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원본 메세지] ---------------------
2002 월드컵이 얼마 남지 않은 현재, 한국과 같은 조에 속한 폴란드, 포르투갈, 미국에 대한 전력 분석이 각 매체들을 통해 우후죽순 쏟아 지고 있다. 이 중 역시 포르투갈은 우리 한국에게는 솔직히 벅찬 상대라는 점은 모든 언론들과 전문가들이 공감하는 점이고 특히 세계 최고의 미드필더로 인정 받는 '루이스 피고'에게는 모든 스포트 라이트가 집중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포르투갈의 공격은 피고보다도 '이 선수' 발끝에서 시작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바로 마뉴엘 루이 코스타(Manuel Rui Costa)... 솔직히 한국에서는 피고의 그늘에 가려, 다소 과소 평가 받는 점이 없지 않은데 루이 코스타야 말로 포르투갈 대표팀의 실질적인 플레이메이커이다. 뛰어난 패스 능력, 넓은 시야, 화려한 개인기, 그리고 무엇보다도 각 공격수 입맛에 맞게 원하는 패스를 해주는 뛰어난 볼 배급 능력 등, 플레이메이커에게 요구되는 거의 모든 능력을 두루 갖춘 명실상부한 세계 정상급의 플레이메이커이다. 지난 여름 AC 밀란으로 이적하면서 기록한 이적료는 28m 파운드(476억원)이라는 거액으로, 이 액수는 멘디에타, 베론의 이적료와 비슷한 수준이다. 하지만 루이 코스타는 이들 맨디에타, 베론에 비해서 네임 발류(한국에서)가 상대적으로 낮은 편인데 그러나 이적료 액수에서도 알 수 있듯이 유럽에서는 루이 코스타가 얼마나 높은 평가를 받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실로 한 팀의 플레이메이커를 담당하는 선수는 축구에서 요구되는 거의 모든 능력을 두루 갖추어야 하고 거기에다 자신만이 가지고 있는 고유의 색깔도 입혀야 한다. 또한 현대 축구에서는 골을 넣은 스트라이커보다도 이제는 화려한 테크닉을 자랑하는 플레이메이커에게 더 많은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추세이다. 그리고 2002 월드컵은 베론, 지단, 토티 그리고 루이 코스타 같은 정상급 스타들이 총출동, 한마디로 플레이메이커의 경연장이 될 전망인데 이 중, 루이 코스타가 고전적이고 가장 '클라식한 플레이메이커'라 할 수 있다.
루이 코스타는 1972년 3월 29일, 포르투갈의 수도, 리스본에서 태어났고 90-91 시즌, 당시 하부 리그 팀인 파페(Fafe)에서 경험을 축적했다. 그러던 그가 본격적으로 주목을 받기 시작한 것은 널리 알려진 대로 91년 세계 청소년 대회였다.
자국에서 열린 본 대회에서, 근래 성인 대표팀 주전들로 성장한 루이 벤토(Rui Bento), 조르제 코스타(Jorge Costa), 루이스 피고(Luis Figo), 그리고 주앙 핀토(Joao Pinto-이들 중 주앙 핀토만이 89년 대회 우승도 경험한 유일한 선수) 등과 함께 조국, 포르투갈을 대회 2연속 우승으로 이끌며 '스타'로 부상한 것이다. 세계 대회에서 뛰어난 기량을 선 보인 이후, 그는 포르투갈을 대표하는 3대 명문 중 한팀인 벤피카 퍼스트 팀에 합류했고 1991년 11월 10일, 드디어 대망의 데뷔전을 치루게 되었다. 한때 체력적인 문제가 논란이 되어 과연 퍼스트 팀에 합류할 수 있을까 하며 주위의 우려를 사기도 했지만 결국 그는 데뷔골까지 기록하며 성공적인 데뷔전을 치뤄 냈다. 그의 나이 20살 때 일이었다. 그 데뷔전을 기점으로 루이 코스타는 팀 내 입지를 서서히 다져 나가는데, 결국 1991-92 시즌이 끝날 때는 '총 21경기에 출전, 4골 기록'이라는, 신인으로서는 대단한 성적표를 남기며 시즌을 마감했다.
