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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특집
가을 기차
이영춘
동경의 대상이던 기차,
기차만 타면 무엇이든 이루어질 것 같았던
어린 날의 꿈,
멜랑콜리한 감정을 기차에 싣고 태백준령을 달리거나
희망처럼 탁 트인 부산 앞바다를 달려간다
바퀴 구르는 소리에 잡념도 털어내고
획획 스쳐 가는 산과 나무와 들과 안개와 가을 잠자리와
한 몸이 되기도 한다
코스모스와 가을 잠자리와 여리게 우는 가을 나비 날개와
가을 기차를 탄다
하늘이 푸르게 달려
꿈의 반쪽을 오른쪽으로 기울게 하는 낮달,
나는 은하수로 흐르는 낮달을 따라
은빛 레일에 꿈의 한 조각을 싣고 달린다
방황의 저 끝에서 희망의 바퀴로 달리는
유리알 유희* 같은 이 가을날
*헤르만 헤세의 장편소설
노자의 무덤을 가다
한 줌 흙으로 돌아가는 사람을 보았다
한 줌 바람으로 날아가는 사람을 만났다
지상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지상은 빈 그릇이었다
사람이 숨 쉬다 돌아간 발자국의 크기
바람이 숨 쉬다 돌아간 허공의 크기,
뻥 뚫린 그릇이다, 의 그릇,
살아 있는 동안 깃발처럼 빛나려고
저토록 펄럭이는 몸부림들,
그 누구의 그림자일까?
누구의 푸른 등걸일까?
온 지상은 문을 닫고
온 지상은 숨을 멈추고
아무것도 없는 아무것도 아닌
그릇,
빈 그릇 하나 둥둥 떠 있다
그 숨소리 속에서 아득한 항해를…
시란 나에게 무엇인가? 구원인가? 족쇄인가?
살아가기 위한, 살아남기 위한 방패는 아니었을까?
영원한 미지수 시에게 고맙다. 나를 숨 쉬게 하고 나의 숨통을 트이게 하였으므로.
그대 그 숨소리 속에서 나는 오늘도 아득한 항해를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