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 분야 大家들의 인터뷰나 회고록은 꼭 챙겨 읽는 편이다.
또한 거장들의 중요 대목은 거의 빼먹지 않고 스크랩했다.
지난 삼십여 년 간 동일한 습관을 유지한 채 살았다.
2008년 2월 10일.
한 얼간이의 방화로 인해 대한민국 국보 1호인 숭례문이 전소됐다.
수많은 국민들은 일순간 극심한 충격에 빠졌고 허탈감에 몸부림쳤다.
그로부터 2년 후인 2010년 봄부터 숭례문 복원공사가 대대적으로 전개되었다.
복원공사 3년만인 2012년 5월에 완공된 우리의 국보 1호 숭례문.
국민의 세금이 무려 250억원이나 들어간 국보의 중창이었지만 끝내 부실로 판명났다.
더 큰 허탈과 낙담이 쓰나미처럼 밀려들었고 분노로 이어졌다.
한동안 마음을 가눌 길이 없었다.
지반, 기와, 단청공사 등에 추가로 혈세 42억을 쏟아붓기로 결정했다.
복원공사의 총 책임자였던 도편수 한 사람의 간계와 해태로 인해 각 부분의 부실과 폐해는 더욱 깊어졌다.
국민들의 실망과 배신감은 이루 형언할 수 없었다.
나도 부아가 치밀어 올랐다.
부와 명예를 움켜쥔 사회 지도층의 저열한 非行과 不正.
바야흐로 선지자의 시대는 끝났고 약장수의 시대가 도래한 것 같았다.
바로 그 점에 못내 가슴이 아렸다.
(중략)
나무로 짓는 큰 건축물엔 좋은 나무들이 필요했다.
당연지사였다.
그 나무들을 잘 다룰줄 아는 한국 최고의 전문가들이 동원됐다.
그 뛰어난 목수들 중에 단 한 사람의 우두머리가 있었다.
그이가 바로 도편수였다.
또한 그는 궁궐이나 사찰 등 목재로 축조하는 대형 건축물의 장인이라 하여 大木匠이라 불렸다.
대목장은 장농이나 궤함, 농기구, 수레, 가마 등을 만드는 小木匠과 대별되며 처우도 달랐고 책임도 막중했다.
복원공사가 진행되면서 언론에 가장 빈번하게 오르내렸던 그 사람, 그이가 바로 '대목장 신응수 씨'였다.
(훗날 밝혀진 그의 비리나 부정에 대해선 여기서 논의하지 않기로 함)
그와 관련된 기사들도 진작에 스크랩을 해두었던 터였다.
또한 중창공사에 꼭 필요한 목재, 金剛松에 대한 자료들도 여러차례 모아둔 상태였다.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 그의 5대 조부를 모신 삼척의 준경묘와 그 옆에 조모를 모신 영경묘.
특히 준경묘역은 우리 나라 금강송 군락지 중 자타가 공인하는 치고의 핵심 요지였다.
꼭 한 번 탐방해 보고 싶었지만 바쁜 일정 때문에 좀처럼 짬을 낼 수 없었다.
그러던 차에 만추의 고운 단풍과 천혜의 금강송 숲길 트레킹을 한꺼번에 경험할 수 있는 값진 기회를 마련했다.
일석이조의 매력적인 테마였다.
울진 금강송 숲길 트레킹, 통고산 자연휴양림, 불영사와 불영계곡, 검푸른 동해바다와 연해 있는 망양정의 빼어난 경관까지,
울진의 멋과 맛을 제대로 흠향할 수 있는 2박3일간의 멋진 晩秋旅行을 추진했다.
통고산 자연휴양림에 여장을 풀었다.
다시 재회했던 사랑하는 친구들과 그의 가족들.
밤이 깊도록 쉼없이 재잘재잘 얘기꽃을 피웠다.
맑고 고요한 통고산은 마침 단풍이 흐드러지고 있었다.
절정의 자태를 한껏 뽑내면서 산 전체가 극상의 색채감을 머금은 채 특유의 황홀경을 연출하고 있었다.
