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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헤브론선교회 원문보기 글쓴이: 빛으로
본문 : 사도행전2장1~13절
제목 :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예수님의 승천 후 이어진 ‘성령 강림’은 각 나라 방언으로 복음을 전하게 하고, 놀람과 조롱이라는 양극단의 반응을 불러일으킵니다.
예수님께서 승천하시고 제자들이 예루살렘 다락방에 120명이 단체로 모여 합심하여 전심으로 오직 기도하였고,
가룟 유다 자리 대신에 맛디아를 사도로 선출하였습니다.
그들은 오직 기도하면서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위하여
응답이 올 때까지 기도에 전념하였습니다.
오늘 본문은 오순절이 이르렀습니다.
그들이 다 같이 한 곳에 모였습니다. 여기서 그들은 120명을 말합니다.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앉아 있는 온 집에 가들 채웠습니다.
마치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들이 그들 각 사람위에 하나씩 임하였습니다.
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았습니다.
성령이 그들에게 임하시니까 그들은 성령의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을 말하기 시작하였습니다.(4절)
방언으로 각국 사람들이 서로 말을 했습니다.
각 언어로 하나님의 큰 일을 말함을 듣게 되고, (11절)
다들 놀랐습니다.(7절)
본문에 의하면 성령강림으로 말미암아 사람들이 방언을 하게 되었다는 것에 초점이 있지 않습니다.
'성령을 받으면 방언을 한다--방언을 하면 성령을 받는다'는 역순의 논리가 가능한 것인가 하는 것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그것은 불가능한 이야기입니다.
성령이 임하니까 방언을 하게 되었다는 것이 성령 받은 증거가 아니라.
사도들이 방언으로 전했던 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큰 일"이었습니다.
여기서 하나님의 큰 일이란, 베드로의 강론을 통해 알 수 있듯이 예수님의 십자가 사역입니다.
이를 보고 어떤 이들은 조롱하여 이르되 그들이 새 술에 취하였다고 하였습니다.
방언하지 못하면 성령 받지 못했다는 논리로 발전하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1. 오순절 성령강림사건(1~4절)
“[1] 오순절 날이 이미 이르매 그들이 다같이 한 곳에 모였더니 [2]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그들이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3] 마치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들이 그들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하나씩 임하여 있더니 [4] 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1) 오순절 날이 이르렀습니다(1절).
“[1] 오순절 날이 이미 이르매 그들이 다같이 한 곳에 모였더니”
오순절은 구약의 칠칠절(출23:16[맥추절]:레23:15~21, 신16:9~12)을 일컫는 신약의 명칭입니다.
보리의 첫 수확을 드리는 초실절(또는 수장절)로부터 50일째 되는 날입니다.
이 오순절 성령강림 사건은 사도행전 1:4~5에서 이미 언급된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이 성취된 것이며, 동시에 세례 요한이 내다본 ‘성령 세레’가 성취된 사건입니다.
또한 구약성경에서 이미 예언되었던 이사야 32:15과 요엘2:28~32 말씀이 성취된 사건입니다.
이 성령 강림 사건은 종말론적으로 말세가 도래했음을 아리는 역사적 사건입니다.
2) 성령이 각 사람에 임하였습니다(2~3절)
“[2]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그들이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3] 마치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들이 그들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하나씩 임하여 있더니”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나고 불의 혀 ‘처럼’ 갈라지는 것들이 각 사람 위에 임했다고 서술합니다.
이러한 두 개의 유비는 모두 구약에 나타난 하나님의 현현(顯現)을 연상시킵니다(삼하22:16, 욥37:10, 겔13:13).
바람은 하나님의 임재를 나타내는 성령을 상징하고,
불 역시 구약의 하나님의 현현 사건에서 목격되는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로써 독자들은 시내산 사건을 연상하게 되고 (출19:18), ‘성령 세례’에대한 세례요한의 예언과 직접적인 연관성을 떠올리게 됩니다(눅3:16).
3) 성령의 말하심에 따라 다른 언어로 말하기 시작합니다(4절)
“[4] 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외형적으로 나타나는 현상과 함께 무형적으로 성령이 제자들에게 임했음을 보여 줍니다.
‘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누가는 여기서 그들에게 성령이 임하는 체험을 ‘채우다’(핌플레미)라는 동사를 사용해서 서술합니다.
