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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하 한의학박사(한동하한의원 원장)
보통 어려움을 이겨내는 경우를 ‘잡초 같은 인생’이라고 한다. 그 잡초 중에서도 어쩌면 질경이가 최고다. 질경이는 유독 길 한복판에 뿌리를 내리고 밟아도 죽지 않고 잘 산다. 질경이는 흔한 풀처럼 하찮아 보이지만 소변을 잘 보게 하고 간 기능을 개선하는 등 건강에 큰 도움을 준다.
질경이(Plantago asiatica L.)는 질경이과 질경이속의 풀이다. 우리말로 질겨서 질경이라고 한다. 필자는 어릴 적 친구들과 질경이 줄기 두 개를 서로 엇갈리게 걸어서 당겨 상대방의 줄기를 끊는 놀이를 하곤 했다. 그만큼 질겼다.
질경이는 한자이름으로 주로 차전(車前)이라고 한다. <본초강목>에는 ‘이 풀은 도로변이나 말이나 소가 지나간 자리에서 잘 나므로 차전(車前), 당도(當道), 마차(馬舄), 우유(牛遺)라는 이름이 있다’라고 했다. 차(舄) 자는 ‘밝고 지나간 흔적’이라는 의미다. 이름들을 보면 마차가 지나간 자리[車前], 사람이 지나는 길[當道], 말이나 소가 밟은 자리[馬舄.牛遺]라는 의미다.
질경이는 씨앗을 주로 약용한다. 씨앗은 한자로 차전자(車前子)라고 한다. 차전자는 맛이 달고 성질은 차고 독이 없다. 약으로 사용할 때는 살짝 볶아 갈아서 사용한다.
차전자는 소변이 잘 나가게 한다. <향약집성방>에는 ‘기륭(氣癃)을 치료하고 통증(痛症)을 멎게 하며 소변(小便)이 잘 나오게 한다’고 했다. 기륭(氣癃)이란 기가 하초(下焦)에 몰리고 습열이 방광에 스며들어 생긴 병증인데 배뇨장애가 동반되는 비뇨생식기의 증상을 포괄적으로 부르는 명칭이다. 만일 관련 검사를 했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면 기륭에 해당할 것이다.
차전자는 남성의 전립선질환뿐 아니라 여성의 비세균성 방광염 증상에도 좋다. <본초강목>에는 ‘여자가 소변을 찔끔찔끔 보는 것을 치료한다. 소변을 잘 보게 하면서도 기운을 빠지게 하지 않는다’고 했다.
차전자는 요로결석에도 좋다. 차전자를 용량에 상관없이 가능한 많은 양을 진하게 해서 달여 먹으면 좋다. 시금치를 비롯한 십자화과 식물들은 옥살산 이온을 많이 포함하고 있어 생으로 먹으면 결석을 만들기 쉽다. 결석이 걱정된다면 차전자를 차로 마시면 도움이 되겠다.
차전자는 눈병에도 좋다. <향약집성방>에는 ‘눈을 밝게 하며 안질로 눈이 붉게 된 증상 등을 치료한다’고 했다. <동의보감>에는 ‘눈을 밝게 하고 간의 풍열(風熱)과 독풍(毒風)이 눈을 쳐서 눈이 충혈되고 아픈 것, 장예(障瞖)를 없앤다’고 했다. 이것은 차전자가 간열(肝熱)을 식혀서 눈병을 치료하는 개념이다.
질경이는 그 자체고 질기고 강할 뿐 아니라 건강에도 이로워 인간의 생명력을 강하게 한다(사진=클립아트코리아).
차전자가 들어가는 대표적인 환약으로는 주경환(駐景丸)과 오자연종환(五子衍宗丸)이 있다. 주경환은 차전자와 토사자, 숙지황을 함께 환으로 빚은 것으로 간(肝)과 신(腎)을 보해서 시력을 좋게 하는 효과가 있고 오자연종환은 차전자와 함께 구기자, 토사자, 복분자, 오미자로 이뤄진 환약으로 남성 불임을 치료하는 효과가 있다. <향약집성방>에는 ‘차전자는 음기(陰氣)를 강화하며 정(精)을 불어나게 하여 자식을 낳게 한다’고 했다.
차전자는 간의 기운을 길러준다. <동의보감>에는 ‘간기(肝氣)를 기른다. 씨앗을 가루 내 먹거나 볶아서 달여 먹는다. 또 어린잎을 따서 국을 끓이거나 나물을 무쳐 먹어도 좋다’고 했다. 실제로 차전자는 잎과 함께 간 기능을 개선한다.