92-93 시즌에는 23경기에서 리그골 4골을 기록했고 팀이 포르투갈 컵 우승을 달성하는데 견인했다. 그리고 이해, 성인 대표팀으로서의 생활도 시작하는데 그의 데뷔 경기는 93년 3월에 있은 대 스위스 전이었다. 즉, 청소년 대표팀을 세계 대회에서 우승으로 이끈 이후, 2년 만에 명실상부한 성인 대표팀으로 도약한 것이다.
93-94 시즌에도 34경기에서 5골을 기록, 팀이 포르투갈 리그 우승을 차지하는데 역시 일조를 하며 그의 기량은 나날이 발전해 나갔다. 특히 그 해에는 소속팀 벤피카가 유럽피언 컵 위너스 컵(European Cup Winner's Cup-현재는 UEFA 컵과 통합되어 사라진 대회)에서 예상 밖(?)으로 준결승까지 진출하는데는 누구보다도 루이 코스타의 역할이 컸다. 비록 벤피카는 결승 문턱에서 이탈리아의 강호, 파르마 벽을 결국 넘지 못했지만 그는 팀의 유일한 골까지 기록하며 분전했다. 파르마 전 골까지 합치면, 총 4골(컵 위너스 컵 대회 골만)을 성공, 공격수가 아닌 미드필더가 팀 내 최다 골을 기록한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런 유럽 무대에서의 인상적인 활약상으로 인해 그의 이름은 곧 여러 명문 클럽들의 영입 리스트에 오르며 주가를 높였다는 사실이 그로서는 더욱 중요한 일이었다.
이후, 그가 선택한 팀은 바로 이탈리아의 명문, 피오렌티나였다.
당시 피오렌티나는 Serie B에서 1년간 보내고 다시 Serie A로 승격, 구겨진 자존심을 되찾고 상위권 팀으로 또다시 도약하려는 강한 의지를 내 비췄던 시절로, 당시 감독, 라니에리는 루이 코스타를 영입하여 그를 중심으로 공격 라인을 정비했고 바티스투타와의 연계 플레이에 많은 기대를 걸었다. 바티스투타에게도 그렇지만 루이 코스타 역시 피오렌티나는 평생토록 결코 잊지 못할 팀이 분명하다. 그는 플로렌스에서 무려 7년간이나 머물면서 팬들의 열렬한 사랑을 받아 왔기 때문이다. 물론 수비 지향적 전술을 선호했던 당시 라니에리 시절에는 다소의 어려움을 겪기도 했지만 이후에는 탄탄대로 달려 왔다. 바티스투타의 화려한 골퍼레이드도 루이 코스타가 있었기에 가능했고 또한 그 외 여러 동료들에게도 하나 하나 세지도 못할 만큼 엄청난 수의 어시스트를 제공했다. 뿐만 아니라 중간 중간마다 기습적인 그의 중거리 슈팅 또한 상당히 위력적이었다.
95-96 시즌에 그는 팀을 이탈리안 컵(코파 이탈리아) 우승으로 이끌었고 98-99 시즌에는 선수 생활 이후, 처음으로 리그 골 두자릿수를 기록하게 되었다. 그는 모두 10골을 성공시켰고 뿐만 아니라 최고의 남미 투톱이라던 바티스투타, 에드문도와 함께 공격을 주도하며 팀을 근래에 들어 최고의 성적인 리그 3위에 올려 놓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그리고 2000-2001 시즌에는 어수선한 팀 분위기와 바티스투타마저 떠나서 여러 어려움을 처한 상황에서도 소속팀, 피오렌티나를 혼자 이끌다시피 하여 5년 만에 다시 이탈리안 컵 정상에 올려 놓았다. 그것은 피오렌티나를 떠나는 그로서는 오랫동안 지지와 변함없는 사랑을 보내 준 피오렌티나 팬들에게 주는 '마지막 선물'과도 같은 것이었다. 7년간 톱레벨에서 그의 활약상은 그로 하여금 세계 최고의 플레이메이커 중 한명이라는 수식어를 안겨 주었고 유로 2000을 계기로 그의 명성은 더욱 올라갔다.
