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흥읍에서 식사 후 차까지 마셨는데도 기어이 도화까지 간다.
해동호프에서 맥주를 마시니 모두들 술이 반 이상 취하는데 민수는 또
손님이 기다린다고 녹동에 가잔다.
술 안마시는 충섭이가 운전하여 회장님과 민수부부를 태우고 떠나고 난
마트에 들러 술을 더 사서 경동이 집에 간다.
경동이네도 애완견 한마리와 둘 뿐이다.
옛이야기를 하며 술을 더 마시다 어느 아이방에 자리를 해 줘서 잘 잔다.
눈을 뜨니 4시가 막 지난다. 목이 말라 싱크대에서 물을 마신다.
살그머니 나오는데 어제 본 개가 나와 꼬리를 흔들다가 내가 밖으로 나오자 컹 한번 짖는다.
둘의 잠이 깰까 미안해 얼른 계단을 내려와 도화천 옆을 걷는다.
거리는 바람이 불고 기온이 쌀랑하다. 다행이 가로등이 밝다.
여기서 2년간 살았던 적이 벌써 8년전이다.
도로는 더 말끔해진 듯하나 집들은 여전하다.
도화초 체육관 옆을 지나 학교 안으로 들어간다.
2층 복도에 불이 켜져 있다. 내가 살았던 사택을 보니 창문에 쇠창살이 덮였다.
쇠창살이 서기 전에 떠난 건 잘한 걸까? 내 후임이 여선생이었으니 방범창을 달았겠지.
못 믿을 세상이다. 어둠 속에서 나의 술 마신 흔적으로 찾으며 담장 위 사택으로 올라간다.
좁은 댓길을 따라 산길로 접어드니 아주 캄캄하다.
할 수없이 스마트폰을 꺼내 손전등을 켠다. 전력이 걱정된다.
새벽에 자주 올랐던 길을 부지런히 걷는다. 감기에 과음에 쩔은 몸은 잘 앞으로 나아간다.
50여분 지나 무너진 석성을 지난다. 금산의 바닷가 높이로 불빛이 빛나지만 아직 어둡다.
서쪽 하늘엔 반 이상 이지러진 달이 구름 위에 떠 있다.
무너진 석성을 따라 우마장산을 지난다. 왜 우마장산인지 끝내 알아보지 못했다.
안장바위 쪽을 지나자 동쪽이 붉어지며 진달래도 색깔을 드러낸다. 켰던 손전등 기능을 끈다.
소나나무 가지 사이로 안장바위를 보며 낑낑대며 올라 바위에 서서 천등산 쪽을 본다.
안장바위엔 들르지 않고 몇번 잠잤던 바위 옆의 테크까지 간다.
동쪽 하늘은 더 붉어졌다. 바람에 가득 피어난 진달래가 흔들린다.
철쭉고개로 내려가는 데크계단 양쪽으로 분홍 진달래 밭이다.
수락도 뾰족 봉우리 너머로 나로도쪽의 바다가 보인다. 팔영산도 해창만 너머로 흐리다.
금산 적대봉과 낮으막한 산봉우리 너머로 녹동 시가지도 보인다.
1년여 아침에 부지런히 올랐던 비봉산의 봉우리도여전하다.
천등산을 부지런히 오른다. 지난밤 바보가 전화해 감기약을 먹으라한 듯한데 먹었는지 모르겠다.
두통은 조금 사라진 듯한데 목은 여전히 가래가 들끓는다.
그리운 천등산이다. 고흥의 팔영산이 진산이라지만 동쪽에 치우쳐 주로 운암산과 천등산 그리고
적대봉이 더 잘 보인다. 천등에서 서서 예전처럼 사방을 둘러보며 사진을 찍어본다.
봉수대 봉우리는 안내판을 새로 세워 두었다.
바위 사이에 피어난 진달래를 보며 천천히 걷는다. 7시가 지나간다.
두시간 반 이상을 쉬지 않고 걸었으니 조금 힘이 떨어지는데 다행이 이제는 내리막길이다.
세찬 바람에 손을 주머니에 넣고 가파른 길을 내려간다. 가끔은 진달래 줄기를 붙잡기도 한다.
편한 능선을 걸으며 산복숭아꽃들을 만난다.
정상께에서 가끔 본 현호색이 군락을 이루고 있다.
봉삼이라는 백선의 초록 싹도 올라오고 있다.
