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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왕 생일파티 초토화 아줌마입니다
웃픈 사실 한가지ᆢᆢ
해경123정은
항공모함까지 끌수 있다고 합니다ㆍ
여러가지 정황들로 인해
세월호는
고의침몰이 맞는거 같습니다
세월호는
당시 박정권에 불리한 상황에 대한
국면전환용 충격상쇄 아이템?
수십년전에도 김기춘이 이와같은 일을 벌였다고 하던데ᆢᆢ
미군이 어떤식의 도움을 줬든
전쟁을 위한 것이든
충분히 아이들을 살릴 수 있었음에도
수장시킨건 학살 이죠
철저하게 진상을 파악해
책임자들을 처벌하는게 인간된 도리죠
다시본 세월X에서
네티즌이 댓글을 달았는데
(오전 9시경 사고해역 근처에 한문식함이 있었다면 둘중 하나입니다. 훈련을 위해 출동 또는 훈련후 복귀(경비임무는 야간에 이뤄집니다.) 또한 리처드함이 서해 공해상에 있었다면 훈련이 있었을 확률이 큽니다)
사고원인을 파악하려면 1. 사고해역은 3곳(추자도, 가거도, 흑산도)의 해군전탐감시대에서 모두 감지가 되는 위치이니 그 기록을 확인하면 됩니다. (진도VTS 레이더보다 더 정확하게 알수 있습니다.) 2. 이는 모두 3함대(목포) 상황실에서 KNTDS를 통해 한눈에 알수있게 전시되니 그 기록도 확인하면 됩니다. (바다위에 떠있는 거의 모든것을 잡아냅니다, 작은 어선까지) 3. 함대상황실에서는 사고나 상황발생시 모든것을 상황일지등 기록으로 남기며(상부 지시사항 포함) 목포해경과 실시간 상황을 공유하니 당시 상황실 근무자들에게 증언들으면 해경상황까지 전체적으로 알수 있을 것입니다. 특히 전탐감시대나 함대상황실에서 근무했던 제대한 수병들은 부담없이 얘기할수 있을듯. 상황실에도 항상 24시간 TV뉴스 채널 틀어놓고 하니 세월호 당일 분명히 기억하고 있을 것임.꼭 잠수함이 아니더라도 해군과 관련된 무언가의 항해물이 원인일 확률이 큰것 같습니다. 아니면 해군이 저리도 감출리가 없습니다)
거기에서 잠수함충돌은 처음 있는 일이 아니라 하더군요
그런데 왜
123정은 세월호가 침몰되고있던 방향에서
뿌연 연기를 뿜어대며 달리고 있었을까요?
내눈엔
세월호를 침몰시키고 있던 것처럼 보이던데ᆢᆢ
보통은
침몰반대방향에서
침몰되지않게 잡아 당겼을텐데요ᆢ
보고 또 봐도
123정이 세월호를 침몰시키려 하는걸로 보입니다
미국의 본험리차드함은
세월호침몰당시 4월16일에서 22일까지
세월호주변에서
수천만달러를 써가면서
(대사관에서 운영하는 페이스북에서는 사고 당일 7함대 소속 본험 리처드호의 움직임을 공개했다고 한다. 당시 미국은 헬기도 동원해서 세월호에서 15해리 떨어진 곳(대략 30km 근방)에서 모종의 작업도 했다. 또한 미국은 독도함에 두 명의 잠수사를 파견해서 해군과 해경을 지원하기도 했다. 그러나 독도함은 실제로는 아무런 구조 활동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시호크?라나ᆢᆢ
잠수함을 찾을 수 있는 헬기도 두대 보냈다고 하고요
세월호를 잠수함이 밀어
침몰시켰나하는 의문이 듭니다
어쨌거나
뭤 때문에
미국은 수천만달러를 써가며
세월호 주변에서
어영부영 왔다갔다 했을까요?
아무리 미국이 돈이 많다하더라도
아무런 이득없이 수천만달러를 썼을까요?
참 이해가 안되는 나라로군요
혹시
김어준의 파파이스에서 나오는
☆☆☆☆☆유령항적의 발신지가☆☆☆☆☆☆☆
거기가 아닐까 의심이
마구 마구 듭니다
>>>>>>조동진 대령은 증인신문에서 <<<<<<<
세월호 침몰 당시 잠수함의 운행은 없었다고 줄곧 부인했지만 그의 증언 내용을 살펴보면 해군함대가 출동한 사실을 재확인하면서 세월호를 찍은 레이더 영상이 존재할 것이라는 단서가 나온다.
조 대령은
"해군의 함정이 세월호 침몰 당일인 2014년 4월16일 오전 8시 58분경 세월호 침몰 현장에 출동해서 이미 도착해 있었던 사실을 당시 해군 작전사령부 훈련 참모처장으로서 알고 있지요"라는 질문에
"예, 알고 있다"고 답한다.
그러면서 조 대령은 "4월16일 오전에 해양경찰의 CN-235(해양경찰 초계기)가 세월호 침몰 현장 부근에서 촬영한 이 사진 속 함정이 해군의 함문식함이 맞지요"라는 질문에도
"예, 맞다"고 답한다.
해군은 세월호 침몰 사고 최초 상황접수 시간을 2014년 4월16일 9시 3분이라고 밝혔는데 조 대령의 증언은 사고 상황 접수 5분 전에 함문식함이 침몰 현장 인근에 있었다는 것을 뜻한다. 그의 증언은 공식적으로 발표한 시간보다 먼저 세월호 사고를 인지해 해군함대가 출동했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는 발언이어서 논란이 됐다.
또한 해군함대인 함문식함이 8시58분경 도착해 세월호 침몰 현장을 돌고 있었다고 한다면 침몰 현장을 찍은 레이더 영상도 존재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어이가 없습니다
무능한 해군에
무능한 해경에
무능한 미군에
한국인이 개돼지로 보이나 봅니다
2년 전
2014년 4월 16일 ~22일
미국 본험리차드함은 세월호 주변에서 무엇을 했나?