누가는 사도행전에서 이 동사 외에도
‘성령을 받다’(람바노, 행2:33, 38, 8:15, 17, 19, 10:47, 19:2),
‘성령을 주다’(디도미, 행5:32, 8:18, 11:17, 15:8),
‘성령을 부어주다’(엑케오, 행2:17, 18, 2:33, 10:45),
‘성령으로 세레를 받다’(밥티조, 행1:5, 11:16),
‘성령이 네려 오다’(에피핍토, 행8:16, 10:44, 11:15),
‘성령이 오다/ 임하다’(에르코마이, 행19:6),
‘성영으로 채워지다’(핌플레미, 행2:4, 4:8, 4:31, 9:17, 13:9),
‘성령으로 채워지다’(플레로오, 행13:52)의 아홉 가지 다른 동사를 사용합니다.
이와 더불어 ‘플레로오’동사의 형용사적인 플레레스도 성령 충만함을 나타내는 데 사용됩니다(행6:3, 5, 7:55, 11:24).
4) 성령에 관한 개념 세 가지
성령에 관해 서술하는 누가의 용례들을 종합해보면,
사도행전에서 성령에 관한 개념은 크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1) 종말론적인 선물로서의 성령입니다.
위의 아홉 가지 동사 중 처음 일곱 가지 동사는 사도행전2,8,10,19장의 ‘성령 강림’ 사건을 서술할 때 사용됩니다.
누가는 이 네 경우를 신자들의 삶 속에 나타나야 할 일종의 규범이 아닌,
초대교회에서 일어난 단일회적인 구속사적 사건으로 이해합니다.
누가는 이 본문들을 통해 구약에서 약속된 종말론적인 성령강림 사건이 어떻게 유대인과 사마리아인과 이방인에게 성취되었는지를 보여줍니다.
(2) 그리스도인의 성령 충만한 삶을 나타냅니다.
누가는 신자들에게 내재하시는 성령에 관해 이야기 할 때는 형용사 플레레스와 동사 프레로오스을 사용해 ‘성령 충만’을 표현합니다(행6:3, 5, 7:55, 11:24, 13:52).
일곱 ‘집사’나 스데반, 바나바의 성령 충만한 삶을 묘사하며,
핍박 가운데서도 기쁨을 경험하는 초대교회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누가의 용법은 사도 요한이나 바울이 그리스도인들의 성령 충만한 삶의 중요성을 피력할 때의 의미와 유사합니다.
(3) 말씀 선포를 위한 성령 충만함입니다.
누가는 이미 성령을 ‘받은’사람이 성령으로 충만해지는 (핌플레미)모습을 소개합니다(행2:4, 4:8, 4:31, 9:17, 13:9).
핌플레미 동사가 사용될 때는 성령의 능력이 일시적으로 강하게 나타나는 경우에 해당합나디.
따라서 우리는 사도행전에 나타난 누가의 성령론을 단순히 전통적인 견해를 따라 구원론적인 측면에서 그리스도인의 회심에 관한 것으로만 이해하거나, 오순절주의자들의 견해를 따라 복음 증거를 위한 성령의 능력으로만 이해해서는 안 됩니다.
이는 극적 체험이라기보다는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순종이 열매를 맺는 삶이 더 중요함을 말해 줍니다.
오순절 성령강림 사건은 하나님의 구속사에서 마지 막 때를 알리는 사건이며, 성령이 만인에게 임하는 길이 열린 단일회적인 역사적 사건입니다.
누가는 분명히 이 사건을 ‘아버지게서 약속하신 것’(행1:4, 욜2:28~32), 세례요한이 말한 ‘성령 세례’(행1:5), 예수가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이라고 예고한 것(행1:8)이 이루어진 사건으로 서술합니다.
베드로는 이 사건을 가리켜 하나님 우편으로 고양된 예수가 ‘그가 약속하신 성령을 하나님 아버지께 받아서 너희가 보고 듣는 이 것을 부어주신 것’이라고 분명하게 밝힙니다(행2:33).
예컨대, 찬송가 가사 중에 ‘성령이여 강림하사’는 성령 강림사건이 다시 반복되기를 구하는 소망의 찬양이 아닙니다.
그것은 이미 우리 가운데 임재하신 성령이 삶속에 충만하여,
우리가 역동적인 신앙의 삶을 살아내기를 원한다는 간구입니다.
