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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딩이네 집
강순희(향원)
“거기 푸딩집이지요?”
“아니오, 여기 가정집인데요.”
언젠가 동물병원에서 집 전화로 연락이 왔다. 나는 ‘푸딩집’이 무슨 아이스크림 가게라도 되는 듯 전화를 그렇게 받았다. 푸딩은 먹는 것이 아니고 우리 집 강아지 이름, 여기는 푸딩이네 집 맞다.
강아지와의 만남은 갑작스러웠다. 2014년 봄, 딸아이가 반려동물 분양업체에서 푸들 한 마리를 데리고 왔다. 나는 “못 키운다. 살아있는 것 어떻게 키울래?” 하며 화를 내 보았지만 이미 되돌리기 어려웠다. 분양업체에서 보낸 홍보 문자를 보고 구경하러 갔는데 유난히 덩치가 크고 털이 곱슬곱슬 하지도 않으며 못생긴 푸들이 있었다고 한다. 보통 2개월이면 분양해서 보내는데 3개월이 지나도 사람들의 관심을 받지 못한 강아지였다.
“에휴! 얘는 이제 새끼 빼러 가야겠다.”라는 주인아주머니의 말을 듣고 불쌍해서 안아줬더니 뽀뽀를 하더란다. 그래서 데리고 오기로 했다나 뭐라나…….
그날부터 나는 억지춘향으로 강아지의 엄마가 되고 딸아이는 강아지의 언니가 되었다.
분양 서류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견종: 푸들, 성별: 여아, 생일: 12월 17일, 분양금액: 43만원, 푸들은 크기에 따라 토이 푸들, 미니어처 푸들, 스탠더드 푸들의 3가지 견종이 있으며 크기에서만 차이가 있을 뿐 영리하고 깔끔한 멋은 모두 같다. 곱슬곱슬한 털은 털갈이를 하지 않아서 개털 알레르기가 있는 사람에게 적당하다」
내 눈에는 깡마르고 조그마해 보였던 갈색 푸들과 한집에 살게 된 지도 벌써 4년이나 지났다.
딸아이는 어려서부터 동물을 무척 좋아했다. 아파트에 살면서도 병아리, 햄스터, 토끼를 키운 적이 있다. 토끼를 키우다가 먹이와 배설물 처리를 감당하기 어려워 시골의 체험 농장으로 보내기도 했다. 나는 애완동물 키우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특히 강아지를 품에 안고 다니거나 두 마리 씩이나 유모차에 태워 다니는 사람들을 보면 동물 사랑이 유별나고 좀 지나친 건 아닐까? 생각했다. 그런 내가 언제부터인가 강아지 목줄을 잡고 동네 골목을 누비고 다니게 된 것이다.
강아지를 관리하는 것은 아이 키우는 것만큼 힘들다. 각종 애견용품이며 사료, 간식도 사야하고 때맞추어 예방접종도 해야 한다. 동물병원의 진료비, 미용비용도 만만치 않다. 양쪽으로 적당히 늘어진 귀가 참 예뻤는데 털에 가려 있지만 귀 끝부분이 조금 뜯겨 나간 모양이어서 안타깝다. 귀가 딱딱해서 상처 때문에 피가 응고된 줄 알았는데, 고무줄에 조여서 피가 안 통했고 조직이 괴사했다. 일부러 고무줄로 묶은 것은 아니었지만 부주의 했고 빨리 발견 못했기 때문에 강아지는 입원 치료까지 받아야 했다. 살아있는 생명을 돌보고 관리한다는 것은 이래서 참 어렵다.
