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해야할까나…”
앞길이 막막했다.
입구로 나가는 것은 당연히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옆으로 벽을 뚫거나, 아래로 벽을 뚫거나…하는 것 역시 불가능했다.
그렇다면?
남은 가능성은 한 가지.
‘창문’
생각이 떠오르자마자 에노는 넓은 방 끝까지 후다닥 달려갔다.
쇠창살이 쳐져있긴 했지만, 꽤나 간격이 넓어 아슬아슬하게 빠져나갈 수 있을 것도 같다.
창문을 열고, 까치발을 들어 창 밖을 내다보았다.
하지만 눈앞에는 탁한 색의 하늘만이 보인다.
에노는 열일곱 살임에도 불구하고 160에 간신히 미치는 자신의 키에 저주를 퍼부으며,
다시 돌아가 오색으로 찬란히 빛나는-그녀가 앉았던-의자를 챙기고 창가로 돌아왔다.
반짝반짝 빛나며 자신의 가치를 뽐내는 의자를 경멸한다는 듯이 바라보다가, 이내 그 의자를 짓밟고 올라가 창밖을 내려다봤다.
“히익”
아찔한 신음이 저절로 나왔다.
영주의 성이 이렇게 높았던가?
에노는 자신의 앞에 펼쳐지는 별천지를 허무하게 바라봤다.
창문으로는 불가능했다.
차라리 자신이 방문을 부수고 나갔으면 나갔지, 절대로 창문으로는 나가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순간
“…방문을 부순다고?”
한참을 곰곰이 생각 해 보다가 자신의 생각이 어이없었는지 피식 웃는다.
“참 잘도 부수겠군. 내가 이 성에 몇 년 갇히더니만 드디어 미친 건가.”
한참을 벽에 기대어 주저앉아있었다.
몇 분이 흘렀을까?
그녀는 입술을 하얗게 앙다문 채 주먹을 쥐고 일어섰다.
그리곤 넓은 방을 휘휘 둘러보다가 반짝이는 의자에 시선을 고정시키고 특유의 매력적인 미소를 짓는다.
의자의 발을 잡고 질질 끌고 가던 에노는 방문 앞 2m지점에서 걸음을 멈춘다.
에노는 의자를 자신의 머리높이만큼 들어올리고, 그대로 방문에 내다 던졌다.
약한 의자의 다리부분이 산산이 조각나고, 에노의 주변으론 그녀를 장식하고 싶다는 듯 보석들이 허공에 날려 아름다운 경관을 자아냈다.
그러나 그것 뿐.
애석하게도 문이 부셔지거나 하는 그녀가 원하던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이에 탄력 받은 에노는 주위에 있는 손에 잡힐만한 물건이란 물건들은 모조리 다 집어던졌다.
자신과 오늘밤 들려고 준비 한 듯한 황금잔과 고급 와인, 그녀가 건드리지만 않았다면 그 하얀 손가락에 껴져있었을 반지, 얇은 목에 걸어져있었을 목걸이….
그 외에도 수많은 물건들을 방 안 이곳저곳에 미친 듯이 던져 영주의 방은 엉망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아직까지도 개운치 않았다.
당연하지 않은가.
이 난리를 피웠음에도 불구하고 열리지 않는 저 굳건한 문 때문이었다.
‘돌아버리겠네’
에노는 때 묻은 신발을 벗지도 않고 침대에 대(大)자로 뻗었다.
심신이 피곤했다.
이 거대한 침대가 자신의 신발 때문에 때 묻던지, 땀 때문에 더러워지든지 상관없었다.
그녀는 어차피 도망칠 몸이 아니었겠는가.
한참을 좋은 방법이 없을까 머리를 굴렸으나 떠오르는 생각은 오직 나른하다는 것뿐이었다.
‘안돼, 이러면 안돼!’
잠이 들 것 같은 기분에 그녀는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어질러진 방에 여러 잡동사니를 창문 앞에 쌓아서 그 위를 밟고 올라갔다.
다시 그녀의 눈앞에 펼쳐진 별천지와 금방 전보다는 조금 어둑해진 하늘
그리고 발코니.
그녀는 별다른 생각이 없었다.
어떻게든 되겠지.
하고 무심코 창문으로 달려들었다.
하지만 쇠창살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아무리 가늘은 에노라 할지라도 쇠창살을 빠져나가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게다가 높은 곳에 위치한 창문에 얼굴만 쏙 내밀고 있는 에노에게 느껴지는 2월의 바람이란….
‘스읍’
매서운 바람에 자신도 모르게 눈물콧물이 나왔다.
하지만 이에 굴하지 않고 에노는 자신의 몸을 쇠창살에 구겨 넣었다.
그냥은 아무래도 무리였다.
“에노 나오미.. 이 어리석은 여자야.”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에노는 흠칫한다.
문소리 하나 들리지 않았다.
그런데 자신도 모르는 새 뒤에는 누군지 모를 사람이 있는 것이다.
영주가 벌써 돌아왔나?
아니다, 영주의 목소리가 이렇게 미성이었던가.
그렇다면 이 남자는 도대체 누구란말인가.
어쩌면 그는 하늘이 나에게 보낸 선물일지도 모른다.
어린 나이에 별 고생이란 고생은 다 겪은 자신을 불쌍하게 여겨 보냈을지 모를일이다.
아니다, 나는 앞으로 신을 믿지 않는다고 했었지.
머리속의 수많은 의문과 생각에 에노는 고뇌한다.
하지만 그녀의 고뇌는 간단하게 깨어지는 하찮은 것이었다.
바로 뒤를 돌아보면 자신이 그토록 궁금해하는 그가 멀쩡히 서있을 테니까.
“창문을 무방비 상태로 뛰어내린다는 건 자살행위와 같은 의미지.
게다가 여긴 창문의 높이가 만만치 않은 걸 잘 알고있을텐데...?”
“...”
뒤돌아 보고 싶다.
그러나 웬지 몸을 움직이기 싫다.
“내 말이 들리지 않는 건가?”
침묵.
더이상의 침묵은 자신에게 말을 건 정체모를 그에게 실례되는 행위다.
예의 하나는 끝내주게 바른 에노.
천천히 뒤를 돌아 그의 정체를 확인한다.
그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그를 보자마자 에노의 옅은 눈이 동그랗게 커진다.
“당신이 왜 이곳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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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릿글 남겨주신
다과 님, 에이린닷컴 님!
제 글을 봐주셔서 정말로 감사드립니다!
싸랑하는 거 알죠?

그리고 답꼬리를 남기지 못했네요.
죄송합니다.
분발하겠습니다.!!!!

첫댓글 와아, 재미있어요>_<
처음뵙겠습니다~^^ 재미있게 봐주셨다니, 감사합니다! ♡
으아... 죄송해요.. 1편 재미있게 읽었는주제에 꼬리를 안달았네요... 상당히 재미있어요~ 그 미성의 주인공은 꽃미남이겠죠? ㅠ 그러길 빌어요..
앗, 죄송하다니요! 그리고 그가 미남일지 아닐지는~ㅋㅋ 재미있게 봐주셔서 감사해요. 앞으로도 지켜봐 주실거라 믿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