‘다른 언어들로’(헤테라이스 글로사이스)는 제자들이 말한 언어가 다른 사람들은 알아들을 수 없지만, 그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은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였음을 시사합니다.
백이십 명이 각각 말하는 언어가 모두 다른 언어였는지, 아니면 그들이 말하는 말이 각각 다른 언어로 들렸는지는 확실히 결정할 수 없습니다.
다만, 14절 이하의 베드로 설교를 청중이 모두 이해한 것으로 보아, 이는 초자연적인 사건으로서 듣는 이들이 각각 자기 언어로 이해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행2:14에 대한 ‘도움말’, 아포프쎙고마이의 의밀 참조하라
5) 성령 충만하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1) 성령 충만은 성령의 “인도를 받고 능력을 받는 것”을 의미 합니다.
“충만”이란 말은 “지배를 받는다”는 뜻으로, 우리 안에서 사시는 성령의 능력을 통하여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지배하시는 것을 의미합니다.
(2) 성령 충만에는 의지적 행동이 포함되어야 합니다.
(3) 성령 충만은 하나님을 의지함으로써 다음 네 가지를 가능하게 해줍니다. ① 성령은 우리가 거룩한 삶을 살 수 있게 해줍니다(벧전1:14~16)
② 성령은 영적 열매를 맺게 합니다.(갈5:22~23, 마4:19)
③ 성령은 하나님의 말씀을 이해하고 적용하게 합니다.(요16:13)
④ 성령은 우리가 일상의 문제들을 극복하고 성공적인 삶을 살게 해줍니다.
2. 성령은 누구십니까?
1) 성령은 하나님 이십니다.
성령은 성부, 성자 하나님과 동등하신 삼위일체의 제삼위이십니다.
성령은 모든 점에서 아버지와 아들과 동등하시며,
하나님의 모든 속성을 소유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속성은 절대적 속성과 보편적 속성이 있습니다.
[절대적 속성]
무한하시고(열왕기하8:27), 영원하시고(이사야 57:15), 전능하시고(예레미아32:17,27), 편재하시고(시편139:7-12), 전지하시고(요한일서3:20), 미리아시고(이사야48:3,5), 지혜로우시고(사도행전15:18), 영광스러우시고(히브리서1:3), 보이지아니하시고(골로새서1:15), 변하지않으시고(히브리서13:8), 시간간의 제한을 받지않으시고(베드로후서3:8), 측량치못합니다(롬마서11:33)
[보편적 특성]
선하시고(시편4:23), 악을 싫어하시고(시5:5-6) 거룩하시고(요한 계시록4:8),
공정하시고(베드로전서1:17), 공의로우시고(시편89:14), 오래 참으시고(출애급기34:6-7), 사랑이시고(요한일서4:8.16), 자비하시고(예르미아애가3:22,23), 진실하시고(시편117:2), 보응하시고(신명기32:34_41) 진노하십니다(신명기32:22).
따라서 성령님도 이와 같은 하나님의 속성을 가지고 있으면서
그는 무한한 지성(고전2:11)과 의지(고전12:11)와 감정(롬15:30)을 가지셨습니다.
2) 성령은 그리스도의 영입니다.
성령은 그리스도의 보냄을 받아 그리스도의 일을 하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안에 =성령안에, 이는 서로 교대적으로 사용할 수 있습니다.
성령은 성경에서
① 비둘기(마3:16,막1:10,눅3:22,요1:32),
② 불(행2:34)로, ③ 물(요7:37~39)로, ④ 바람(요3:8,행2:1~24),
⑤ 기름(히1:9,시45:7)으로, ⑥ 능령으로 옷 입는(눅24:49)것이 형상으로,
⑦ 성령의 보증(고후1:22, 5:5, 엡1:14)으로 표현되었고,
⑧ 인칭(고후1:22,엡1:13,4:30)으로 표현되었습니다.
그리고 성령은 여러 가지로 불리웁니다.
하나님의 영(고전3:16), 그리스도의 영(롬8:9), 생명의 성령(롬8:2),진리의 영(요16:13), 은혜의 성령(히10:29), 약속의 성령(엡1:13) 등으로 불리웁니다.
3. 성령은 왜 오셨는가?
성령은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시고,
모든 믿는 자들을 진리가운데로 인도하시고,
그를 영화롭게 하기 위하여 오셨습니다(요16:7,13,14).