세월호 스크류 박살났네
http://m.bbs1.agora.media.daum.net/gaia/do/mobile/debate/read?bbsId=D115&articleId=3842374
범죄에 있어
누가 가장큰 이득을 보느냐?
바로 그자가 범인이다ᆢᆢ
》》》전원구조 오보《《《《
ㅡㅡㅡ2014년 4월16일 오전 7시29분 기사ㅡㅡ
진도 여객선 침몰, 미군 ‘본험 리차드’호 현장 급파
[라디오코리아] 04/16/2014 07:29:46
http://m.blog.daum.net/dh091213/1025
세월호,가만 있으라!
경찰, '아무한테도 알리지 말라'
미국잠수함이 일반어선을 침몰시켰을 때
ㅡㅡ1998년2월 문화일보기사
정선장은 "일본 배가 침몰했을 때는 일본 정부가 앞장서서 사과를 받아냈는데, 나 때는 경찰이 와서 '이 일을 아무한테도 알리지 말라'는 말만 했다"며 "우리나라 법이 대체 어떻게 돼 있길래 잠수함에 받힌 내가 가해자 취급을 받으며 피해를 받아야 하나"고 분통을 터뜨렸다.
ᆢᆢᆢᆢᆢᆢᆢ
오늘다시 세월X를 봤더니
해군출신 네티즌이 댓글을 올리셨네요
(((윤종국)))
안녕하세요. 저는 해군 항해과 대위 출신입니다.오늘 세월호 당일 해군군함(한문식함-PKG)과 미군함정(리처드함)이 세월호 인근해역에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쌍용훈련이 4월 7일까지 있었더군요. 그리고 나서 바로 의심이 가는 사고원인에 대한 정황이 떠올랐습니다. 물론 가설이긴 합니다.오전 9시경 사고해역 근처에 한문식함이 있었다면 둘중 하나입니다. 훈련을 위해 출동 또는 훈련후 복귀(경비임무는 야간에 이뤄집니다.) 또한 리처드함이 서해 공해상에 있었다면 훈련이 있었을 확률이 큽니다. 서해상에서 경비임무는 중국과의 마찰때문에 미군이 거기서 경비임무를 할 일은 없습니다. (제 생각엔 쌍용훈련 핑계로 왔다가, 해군연합훈련 이유로 대기하면서 초계임무를 병행하였을 가능성이 큽니다 일본 모항으로 복귀중이었다니 훈련이 세월호 사고전에 있었겠지요 한국 해군은 미해군이 오면 최대한 많은 연합훈련을 하려 노력합니다)중요한 것은 이러한 한미연합훈련의 필수는 대잠훈련입니다. 거의 100프로 대잠탐지 및 공격훈련이 이뤄집니다. 리처드함에도 대잠헬기가 있으니까요. (제생각엔 제주의 기동전단과 훈련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기동전단엔 잠수함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훈련후 수리를 위한 3함대(목포)또는 진해(9전단) 복귀든 아니면 3함대(목포)에서 제주도 이동 등 근처에 잠수함이 있었을 확률이 큽니다. 사고해역은 목포-제주간 주 이동항로입니다.해군에서는 수심이 낮아서 잠항이 안된다고 하는데, 보통 그 해역에서는 수상항해 합니다.(스노클 항해법도 있는데 거의 안합니다) 수상항해시 수상함에 비해서 흘수가 대단히 낮아서 성능 안좋은 레이더에선 잘 안잡힙니다. RCS가 적기 때문이죠 또한 수상하는 잠수함은 멀리서는 잘 보이지 않습니다. 사고당일 그 시간이면 시정이 대단히 좋지 않았을 테니 더 안보였겠죠 그 해역은 봄에 시정이 대단히 안좋아서(안개) 봄에 사고가 자주 발생합니다.(주로 상선 어선 충돌) 목포방어사령부(현 3함대) 상황실에 근무해 봐서 잘 압니다. 그 시기면 특별한 주의 기간입니다.이에 따라 제가 생각하는 사고원인은 * 수상항해하는 잠수함을 뒤늦게 발견한 세월호가 급격히 변침하다 넘어진 것입니다. (충돌여부는 약간 스친 정도가 아닐까 합니다.) * 잠수함이 세월호를 피하지 못한 이유도 동일합니다. 수상항해시 잠수함은 전적으로 견시에 의존합니다. 눈으로 확인하면서 조함할수 밖에 없습니다. 근데 그 눈이 잘 보이지 않는 환경이었죠. 수상함은 시정이 낮아도 레이더를 통해서 안전항해가 가능합니다.CPA 계산을 통해 다 피하죠 잠수함은 그게 안되요. 수상항해 할때는 수상함이랑 같은데 능력은 훨씬 떨어집니다.사고원인을 파악하려면 1. 사고해역은 3곳(추자도, 가거도, 흑산도)의 해군전탐감시대에서 모두 감지가 되는 위치이니 그 기록을 확인하면 됩니다. (진도VTS 레이더보다 더 정확하게 알수 있습니다.) 2. 이는 모두 3함대(목포) 상황실에서 KNTDS를 통해 한눈에 알수있게 전시되니 그 기록도 확인하면 됩니다. (바다위에 떠있는 거의 모든것을 잡아냅니다, 작은 어선까지) 3. 함대상황실에서는 사고나 상황발생시 모든것을 상황일지등 기록으로 남기며(상부 지시사항 포함) 목포해경과 실시간 상황을 공유하니 당시 상황실 근무자들에게 증언들으면 해경상황까지 전체적으로 알수 있을 것입니다. 특히 전탐감시대나 함대상황실에서 근무했던 제대한 수병들은 부담없이 얘기할수 있을듯. 상황실에도 항상 24시간 TV뉴스 채널 틀어놓고 하니 세월호 당일 분명히 기억하고 있을 것임.꼭 잠수함이 아니더라도 해군과 관련된 무언가의 항해물이 원인일 확률이 큰것 같습니다. 아니면 해군이 저리도 감출리가 없습니다.이상이며, 진실을 밝히는데 작은 도움이라도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1일 전•144
ᆢᆢᆢᆢᆢᆢᆢᆢᆢ
일본을 모항으로 하며 상륙작전에 투입되는 대형 상륙강습함이 왜 서해에서 순찰을 하는지 의문이다. 본험 리처드호에는 대잠헬기 시호크가 있기에 잠수함 수색 작업을 했을 가능성이 있다.
