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걱봉과 가리봉
掛在虛空任往還 허공에 매달려 멋대로 왔다갔다
巍巍秀出揷靑天 우뚝하게 솟아올라 푸른 하늘에 꽂혀 있네
東西南北無依倚 동서남북 어디에도 의지함이 없어
高鎭層尖獨峭然 층층이 뾰족한 곳을 높이 누르며 홀로 초연하여라
―― 나옹선사(懶翁禪師, 1320∼1376), 「허공에 걸린 봉우리(懸峰)」
▶ 산행일시 : 2020년 10월 3일(토), 흐림
▶ 산행인원 : 4명(캐이, 그러지마, 두루, 악수)
▶ 산행시간 : 9시간 20분
▶ 산행거리 : 오룩스 맵 도상 12.6㎞
▶ 교 통 편 : 그러지마 님의 승용차로 가고 옴
▶ 구간별 시간
06 : 10 - 잠실역 9번 출입구 출발
07 : 10 - 홍천 화양강 휴게소
08 : 20 - 원통, 갈골교, 갈골 마을, 산행시작
09 : 32 - 676.6m봉
10 : 10 - 832.0m봉
11 : 36 - △793.2m봉, 임도, 전차주차장
11 : 50 ~ 13 : 30 - 임도, 점심
13 : 40 - 설악산 전망대
14 : 00 - 임도 삼거리
14 : 17 - △1,044.9m봉
14 : 26 - 전망바위
14 : 58 - 945.8m봉
15 : 40 - 임도 종점, 전차주차장
15 : 46 - 832.2m봉
17 : 40 - 갈골 마을, 갈골교, 산행종료
18 : 10 ~ 19 : 25 - 인제, 저녁
22 : 08 - 잠실역, 해산
1-1. 산행지도(국토지리정보원 지형도, 설악 1/25,000)
1-2. 산행지도(국토지리정보원 지형도, 설악 1/25,000)
원통 가는 길. 터널을 지날 때마다 날씨가 변한다. 비가 오는가 하면 날이 갠다. 이래서는 한
계고성을 경유하여 안산을 오르려던 당초 계획은 실행하기 곤란하다. 연무가 낮게 드리워 조
망이 어렵겠거니와 골짜기 슬랩은 또 얼마나 미끄러울 것인가. 기수를 돌려 안산 맞은편인
가리봉 서릉의 끝자락을 오르기로 한다. 북천을 원통교로 건너고 천변 도로 따라 갈골 마을
로 들어간다.
나는 원통을 원통(圓通)으로 잘못 알았다. 불교 용어인 주원융통(周圓融通)의 준말로 두루
걸림이 없다는 곧 지혜에 의해 깨달은 진여(眞如)의 상태 또는 그 이치라는 거룩한 말에서
따온 줄로 알았다. 진여(眞如)는 우주만유(宇宙萬有)의 실체로서 인간의 사상과 개념으로는
미칠 수 없는 상주불변의 절대적 진리라고 한다. 이해하기 어려운 경지다.
이곳 원통은 원통(元通)이다. 아무런 뜻이 없다. 국립국어원의 국어표준대사전에도 나오지
않는 말이다. 굳이 한자를 풀이하자면 ‘으뜸으로 통한다’는 말이다. 원통이 교통의 요충지이
기는 하다. 국토정보플랫폼의 지명사전에 의하면 옛날 이 고을 원님이 와서 보고, 들은 넓으
나 큰 강으로 인하여 넓은 들이 장마에 황무지가 되겠으니 원통하다고 탄식을 하여 원통이라
한단다.
그래서였을까? 한국전쟁 때의 일이다. 1951년 6월 10일 인제지구 전투에 참가한 유엔군 제
3군단 부대가 부근에 매복하고 있던 북한군의 기습을 받아 일대 격전 중 작전상 후퇴를 위해
원통 바로 아래 인북천을 도하하려고 할 때 쏟아진 폭우로 강물이 범람하여 대부분의 부대원
들이 거센 물살과 적의 사격에 원통하게 목숨을 잃었다.