차전자는 여름철 설사에 좋다. <본초강목>에는 ‘소장을 열을 이끌어내고 서습(暑濕, 여름철 습한 기운)으로 인한 설사를 멎게 한다’고 했다. 여름철이 아니더라도 일반적인 설사에도 소변이 잘 나가면서 특별한 부작용이 없이 설사를 멎게 한다. <동의보감>에는 ‘모든 설사를 치료한다. 볶아서 가루 내고 2돈씩 미음에 타서 빈속에 먹으면 가장 효과가 좋다. 물에 달여 먹어도 역시 좋다’고 했다.
<급유방>에는 ‘방광의 청수(淸水)와 탁수(濁水)를 분리하고 부종을 사그라뜨린다’고 했다. 차전자는 부종이 있을 때도 소변을 잘 보게 하면서 부종을 뺀다. 이뇨작용으로 인해 설사와 부종에 치료효과를 나타낸다고 볼 수 있다.
차전자는 항노화작용이 있다. <향약집성방>에는 ‘장복(長服)하면 몸이 거뜬해지고 늙지 않게 된다’고 했다. <본초강목>에는 ‘도가에서도 복용하는데, 사람의 몸을 가볍게 하고 언덕과 계곡을 뛰어넘을 수 있으며 불로장생한다’고 했다. 이는 차전자의 항산화작용 및 소염작용과 관련이 있다.
건강식품 중에 차전차피가 있는데 바로 차전자의 껍질로 만들어진 것이다. 식이섬유가 풍부해 변비나 다이어트에 효과가 있다고 알려져 있다. 차전자피 대신 차전자 자체를 갈아서 먹어도 좋다. 질경이 자체도 식이섬유가 풍부하다. 또 질경이 전초에는 플라보노이드와 함께 플란타산이라는 점액실성분이 풍부하다. 질경이는 씨앗을 포함한 전초에 이뇨, 변비치료, 상처회복, 간 기능 활성, 항염, 항암, 항산화, 면역안정 등의 작용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질경이의 잎과 뿌리도 약용한다. 잎과 뿌리를 통틀어 차전초(車前草)라고 부른다. 차전초도 약성이 차다. <약성론>에는 ‘질경이 잎은 유정(遺精)과 몽설(夢泄), 혈뇨 등을 치료하고, 오장을 보하고, 눈을 밝게 하며, 소변이 잘 나오게 하고, 오림(五淋, 다양한 배뇨장애)을 치료한다’고 했다. 차전초는 차전자와 비슷한 효능이 있다.
또 차전초는 지혈작용을 한다. <향약집성방>에는 ‘금창(金瘡, 쇠붙이로 다친 상처)을 치료하고 지혈(止血)한다. 코피, 어혈(瘀血), 혈가(血瘕), 하혈(下血), 혈뇨 등을 치료한다’라고 했다. 과거에는 코피가 멎지 않는 증상에 질경이잎을 찧어 낸 즙을 마시기도 했고 장 출혈이 있을 때 질경이 잎을 달여 먹기도 했다.
차전초는 간세포를 보호한다. <동의보감>에는 ‘황달을 가장 잘 치료한다. 찧어서 즙을 내어 마신다’고 했다. 한때 간염환자들이 질경이잎을 달여 먹고 좋아졌다는 이야기들이 회자된 적이 있었다. 근거가 되는 기록이다. 실제로 차전초에는 지방간 개선효과, 간세포 보호 등의 효과가 인정된다. 잎뿐 아니라 씨앗인 차전자도 좋다.
차전자는 특별한 부작용은 없다. 하지만 너무 기운이 없을 때는 복용하지 않는다. <본초정화>에는 ‘내상(內傷), 노권(勞倦)으로 양기가 아래로 새어 나가는 병에는 쓸 수 없다’고 했다. 이것은 기운이 막힌 경우는 하기(下氣)시켜서 도움이 되지만 이미 기운이 처져 있는 경우는 사용하면 안 된다는 말이다. 예를 들면 위하수, 탈장, 탈항 등의 증상과 대소변을 너무 자주 볼 때, 너무 무기력한 경우는 복용하지 않는 것이 좋다.
끈질긴 생명력을 가진 질경이는 사람의 생명력 또한 강하게 한다. 이뇨작용이 있고 변비에만 좋은 줄 알았던 질경이가 간에도 좋다는 것은 의외의 효능일 수 있다. 눈병에도 좋고 몸이 가벼워지고 늙지 않게 한다. 질경이는 건강을 질기게, 삶은 즐겁게 한다.
[식의보감] 질경이의 놀라운 효과들!!! 질경이는 건강은 질기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