한편 단순 순찰 활동이 아니었다는 보도도 있다. 성조지는 4월 17일자 보도에서 “일상 작전을 수행 중이었다.”고 했다. 물론 순찰 활동을 작전이라고 표현했을 수도 있다. 그런데 4월 16일 <라디오코리아>는 “자체 훈련을 하고” 있었다고 보도했다. 다른 여러 언론들도 “훈련”을 하고 있었다고 보도했다.
미 대사관에서 운영하는 페이스북에서는 사고 당일 7함대 소속 본험 리처드호의 움직임을 공개했다고 한다. 당시 미국은 헬기도 동원해서 세월호에서 15해리 떨어진 곳(대략 30km 근방)에서 모종의 작업도 했다. 또한 미국은 독도함에 두 명의 잠수사를 파견해서 해군과 해경을 지원하기도 했다. 그러나 독도함은 실제로는 아무런 구조 활동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ᆢᆢᆢᆢᆢ
세월호가 진도 앞바다에서 서서히 침몰하고 있던 그 시각, 인근 공해상에 공교롭게도 당시 이른바 쌍용훈련을 마치고 모항인 일본 사세보 항으로 귀환 중이던 미 해군 7함대 소속 본험 리처드함이 있었다.
~중략~
결국, 본험 리처드함은 당시 4월 22일, 한국 측이 자체의 수색 자산이 충분하다고 통보해 수색과 구조 임무를 완수했다며 진도 해역에서 출발하여 다시 일상적인 작전 구역으로 원대 복귀했다."
http://www.vop.co.kr/A00001014327.html
당시 쌍룡훈련은 포항 앞바다 에서 했고..
모항은 일본 사세보항 이고..
쌍룡은 이미 "사건" 일주일 전에 끝 났었고..
(역사나무님 댓글)
의문이 든다
그런 거대한 항공모함의 하루 운영비는 얼마일까?
혹시 파손된 잠수함을 찾고? 있었나?
16일 ~ 22일.??
승조원 수천명
하루운영비 650만달러(추산) × 7일 =4500만달러
미국 돈 엄청 썼네요
세월호 주변 수색하느라고ᆢᆢ
●●●●세월호와 본험 리처드 함
http://mag-mkyd21.tistory.com/m/102
세월호 침몰 당시 우리 국민들은 구조대가 단 한 명의 승객도 구조하지 않았다며 세월호 참사의 책임을 정부에 묻고 있다. 그러나 당시 사고현장에는 대한민국의 선박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미 해군 상륙강습함인 본 험 리처드함도 함께 도착해 있었다.
1. 본험 리처드 함이란?
USS 본험 리처드 (LHD-6)는 미국 해군의 와스프급 강습상륙함 중 3번째 함선이다. 이 함선의 이름은 프랑스어로 "좋은 사람 리차드"를 의미한다.
이 함선은 1997년 3월 14일 진수되었으며, 1998년 5월 12일에 미국 해군으로 이송되었고 1998년 8월 15일에 배치되었다. 본험 리처드함은 모항을 켈리포니아 주 샌디에이고에 두고 있었으나 오바마 행정부의 “아시아 중시전략” 이후인 2012년 4월 13일에 모항을 태평양사령부 소속 일본 사세보 시로 옮겼다. 같은 상륙강습함인 USS 에식스와 함께 제7함대 핵심전력인 원정타격대 76에 속해 있다고 한다.
상륙강습함(LHD : Landing Helicopter and Dock)은 헬리콥터와 도크가 있다는 뜻으로 공기부양정 3대 이상과 헬리콥터를 탑재할 수 있을 때 LHD로 명명된다. 상륙강습함의 크기는 대체로 항공모함에 비교되곤 하는데, 항공모함은 전투기가 이착륙할 수 있는 갑판은 있지만 헬기의 이착륙장이나 상륙정이 들어왔다 나가는 도크는 없다. 반면 강습상륙함은 상부갑판에 헬기의 이착륙장을 가지고 있으며 상륙정이 출입하는 도크가 있어 상륙작전을 전개할 수 있다.
본 험 리처드함의 배수량은 40500톤에 달하며 전장이 257m, 선폭이 32m에 달해 세월호보다 대략 6배 안팎의 크기로 볼 수 있다. 본 험 리처드함은 최대속력이 37km/h에 불과하다고 한다. 세월호 침몰 당시 서해 인근에서 달려왔다고 하는데 그 속력이 낮으므로 상대적으로 가까운 거리에 있었다고 추론할 수 있다.
본 험 리처드함과 같은 와스프급 상륙강습함은 갑판이 직사각형의 형태로 되어 있으며, 수직 이착륙기를 탑재할 수 있고 상륙용 호버크래프트 (LCAC : Landing Craft Air Cushion)나 상륙용 주정장비(LCU : Landing Craft Utility) 같은 상륙정을 3대 탑재할 수 있다. 한 척의 LCU에 해병대가 400명까지 탑승하니 상륙정 3척이면 1200명의 해병대가 동시에 상륙할 수 있는 규모이다. 또한 LHD에는 600개의 병상이 있는 치료실이 있다.
2. 본험 리처드함, 무엇을 하고 있었나?
본험 리처드호는 세월호 참사 직후 현장에 출동한 함정 가운데 가장 큰 함정으로 헬기도 많이 보유했고 의료시설까지 있어 구조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주목을 받았다. (해경 123정과 대비되는 매우 큰 규모) 그러나 결과적으로 본험 리처드호는 세월호 구조에 아무런 도움도 주지 못했다.