갈골은 갈골(葛谷)이 아니다. 칡이 아닌 갈대밭이 있는 골짜기라 하여 갈골이라 한다. 갈골
마을 동구의 갓길에 주차하고 농로를 오른다. 비는 내리지 않지만 잔뜩 흐렸다. 대기는 서늘
하다. 운암아파트 왼쪽으로 소로의 산길을 잠깐 올라 임도와 만나고 임도 따라 산자락을 돌
다가 약간 깊은 골짜기를 지나기 전에 오른쪽의 잣나무 숲 사면을 오른다.
곧추선 오르막이다. 이런 데는 오르기보다 내리려가기가 더 힘들겠다며 달달 긴다. 이런 곳
에 잣나무를 조림한 사람도 있는데 하며 캐이 님이 선등하더니 스파이더맨처럼 날렵하게 오
른다. 한 피치 바짝 올라 능선을 붙잡자 한적한 인적이 오래 된 교통호와 동무하여 앞서간다.
그래도 가파르다. 군인의 길이다. 때 이르게 비지땀 흘린다.
오르막이 잠시 주춤한 데서는 토치카가 두 눈을 부릅뜨고 우리를 지켜본다. 좌우 살피니 양
쪽 사면의 분위기는 매우 좋다. 풀숲에는 참나무와 소나무가 어울려 자란다. 토질은 마사토
가 약간 섞였다. 바위 또한 심심찮게 나타난다. 송이나 능이가 자생하기에 썩 알맞은 조건이
라고 한다. 일행들은 등로 벗어나 사면을 누비고, 나는 조망을 찾아 이곳저곳을 기웃거린다.
2. 갈골교 주변의 코스모스
3. 등로 주변의 생강나무(Lindera obtusiloba Blume)
4. 능이(能栮)
5. 안산
6. 가운데는 귀때기청봉, 그 오른쪽 뒤는 대청봉
7. 왼쪽은 귀때기청봉, 오른쪽은 주걱봉과 가리봉
8. 주걱봉과 가리봉
9. 안산, 당초에는 안산의 오른쪽 골로 오르는 한계고성을 가려고 했다.
등로 주변에 노랗게 물든 생강나무를 자주 본다. 강원도에서는 생강나무를 동백나무라고 한
다. 김유정(金裕貞, 1908~1937)의 단편소설 『동백꽃』으로 널리 친근해지게 되었다. 소
설 『동백꽃』의 절정은 다음 끝부분이 아닐까 한다. 봄이면 노랗게 피는 생강나무 꽃은 정
말 코끝이 알싸할 정도로 향긋하다.
“닭 죽은 건 염려 마라, 내 안 이를 테니.”
그리고 뭣에 떠다밀렸는지 나의 어깨를 짚은 채 그대로 퍽 쓰러진다. 그 바람에 나의 몸뚱이
도 겹쳐서 쓰러지며, 한창 피어 퍼드러진 노란 동백꽃 속으로 폭 파묻혀 버렸다. 알싸한, 그
리고 향긋한 그 냄새에 나는 땅이 꺼지는 듯이 온 정신이 고만 아찔하였다.
교통호 넘어 벙커 위에서 가쁜 숨을 돌리고 나서 암봉인 676.6m봉은 등로 따라 왼쪽 사면으
로 돌아 넘는다. 그리고 가파르고 길게 오른 832.0m봉에서 휴식한다. 지금까지의 수확물을
내보이는데 캐이 님이 장원이다. 능이 한 무더기를 캤다. 능이는 오늘 산행 중 그뿐이다. 캐
이 님은 순전히 우연한 운이라지만 운도 실력과 노력의 바탕 위에서 따르는 법이다.
일본 속담에 ‘일립백행(一粒百行)’이라는 말이 있다. 쌀 한 톨을 만들기 위해서는 백 가지의
노고가 필요하다는 말이다. 능이 한 송이를 캐기 위해서도 일립백행의 무진 애를 써야 한다.
