm, 670페이지 다 읽으려면 잡스 팬이라면 하룻밤, 관심이 없다면 이틀 밤. <스티브 잡스>와 함께 읽을 거라면 일주일 밤(둘 다 읽는 것도 나쁘지 않은 생각이다).
한 구절 “그에게는 현실에 없는 것, 현실에 있을 수 있는 것, 현실에 있어야 할 것을 명확히 간파하는 능력이 있었습니다.”
<이비쿠스>는 1926년 러시아 소설가 알렉세이 톨스토이가 썼다. 주인공 시메온 네프조로프는 “세상이 엉망이 될 때 너는 부자가 될 것이다”라는 집시의 말에 기대어 산다. 러시아 혁명이 일어난 1917년 네프조로프는 얼떨결에 더러운 방법으로 부자가 되고 신분을 바꾼다. 혁명이라는 이름의 폭력은 계속 사람들의 목숨을 앗아간다. 운명과 계급이 손바닥 뒤집듯 바뀐다. 네프조로프는 섹스와 마약에 취한 채 죽음과 배신이 가득한 러시아에서 온갖 일을 겪는다. 1998년 프랑스의 파스칼 라바테가 이 소설을 그래픽 노블로 만들었다. 얼핏 보면 얼마나 잔혹한지 못 알아볼 만큼 아름답게 그렸다. 2017년 한국어판이 나왔다. 지금 보시는 책이다.
두께와 페이지 수 47mm, 533페이지 다 읽으려면 몇 시간이면 충분하다. 하지만 다 보고 나면 또보고 싶어질 것이다.
한 구절 “피와 불 속에서 세상이 무너질 때, 전쟁이 집 안으로 들어올 때, 형제가 형제를 죽일 때, 당신은 부자가 될 거야! 놀라운 일들을 겪겠지만, 그래도 당신은 부자가 될 거야!”
스마트맨을 위한 라이프스타일 매거진
- 작은 책
읽겠다고 결심하면서도 잘 안 읽는 이유는 책이 너무 크고 두껍기 때문이다. 봄 코트 주머니에 들어갈 크기로 추려낸 이달의 책.
사치오는 성공한 미남 소설가다. 겉보기에만. 10년 동안 아내 나쓰코에게 기대어 글을 쓰면서 마음이 쪼그라들었다. 사치오가 성숙 없는 성공을 즐기던 차에 나쓰코가 사고로 죽는다. 사치오는 눈물 한 방울도 흘리지 않는다. 마음의 어딘가가 잘못 맞물려 있는 것이다.〈아주 긴 변명〉은 여기서 시작해 사치오의 마음이 어디가 잘못 맞물려서 어떻게 되는지를 보여준다. 작가가 묘사하는 남자의 본성을 읽다 보면 역시 여자들은 모르는 게 없구나 싶어서 오금이 저리는 기분이다. 사치오는 뒤틀린 마음을 고칠 수 있을까. 아주 긴 변명의 끝엔 뭐가 있을까.
크기 130×190×23(mm)
휴대성 후드 티셔츠 앞주머니에 넣으면 처지는 정도.
한 구절 “그 사람이 있으니 포기하면 안 된다고 생각할 수 있는 ‘그 사람’이 누구에게든 필요해.”
책을 좋아하는 사람에게 봄은 야외에서 책을 읽어도 손등이 시리지 않은 계절이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기엔, 종일 읽기엔 스릴러물이 최고다.〈로재나〉는 스웨덴의 추리물 마르틴 베크 시리즈의 첫 소설이다. 구미권의 20세기 추리물이 아름다운 이유는 그냥 사람이 죽어나가는 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로스 맥도날드의 캘리포니아가 그랬고 존 르 카레의 정보국 공무원이 그랬듯 마이 셰발과 페르 알뢰는 마르틴 베크 주변의 범죄를 통해 20세기의 스웨덴을 바라본다. 물론 이런 요소를 빼도 그냥 재미있고 훌륭한 소설이다. 햇살이 나는 동안 계속 밖에서 읽고 싶은.
크기 128×188×22(mm)
휴대성 400페이지가 넘어 생각보다 묵직하다. 하지만 휴대하고 싶을 정도로 표지가 예쁘다.