사실 미드필더 진의 볼 다툼이 그 어느 리그보다도 치열한 이탈리아 Serie A 특유의 축구 환경이 플레이메이커들에게는 더욱 빛을 발할 수 있는 곳이다. 왜냐하면 프리미어 리그처럼 마치 권투 경기를 하는 냥, 양사이드를 오고 가는 그런 오픈 경기는 극히 드물고 미드필더와 수비 라인의 공간이 그만큼 좁기 때문에 허리 싸움이 곧 승부를 결정 짓는다. 그래서 완벽한 골 찬스가 상대적으로 적기 때문에 그런 골 찬스를 만들어 주는 플레이메이커들이 더욱 주목을 받을 수 있는 것이다.
지난 여름, 루이 코스타는 AC 밀란으로 이적했다. 밀란으로서는 굴리트, 사비세비치, 보반 등으로 이어져 내려 온 로조네리(Rossoneri) 플레이메이커 계보에 이제 "루이 코스타"라는 이름을 당당하게 올리게 되었고 AC 밀란도 특급 플레이메이커를 영입함으로 인해 상당한 전력 보강을 이룰 수 있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밀란으로의 이적에 관하여 그는 세계적인 축구 전문지, '월드 사커'와 인터뷰를 한 적이 있는데 그는 인터뷰에서 피오렌티나가 어려운 자금 사정 때문에 주축 선수들을 이적 시킬 꺼라는 소문이 돌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여전히 피오렌티나에 남고 싶었다고 말했다. 또한 처음에는 AC밀란 보다 7년 전, 그의 전 소속팀 벤피카에게 아픈 기억을 안겨 주었던 파르마 행이 더욱 유력해 보였다. 아무튼 그는 그의 가진 재능에, 이제는 여러 트로피도 안겨 줄 수 있는, 소위 말하는 빅 클럽, AC밀란 유니폼을 입게 되었다. 하지만 플레이메이커들이 팀을 옮기면 다소의 시간이 필요하다. 공격수들과의 발을 맞추는 데도 어느 정도 시간이 필요하고 또 짧은 시간에 공격 라인 전체가 새로 가세한 플레이메이커를 중심으로 전체적인 개편이 이루어 질 수는 없기 때문이다. 지단, 네드베드, 그리고 비록 오른쪽에 치우쳐져 있으나 플레이메이킹 능력도 상당한 멘티에타 등도 지난 여름, 팀을 옮기면서 초반 어려움을 겪었다. 그러나 아무리 그러한 점을 감안한다고 해도 루이 코스타의 밀란 생활은 실망에 가깝다. 물론 아직 시즌이 반 정도 남은 이 시점에 그의 영입은 실패라고 단정할 수는 없고 또한 여러 부상을 뒤따라 다녔지만 당초에 쏟아졌던 기대에는 너무나도 못 미치는 활약이다.
그 유명한 요한 크루이프는 그가 바르셀로나를 이끌던 시절, 덴마크가 배출한 최고의 선수 중 한명으로 꼽히는 마이클 라우드럽(Michael Laudrup)의 공백을 루이 코스타로 대신하려는 생각 할 정도였다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그 동안 피오렌티나를 이끌었던 라니에리, 말레사니, 트라파토니, 테림에 이르기까지, 루이 코스타는 항상 팀 전술의 중심에 서 있었다는 사실에서 알 수 있듯이... 또 보비 롭슨이 뉴캐슬 지휘봉을 잡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루이 코스타를 영입하여 '쉬어러-루이 코스타' 라인을 가동함과 동시에 그를 중심으로 새로운 팀을 만들려는 의지를 표현한 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그는 오래 전부터 유수의 감독들로부터 그 기량을 인정 받아 왔다.
물론 그에게도 약점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닌데 우선 가장 자주 언급되는 약점이 바로 그의 "inconsistency"... 즉, 기복이 심하다는 점이다. 실제로 그가 절정의 컨디션일 때는 '과연 어느 누가 그를 막을 수가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 가히 세계 최고다. 하지만 부진할 때는 그가 도대체 어디에 있는지 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활약이 미약한 경기도 적지 않았다. 그리고 또 다른 약점은 수비 가담 능력이다. 물론 공격의 실마리를 제공하는 플레이메이커라는 특성상, 그에게 많은 수비 가담은 기대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급변하는 현대 축구에서는 미드필더들에게도 어느 정도 수비 능력이 요구되는데 솔직히 루이 코스타는 그런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뒤에 위치한 수비형 미드필더에게 그만큼 수비 부담을 더 안겨 주는 셈이고 감독으로서는 그만큼 선택할 수 있는 전술의 폭이 한정될 수 밖에 없다. 다행이 포르투갈 대표팀에서는 피고라는 세계적인 선수가 공격의 일부분을 담당하기에 루이 코스타의 부담을 상당량 덜어 주고 있어 이러한 점이 문제점으로 부각되지 않고 있으며 오히려 무서운 파상 공격이 가능하게 되었지만 말이다.