능이를 오로지 발로 빚었다. 3만보가 훨씬 넘는 발걸음으로 말이다.
832.0m봉에서 등로가 순한 임도가 시작되는 △793.2m봉까지 다섯 좌의 첨봉을 넘어야 한
다. 첫 두 좌는 직등하기 어려운 숨은 암봉이다. 돌아가는 사면도 가파른 슬랩의 연속이라 여
간 까다롭지 않다. 봉봉 오르고 내리는 굴곡이 꽤 심하다. 사면 돌 때는 혹시 엉뚱한 능선으
로 빠질까봐 연호에 이어 수시로 지도를 들여다본다.
전차주차장(?)이 나오고 군사도로인 임도가 시작된다. 임도는 능선과 바로 이웃하며 가고
안부마다에서 서로 만나니 임도 따른다. 임도는 인적이 뜸해 능선의 방화선과 똑 닮았다. 임
도 벗어나 직등하여 △793.2m봉을 들른다. 흙 쓸어 판독한 삼각점은 ‘설악 446, 2007 재
설’이다. 나도 물욕이 동하여 몇 번 사면을 훑었으나 역시나 빈손이다. 마음을 비웠다는 내
말을 산신령님이 참말로 알아들었나 보다.
859.5m봉 아래 오르막이 잠시 주춤하고 거목의 참나무가 드리워 그늘진 임도 한가운데에서
점심자리 편다. 오늘 산행의 점심도 맛 기행에 나옴직한 산상성찬이다. 삼겹살, 능이와 만두
넣은 라면, 도시락, 반주는 꼬마 양주, 식후 입가심은 마가목주 얹은 커피다. 이러다 천고마
비라는 계절에 천고악비가 되지 않을까 심히 걱정된다.
10. 등로 주변
11. 한석산 서릉 △984.8m봉
12. 앞 능선이 원통으로 간다. 멀리 가운데는 매봉산
13. 앞 능선은 한석산 서릉 끝자락
14. 오른쪽 중간 동네는 인제
15. 사명산(?)
16. 아래 왼쪽 동네는 인제, 멀리 가운데는 사명산(?)
17. 한석산 서릉 △984.8m봉
임도가 오른쪽으로 산허리를 돌아가는 지점이다. 이정표가 백두대간 트레일을 안내한다. 우
리가 온 길은 이정표에 ‘길 없음’이다. 여기서 북동쪽으로 뻗은 임도를 50m쯤 내려가면 설악
산 전망대가 나온다. 오늘 산행 중 최고의 경점이다. 설악의 서북주릉 안산, 귀때기청봉, 대
청봉과 남설악 주걱봉, 가리봉을 한 눈에 바라볼 수 있다. 나옹선사의 시구처럼 우뚝하게 솟
아올라 푸른 하늘에 꽂혀 있다(巍巍秀出揷靑天).
임도 트레킹 한다. 여태 사면을 누비느라 지치기도 하여 임도를 따라 가는 것이다. 임도 삼거
리. 왼쪽은 덕적리 하덕으로 가고 오른쪽이 원통으로 간다. 몰론 왼쪽 임도를 조금 더 가면
주걱봉과 가리봉으로 이어지는 능선과 만난다. △1,044.9m봉은 임도에서 180m 벗어나 있
다. 캐이 님과 나 둘이서 들른다. 부드러운 능선이라 금방 그 정상이다. 삼각점은 ╋자 방위
표시 새긴 사각 돌기둥이다.
1,044.9m봉을 약간 내려 능선 길로 서진하면 임도로 내리기 직전의 절벽 위가 전망이 훤히
트이는 일대 경점이다. 한석산의 장릉과 그 오른쪽 끝 인제, 첩첩산중 우뚝한 사명산이 보인
다. 임도 트레킹은 계속 이어진다. 저 산모퉁이에서 오른쪽 능선이 원통으로 가리라 하고 거
기에 가면, 원통으로 가는 능선이 다시 나타나기를 반복한다. 하도 이상하여 지도 들여다보
니 우리는 원통으로 가는 능선을 가고 있다. 원통으로 갈 것으로 보이는 능선은 지능선들이다.