사고 당시 본험 리처드호가 정확히 어디에 있었는지는 불분명하다. 김민석 국방부 대변인은 처음에 “한반도 서해상”에 있었다고 했다가 세월호 참사와 한미연합훈련 관련설이 나오자 20일 “약 155km 떨어진 공해상에 있었다”고 밝혔다. 4월 16일자 라디오코리아도 “사고 지점 북서쪽 155km 해상”에 있었다고 보도했다. 사고 지점에서 북서쪽 155km 해상이면 공해상이 맞다. 본험 리처드호는 3월 27일부터 2014 한미연합 쌍용훈련에 참가했다. 제주 남쪽 해상에서 시작해 포항에서 대규모 상륙훈련을 진행하는 게 쌍용훈련의 주요 골자다. 이 훈련은 4월 7일 끝났다. 특별한 일정이 없다면 사세보항으로 돌아갔을 것이다. 그러나 세월호 침몰 당시 본험 리처드호는 서해에 있었다.
그런데 4월 16일 성조(Stars and Stripes)지는 알로 아브라함슨(Arlo Abrahamson) 주한미해군 대변인의 말을 인용해 본험 리처드호가 사고 당시 100~115해리(약 200km 안팎) 떨어진 곳에 있었다고 보도했다. 북서쪽으로 200km면 대략 군산 앞바다까지의 거리다. 군산 앞바다는 세월호 경로 가운데 유일하게 공해상을 지나는 경로다. 세월호가 군산 앞바다 공해상을 지났을 새벽 2~5시 사이에 본험 리처드호가 어디에 있었는지는 확인할 수 없지만 두 배가 서로 만나거나 근접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김민석 대변인은 16일 “정기 경계 임무를 수행”하고 있었다고 밝혔다. 같은 날 성조지도 “일상적인 순찰을 하고 있었다”고 보도했다. 4월 25일자 <아주경제>도 “통상적인 순찰 활동을 벌이고 있었다”고 보도했다. 일본을 모항으로 하며 상륙작전에 투입되는 대형 상륙강습함이 왜 서해에서 순찰을 하는지 의문이다. 본험 리처드호에는 대잠헬기 시호크가 있기에 잠수함 수색 작업을 했을 가능성이 있다.
한편 단순 순찰 활동이 아니었다는 보도도 있다. 성조지는 4월 17일자 보도에서 “일상 작전을 수행 중이었다.”고 했다. 물론 순찰 활동을 작전이라고 표현했을 수도 있다. 그런데 4월 16일 <라디오코리아>는 “자체 훈련을 하고” 있었다고 보도했다. 다른 여러 언론들도 “훈련”을 하고 있었다고 보도했다.
3. 본험 리처드함은 구조에 참여하였나?
본험 리처드함은 사고수역에 재빨라 도달하였지만 세월호 구조에 투입되지는 않았다. 국방부 김민석 대변인은 4월 18일, “사고 현장에는 공군의 C-130 수송기를 비롯한 다수의 구조헬기가 운영되고 있었기 때문에 그 당시로서는 미군 헬기의 역할이 많지 않아 일단 복귀하도록 하고 추가로 임무를 주겠다고 지시를 했다”고 밝혔다. 16일자 성조지는 “익명을 요구한 한국 해군 관리는 미군의 추가 지원을 요청하기 전에 사태 추이를 지켜보는 중이라고 말했다”는 보도를 했다. 아브라함슨 대변인은 “한국과 논의를 했고 요청이 오면 지원하기 위해 대기 중이다”고 밝혔다.
본험 리처드호는 사고 다음날인 17일 오전에도 시호크 헬기 두 대를 투입해 수색에 나섰다고 한다. 그러나 아브라함슨 대변인은 한국의 요청에 따라 사고 지점에서 약 5~15해리(9~28km) 떨어진 구역을 수색했다고 하면서 왜 그 구역 수색을 요청했는지 모른다고 밝혔다.
미 대사관에서 운영하는 페이스북에서는 사고 당일 7함대 소속 본험 리처드호의 움직임을 공개했다고 한다. 당시 미국은 헬기도 동원해서 세월호에서 15해리 떨어진 곳(대략 30km 근방)에서 모종의 작업도 했다. 또한 미국은 독도함에 두 명의 잠수사를 파견해서 해군과 해경을 지원하기도 했다. 그러나 독도함은 실제로는 아무런 구조 활동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결국 본험 리처드호는 아무런 성과도 남기지 못하고 세월호 참사 지점에서 약 20~25해리(37~46km) 떨어진 곳에만 머물다가 4월 22일, 진도 해역을 떠났다. 미 해군 7함대 공보실은 4월 23일자 보도자료를 통해 “한국이 보유한 선박과 항공기 등 현재 자원을 활용하면 수색 및 구조 작업을 하는데 충분하다는 한국군 지휘부의 결정에 따라 본험 리처드호가 탐색구조 임무에서 벗어나게 됐다”고 밝혔다.
본 험 리처드 함은 세월호 참사 현장에서 대체 무엇을 했던 것일까?
http://mag-mkyd21.tistory.com/m/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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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공모함 연간 운영비))) 검색결과
http://m.tip.daum.net/question/87149660/87149798?q=%ED%95%AD%EA%B3%B5%EB%AA%A8%ED%95%A8+%EC%9A%B4%EC%98%81%EB%B9%84
기준을 어디까지 포함시키느냐에 따라 다르다고 합니다. 인건비, 간접운영비 등을 포함시키느냐 아니냐에 따라 차이가 있습니다. 현존 최강·최대 항공모함인 존 C 스테니스호의 경우 승조원 6700명을 기준으로 항모강습단의 하루 운영비는 650만달러, 연간 운영비는 23억7250만달러에 이른다고 합니다.
