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샘통문 Ⅲ-39]槿峯 군의 고희기념書藝展
우리의 자랑스런 친구 이종대(호 근봉) 군의 고희기념 서예전(7월 22-27일) 오프닝 세리머니가 어제 오후 3시, 인사동 마루아트센터 그랜드관에서 있었다. 당근, 우중인데도 전국 각지에서 의리의 고교동창 20여명이 넘게 몰려들었다. 이주영 전 해수부장관(5선, 국회의장 역임)이 광주이씨 종친대표로, 전직장 동료 선후배 등 70여명이 격려차 참석하여 전시장은 ‘반짝 성황’이었다. 주인공인 '남원의 선비' 근봉은 평소 샤이(shy)한 편이나, 어제만큼은 시종 즐거운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이게 어디 흔한 일인가. 몇 번이고 축하를 해줘도 지나치지 않은 일. 안면 있는 유명 미술평론가(조민환 교수)는 “건설사에 있었다기에 (글씨가) 거칠지 알았는데 너무 ‘얌전해’ 놀랐고, 이런저런 서예가들이 설치지 않은 서예전이 낯설다”고 말했다. 쉽지 않은 일. ‘촌닭’의 '당돌한 인간승리'라고나 할까. 하하.
30여년 동안 붓 잡은(運筆) 내공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 아닌가. 귀향한지 8년 동안의 작품 55점이 선을 보였다. “글은 바로 그 사람”(書如其人)이라는 오래된 금언처럼, 그가 공들여 쓴 예서(그답게 특히 더 단정하다)와 행서, 초서, 전서, 훈민정음체를 감상하다 보면 ‘부럽다’ ‘나는 그동안 무엇을 했나’ 반성과 후회, 질시를 하게도 만든다. 취미가 특기가 되고, 드디어는 서예(書藝)라는 예술의 경지까지 맛보게 되다니, 참 잘했다. 도록 뒷표지 “붓을 들어/마음을 쓰고/세월을 쓰다”는 문구의 울림이 크다. 치열한 삶의 역정(현대건설, 두산중공업 35년 근무, 중역 퇴임)을 밟은 후, 고향(남원 주천)에서 안빈자족(安貧自足)하며 예술을 벗 삼은 양주(兩主. 어부인 인현숙 여사는 수채화작가이다. 금혼식을 기념해 부부전을 공약했다)를 옆에서 가까이 지켜본 나로선 오직 심축(心祝)할 따름인저.
알고보니 내력도 있었다. 그의 조부와 증조부님이 호남지역에선 내로라하는 서예의 대가였다는 것. 그의 피나는 노력이 무조건 우선이겠으나, 대저 ‘피는 못속인다’는 유전자의 조화라는 것도 신기하다. 초등학교 시절 “종대는 조부를 닮아 글씨를 잘 쓸 것”이라는 선생님의 한 말씀이 열사(熱沙)의 현장(해외근무만 20여년)에서도 붓을 놓지 않은 ‘씨앗’이 되었고, 고교때 스토리텔러 한문선생님(작고 안성호)의 영향이 컸다는 작가의 말에 누군들 공감하지 않으랴.
그가 대표작(?)처럼 전시장 전면에 내건 백거이의 <불출문>(不出門)만 봐도 그의 ‘붓철학’을 대번에 짐작할 수 있다. 그에게 서예는 도를 닦는 수양의 한 방편이라는 것을. 광주이씨 선조 둔촌(서울 둔촌동 이름의 유래) 이집 선생의 한시를 선보였다. ‘책 읽기는 어버이에게 기쁨을 주는 것이니/모름지기 시간을 아껴 부지런히 공부를 하라’(讀書可以悅親心/勉爾孜孜惜寸陰. 자자孜孜는 힘쓰고 또 힘쓰라는 뜻). 한시의 뒷대목 ‘老矣無能徒自悔/頭邊歲月苦駸駸’(늙어서 무능하면 후회만 될뿐/머리맡의 세월은 멈추지 않고 쏜같같이 흐른다네. 침침駸駸은 말달리듯 빠르다는 뜻)도 더욱 의미가 있지 않은가. ‘학생부군시위’(學生府君神位) ‘죽을 때까지 학생이다’는 말처럼 좋은 말이 어디 있는가.
전라고6회 동창회 | [찬샘별곡 Ⅲ-8]아름다운 사람(37)-근봉槿峯, 그대 이름은 서예가 - Daum 카페
도연명의 <귀거래사>, 정극인의 <상춘곡>, 제갈량의 <계자서>도 좋지만, 작가가 좌우명처럼 여긴다는 <心安茅屋穩/性定菜羹香>(마음이 평안하면 초가집도 안온하고/성품이 안정되면 나물국도 향기롭다>는 명심보감구만 봐도 글씨와 그의 생각이 “그 사람됨과 같다”(有似其爲人. 구양수술서)는 것을 금세 알 수 있다. 더구나 장취(長醉) 등 술을 즐기는 구절이 곳곳에 나오니 그 더욱 반가웠다.
서예에 문외한인 나는 글씨를 얼마나 잘 쓰고 못쓰는지 말할 능력은 없다. 다만, 그가 출처를 밝히고 인용한 구절들의 내용과 작가의 정서(情緖)에 대해서만 말할 수 있을 뿐이다. 글씨야 그의 말대로 정진(精進) 또 정진하면 앞으로도 창창한 세월에 추사체처럼 '근봉체'라고 이름지어지 말란 법은 없는 법. 나처럼 서예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아내도 도록의 몇 작품을 보더니 “(뜻은 몰라 흰 것은 종이, 검은 것은 글씨이지만) 글씨가 모두 '이종대'라는 세 글자로만 보인다”는 촌평에 웃기도 했다.
하나 더 덧붙이지만, 영국에 사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솔녀(손녀의 전라도 방언) 주은이가 열 살도 안됐을 때 지었다는 동시 <나를 닮은 달팽이>를 작가 할애비(할아버지의 방언)가 멋지게 작품화한 것이 단연 눈에 띄므로, 꼭 그 앞에 서서 읊조리며 동심(童心)과 조심(祖心. 할애비 마음)이 일맥상통함을 엿보시라.
<나는 영국이 맨날맨날 비가 와서 좋아요/비오는 날 장화 신고 노는 게 너무 좋아요/달팽이도 비오는 날씨가 좋은가봐요/비가 오면 달팽이들도 나와 놀고 있어요/나는 등에 집이 있는 달팽이가 부러워요/해가 져도 밖에서 놀 수 있으니까요/그래도 나는 우리집이 좋아요/고급진 핫초코렛도 먹고 엄마 아빠사이에서/따뜻하게 잘 수 있으니까요>
얼마나 귀엽고 깜찍한 시인가? 주은이가 앞에 있으면 내 손자 안아주듯 꼬옥 껴안아주고 싶다. 어른들은 질척질척 잦은 비에 스트레스를 받건만, 장화 신고 놀 생각에 신나라 하는 동심을 보라. 그러기에 세상일은 무엇이든지 생각하기 나름이다. 일필휘지로 썼는지는 모르지만, 그의 작품 <一切唯心造>처럼 말이다. 나무관세음보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