교통호 길게 두른 945.8m봉은 나 혼자 들른다. 키 큰 나무숲 둘러 아무 조망 없다. 임도에 쓰
러진 거목을 잇달아 헤쳐 나간다. 임도가 능선보다 더 험하다. 우리가 아침에 오른 능선이 침
봉의 연속이었다. 그때는 몰랐는데 보기 좋다. 전차주차장(?)이 나오고 임도 종점이다. 오늘
산행의 등로는 기이하게도 1,044.9m봉을 중심으로 좌우대칭이다. 구불구불한 임도가 그렇
고, 832m봉이 그렇고, 능선의 교통호가 그렇다.
임도가 끝나고 곧바로 오르는 832.2m봉이 첨봉이다. 왼쪽 사면으로 우회하는 길이 있지만
거기에 오르면 또 다른 조망이 트일까 하여 직등한다. 가파른 슬랩을 돌부리와 나무뿌리 움
켜쥐고 오른다. 오금이 저릴까봐 아래는 내려다보지 않고 앞만 보며 암벽에 밀착하여 오른
다. 암봉이다. 그런데도 조망은 무망이다. 노송이 사방을 가렸다.
832.2m봉 반대편 내리막길부터는 이정표가 안내하는 등로로 잘 다듬었다. 가파를만하면 통
나무계단이나 밧줄 핸드레일을 설치했고 가파름이 멈칫한 데는 벤치를 놓았다. 교통호와 함
께 줄달음하는 중에도 암봉이 나오면 꼬박 들러 수렴 걷고 설악 서북주릉과 가리봉을 내다본
다. 360m봉. 마침내 파장이다. 이정표는 갈골 쪽이 제4등산로다. 사면 돌아 농로에 다다르고
갈골 마을 고샅길을 내려 갈골교다.
낯은 인제 음식점에서 씻기로 하고 우선 웃옷만 갈아입는다. 인제. 산골 동네라 금방 어두워
진다. 그러지마 님이 들렀다는 백반집이다. 여 주인의 손이 크다. 땅느타리버섯 무침 등 밑반
찬이 비우기 바쁘게 채우고, 송이주라며 한 컵씩 따라준다. 캐이 님과 그러지마 님이 건진 더
덕 몇 수로 생더덕주를 뽀얗게 제조하였다. 술잔 높이 들어 오늘의 무사산행을 자축한다.
18. 임도(군사도로)
19. 노루궁뎅이버섯
20. 등로 주변의 추색
21. 개다래(Actinidia polygama (Siebold & Zucc.) Planch. ex Maxim.)
22. 주걱봉과 가리봉, 그 앞 능선을 오전에 올랐다.
23. 주걱봉과 가리봉, 그 앞 능선을 오전에 올랐다.
24. 쑥부쟁이(Aster yomena (Kitam.) Honda)
쑥부쟁이의 종류가 많아 일일이 구별하기가 어렵다. 국가생물종기식정보시스템에 등재된 쑥
부쟁이는 19종에 이른다. 쑥부쟁이라는 이름은 ‘쑥을 캐러 다니는 불쟁이(대장장이)의 딸’에
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25. 갈골교 주변의 코스모스
첫댓글 항우장사 케이님의 비결이 점심밥상에 있었는 모앙이네요.
많이 먹어요.ㅋㅋ
가을의 정취가 흠뻑 느껴지네요.
코스모스가 이렇게 이쁜 꽃이었나 새롭군요.
그렇네요.
코스모스가 탐스럽게 피어 아름답습니다.
올해 설악에 능이가 귀하던데요...
원통 맞은편 능선길을 다 훓으셨군요..
설악산은 무조건 하네스 가지고 다니시면 조금 무겁더라도
다 돌파가되니..참고하십시요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