과연 別有天地 非人間이었다.
다음 날 이른 아침 이번 여정의 핵심인 '금강송 숲길 트레킹'에 나섰다.
이 코스의 트레킹은 하루에 80명만 가능했다.
참가인원에 엄격한 제한을 두고 있었다.
금강송 숲과 山羊 등 희귀 동식물들을 보호하고, 지역주민의 생업과 탐방객들의 안전을 도모하기 위한 산림청의 결정이었다.
이른바 '예약탐방제'를 실시하고 있었다.
현명하고 효과적인 시책이라 여겨졌다.
그 오솔길은 2010년 7월에 개방해 올해로 4년차에 접어든 생태관광 루트였다.
오전 9시에 출발해 총 7-8시간을 걷는 코스인데 山林福祉가 무엇인지를 분명하게 느낄 수 있었다.
상록을 움틔운 강인한 자연의 에너지가 물씬 풍겼다.
진정한 축복의 땅이었다.
한 번은 꼭 와보고 싶었던 곳이었다.
그래서인지 마치 꿈결같이 아련했고, 멀고 먼 고대로부터 문득 튀어나온 듯한 추억의 숲길 같았다.
또한 물 좋고 공기 맑은 빼어난 산하였고 피톤치드의 보고여서 자연치유가 가능한 곳이었다.
집결지인 두천리에서 산 속 좁다란 오솔길을 따라 왕복 17킬로를 싸목싸목 걸어가는 천혜의 힐링 코스였다.
우리나라 최대의 금강송 군락지를 관통하는 아름답고 고결한 오솔길.
저절로 행복의 미소가 피어났다.
숲 해설가의 설명을 들으며 걷는 맛이란 시종일관 진짜로 재미지고 유익했다.
먼 옛날, 보부상들이 이 길을 따라 봇짐을 지거나 牛馬에 짐을 싣고 다녔던 길이기도 했단다.
동해안에서 나는 미역, 건어물, 생선, 젓갈 등을 내륙인 봉화, 영주, 안동지역에 전해주고
돌아오는 길에 피륙, 곡물, 비단, 담배 등을 해안가 사람들에게 전달해 주었던, 깊은 산 속 열두 고갯길.
그 중 4개의 고갯마루가 이번 트레킹 코스에 포함되어 있었다.
그 길을 걷는 내내 옛날 옛적 보부상들의 거칠었을 숨소리와 팍팍했던 삶의 흔적들이 그대로 손에 잡히는 듯했다.
단단하고 빼어난 목재로 명성이 자자해 예로부터 최고의 나무로 쳤던 金剛松은 우리 민족의 웅혼한 얼과 기상을 표상했다.
그 상징성은 과거에도 그랬지만 미래에도 조금도 변치 않을 것이다.
그런 금강송은 온갖 자연의 風霜과 혹독한 시련을 견디며 수백 년 간을 매우 더디게 성장한다.
그런 나무들은 목재 내부(木心)에 송진 함유량이 많아 누런색을 띠며 목질이 단단해 차돌같이 강도가 높아지는데
이를 나무의 黃心이라 하고 이런 나무를 바로 黃腸木이라 부른다.
금강송 중에서도 단연 왕 중의 왕으로 대접받는 귀중한 나무가 바로 黃腸木이다.
한자 그대로 목심이 누런색(黃)을 띠는 창자(腸)같은 나무(木)다.
옛적에 임금님이 붕어하면 화려하고 튼튼한 관을 짜는데 이때 사용하는 棺材가 바로 황장목이었다.
품격이 고결하고 재질이 단단해 좀처럼 썩지도, 갈라 지지도, 변형되지도 않는 제왕같은 한국의 소나무다.
금강송의 樹海, 그 안에서 사뿐사뿐 걷는 것만으로도 행복했지만 지근거리에서 그런 기품있는 나무들을 숱하게 보고, 만지며 마음껏 교감할 수 있었던 것에 대해 진정으로 감회가 새로웠다.