몸집은 작지만 푸들은 우리 집 경비견이다. 바깥에 인기척이 나면 사납게 짖어댄다. 소심하고 겁이 많은 강아지라서 자기 영역에 접근하지 말라는 방어의 표현인 것 같다. 엘리베이터 소리가 나고 앞집의 현관문 여닫는 소리가 나면 짖어댄다. 앞집 분들을 만나면 “개가 있어서 시끄럽지요?” 하며 미안함을 전한다. 앞집 아주머니는 괜찮다고 하시는데 그래서 더 조심스럽다. 가족들이 돌아오는 발자국 소리는 단번에 알아채는 것이 신기하다. 현관문에 두발로 서서 문을 긁는다. 반가움의 격한 표현이다. 문이 열리고 집 안에 들어서면 앞발을 들고 어서 들어오라는 몸짓을 한다. 그리고 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양말을 벗기기 시작한다. 그대로 발을 대고 있다가는 날카로운 이빨에 긁힐 수도 있어 얼른 양말 두 짝을 벗어서 준다. 그러면 물고 가서 잠깐 물어뜯다가 돌아와서 입맞춤을 시도한다. 입을 꽉 다물고 눈을 감지만 그 열정적인 뽀뽀를 막아낼 수가 없다. 혀로 얼굴을 핥고 심지어 혀가 콧구멍으로 들어올 때도 있다. 난 피하면서 그만 하려고 하면 딸아이가 그대로 있으라고 난리를 친다. 사랑의 표현을 끝까지 받아주라면서. ‘사랑해.’라는 말을 딸아이는 강아지에게만 하는 것 같다.
강아지도 바깥세상을 안다. 산책하러 나가는 것을 좋아한다. 목줄을 하고 추울 때는 옷을 입어야 밖에 나갈 수 있다는 것도 안다. 목줄을 잡고 걷는 것도 기술이 필요하다. 강아지 산책은 주로 딸아이의 역할이다. 강아지는 똑바로 걷지 않고 지그재그로 걸으며 여기저기 냄새를 맡는다. 밖에 나가면 꼭 배변활동을 하기 때문에 배변봉투는 필수품이다. 강아지를 산책시키러 나온 사람의 눈에는 역시 산책 나온 다른 강아지만 보인다. “저기 친구 있네.” 하며 서로 만나게 한다. 유별나게 짖어대거나 적대감을 표현하는 강아지도 있지만 서로 냄새 맡으며 꼬리도 흔든다. 사회성 훈련인 셈이다. 조금 멀리 산책을 갈 때는 차 뒷자리에 태운다. 뒷자리에 앉으면 창문을 내려달라고 난리를 친다. 열린 창문 사이로 머리를 내밀고 시원한 바람을 온 얼굴로 맞는다. 스카프 날리듯 얼굴 털을 날리며 만족스런 표정으로 사람처럼 드라이브를 즐긴다. 꼴불견이라 생각하는 경우도 있겠지만 창문으로 고개 내민 강아지를 보며 훈훈한 미소로 말을 건네주는 사람을 보면서 애견인들이 많음을 실감하기도 한다. 푸딩이의 외모는 곰돌이 인형에 가깝다. 주둥이가 뾰족하지도 않고 털은 길고 부스스하며 까맣고 동그란 눈에 일자형의 입을 가졌다. 데리고 나가면 사람들이 귀엽다고 난리다. 특히 어린 아이들이 ‘멍멍이, 멍멍이’ 하며 만지고 싶어 한다.
강아지는 말 대신 다양한 눈빛과 몸짓으로 말을 한다. 자신의 욕구와 감정을 말 대신 소리로도 표현한다. 감정을 주고받으며 소통할 수 있는 동물이다. 좋으면 풀쩍풀쩍 뛰어 오르고 요구사항이 관철되지 않으면 바닥에 납작 엎드려 눈치를 살핀다. 맛있게 먹고 밥그릇을 깨끗하게 비우면 턱 밑을 간질이며 과잉칭찬을 해 준다. 어느새 강아지는 냉장고 앞에 가서 혀를 내밀고 헤~ 소리를 내며 당당하고 으스대는 표정으로 앉아 있다. ‘밥을 잘 먹었으니 어서 맛있는 간식을 달라.’는 뜻이다. 간식이 아니고 후식이 되어버렸다. 4.4㎏, 만지면 보들보들한 털과 따뜻한 체온이 느껴지는 살아있는 푸딩이, 오래오래 함께 했으면 좋겠다.