예수님께서 아버지를 높이시고 드러내시기 위해 오신 것처럼,
성령께서도 예수 그리스도, 즉 아들을 높이고 영화롭게 하기 위해 오셨습니다.
그러므로 성령의 지배를 많이 받으면 받을수록 주님을 더욱 사랑하고,
섬기게 되며, 우리가 성령 충만함을 받을 때 그리스도로 충만해지게 됩니다.
성령이 한번 임하면 다시 임할 필요가 있는가?
한 번 임한 성령은 떠나시지 않습니다.(요10:28~29)
*요10:28~29절 “[28] 내가 그들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또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29] 그들을 주신 내 아버지는 만물보다 크시매 아무도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수 없느니라”
하지만 “성령을 소멸시키지 말며(살전5:19), 근심시키지 말라(히13:17)”고 하신 것은 우리에게 성령의 충만을 위하여 기도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잘못으로 성령의 능력을 소멸시킬 수 도 있기 때문에 성령의 충만은 다시 임할 수 있습니다.
박윤선 박사는 성령 충만에 대하여
『“일상적인 계속적인 충만”과 “위로부터 특정한 때에 부어주시는 충만”은 동사가 다르다. 성경은 양쪽 언어를 다 사용하신다. 성경의 저자가 기록한대로 따라 가면 된다. 한 번 성령이 충만하여도 우리 속에 성령이 약화될 수 있기 때문에(성령을 근심시키거나 성령을 훼방할 때)우리는 충만하게 부어주시기를 기도해야 한다』하였습니다.
4. 무리의 반응(5~13절)
1) 제자들이 다락방에서 나와 밖으로 나간 것을 전제합니다(5절)
“[5]그 때에 경건한 유대인들이 천하 각국으로부터 와서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더니”
오순절을 지키기 위해 흩어진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으로 올라왔습니다.
경건한 유대인들은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이거나 유대교로 개종한 자들을 가리킵니다.
2) 큰 무리가 모여 각각 자기의 방언으로 제자들의 말하는 것을 듣고 소동합니다(6절).
“[6] 이 소리가 나매 큰 무리가 모여 각각 자기의 방언으로 제자들이 말하는 것을 듣고 소동하여”
누가는 갈릴리 출신 사람들이 어떻게 다양한 언어를 구사할 수 있었는지에 대해 사람들이 놀랐음을 기술하고 있습니다.
3) 디아스로라 순례자들의 출신 지역의 방언으로 듣게 됩니다(7~11절)
“ [7] 다 놀라 신기하게 여겨 이르되 보라 이 말하는 사람들이 다 갈릴리 사람이 아니냐 [8] 우리가 우리 각 사람이 난 곳 방언으로 듣게 되는 것이 어찌 됨이냐 [9] 우리는 바대인과 메대인과 엘람인과 또 메소보다미아, 유대와 갑바도기아, 본도와 아시아, [10] 브루기아와 밤빌리아, 애굽과 및 구레네에 가까운 리비야 여러 지방에 사는 사람들과 로마로부터 온 나그네 곧 유대인과 유대교에 들어온 사람들과 [11] 그레데인과 아라비아인들이라 우리가 다 우리의 각 언어로 하나님의 큰 일을 말함을 듣는도다 하고”
누가가 그들의 출신 장황하게 나열한 이유는 무엇일까?
누가는 디아스포라의 여러 지역에서 온 사람들이 오순절 성령강림 사건을 목격했고, 그들이 자기 고향으로 돌아가 ‘하나님의 큰 일’을 널리 알렸음을 암시하려 했을 것입니다.
4) 서로 당황하여 다 놀라며 어떤 이들은 조롱하였습니다(12~13절)
“[12] 다 놀라며 당황하여 서로 이르되 이 어찌 된 일이냐 하며 [13] 또 어떤 이들은 조롱하여 이르되 그들이 새 술에 취하였다 하더라”
다 놀랐습니다. 당황하였습니다. 서로 어찌 된 일이냐고 의하해 했습니다.
성령 받지 않은 자들은 성령 받은 자들을 향해 술에 취하였다고 조롱했습니다(13절).
성령 받지 않은 자들은 교회를 향해 늘 조롱할 수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에게는 성령이 없기 때문입니다.
성령이 없기 때문에 성령께서 하시는 일을 도무지 알 수가 없게 되어 있습니다. 도리어 육은 성령을 항상 거스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에 문제를 일으키는 것은 성령 받지 않은 자가 들어와 있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오직 그리스도의 십자가만 이야기하는 곳이어야 합니다.