금번 숭례문 중창에도 우리의 금강송들이 많이 쓰여졌다.
수령 수백 년짜리 영험한 황장목을 벌채하기 전엔 그 나무 앞에서 간단한 의식을 거행했다.
두루마리 교서를 펼쳐 읽으며 御命에 따라 벌목하게 되었음을 알리고 간단한 제를 지냈다.
"어명이오"
이 한 마디를 선창한 도편수가 맨처음으로 도끼질을 한 다음에야 비로소 정성을 다해 나무를 베는 방식을 따랐다.
전통방식 그대로였다.
그만큼 궁궐이나 대형 사찰 등을 신축하거나 중창할 때엔 깊은 산 속 현장에서부터 핵심목재 하나 하나에 각별한 예를 표했고
성심을 다해 극진하게 다뤘다.
금강송 황장목은 그런 帝王같은 나무였다.
금강송이 울창한 깊은 산 속에서 즐거운 마음과 가벼운 심신으로 하루 종일 트레킹을 경험해 보시라.
보약이 따로 없었다.
색다른 추억을 쌓고 건강증진을 도모하는 일거양득의 멋진 여정이었다.
울창한 숲뿐만 아니라 왕피천을 따라 흐르는 명경지수와 수려한 주변 경관에도 여러차례 감탄이 흘렀다.
밥 때가 되자 지역 주민들이 운영하는 밥차가 왔다.
각종 산나물과 소박하나 깊은 맛이 우러나는 정갈한 산채정식.
더이상 말이 필요없었다.
인심은 후덕했고 맛은 구뜰했다.
탐방객들 모두에게서 행복의 미소가 줄줄 흘렀다.
천혜의 금강송 숲 길 트레킹을 경험한 것도 감동인데 萬山紅葉으로 불타는 절정의 단풍을 마음껏 퍼담았다.
감동은 배가됐고 추억은 더욱 깊어졌다.
고교 1학년 때 만나서 지금까지 지난 33년 이상이나 매번의 여정을 함께 했던 사랑하는 친구들과 그의 가족들.
모두가 함께 했기에 더욱 행복했다.
같이 웃고 떠들었던 2박3일간의 늦가을 울진 격오지 트레킹.
다감했던 시간은 쏜살같이 흘렀다.
전역한 아들도 동행해 주어 더욱 좋았다.
벗들과의 헤어짐은 언제나처럼 몹시 아쉬웠지만 그 어느 때보다도 값진 여정이었다.
진사들의 메카로 추앙받는 불영사와 불영계곡, 관동8경 중의 하나인 망양정의 지고한 자태도 과연 백미였다.
나는 귀가해 여느 때처럼 일기쓰듯 후기를 남겼다.
노트엔 위대한 자연을 창조하신 조물주의 신공에 대한 새로운 깨달음과 찬미의 문장들이 가득했다.
동시에 인간들의 탈선과 돈 앞에서 한없이 비겁해지는 졸렬함에 대한 참회와 기도의 언어들이 줄을 이었다.
또한 각 분야 리더들의 인생 발자국들이 금강송처럼 꼿꼿하고 가지런하게 뻗어나가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했다.
자연은 언제나 그렇지만 인간들의 영원한 스승이다.
또한 최후의 안식처다.
핑핑 돌아가는 세상의 속도에서 잠간 비켜가고 싶을 때,
나의 영혼과 심신에 잔잔한 위로를 부여하며 진정한 쉼을 허락하고 싶을 때,
불연듯 다시 찾고 싶은 산림복지의 보고 울진 금강송 숲길.
하늘이 내린 그 천혜의 산천에 깊은 감사를 전하고 싶다.
한반도 白頭大幹을 따라 청청한 금강 소나무들이 온갖 풍상에도 굴하지 않고 꼿꼿하게 생장하고 있는 우리의 아름다운 산하.
굳센 소나무들과 강직한 대간의 지맥들.
그 올곧은 우리 민족의 얼과 기상에 다시 한 번 뜨거운 찬사를 보낸다.
"삼천리 금수강산이여."
"그 이름 영원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