2018년 4월 21일
첫댓글 제가 동물을 길러 보지 않아서 강아지와 사람이 서로 감정을 공유하고 소통하며 한 가족이 되는 것이 신기합니다. 강아지를 기르는 한 친구가 있는데 자식한테보다 더 지극 정성이기에 아들이 서운해하겠다고 그랬더니, 자식은 걱정거리만 만들어 오는데 강아지는 온갖 재롱으로 위안을 준다고 합니다. 향원님의 글을 읽으니 나도 한번? 하는 부러움이 생기기도 합니다. 잘 읽었습니다,
반려동물 쪽으로는 워낙 문외한이라서 많이 배웠습니다. 오랜만에 하는 학교 생활, 늘 좋은 날 되시기 바랍니다.
강선생님 몸은 비록 함께 하지 않으나 매번 글을 올려주셔서 잘 읽고 있습니다. 오랜만에 아이들과 어우러져 옛 직장생활이 이어진듯 하겠습니다. 새로운 분들이 많이 오셔서 수필반 더욱 활기가 찹니다. 얼마 후 곧 만나게 되리라는 생각에 기다려집니다. 푸딩과 함께 즐거운 시간 보내시며 건강하십시오.
향원 선생님과 함께 사는 푸딩이는 행복할 것 같습니다. 선생님 역시 푸딩을 아끼고 사랑하니, 동물이던 사람이든 사랑을 나누고 함께할 대상이 있다는 자체가 행복이 아닐까? 생각 하면서 좋은글 잘읽었읍니다.감사합니다.
푸딩의 생활습관을 세심히 관찰하신 글을 흥미 있게 읽었습니다. 개를 키우는 일이 쉬운 것만도 아닌 데, 사랑으로 키우는 정성이 아름답습니다.
강선생님의 따뜻한 푸딩이 사랑이 느껴집니다. 동물 식구를 하나 들이고 관리하는 일은 힘들고 번거롭지만 그에 반해 애견을 통해 많은 위로를 받는다고 들었습니다. 푸딩이네 가정에 행복이 가득하시길 기원합니다.
강선생님 오랜만이에요. 잘계시죠.
푸들이라 푸딩이라 지었나요?
푸딩이는 달콤한 향기가 나는 귀여운 가족같아요.
"푸딩!" 반려견 이름이 향기롭고 달콤한 구운과자처럼 사랑스럽고 예쁘보입니다 전 가족이 사랑하고 산책도 간식도 미용도 정기적 의료건강검진등 푸딩이는 행복하겠습니다. 바라옵건데 푸딩이가 계속 아프지않고 가족의 일원으로 예쁜 모습을 보이면서 사랑과 애교의 장이 되었으면 합니다. 사진으로 모습을 못보아 아쉽네요. [해탈이 모습]
애완용 동물을 자녀들과 함께 기르며 화목하게 지낼 수 있어 찰 좋을 거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최상순드림
요즘 여러가지로 바빠서 이제야 반가운 글 읽었습니다. 애완견도 강선생님 고운 마음씨로 잘 기르실것 같습니다. 우리 농장에도 토지소유자가 사나운 개 세마리를 기르고 있어서 갈때마다 아는체 하여 신기할때가 있습니다. 멀리까지 출퇴근 잘하시고 틈틈히 글도 올려주시기 바랍니다. 모두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즐거운 학교생활 하시고 건강하시기 바랍니다.
동물을 사랑하는 마음이 일시적 충동이 아니고 영구적인 사람이 동물을 키울 수 있는 자질인 것 같습니다. 푸들은 애완견 중 가장 영리하고 여러가지 장점을 갖고 있으니 좋은 반려자를 만난 것 같습니다. 마음이 따듯해지는 개 이야기가 많습니다. 좋은 관계 잘 엮어가시기 바랍니다. 잘 읽었습니다.
유려한 필치로 섬세하게 그려내신 글 잘 읽었습니다. 행복바이러스 강선생님 건강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