능선길이 편안한데 길다. 미인치 이정표가 보이는데 채 1킬로가 안되는데 얼른 나타나지 않는다.
목이 마르다. 배는 고프지 않다. 땀도 바람에 날려 등짝도 젖지 않았다.
2011년 이맘 때 처음 도화로 왔을 때 중앙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몇은 차로 돌아갔고
동귀와 봉남이랑 남은 술병을 챙겨 이길을 걸어 고흥읍까지 가기로 하고
큰소리치며 나섰다가, 미인치에서 술에 취해 더 못 가고 풍양농업기술센터쪽으로 하산한 것이 생각난다.
그 땐 봉남이의 술을 이겨내지 못했는데 지난밤엔 또 뭔 오기로 그리 술을 마셨을까?
길 가의 꽃들을 보며 터덕터덕 내리막을 가니 나무가 없는 풀언덕에 임도가 돌자갈이 깔려
돌아가는 고개가 나타난다. 미인치다. 이제 8시를 지난다. 4시 20분쯤 나섰으니 3시간 반이상을
쉬지 않고 걸었다. 아니 꽃 앞에 무릎꿇으며 쉬었고, 옛생각하며 주변을 둘러보며 숨을 고르기도 했다.
나의 밥먹는 시간을 지난 탓인지 목이 말라 물이 필요한지 배가 고프다.
차라리 또 여기서 하산할까? 죽시에 국호 선배 택시타고 고흥읍에 데려다 달라고 할까?
충현이 생각도 나고 죽은 정준이 생각도 난다.
경동이가 진즉 전화해 약 가지고 나올수도 있다했으니 조금 먼저 오랄까?
안되지. 난 오늘은 조계산 건너 고흥읍까지 걸어갈거다.
풀밭을 벗어나니 길이 희미하다. 사람 다닌 흔적이 거의 없다.
조계산을 향해 오르막을 오른다. 능선에 가끔 이끼 낀 바위들이 나타나 조망을 열어준다.
내가 걸어 온길도 멀다. 서쪽으로 고흥만 득량도 넘어 장흥군쪽의 산들도 잘 보인다.
바위 끝을 걷는 맛이 좋다. 길이 사라져 보이지 않다가도 능선으로 돌아오면 길이 희미하게 나타난다.
미인치를 오르기 50분이 다 되어가는데 앞쪽에 암봉이 나타나며 날카로운 바위가 서 있다.
바위를 건너 저 편에 조계산 이정표 표기둥이 서 있다.
바위 끝을 조심스레 엉덩이를 내리고 건넌다.
조계산 정상석 바위는 펑펑하다. 바람을 맞으며 이리저리 돌면서 사진을 찍는다.
난 언젠가 고흥읍에 살 때 이산에 한번 왔었는데 그 때의 모습은 기억나지 않는다.
물 한모금 없으니 별로 쉴 일이 없다.
고흥읍쪽으로 길을 잡아 길없는 길을 헤치며 능선을 놓지지 않으려 애쓴다.
30여분 길없는 능선을 헤친다. 바지는 면바지에 위에는 등산 기능성 옷이긴 하지만 얇아 걱정인데
나뭇가지나 가시에 걸려도 올리 풀려 나오지 않는다. 비싼 옷도 아닌데 좋은 세상이다.
임도를 건너 또 한바탕 헤치고 내려오니 순창설씨 모 장군묘지가 나타난다.
여러개의 묘지를 지나 장전 저수지 옆으로 따라 마을로 들어선다.
9시 50분을 지난다.
바람을 이기며 수건으로 입을 가린다. 모자를 뒤집어 쓰고 마스크를 하니 강도같다.
주머니에 손을 넣고 교육청 앞을 지나 터미널도 지나 백림장을 거쳐 옛 군청 앞에 이르니
10시 반이다. 스마트폰 걸음수 옆에 거리를 보니 18.5km를 걸었다.
4시 20분부터 걸었으니 6시간 남짓동안 평균시속 3km 정도다.
고흥아문 앞에 내 차는 서 있다. 해장국집에 가서 황태해장국을 7천원 주고 먹는다.
배드민턴 동호회원들이 휴일 아침의 운동을 마치고 식사 후 헤어지고 있다.
소주 생각이 나는데 참고 반찬까지 남김없이 다 먹는다.
약 가지러 도화에 다시 들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