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단이나 사이비 종교로 인한 사건들 중 현대사에서 가장 피해가 컸고 충격적이었던 1978년 11월 18일의 인민사원 집단자살극】
경제적인 부분은 고려하지 않고 그 나라가 선진국이냐 아니냐를 판단할 수 있는 기준 중 하나가 사이비가 많은 사회인가 아닌가 인데, 그런 면을 생각할 때 대한민국은 아직 선진국은 아닙니다.
종교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 각 부분에 사이비가 많고 오히려 그런 사람들이 의식 있고 깨달은 사람으로 평가받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이른바 '생계형'에 불과한 부류들인데 말이죠.
이단이나 사이비 종교의 교주들이 사회적 물의를 크게 일으킬 때마다 저런 허무맹랑하고 비상식적인 말에 속아서 그런 집단에 빠지는 사람들은 도대체 누구인가?라는 의문을 대부분 갖게 됩니다.
제한된 어휘의 반복적인 사용
교주의 낮은 지적수준으로 인해 성경을 그냥 대충 초등학생들 어설게 그림 그리듯이 해석해서 설교한 것에 불과한데
사람들은 오히려 이를 더 알기 쉽다고 이제야 진리를 알았다고 빠져듭니다.
1978년11월18일 밤,
남미 가이아나의 정글에 자리 잡은 존스타운(Jonestown). 인민사원(Peoples Temple) 신도 914명이 집단으로 청산가리가 섞인 과일 주스를 마시고 죽었다.
사이비 종교집단은 광기 어린 집단 자살극에 앞서 미성년자 276명에게 독약 주사를 놓았다.
교인들 대부분은 영문도 모르고 죽임을 당했다.
교주인 짐 존스(Jim Jones·당시 47세)가 신도 전원과 ‘천국에 이르는 계약’을 맺고 수 없이 자살 연습을 해왔기 때문이다.
1978년 한해에만 존스타운에서는 무려 43회나 자살 연습이 행해졌다. 그러나 이날만큼은 연습이 아니었다.
존스와 핵심 추종자들은 진짜 독극물 주사와 주스를 나눠줬다. 일부는 총으로 죽였다.
교주인 존스는 탈출설이 돌았으나 누가 쏘았는지 알 수 없는 총알에 맞은 시신으로 발견됐다.
미국 역사상 전쟁이나 자연재해 말고는 2001년 9.11 테러 이전까지 가장 많은 미국인이 죽은 사건, 사상 최악의 집단 자살극인 인민사원 사건은 세계에 충격을 안겼다.
어떻게 가장 잘사는 나라, 교육수준도 높다는 미국에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시간은 195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주정뱅이이자 백인우월주의자 집단인 KKK(Ku Klux Klan)단원이던 아버지와 ‘메시아를 낳았다’고 믿었던 어머니 사이에서 1931년 태어난 존스는 20대 초반 정통 기독교단의 전도사로 일하면서 회의에 빠졌다.
‘왜 흑인을 차별하는가. 가난한 사람을 도우라는 말씀을 교회는 왜 거역할까.’ 원시 공산주의 사상에 심취했던 존스는 여러 교단을 전전한 끝에 ‘해방의 날개’라는 새로운 교회를 세웠다.
종교적인 곳이긴 했지만 사회주의적 이상에 따라 설립됐다. 다양한 인종으로 구성된 신도들에게 의료보험을 비롯한 사회 서비스를 제공했다.
‘인민 사원 가스펠 교회’로 이름을 바꾼 그의 교회에는 사람들이 몰렸다. 처음에는 평판도 좋았다.
흑인, 마약중독자, 노숙자 등 도시빈민계층 구호에 앞서고 성매매 여성과 마약중독자를 위한 치유 프로그램도 운영했다.
빈민 주택 문제에 대한 관심과 지원으로 존스 자신이 샌프란시스코의 도시주택국장으로 위촉된 적도 있다.
교인들은 헌신적인 그를 광적으로 믿었다.
광적인 믿음은 광기로 이어졌다.
존스 목사(1964년 미국 개신교의 한 종파에서 목사 안수)는 스스로 재림한 예수이자 재림 부처, 재림 레닌으로 여겼다. 신도들은 존스 목사를 ‘아버지(Dad)’라고 불렀다.
존스의 교세를 키운 결정적인 무기는 치유의 은사.