항공 모함 전단을 운영하려면 항공 모함만 해도 건조비로 50억달러(약5조원) 1년 운영비만
4~5억달러(4000억~5000억원) 거기에 각종 전투기를 90여대(예:우리나라 F-15K40대 도입
가격은 42.3억달러/40대 한 대당 약 1200억원) 탑재하는데 돈이 들어간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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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수함 레이더 확인 안 된다? 인근에 해군 함정 있었다
한동네|16.12.28|725
잠수함 레이더 확인 안 된다? 인근에 해군 함정 있었다
지난해 조동진 대령 명예훼손 사건 재판 잠수함 충돌 공방… 함문식함 사고 5분 전 인근 현장에 운항 중
이재진 기자 jinpress@mediatoday.co.kr 2016년 12월 28일 수요일
누리꾼 자로가 세월호의 외력 충돌 가능성을 제시하면서 뜨거운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해군도 잠수함 충돌 가능성을 반박하고 법적 대응까지 시사했다.
해군은 세월호 침몰 당시 레이더 영상(3함대 전탐감시대)을 보관하지 않고 있고, KNTDS(해군전술정보처리체계) 영상도 선박 크기와 상관없이 접촉물을 점으로 표현하기 때문에 공개가 되더라도 자로가 잠수함일 가능성이 높다고 제기한 주황색 물체의 면적이 표시되는 자료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사실상 군 측이 확보하고 있는 자료로는 주황색 물체를 검증할 수 없다는 얘기다.
하지만 세월호 침몰 당시 주변에 해군함대가 운용된 사실이 있다는 점에서 사고 당시 레이더 영상을 보관한 게 없다는 해군 측 입장을 납득할 수 없다는 주장이 나온다.
미디어오늘이 세월호 침몰 당시 해군작전사령부 연습훈련처장이었던 조동진 대령의 증인 신문조서를 입수해 분석한 결과 적어도 당시 해군이 운용했던 함대의 레이더 영상이 존재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지난해 우한석씨는 잠수함이 세월호의 좌현 선미 조타실 부분을 밀었고 급선회해 침몰했다고 주장해 명예훼손 혐의로 재판을 받았다. 그때 우씨를 고소한 사람이 조동진 대령이다. 조 대령은 훈련과 구조작전을 하는 작전사의 참모처장인 자신의 명예를 훼손했다고 주장했다.
조동진 대령은 증인신문에서 세월호 침몰 당시 잠수함의 운행은 없었다고 줄곧 부인했지만 그의 증언 내용을 살펴보면 해군함대가 출동한 사실을 재확인하면서 세월호를 찍은 레이더 영상이 존재할 것이라는 단서가 나온다.
조 대령은 "해군의 함정이 세월호 침몰 당일인 2014년 4월16일 오전 8시 58분경 세월호 침몰 현장에 출동해서 이미 도착해 있었던 사실을 당시 해군 작전사령부 훈련 참모처장으로서 알고 있지요"라는 질문에 "예, 알고 있다"고 답한다.
그러면서 조 대령은 "4월16일 오전에 해양경찰의 CN-235(해양경찰 초계기)가 세월호 침몰 현장 부근에서 촬영한 이 사진 속 함정이 해군의 함문식함이 맞지요"라는 질문에도 "예, 맞다"고 답한다.
해군은 세월호 침몰 사고 최초 상황접수 시간을 2014년 4월16일 9시 3분이라고 밝혔는데 조 대령의 증언은 사고 상황 접수 5분 전에 함문식함이 침몰 현장 인근에 있었다는 것을 뜻한다. 그의 증언은 공식적으로 발표한 시간보다 먼저 세월호 사고를 인지해 해군함대가 출동했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는 발언이어서 논란이 됐다.
또한 해군함대인 함문식함이 8시58분경 도착해 세월호 침몰 현장을 돌고 있었다고 한다면 침몰 현장을 찍은 레이더 영상도 존재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우한석씨는 28일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군의 모든 배에는 레이더가 장착돼 있다. GPS 기능이 있는 해도가 있고, 전략 통합 전술 레이더도 구축돼 있다"면서 "해군이 레이더 영상이 보관된 게 없다고 하는데 서버엔 당연히 있다. 무언가를 은폐하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우씨는 "레이더 영상이 없다고 하더라도 함대 운용 작전상 페이퍼로 출력된 자료는 보관하게 돼 있는 걸로 안다. 4월16일 함문식함의 레이더 영상 관련 자료도 제출하면 된다. 하지만 군은 당시 재판장에서 함문식함의 출동일지조차 내놓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이밖에 조 대령의 증인신문 조서를 보면 세월호 잠수함 충돌과 관련한 군 측 입장을 상세히 알 수 있다.
조 대령은 "이 사진(해양경찰 초계기가 찍은 세월호 사진)을 보면 해군의 잠수함이 해군의 함문식함을 뒤쫓아가는 것이 보이는데 잠수함이 맞느냐"는 질문에 "잠수함이 아니다"고 답하면서도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요"라는 질문에 "모르겠다"고 답한다. 우한석씨는 해양경찰 초계기가 찍은 함문식함 뒤를 따르는 잠수함 형상의 사진과 영상, 그리고 그 시점의 진도 VTS 관제 영상을 제시하며 세월호 사고 당시 잠수함이 운행됐다고 주장했다.
우씨는 “초계기 영상에 나오는 모습과 VTS에 잡힌 물체가 일치하고 형상, 속도, 전망탑의 모습, 웨이크(후류) 등 네 가지를 보면 잠수함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조 대령은 당시 우리나라 영해에 잠수함과 관련된 훈련이 없었다면서 "우리나라는 잠수함의 안전수심이 50미터 이상 되어야만 잠항할 수 있도록 정해놓고 운영하고 있는데 세월호 사고 해역은 수심 자체가 40미터 밖에 되지 않기 때문에 낮아서 불가능하다"고 주장했다. 누리꾼 자로의 주장에 해군이 반박한 내용과 정확히 일치한다.
