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팝의 ‘한국 침공’이 성공하는 길
삼성 현대 같은 글로벌 K팝 기업 생겨야
‘프리미엄 라벨’ 될 성공 방정식 마련
하이브가 2021년 미국의 종합 엔터테인먼트 회사인 이타카홀딩스 지분 100%를 인수했을 때 10억5000만 달러(당시 환율로 약 1조1860억 원)의 인수가를 놓고 논란이 일었다. 저스틴 비버, 아리아나 그란데 등 세계적 팝가수들이 속해 있고 미국 최대 컨트리뮤직 레이블인 빅머신을 보유한 회사지만 너무 비싸게 주고 산 것 아니냐는 얘기였다.
얼마 전 만난 하이브 관계자는 이에 대해 “자릿세를 낸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당시 BTS가 ‘다이너마이트’로 한국 가수 최초로 미국 빌보드 핫100 1위를 차지한 뒤였는데도 음반 판매 등 각종 수수료를 이타카 소속 가수들보다 2, 3배씩 내고 있었다”고 말했다. 외국, 특히 비영어권에서 좋은 가수와 노래를 가져간다고 해서 미국 음악시장의 플레이어들이 쉽게 문을 열어주지 않기 때문에 자릿세를 내서라도 끼어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JYP가 ‘원더걸스’를 이끌고 미국 진출을 줄기차게 시도했으나 실패했고, 싸이가 ‘강남스타일’로 성공한 뒤 별다른 관심을 끌지 못한 것을 떠올리면 이 이야기는 설득력이 있었다.
최근 SM엔터테인먼트(에스엠) 경영권 분쟁은 K팝의 지속가능성을 되돌아보는 계기가 됐다. ‘이수만’으로 대표되는 1세대 K팝 프로듀서 겸 오너의 퇴장은 그들이 만든 성채가 성공적이었으나 결코 견고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줬다. 칼군무와 강력한 팬덤의 아이돌 그룹을 바탕으로 한 K팝 산업이 국내외에서 계속 성장할 수 있을지에 대한 근본적 의문을 던졌다. SM YG JYP가 아시아 시장을 일궜고 하이브의 BTS가 미국 시장에 성공적으로 진출했으나 더 전진할 힘이 있느냐는 것이다. 15일 관훈포럼에 참석한 방시혁 하이브 의장이 “K팝의 성장세가 꺾이고 있다”며 위기론에 불을 지핀 것도 같은 맥락이다.
K팝 업계의 얘기를 들어보면 하이브 SM JYP YG 등 4대 기획사는 산업적으로 자본 축적의 단계로 접어들면서 ‘아이돌의 성공 방정식’을 갖는 수준까지 올라섰다고 한다. 개성 넘치는 멤버들을 모아 그룹의 분위기를 결정할 세계관을 부여하고, 유명 국내외 작곡가들이 세계관과 어울리는 노래를 만들게 한 뒤 다양한 홍보를 통해 데뷔시키는 것에 큰 리스크를 느끼지 않는다는 것이다. YG가 7년 만에 선보이는 걸그룹 ‘베이비몬스터’의 맛보기 영상은 데뷔 전인데도 이미 2억 뷰를 넘었다.
K팝의 놀라운 성취에도 불구하고 세계 음악 시장은 유니버설 소니 워너 등 3개사가 70% 가까이 점유하고 있고 한국은 2% 남짓하다. 노래, 춤, 스타일 등 K팝의 콘텐츠 생산력이 남부럽지 않을 정도가 됐다면 이를 잘 담고 재가공해서 유통할 글로벌 기업과 플랫폼이 필요하다. 이 같은 ‘비빌 언덕’이 없으면 반짝 인기로 끝나거나 세계 메이저 회사의 밑으로 들어가 ‘서브 장르’가 될 수밖에 없다. ‘비빌 언덕’은 K팝 외에 다양한 장르를 아울러 메이저 회사들과 대등한 영향력을 확보하면서 K팝이 마음껏 뛰어놀 마당(인프라)을 마련해줘야 한다.
영국 가수는 미국에서 성공하기 어렵다는 속설을 뒤집고 비틀스가 미국에서 성공리에 첫 공연을 마친 때가 1964년. 이때 미국 언론들은 ‘영국 침공(British Invasion)’이란 표현을 썼다. 이후 롤링스톤스, 엘턴 존, 딥퍼플, 레드제플린, 퀸 등 수많은 밴드들이 영국의 침공에 동참했다. K팝은 아시아를 뛰어넘어 세계로 가는 ‘한국 침공(Korean Invasion)’의 첫발을 뗀 상태. K팝의 K가 프리미엄 라벨이 될지, 흘러간 추억의 이니셜이 될지는 이제부터 하이브 카카오 등 엔터테인먼트 기업들의 글로벌화에 달렸다. 방 의장의 말대로 K팝의 삼성 현대가 필요하다.
서정보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