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이완
리 스트라스버그의 이완 훈련은 기존에 접한 경험이 있고 이론적으로도 충분히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번 수업을 통해 놓치고 있던 중요한 점을 깨달았다. 내가 했던 훈련 방식은 몸의 구석구석 부위를 움직이며 '아~' 소리와 함께 긴장을 풀어내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번에 접한 이완 훈련은 온 몸의 부위 하나하나에 온전히 주의를 집중하며 호흡과 함께 '괜찮아, 늘어져도 돼.' 하고 암시하며 긴장을 풀어내는 방식이다. 전자의 방식으로는 부위별로 주의를 집중할 때 발생하는 충동을 움직임과 소리로 풀어낸다는 점에서 후련하고 자유로운 느낌이 있었다면, 후자의 방식으로는 아직 훈련이 덜 된 탓에 중간에 졸음이 오기도 하고 집중이 깨지기도 해서 충분한 이완의 효과를 보지는 못했지만 더욱 중요한 이완의 핵심을 발견했다. 바로 의식의 확장.
몸을 움직이며 소리를 내는 방식은 그 부위에 온전히 집중하기보다는 에너지를 순환시켜 그 부위에 뭉친 긴장을 풀어내는 느낌이었다. 그러므로 그 부위를 시간을 들여 충분히 느끼고 인지하기 보다는 무언가 외적으로 행위하기에 바빴던 것 같다. 그런데 이번 훈련으로는 머리카락과 두개골, 뇌, 심장, 폐, 등 평소 인식의 범위에서 벗어나 있던 온 몸의 부위에 시간을 들여 말을 걸고 손을 내밂으로써 그 부위들이 내 의식의 범위 내로 들어온다. 훈련이 끝나면서 과연 이완이 된 것일까 하는 의구심이 문득 들었지만, 눈을 뜨고 현실의 나로 돌아온 후에도 - 무대 공간과 조명, 사람들이 보이고 말소리가 들리고 몸을 들썩이는 가운데에도 - 내가 말을 걸고 손을 내밀었던 온 몸의 부위들이 여전히 '괜찮고 늘어진 상태' 그대로 있음을 나에게 알려주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의식이 현실과 신체 전체로 확장된 느낌. 이런 상태라면 무대 위에서 연기 중이라도 충분히 내 몸을 들여다보며 긴장을 감지하고 해소할 수 있을 것 같다.
이완을 통해 의식을 확장하여 내 몸을 지속적으로 인지하며 어떤 상황에서도 온 몸의 부위들에 연결된 의식의 끈을 놓지 않는 것이다. 그래야만 떠오르는 긴장을 인지하고 즉각적으로 '괜찮다'고 말해 줄 수 있다.
또 이완을 통해 확장된 의식을 가져야만 뒤따를 오감 훈련에서도 충분히 감각적으로 충실할 수 있다.
이번에 접한 이완 훈련과 기존에 알고있던 훈련 방식을 결합하면 이완의 효과가 극대화될 것 같다. 먼저 온 몸의 구석구석에 집중하며 말을 걸고 충분히 의식적으로 맺어진 후에 (절대 서두르지 말고) 그 부위에서 흘러나오는 에너지 그대로 천천히 움직이며 소리내는 것이다. 내면적으로 충실할 것, 과정에 충실할 것, 서두르지 말 것. 몸을 조금도 움직이지 않고도 신체의 변화가 일어날 수 있다.
2. 상상 말하기
자기 검열의 파괴, 무엇이든 가능하다, 어린이의 상상, 이미지에 나를 맡긴다.
'일상의 나'가 계속 논리와 검열, 현실성, 언어의 틀에 나를 가두려했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떠오르는 이미지들이 어느 정도 나를 구해주어 자유로움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상대의 말을 듣는 것은 여전히 어려웠다. 상대의 말을 따라가며 이미지들을 공유하기보다는 그 말 속에서 내 차례에 쓸 이미지들을 찾느라 분주했던 것 같다. 훈련을 즐기기보다 잘 하고 싶은 마음이 훈련의 효과를 감소시켰다.
3. 오감 훈련
천천히 한다는 것. 그 단순하면서도 기본적이고 당연한 규칙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예전에 감각 훈련을 할 때에는 감각에 온전히 집중하기보다는 반응하는 데에 더 열을 올렸던 것 같다. 충분히 느끼고(느낀다는 말로는 부족한 온전한 감각의 수용 - 냄새가 콧구멍을 거쳐 코 속을 지나 머리로 가고 내 몸 안으로 들어오는 모든 순간들) 받아들이기보다는 그 자극에 대해 내가 어떻게 표현하고 반응하는가에 집중하여, 아직 생기지도 않은 충동을 가장했던 것이다.
하지만 이번 훈련으로 '최대한 천천히' 느껴본 결과, 당일에는 몰랐지만 지금 거의 일주일이 지나 이 글을 쓰는 순간까지도, 컵을 만지던 촉감과 소리, 커피 향기, 맛 등이 세세히 생각나는 것을 보니, 그 효과가 자명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역시 인내와 본질이 훈련의 전부다. 훈련 중간중간 이성/논리의 뇌가 계속 '이건 종이야, 이건 커피야, 이건 컵이야. 별 거 아니니까 무시해!' 하고 감각의 대상에 이름 붙이고 범주화하려 했지만, 그렇게 일반화시키면 이 경험은 그냥 커피 담긴 종이컵을 들고 만지작거리다 홀짝 마셔버린 일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지금도 생생한 종이를 스치던 손끝의 감각과 커피의 검은 색과 그 가운데 뜬 조명빛, 하얀 거품띠, 코 속에 들어오는 따뜻한 향기, 씁쓸한 뜨거움 등의 기억은 존재하지도 못할 것이다. 경험의 일반화는 배우에게는 하등 도움이 되지 않는다. 감각을 개인화하고 온전히 받아들여야 기억에 그대로 각인되어 나만의 재료가 된다. 꾸준한 이완 & 감각 훈련이 메소드 연기법의 기본임을 다시 한 번 상기한다.
4. 즉흥극
목적, 상대, 상황...
이것이 전부임을 알지만, 매번 좀 더 자연스러워 보이기 위한 사족이 생기고 자기 검열이 앞을 가린다.
불필요한 말과 제스처는 목적을 흐릴 뿐이다. 본질에의 집중과 단순 명료함이 필요하다.
그리고 배우의 선택에 대해 다시 한번 그 중요성을 느낀다. 나는 원래 소극적이고 별로 말이 없는 사람, 감정 기복이 그다지 크지 않은 사람이라 극에서도 그런 사람으로 있기를 선택한다면, 연기가 다소 쉬울 수 있고 좀 더 자연스러울 수는 있다. 하지만 관객의 입장에서는? 극의 진행에 있어서는? 지루하고 모호하며 극적 효과도 반감될 것이다. 그런 태도를 선택함으로써 무의식적으로 극의 상황을 축소시켜 받아들이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 매순간 좀 더 극적으로 어울리고 상황을 고조시키는 선택을 해야 한다. 연기 할 때 관객을 의식하면 안되지만 연기는 결국 관객에게 보이기 위한 예술임을 잊지 말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