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
이상
거울속에는소리가없소
저렇게까지조용한세상은참없을것이오
거울속에도내게귀가있소
내말을못알아듣는딱한귀가두개나있소
거울속의나는왼손잡이오
내악수를받을줄모르는 – 악수를몰는왼손잡이오
거울대문에나는거울속의나를만져보지를못하는구료마는
거울이아니었던들내가어찌거울속의나를만나보기만이라도했겠소
나는지금거울을안가졌소마는거울속에는늘거욱속의내가있소
잘은모르지만외로된사업(事業)에골몰할께요
거울속의나는참나와는반대(反對)요마는
또꾀닮았소
나는거울속의나를근심하고진찰(診察)할수없으니퍽섭섭하오
(『카톨릭청년』 5호 19333. 10)
[작품해설]
이 시는 이상이 즐겨 사용한 거울 모티프가 그 중심 구조를 이루고 있는, 일상적 자아(현상적 자아)와 이상적 자아(본질적 자아)사이의 갈등, 즉 자의식(自意識)을 드러낸 대표적 작품이다.(거울 모티프가 중심 구조를 이루고 있는 대표적 작품으로도 이 시외에도 「오감도 15호」와 「명경」이 있다.) 이 시에서는 자의식이 세계를 표상하는 거울을 매개로 하여 두 개의 ‘나’가 설정되었는데, 이에 따라 전체는 3부분으로 나누어진다.첫 단락은 1~3연으로 거울 속의 자아를, 둘째 단락은 4~5연으로 거울 밖의 자아를 보여주며, 셋째 단락은 마지막 6연으로 거울 밖의 자아와 거울 안의 자아의 관계를 드러내 준다.
이에 따르면, ‘거울 밖의 나’와 ‘거울 속의 나’는 거울에 의해 비추고 비치는 관계에 있으나 ‘내말을알아듣지못하거나’ ‘악수를모르는왼손잡이’로 사사건건 반대며 서로 만나지 못한다. 모든 물체를 정반대로 비추는 거울의 본질상 그럴 수밖에 없다. 이는 두 자아의 공존과 함께 두 자아 사이의 단절과 분열, 갈등을 형상화한 것으로 이것이 바로 현대인의 자아분열(自我分裂)의 모습이다. 참된 자아를 찾아 내려고 노력하는 화자는 거울속의 자신을 들여다보고 ‘거울속의 나’가 ‘진정한 의미의 자아’가 아닌가 생각한다. 그러나 자신의 말을 알아 듣지 못하고 악수를 받을 줄 모르는 자아임을 발견하고 나서 화자는 그가 ‘진정한 의미의 자아’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다. ‘거울속의나는참나와는반대요마는 / 또꽤닮았소’라 하며 두 자아 사이에 상대적 유사점을 발견하고 나서 화자는 다시 그 거울 속의 자아가 참된 자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하지만 자의식의 거울은 ‘거울 속의 나’를 만나 보게 해 주는 매체는 되지만, 참된 자아를 탐구하는데에는 저해 요소임을 깨닫는다. 즉 자아의식의 거울을 통해 ‘나’는 ‘또 다른 나’를 발견했지만, 자의식의 거울 때문에 발견한 ‘나’가 참된 자아인지 아닌지를 알아내지 못하는 갈등에 빠지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거울때문에나는거울속의나를만나보지를못하는구료마는 / 거울이아니었던들내가어찌거울속의나를만나보기만이라도했겠소’라 하는 것이다.
정신분석학적으로 본다면, 일상적 자아는 자신의 모습을 거울속에서 발견하고 자아의식을 확보한다. 이때 자아의 통일성은 거울에 비친 상을 자기자신으로 동일시함으로써 비로소 구성된 것이다. 즉 자아는 선험적으로 존재하는 실체가 아니라 동일시 과정을 거쳐 형성된 결과물에 불과하다. 따라서 이렇게 거울에 비친 상을 통해 구성된 동일성은 자기 소외적 성격을 지니게 마련이다. 이러한 점에서 이 시는 현상적 자아인 ‘나’와 자의식에 존재하는 본질적 자아인 ‘또 다른 나’의 대립과 모순을 통하여 참된 자아를 잃고 방황하는 현대인의 비극적 모습을 잘 보여 주고 있다.
[작가소개]
이상(李箱)
본명 : 김해경(金海卿)
1910년 서울 출생
1924년 보성고보 졸업
1929년 경성고등공업학교 건축과 졸업
1930년 『조선』에 소설 「12월 12일」을 발표
1931년 조선 미전(朝鮮美展)에서 「자화상」 입선
1934년 구인회에 가입
1936년 동경행
1937년 불령선인(不逞鮮人)으로 일경에 체포, 감금됨
1937년 4월 17일 동경 제대 부속 병원에서 사망
시집 : 『이상선집』(1949), 『이상시전작집』(1978), 『이상시전집』(198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