그러면서도 조 대령은 "증인이 기획하지 않거나 보고를 받지 않은 잠수함 운행이 있었던 적이 있느냐"는 질문에는 "해군에서 작전과 훈련은 구분되어 있는데 작전은 증인의 소관이 아니라 작전처에서 주관하고 거기서 비밀로 잠수함을 움직인다"고 말했다. 다만 조 대령은 "거기에서 훈련은 없었고, 증인의 소관은 아니지만 잠수함 작전은 거기에서 이뤄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 해경초계기 CN-35가 세월호 참사 현장을 촬영한 모습. 해경 동영상 갈무리
세월호 침몰 당시 한미연합훈련이 있었는지 여부도 쟁점으로 떠올랐다. 조 대령은 지난 2014년 4월 11일부터 4월25일까지 공군훈련은 있었지만 해당 기간 잠수함 전단 기동 훈련이 포함된 한미 해군 연합 훈련은 없었다고 증언했다. 하지만 해당 기간에 해군 훈련이 실시됐다는 언론 보도에 대해서는 "그것은 보도기관에 가서 물어보라"고 답했다.
세월호 침몰 지점은 수심이 낮아 잠수함 운행이 불가하다는 것이 군측 입장이지만, 군은 천안함 사건 당시 수심이 낮은 해저에서도 북한 잠수함의 잠항이 가능하다고 발표한 바 있다.
이에 대해 조 대령은 "북한 연어급은 약 200톤 미만의 소형 잠수정이다. 그것과 우리의 1284톤짜리 정규 잠수함과는 크기가 틀리다"라며 "크기가 작으면 40미터 이하에서 잠항이 가능한데 7000톤 가까이 되는 핵잠수함이나 1284톤 잠수함과 200톤 잠수정하고는 비교할 수 없다"고 말했다.
해군 측은 잠수함과 세월호가 충돌했다면 상식적으로 잠수함에 큰 손상이 발생했을 것인데 세월호 침몰 당시 잠수함 수리 소요나 부상자가 발생한 사례가 없다고 주장했다. 이와 관련해 조 대령도 "통상 우리 디젤 잠수함 400톤 클래스는 (두께가) 2cm 밖에 안 된다"고 말했다. 조 대령은 1800톤급 잠수함의 서체 두께에 대해서도 "통상 2~3cm"라고 말했다.
반면, 잠수함 업무를 오래도록 해온 현직자라고 자신을 소개한 한 누리꾼은 28일 오늘의유머 사이트에 남긴 글에서 "잠수함은 압력선체/비압력선체로 구분할 수 있는데 압력선체는 승조원이 머무는 잠수함 본체로 굉장히 단단한 구조와 높은 강도의 재질(HY강)로 만들어져 깊은 수심의 높은 수압에도 견딜 수 있도록 설계된다"면서 "잠수함 종류에 따라 다르지만 수압 40~60Bar까지 버티며 찌그러질지언정 찢어져뚫리지는 않는 아주 강력한 구조물로 이루어져 있다. 제가 보는 세월호와 잠수함 충돌은 계란과 쇠구슬이 부딪히는 느낌입니다. 태평양을 누비는 핵잠 같은 경우는 수압 100 Bar 이상의 압력도 견디는 굉장히 단단한 구조와 재질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원문보기:
http://www.mediatoday.co.kr/?mod=news&act=articleView&idxno=134249#csidx4219c8b453a690bb34f056eaed0b711
ᆢᆢᆢᆢᆢᆢᆢᆢᆢ
박대통령은 아직
회신이 없는 상태 ᆢ
명예훼손! 개가 웃을 일이다
박근혜 장본인은 모르는데
제3자가 명예훼손 혐의로 고발
김씨는 “명예훼손 법리상 피해자의 처벌의사가 확인되지 않으면 무죄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목포해양경찰서장
서울경찰청
자신들의 일이나 잘하지
남의 고소고발엔 왜 참견하나?
직권남용 아닌가?
뒤죽박죽
엉망진창
3권 분립 어디 갔나?
롯데36층 갔나?
국가보안법 안 통하니
명예훼손으로 고발 ᆢ구속
제2의 국가보안법 명예훼손죄를 고발해야겠다
이젠 모든걸
명예훼손으로 구속 남발 하는구나ᆢᆢ
무죄추정?의 원칙 어디 간거니ᆢᆢ
다른나라에선
국가에 대한 명예훼손 인정 안된다던데 ᆢ
이미 3년형을 받은 123정장
처벌의사 밝혔다니 뻔뻔해도 너무 뻔뻔해ᆢᆢ
이미 3년형을 선고받은 123정장만이 나에 대한 처벌의사를 밝혔을 뿐 동승한 다른 해경은 불처벌 의사를 밝혀왔다”며 “박 대통령은 아직 회신이 없는 상태”라고 말했다. 김씨는 “명예훼손 법리상 피해자의 처벌의사가 확인되지 않으면 무죄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씨는 지난해 4월 17일 경 자신의 블로그에 ‘해경이 못구하는 것이 아니라 안구하는 것’이라는 취지의 글을 올린 뒤 나흘 만인 4월 21일 구속됐다. 목포해양경찰서장 명의로 고소한 이 사건은 1심 재판이 40일 만에 끝났을 뿐 아니라 대법원 확정판결(징역 1년형)이 날 때까지 1년이 채 걸리지 않았다. 속전속결이었다. 김씨는 지난 4월 만기출소했다.