그것이 성령이 주장하시는 교회의 모습입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오순절에 예수가 약속하신 성령이 임하셨습니다.
성령이 각 사람에 임하여 그들을 새 이스라엘 백성으로 부르시고, 하나님 나라의 증인으로 삼으십니다.
성령 충만을 받은 제자들은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각각 세상의 다른 언어로 말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갈릴리 출신의 제자들이 갈릴리 말이 아니라 자기들의 지역 언어로 말하는 것에 깜짝 놀랐습니다.
이는 성령이 오심으로 하나님 나라가 유대 땅의 경계를 넘어 땅 끝까지 전파될 것임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성령의 사람들은 세상 사람들과 전혀 다른 가치관으로 말하고 전혀 다른 방식으로 말하는 자들입니다.
갈등하고 분열하고 파괴하는 언어가 아니라 세우고 고치고 붙들어주는 언어를 사용하는 자들입니다.
바벨론 사람들(창11장)은 스스로 모여서 자기 이름을 내려 하였고, 결국 하늘까지 닿는 대를 쌓다가 다양한 언어로 나뉘어 흩어지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성령의 사람들은 탐욕의 소통을 중단하고 사랑의 소통을 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교만과 자기주장으로 가득한 옛 사람들을 잊고, 오로지 예수가 자기 안에서 왕 노릇 하시도록 자기를 부인하는 사람입니다.
성령의 술에 취하여 이기적이고 탐욕스런 말 대신 사랑과 격려의 말로 소통하는 사람입니다.
성령이 임한 공동체는 세상이 이해할 수 없는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우리 외지교회가 새해를 맞이하여 성령의 첫 열매 공동체, 성령으로 소통하는 공동체, 성령의 새 술에 취하는 공동체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하나님은 어떤 분입니까?
1) 오순절은 유월절로부터 50일이 되는 날로, 밀의 첫 수확을 감사하는 축제(레23:15~21)이자 시내산에서 율법을 받은 역사적인 날입니다(1절).
십자가의 죽으심으로부터는 50일, 승천이후 10일이 니난 그 뜻깊은 날에 임한 성령으로 교회는 시작되고, 풍성한 영적 수확(열매)을 기대하게 됩니다.
2) 바람과 불은 하나님의 임재와 능력을 상징합니다(2~4절).
그 초자연적 능력이 기도하고 있던 제자들에게 임하였습니다.
하나님을 등지고 떠났고, 충실한 제자의 길을 걷지 못했던 사도들에게 주시는 선물입니다.
지금도 성령은 하나님을 찾는 자들에게 찾아오십니다.
세상 끝까지 복음을 들고 가도록 능력을 주십니다.
내 실패와 단점을 곱씹지 말고, 주의 임재 앞으로 나아가 주의 능력을 덧입으십시오.
나(우리)에게 주시는 교훈은 무엇입니까?
1) 다른 언어로 말하였음에도 (4,6,8,11절) 서로 소통이 가능했습니다(6~8,11절).
성령으로 타인의 언어와 문화를 이해하게 되고, 하나님께서 행하신 큰일을 서로 말하게 됩니다.
기독교인끼리만 알아듣는 말이 아니라 세상이 알 수 있도록 그들의 언어로 대화하고 공감하고 전도해야 하지 않을까요?
2) 천하 각국의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합니다(5,9,10절).
세계 곳곳에 흩어진 디아스포라들과 경건한 이방인들이 살던 지역 열다섯 곳이 나열됩니다.
그들은 돌아가서 목격한 바를 증언할 것입니다.
꾜회는 인종과 국가, 지역을 넘어 보편적이고 국게적인 공동체로 출범했습니다.
우리 교회는 외국인이나 이주님에게 복음을 저하기 위해 무엇부터 할 수 있을 까요?
3) 제자들의 변화를 보고 어떻게 된 일이냐며 사람들이 묻습니다(12,13절).
학습하지 않았는데 외국어를 구사하고, 그것으로 담대하게 전도합니다.
성령의 사람은 세상의 틀로 해석이 안 됩니다.
그래서 더러는 술 취한 것으로 오해합니다.
그러나 그들로 하여금 묻게 한 점, 오해가 전도의 실마리가 되었습니다.
내게도 사람들이 어떻게 된 거냐고 물을 만한 변화가 있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