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동과 함께 있는 알로프 드 위냐쿠르]
1607~1608년경
캔버스에 유채, 194×134cm, 루브르 박물관, 파리
시동과 함께 있는 알로프 드 위냐쿠르 Alof de Wignacourt, with a Page]는 카라바지오를 말타의 기사가 되게 한 작품이다. 모델인 위냐쿠르는 프랑스 출신의 용병 대장으로 말타 기사단의 단장이었다. 그림 속에서 갑옷을 입은 그는 친절하면서도 남자다운 표정으로 지휘관의 곤봉을 들고 직무에 어울리게 먼 곳을 주시하는 시선을 보여주고 있다. 그의 옆에는 헬멧과 외투를 들고 기사단의 십자가를 단 시동이 서 있다. 기사를 시동과 함께 등장시키는 초상화는 베네치아나 롬바르디아 회화에 선례가 있으나, 이 작품의 경우 시동의 인상이 주인공보다 강렬하여 독특한 분위기를 만드는 동시에 다시 한번 그의 성적 취향에 대한 다양한 추측을 낳았다.
이 작품 이후로 화가는 바탕에는 거의 손을 대지 않고 인물도 빠르고 간략한 붓질로 처리하는 기법을 사용한다. 이 작품은 1670년에 루이 14세에게 팔렸는데 보존 상태가 좋지 않아 18세기부터 보수 처리를 많이 했다. 20세기에는 카라바치오 진작인지에 대해 의문이 제기되기도 했다. 하지만 루브르에 걸린 이 작품은 반아카데미적 성향을 가진 많은 화가들의 관심을 끌었다. 들라크르와가 루브르에서 이 작품을 보고 시동을 베껴 그린 드로잉을 남겼고, 마네도 이 소년에게서 영감을 받아 [칼을 가진 소년]이라는 그림을 그렸다. 카라바지오의 바로크는 이후에 등장하는 반고전주의, 반아카데미적 성향의 모든 미술 즉 낭만주의, 사실주의, 인상주의 등의 기본 바탕을 이룬다고 할 수 있다.
이 초상화에 만족한 위냐쿠르의 도움으로 1608년에 카라바지오는 말타의 기사가 되었으나 6개월도 안 되어 다른 기사와 싸움을 벌여 기사단에서 제명되고 투옥되었다. 그는 탈옥하여 시칠리아 섬으로 도망갔다. 이어 1609년에는 나폴리로 갔는데 거기서 보복에 의한 것으로 보이는 공격을 받아 심하게 다쳤다. 이후 배를 타고 로마로 향하다 배가 정박한 곳에서 다른 사람으로 오인되어 이틀간 투옥되었고, 감옥에서 나와 걸어서 로마로가다가 포르토 에르콜레(Porto Ercole)에서 열병에 걸려 사망했다. 시신은 공동묘지에 묘비도 없이 묻혀 지금은 행방을 알 수가 없다. 이때가 1610년, 그의 나이 39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