고소고발은 해군이 아닌 서울경찰청이 고발을 의뢰한 것이며, 해군 법무실에서 검토한 결과 이 해군 대령이 고소하게 됐다고 법정에서 증언했다
●●●세월X 댓글
윤종국
안녕하세요. 저는 해군 항해과 대위 출신입니다.오늘 세월호 당일 해군군함(한문식함-PKG)과 미군함정(리처드함)이 세월호 인근해역에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쌍용훈련이 4월 7일까지 있었더군요. 그리고 나서 바로 의심이 가는 사고원인에 대한 정황이 떠올랐습니다. 물론 가설이긴 합니다.오전 9시경 사고해역 근처에 한문식함이 있었다면 둘중 하나입니다. 훈련을 위해 출동 또는 훈련후 복귀(경비임무는 야간에 이뤄집니다.) 또한 리처드함이 서해 공해상에 있었다면 훈련이 있었을 확률이 큽니다. 서해상에서 경비임무는 중국과의 마찰때문에 미군이 거기서 경비임무를 할 일은 없습니다. (제 생각엔 쌍용훈련 핑계로 왔다가, 해군연합훈련 이유로 대기하면서 초계임무를 병행하였을 가능성이 큽니다 일본 모항으로 복귀중이었다니 훈련이 세월호 사고전에 있었겠지요 한국 해군은 미해군이 오면 최대한 많은 연합훈련을 하려 노력합니다)중요한 것은 이러한 한미연합훈련의 필수는 대잠훈련입니다. 거의 100프로 대잠탐지 및 공격훈련이 이뤄집니다. 리처드함에도 대잠헬기가 있으니까요. (제생각엔 제주의 기동전단과 훈련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기동전단엔 잠수함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훈련후 수리를 위한 3함대(목포)또는 진해(9전단) 복귀든 아니면 3함대(목포)에서 제주도 이동 등 근처에 잠수함이 있었을 확률이 큽니다. 사고해역은 목포-제주간 주 이동항로입니다.해군에서는 수심이 낮아서 잠항이 안된다고 하는데, 보통 그 해역에서는 수상항해 합니다.(스노클 항해법도 있는데 거의 안합니다) 수상항해시 수상함에 비해서 흘수가 대단히 낮아서 성능 안좋은 레이더에선 잘 안잡힙니다. RCS가 적기 때문이죠 또한 수상하는 잠수함은 멀리서는 잘 보이지 않습니다. 사고당일 그 시간이면 시정이 대단히 좋지 않았을 테니 더 안보였겠죠 그 해역은 봄에 시정이 대단히 안좋아서(안개) 봄에 사고가 자주 발생합니다.(주로 상선 어선 충돌) 목포방어사령부(현 3함대) 상황실에 근무해 봐서 잘 압니다. 그 시기면 특별한 주의 기간입니다.이에 따라 제가 생각하는 사고원인은 * 수상항해하는 잠수함을 뒤늦게 발견한 세월호가 급격히 변침하다 넘어진 것입니다. (충돌여부는 약간 스친 정도가 아닐까 합니다.) * 잠수함이 세월호를 피하지 못한 이유도 동일합니다. 수상항해시 잠수함은 전적으로 견시에 의존합니다. 눈으로 확인하면서 조함할수 밖에 없습니다. 근데 그 눈이 잘 보이지 않는 환경이었죠. 수상함은 시정이 낮아도 레이더를 통해서 안전항해가 가능합니다.CPA 계산을 통해 다 피하죠 잠수함은 그게 안되요. 수상항해 할때는 수상함이랑 같은데 능력은 훨씬 떨어집니다.사고원인을 파악하려면 1. 사고해역은 3곳(추자도, 가거도, 흑산도)의 해군전탐감시대에서 모두 감지가 되는 위치이니 그 기록을 확인하면 됩니다. (진도VTS 레이더보다 더 정확하게 알수 있습니다.) 2. 이는 모두 3함대(목포) 상황실에서 KNTDS를 통해 한눈에 알수있게 전시되니 그 기록도 확인하면 됩니다. (바다위에 떠있는 거의 모든것을 잡아냅니다, 작은 어선까지) 3. 함대상황실에서는 사고나 상황발생시 모든것을 상황일지등 기록으로 남기며(상부 지시사항 포함) 목포해경과 실시간 상황을 공유하니 당시 상황실 근무자들에게 증언들으면 해경상황까지 전체적으로 알수 있을 것입니다. 특히 전탐감시대나 함대상황실에서 근무했던 제대한 수병들은 부담없이 얘기할수 있을듯. 상황실에도 항상 24시간 TV뉴스 채널 틀어놓고 하니 세월호 당일 분명히 기억하고 있을 것임.꼭 잠수함이 아니더라도 해군과 관련된 무언가의 항해물이 원인일 확률이 큰것 같습니다. 아니면 해군이 저리도 감출리가 없습니다.이상이며, 진실을 밝히는데 작은 도움이라도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1일 전•144
●●●
세월호 의혹제기했다 징역 1년, "재판과정 의심"
http://www.donga1024.or.kr/artyboard/Mboard.asp?Action=view&strBoardID=freeboard&intSeq=27377
[인터뷰] 김현승·우한석·김준호, “잠수함설·123정 밧줄설 법정서 진실 밝힐것”… “해경 구조못한 진실 외면”
[0호] 2015년 09월 27일 (일) 조현호 기자 chh@mediatoday.co.kr
지난해 수백명의 목숨을 앗아간 세월호의 침몰과정에 대해 인터넷상에서 해경 책임론을 강하게 제기했다가 실형을 선고받거나 구속된 시민들이 ‘괴담이나 유언비어가 아니다’라는 것을 법정에서 입증하겠다고 밝히고 나섰다.
지난해 4월 경찰의 유언비어 단속 방침에 따라 충분한 항변권도 얻지 못한채 구속된 이후 징역 형을 선고받고 만기 출소한 이도 있다. 해경이 제대로 구조활동을 하지 않았다고 비판했던 홍가혜씨는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데 반해, 비슷한 취지의 비판 글을 인터넷에 올렸던 김준호(32)씨는 징역 1년 형을 선고받았다. 김씨는 지난해 4월 17일 경 자신의 블로그에 ‘해경이 못구하는 것이 아니라 안구하는 것’이라는 취지의 글을 올린 뒤 나흘 만인 4월 21일 구속됐다. 목포해양경찰서장 명의로 고소한 이 사건은 1심 재판이 40일 만에 끝났을 뿐 아니라 대법원 확정판결(징역 1년형)이 날 때까지 1년이 채 걸리지 않았다. 속전속결이었다. 김씨는 지난 4월 만기출소했다.
김씨는 지난 25일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내가 글을 올린 뒤 10분 만에 삭제했을 뿐 아니라 유가족이 탄원서까지 제출했지만 전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며 “항소심에서의 경우 목포해양서장과 UDT동지회 민간잠수사 등을 핵심 증인을 신청했으나 기각됐다”고 전했다.