존스의 손이 닿으면 앉은뱅이가 일어나고 소경이 눈을 떴다. 훗날 모든 게 사기라고 밝혀졌으나 신도는 더욱 불어났다. 신도가 늘어나면서 언론의 주목을 받자 1970년대 초반부터 존스는 신도들을 꼬셨다.
파시즘과 인종 전쟁, 핵 전쟁을 피할 수 있는 ‘최후의 낙원’으로 이주하자고.
남몰래 100만 달러를 들여 남미 영국령(당시) 가이아나에 99.17㎢(약 3,000만평)에 이르는 땅도 샀다.
이탈 신도들에 의해 강제헌금과 집단 폭행에 대한 소문이 돌고 지방 검찰청에서 수사에 착수하자 존스는 교인 1,200명을 순차적으로 가이아나 존스타운에 이주시켰다.
존스타운은 강제노동의 마당이었다.
교인들은 내리쬐는 태양 아래에서 하루 11시간 30분씩 강제 노동에 시달렸다. 상황이 나아진 게 8시간 노동.
대신 4시간 30분씩 야간 교육이 실시됐다.
존스는 북한식 사상 교육을 따랐다고 전해진다. 유토피아는커녕 열악한 환경에 지쳐 불만을 토로하는 교인들의 여권을 빼앗고 탈출하면 독사와 적대적인 원주민에게 몰살 당할 것이라고 협박했다.
존스가 가이아나의 정글에서 꿈꿨던 ‘천년왕국’은 오래가지 못했다. 본격 이주 2년이 채 안돼 미국 의회 조사단이 찾아왔기 때문이다.
존스타운에서 폭행과 감금, 세뇌 같은 인권 유린이 자행되고 있다는 풍문을 확인하기 위한 방문한 상원 의원 레오 라이언을 포함한 미국 의회 조사단은 조사 하루 만에 실체를 알아챘다. 살해 위협을 느껴 돌아가겠다는 조사단에는 ‘같이 데리고 나가 달라’는 교인들이 따라 붙었다.
처음에는 4명이던 이들의 숫자는 20명으로 불어났다.
존스는 마지 못해 이들의 출교와 조사단 일행의 출발을 허용했으나 곧 마음을 바꿨다.
의회 조사단 일행이 존스타운에서 차로 15분 떨어진 포트 카트마 비행장을 향해 출발한 직후, 존스는 ‘쫓아 가서 모두 죽이라’는 명령을 내렸다.
비행장에 도착해 세스나 쌍발 비행기에 오르려던 의원 일행은 칼로 난자되고 자동소총 세례를 받았다.
라이언 의원을 포함해 NBC 방송 기자 3명 등 모두 5명이 비행장에서 죽었다.
미국 의회 역사상 현직 의원이 재임 중에 살해되기는 처음이었다는 이 때 시각이 11월18일 오후 5시 20분.
정글에 울려 퍼지는 총소리를 들은 존스는 신도들을 모두 불러 모아 자살 의식에 들어갔다.
수없이 연습해온 자살 의례에 앞서 존스는 45분간 설교에 나섰다.
“이제 우리는 딴 세상에서 만날 순간이 왔다. 우리들의 행위는 자살이 아니라 비인간적인 세상에 대항하는 개혁 혁명이다.” 교주 개인에 대한 우상화에 젖어있던 신도들은 집단으로 죽었다. 자살에 저항하는 극소수 교인들에게는 핵심 추종자들이 총을 쐈다.
인민사원의 비극적 사건이 알려지면서 미국 사회는 충격에 빠졌다.
정치인들도 도마에 올랐다.
대통령의 영부인 로절린 카터 여사와 먼데일 부통령, 브라운 캘리포니아 주지사 등 유력 정치인 38명이 가이아나 정부에 존스 목사의 마을 건설을 도와달라는 편지를 보낸 사실도 밝혀졌다.
로절린 여사는 “빈민 구호사업에 대한 감사 편지를 쓴 것 뿐이며 선거 유세 기간 중에 단 한번 만났다”고 해명했으나 사람들은 의심을 품었다.
움베르코 에코 같은 지식인은 정치인들을 맹비난했다.
도덕과 인권을 앞세웠던 지미 카터 대통령은 이미지에 타격을 입고 재선에도 실패했다.
참고:서울경제신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