한 구절 “역겹다, 끔찍하다, 야만적이다, 이런 단어들은 신문 기사에나 쓰일 뿐 내 머릿속에는 없다. 살인범도 인간이다. 남들보다 좀 더 불운하고 좀 더 부적응적인 인간일 뿐이다.”
작가 츠즈키 쿄이치는 소속된 적 없이 일본 잡지〈브루터스〉나〈뽀빠이〉에서 재미있는 기획을 했다.〈권외편집자〉는 소속된 적 없는 사람만이 내뿜는 날카로운 에너지로 가득하다. 그 에너지는 방금 깨진 유리 조각처럼 날카롭고 투명하다. 츠즈키 쿄이치는 내내 시스템 속에서 풀어지는 사람을 비웃고 불확실한 상황일수록 즐겁게 달려간다. 그걸 무모하다고 하든 철없다고 하든 그 일을 즐거워하는 기운이 글자 바깥으로까지 퍼져 나온다. 할아버지에 가까운 1956년생 프리랜서가 ‘돈보다 두근거림이 좋다’고 말한다면, 게다가 아주 냉정하기까지 하다면 귀 기울일 만하다.
크기 30×190×20(mm)
휴대성〈아주 긴 변명〉과 비교했을 때 크기가 거의 비슷하고 조금 더 가볍다.
한 구절 “알지도 못하는 누군가를 고려하지 말고 자신이 생각하는 ‘진짜’를 추구하라는 가르침을 통해 나는 진정한 편집자로서 첫발을 내딛을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작가는 ‘랩은 새로운 세대의 음악이지만 고전적인 시’라고 했다. 책은 거기서 출발해 리듬, 라임, 언어유희, 스타일, 스토리텔링, 설전이라는 요소로 랩을 분석한다. 요즘 힙합과 랩은 완전히 주류 대중음악이 되었으니 이런 책이 나오는 건 자연스럽다. 거리에서 태어난 문화가 영문과 교수의 연구 대상이 될 정도라면 힙합이라는 문화 자체가 나이를 먹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즐겁게 읽는 한편 궁금해진다. 힙합도 재즈처럼 어려운 엘리트 음악이 될까?
크기 124×185×18(mm)
휴대성 아이패드 미니보다 작고 가볍다.
한 구절 “래퍼들은 미로처럼 복잡한 플로우와 리듬을 벗어나는 기술을 이용해 자신의 가사와 복잡한 언어유희를 엮어냈다. 비밥 선구자들이 스윙 선조들의 리프, 솔로, 코드 변경을 발전시켰던 방식처럼.”
〈코스모스〉는 과학 저술 중에서도 훌륭하기로 손꼽히는 책이고 홍승수는 평생 성실하고 엄격하게 연구한 천문학자다. 그는 스스로의 인품처럼 엄정하고 친절하게〈코스모스〉의 아름다움을 설명한다. 이 책이 왜 위대한지, 자신이 번역하며 무엇을 느꼈는지, 상상하고 탐구하는 게 얼마나 훌륭하면서도 즐거운 일인지.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은 읽기 쉽다는 점이다. 어려운 걸 이해하는 사람보다 더 똑똑한 사람은 자기가 이해한 걸 쉽게 말하는 사람이다. 이 간명한 사실이 얇은 책에 담겨 있다.
크기 127×188×12(mm)
휴대성 손바닥만 하다.
한 구절 똑같은 ‘사실’을 던져주더라도 아무나 그렇게 놀라운 ‘진실’을 찾아낼 수는 없습니다.”
스마트맨을 위한 라이프스타일 매거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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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한 번쯤 읽어봐야겠네요.
감사합니다.
좋은아침 입니다.
요즘 책들은 많이도 나오는데
읽는사람은 줄었지요.
감사 합니다
책을 읽지않는 사람은
갈지않은 칼과 같다는걸
누구든 본인만 모르기 때문에
그런가 봅니다.
안드는 칼을 써보신 분들이라면
아실겁니다.
많이 불편 하거든요.~ㅎ
이도령님 여기서 뵙습니다^^
저도 언제부터인가? 책보다는 컴을 더 가까이 하고 있음에
되돌리려해도. 컴 앞에서 일을 하다보니.
쉽지가 않아요
마음을 다 잡아 봐야 겠습니다^^
나를 다시금 돌아보게 하는 댓글을 주셨음에
감사를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