김씨는 “무엇보다 해경이 실제로 제대로 구조하지 못한 진실에 대해서는 외면하면서 내가 글 쓴 것만 잘못이라는 식으로 재판이 흘러갔다”며 “나와 유사한 케이스인 홍가혜씨는 무죄를 선고받은 것에 비해 내 형량은 너무 과하고 형평성에도 맞지 않다”고 비판했다. 그는 “재판 과정에서 내가 ‘글쓴 것은 잘못이며, 이슈화하려 한 잘못은 인정한다’고 했으나 내가 실형을 선고받은 과정이 의심스럽다”며 “참사 닷새 만에 경찰에 출두하라고 해서 갔다가 곧장 구속되고 재판도 너무 빨리 진행됐다. 지방선거 하루 전날에 1심 선고가 나왔다”고 말했다.
세월호 45도 기운 장면. 사진=전남 어업지도선 영상 캡처
이와 함께 세월호 사고 현장에 도착한 해경123정이 세월호를 밧줄로 묶어 더 빨리 침몰시키려 한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한 누리꾼도 구속된 이후 재판을 받고 있다. 보안 IT 전문가인 김현승(43)씨는 해경 123정이 도착한 이후 세월호가 완전히 물 속에 잠길 때까지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법정에서 입증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지난해 6월 26일 다음 카페에 “세월호가 너무 커서 어뢰로도, 폭탄으로도, 잠수함 추돌로도 안 뒤집어지니까 이미 추돌했던 그 잠수함으로 앞에서 충돌, 그래도 안되니까 해경이 끌어서 세월호를 뒤집어 엎었다”는 글 등을 올린 혐의로 지난해 12월 23일 구속기소됐다. 이후 김씨는 지난 5월 ‘구속만기’ 1개월을 앞두고 보석으로 풀려나 현재 불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받고 있다. 이밖에도 그는 박근혜 대통령의 사생활을 거론한 글에 대해서도 함께 기소됐다.
김씨는 자신이 구속된 것에 대해 “내가 자발적으로 출석해 조사를 받았는데, 도주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구속됐다”며 “대법원에 선거무효소송도 제기했던 내가 무슨 도주우려가 있느냐. 판사가 감정적으로 판단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김현승씨는 25~26일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이미 3년형을 선고받은 123정장만이 나에 대한 처벌의사를 밝혔을 뿐 동승한 다른 해경은 불처벌 의사를 밝혀왔다”며 “박 대통령은 아직 회신이 없는 상태”라고 말했다. 김씨는 “명예훼손 법리상 피해자의 처벌의사가 확인되지 않으면 무죄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검찰은 김씨에 대한 공소장에서 “박 대통령이 세월호를 침몰시키기로 사전에 계획한 사실도 없었고, 해군 잠수함이 세월호를 수차례 들이받은 적도 없으며, 해경 123정 대원들이 세월호를 밧줄로 묶어 물살이 센 맹골수도 해역으로 끌고 가 300여 명이 넘는 승객들을 수장시킨 사실도 없었다”고 밝혔다.
이 같은 검찰 주장을 두고 김현승씨는 “그런 일이 없다는 주장을 검찰이 무엇을 근거로 한 것이며, 그런 판단이 법적으로 정당한지 모두 법원에서 가릴 것”이라며 “검찰이 제시한 근거가 대검종합수사결과 발표문이지만, 이것이 진실인지 밝혀져야 한다. 이 발표가 진실이 아니면 내가 기소될 이유가 없다”고 반박했다.
침몰중인 세월호. 사진=해경
해경 123정이 세월호를 밧줄로 묶어 전복에 관여했을 것이라는 주장에 대해 김현승씨는 “해경 123정이 밧줄로 세월호를 묶고 끌고 다닌 행위가 담긴 영상과 사진을 통해 진실을 입증할 것”이라며 △세월호가 오른쪽 방향으로 회전했다가 반대편 방향으로 회전했는지 여부 △남쪽에서 북쪽으로 흐르는 조류의 반대방향으로 움직인 것에 대한 123정의 관여 여부 △123정의 밧줄이 묶여진 이후 옆으로(왼쪽으로) 전복되는 속도와 각속도가 크게 나온 분석결과 등을 제시했다.
김씨는 “그 시간에 해경 123정이 밧줄을 걸고 있었는지, 밧줄 거는 행위와 배로 당기는 행위에 고의성이 있었는지, 어떤 목적이었는지, 조직적이었는지, 과실 또는 실수였는지에 대해 법정에서 사진과 영상 및 분석 자료로 가려야 한다”고 말했다.
김씨는 이 같은 검증에 대해 “해경123정이 도착(9시35분)하고 나서부터 세월호가 108도(횡경사각) 기울기로 전복될 때(10시17분)까지 약 42분 동안 해경 123정이 무슨일을 했는지가 자세하게 분석되거나 검증되지 않았다”며 “정부, 언론, 검찰, 법원 다 마찬가지였다”고 지적했다. 해경 123정이 무슨 일을 했는지 자세하게 알 권리가 있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정말 해경 123정이 사고 현장에 가서 구조는 못할망정 참사에 관여했겠느냐는 상식적 의문은 남는다.
김현승씨와 유사한 주장의 글을 썼던 우한석(구속)씨는 1심에서 1년6개월 형을 선고받은 뒤 현재 항소심 재판을 받고 있다. 특히 그는 잠수함 충돌 가능성을 거론했다가 해군 대령으로부터 고소를 당했다. 그러나 이 고소고발은 해군이 아닌 서울경찰청이 고발을 의뢰한 것이며, 해군 법무실에서 검토한 결과 이 해군 대령이 고소하게 됐다고 법정에서 증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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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일부 보강 9월 27일 밤 10시3분]
첫댓글 차라리 조폭이 부러운 `~썩어 문드러진 비열무쌍한 쥐폭,닭폭에 찌들은 망쪼국~~
창조살인,창조사기,창조조작,창조삥뜯기....... ~~~덕분에 쥐바귀만 신났군ㅉㅉ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