앞서 시작에서도 언급했듯이 골을 넣는 스트라이커보다도 플레이메이커의 더 많은 시선이 집중 되는 것이 현대 축구이다. 물론 플레이메이커를 사용하는 전술을 채택한 팀에게만 국한되는 말이지만 그런 팀에 있어서 플레이메이커가 차지하는 비중은 가히 절대적이라 말할 수 있을 정도로 팀 전력에 큰 영향을 끼친다. 즉 11명이 하는 축구에서 특정 선수의 비중이 다른 10명의 선수들 보다 높다라는 뜻이고 그런 플레이메이커가 팀에 있음으로 인해 효율적인 공격을 할 수가 있으며 또한 불리한 경기 흐름을 한 순간에 바꿀 수도 있는 것이다. 잉글랜드의 경우, 오랫동안 개스코인의 공백에 연연한 이유가 걸출한 플레이메이커가 등장하지 않았기 때문이고 한국 역시 세계 수준의 플레이메이커가 없기 때문에 단조로운 공격 형태에서 벗어나지 못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한 점에서 볼 때, 가장 '전형적인 플레이메이커', '플레이메이커의 교본'이라 할 수 있는 루이 코스타를 보유한 포르투갈은 행복한 팀이라 할 수 있고 반대로 대중적으로 열렬한 지지를 받고 있는 윤정환을 보유하고 있으면서도 그가 과연 세계 무대에서도 통할까라는 우려 때문에 그를 배제한 우리 한국의 경우는 너무나도 아쉬운 점이기도 하다. 또한 요즘 AC밀란의 기복 있는 성적과 맞물려 루이 코스타도 비난을 면치 못하고 있지만 바로 우리들 눈앞에서 세계적인 플레이메이커의 환상적인 스루 패스를 감상할 수 있다는 그 사실만으로도 매니아층 축구팬들은 월드컵을 기다리고 또 고대하는 충분한 이유가 된다.
월드컵 예선전, 첫 경기, 대 에스토니아 전에서 첫 골을 기록한 선수가 바로 루이 코스타였다. 즉, 2002년 5월, 한국행 티켓을 얻기 위한 시작이 바로 루이 코스타 발끝에서 시작한 셈이다. 이후, 예선 전 10경기 중 총 8경기에 출장했고 교체도 없이 전경기를 90분 모두 소화하며 포르투갈이 16년 만에 월드컵 본선에 진출하는데 지대한 공을 세웠다. 그리고 AC 밀란에서도 조만간 예전의 모습을 찾을 것에 대하여 의심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
지난 유로 2000 때는 또 어떠했는가? 포르투갈-잉글랜드 전, 2-2 동점 상황에서 터진 누노 고메즈의 역전골, 필드의 오른쪽에서 수비수들의 견제에도 불구하고 필드를 가로 질러 누노 고메즈에게 그림 같은 '그 패스'를 기억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그 패스의 주인공이 바로 루이 코스타이며 그 하나의 패스만으로도 그의 진면목을 잘 알 수 있다. 즉, '그 패스 하나'가 '루이 코스타'라는 선수를 대변한다.
Profile
루이 코스타 [Manuel Rui Costa]
1972년 3월 29일 포르투갈, 리스본 출생 180cm 74kg
소속팀: AC 밀란
전 소속팀: Fafe, 벤피카 (이상 포르투갈), 피오렌티나 (이탈리아)
포지션: 공격형 미드필더
포르투갈 리그 데뷔: 91-92 시즌 | 포르투갈 리그 경기/골: 78/13
Serie A 데뷔: 94-95 시즌 | Serie A 경기/골: 215/38
01-02 시즌: 13/0 (02년 1월 18일 현재)
A매치 데뷔: 1993년 3월 (대 스위스) | A매치 경기 골: 66/20
커리어 하일라이트 : 세계 청소년 대회 우승(1991) 포르투갈 컵 우승(1993), 포르투갈 리그 우승(1994), 코파 이탈리아 우승(1996, 2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