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근태(金槿泰, 1947년 2월 14일 ~ 2011년 12월 30일)는 대한민국의 정치인이다. 경기도 부천에서 태어나 보건복지부 장관, 열린우리당 의장,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을 역임하였다.
[편집] 생애
1947년 2월 14일 경기도 부천에서 태어났다. 1965년 경기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경제학과에 입학했다.
1960년대 서울대학교 재학 시절 학생운동을 주도하여 손학규, 조영래와 함께 ‘서울대 운동권 3총사’로 불리기도 하였다. 이후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정권까지 각종 재야단체에서 활동하다 수배와 투옥을 반복하였다. 전두환 정권 시절이던 1985년 9월에 민주화운동청년연합이 이적 단체로 규정되면서, 23일간 안기부[1]의 고문기술자 이근안 경감에게 고문을 받았다.[2][3][4]
1996년부터 제15,16,17대 국회의원을 지냈고, 보건복지부 장관, 열린우리당 의장 등을 지냈다. 2008년 제18대 선거에서는 신지호 한나라당 의원과 겨뤘으나 낙선했다.
지병인 파킨슨 병이 민주화 운동 도중 당한 고문으로 인한 것이라는 주장이 있다.[2][5] 2011년 12월 초 뇌정맥혈전증 투병사실을 공개하였고, 12월 말 위독한 상태에 빠졌다. 2011년 12월 30일 오전 5시 30분 서울대학교병원에서 별세하였다.[6]
[편집] 약력
[편집] 학력
[편집] 군복무
[편집] 재야활동
[편집] 정치
[편집] 고문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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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은 1985년 9월 한 달 동안, 9월 4일부터 9월 20일까지 전기고문과 물고문을 각 5시간 정도 당했습니다. 전기고문을 주로 하고 물고문은 전기고문으로 발생하는 쇼크를 완화하기 위해 가했습니다. 고문을 하는 동안 비명이 바깥으로 새어나가지 않게 하기 위해 라디오를 크게 틀었습니다. 그리고 비명 때문에 목이 부어서 말을 하지 못하게 되면 즉각 약을 투여하여 목을 트이게 하였습니다(어지러운 듯 말을 중단하고 난간을 붙들면서 잠깐 쉬었다). 이러한 과정에서 9월 4일 각 5시간씩 두 차례 물고문을 당했고, 9월 5일, 9월 6일 각 한차례씩의 전기고문과 물고문을 골고루 당했습니다. 8일에는 두 차례 전기고문과 물고문을 당했고. 10일 한차례, 13일 …… 13일 금요일입니다. 9월 13일 고문자들은 본인에게
- "최후의 만찬이다."
- "예수가 죽었던 최후의 만찬이다."
- "너 장례날이다."
이러한 협박을 가하면서 두 차례의 전기고문을 가했습니다. …… 그 다음에 9월 20일날 전기고문과 물고문을 한차례 받았습니다. 그리고 9월 25일날 집단적인 폭행을 당했으며 그후 여러 차례 구타를 당했습니다.물론 잠을 못 잔 것은 말할 필요도 없고 밥을 굶긴 것도 대략 절반쯤 됩니다. 고문 때문에 13일 이후에는 밥을 먹지 못했고 그 후유증으로 지금까지 밥을 먹지 못합니다.
... (중략) ...
결국 9월 20일이 되어서는 도저히 버텨내지 못하게 만신창이가 되었고, 9월 25일에는 마침내 항복을 하게 되었습니다. 하루만 더 버티면 여기서 나갈 수 있는 마지막 날이 된다는 것을 알았지만 더 버틸 수 없었습니다.
그날 그들은 집단폭행을 가한 후 본인에게 알몸으로 바닥을 기며 살려달라고 애원하며 빌라고 하였습니다. 저는 그들이 요구하는 대로 할 수밖에 없었고 그들이 쓰라는 조서내용을 보고 쓸 수밖에 없었습니다.[7][4][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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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사건
2004년 11월에 충청북도 도청 소속 6급의 한 공무원이 김근태 형제, 숙부가 월북, 빨갱이라는 내용을 350차례 언론사 독자게시판에 올리는 혐의로 구속되었다.[9]
[편집] 가족 관계
- 부인: 인재근
- 딸: 김병민 -- 사위: 김동규
- 아들: 김병준
[편집] 수상
[편집] 저서
- 2004년 《두껍아 두껍아 헌 집 줄게, 새 집 다오》, 올벼, ISBN-10 8990987016
- 2001년 10월 31일 《희망은 힘이 세다》, 다우, ISBN-10 8988964128
- 1995년 6월 30일 《희망의 근거》, 당대, ISBN-10 8981630038
- 1992년 《열린 세상으로 통하는 가냘픈 통로에서》
- 1992년 《우리 가는 이 길은》
[편집] 같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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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주석
- ↑ 현 국정원의 전신. 당시 안기부 대공수사단장은 정형근이었다.
- ↑ 가 나 장일호 (2011년 12월 24일). 김근태는 27년째 고문받고 있다. 시사IN.
- ↑ “'고문기술자' 이근안 전 경감, 목사됐다”, 2008년 11월 1일 작성. 2008년 11월 1일 확인.
- ↑ 가 나 “네티즌 사이 다시 회자된 김 의원 고문사건”, 《오마이뉴스》, 2004년 6월 23일 작성.
- ↑ “법정에 선 ‘밀실 고문’…재판부는 ‘증거 보전’ 기각”, 2009년 12월 21일 작성. 2011년 12월 28일 확인.
- ↑ “김근태 민주통합당 상임고문 별세”, 2011년 12월 30일 작성. 2011년 12월 30일 확인.
- ↑ 강준만 교수. 〈'깃발사건'과 김근태 고문사건〉, 《한국 현대사 산책》, 부제: 광주 학살과 서울 올림픽. 1980년대 편, 313쪽
- ↑ 보도 통제·방청 제한…법정 안팎 공권력 장벽, 《한겨레신문》, 2010년 1월 3일
- ↑ 인터넷 총선후보 비방 글…6급 공무원 구속영장 동아일보 2004년 4월 11일 작성
[편집] 바깥 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