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일 오후 서울 지하철 4호선 명동역 6번 출구 앞. 한때 명동 상권을 대표하던 ‘밀리오레’와 ‘CGV’ 건물 1층이 모두 비어 있었다. ‘우리은행 명동금융센터’까지 이어지는 명동8길은 점포 세 곳 가운데 두 곳꼴로 불이 꺼져 있었다. 유리창엔 ‘임대 문의’ ‘영업 종료 안내’ 등의 플래카드가 붙었고 바닥엔 ‘대출’ ‘일수’ 등이 적힌 광고지가 수북했다. 중구 충무로2가 S공인 관계자는 “지난 2월 코로나19 백신 접종이 시작되면서 ‘이제는 상권이 좀 살아나겠지’ 하는 일말의 기대를 했는데, 또다시 대유행이 닥치면서 허망하게 무너졌다”고 했다.
명동 중앙로 상가 70%가 비어
코로나19 4차 대유행이 본격화하면서 명동, 강남대로, 신촌, 홍대 등 부활을 노리던 서울 대표 상권이 속절없이 무너지고 있다. 코로나19 유행 전 수억원에 달하던 권리금을 아예 안 받는다고 해도 들어오겠다는 사람이 없어 수개월째 공실인 점포가 부지기수다. 4차 대유행 전 ‘무(無)권리금’으로 음식점을 개업했다가 매출 급감 여파로 보증금을 떼일 처지에 놓인 상인도 상당수였다.
명동은 코로나19 사태 이후 가장 눈에 띄게 상권이 쇠퇴하고 있는 곳이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명동 중대형 상가(3층 이상) 공실률은 작년 4분기 22.3%에서 올 1분기 38.4%로 급등했다. 상점 다섯 곳 중 두 곳이 폐업 상태란 의미다.
CGV 뒤편에 있는 전용면적 222㎡ 1층 상가는 보증금 7억원, 월세 4000만원에 매물이 나와 있다. 중국인 관광객의 화장품 쇼핑 필수 코스로 꼽히던 골목에 있다. 이 상가는 2~3년 전만 해도 권리금이 3억원에 달했지만, 지금은 제로(0)다. 인근 M공인 관계자는 “이 일대에서 권리금이란 말이 사라진 지 1년이 다 됐다”며 “무권리금은 물론 임대료를 10~20% 낮춰준다고 해도 임차인을 찾기 어렵다”고 전했다. 또 다른 중개업소 관계자도 “상가 건물을 중개한 지가 반 년이 넘었다”고 했다.
수년째 경기가 좋아지길 기다리며 버티다가 보증금도 돌려받지 못하고 폐업한 사례도 많다. 명동에서 고깃집을 운영하는 구모씨(48)는 “작년 말 코로나19 3차 대유행 때 반토막 났던 매출이 올 상반기 좀 회복되는가 싶더니, 최근 영업 제한이 또다시 강화되면서 이전 수준만도 못하게 쪼그라들었다”고 하소연했다.
신촌·강남역도 불황 여전
대표적 대학가 상권 중 하나인 신촌역 부근도 긴 불황의 터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신촌명물거리 초입의 5층짜리 건물은 통째로 비어 있었다. 골목마다 두세 개꼴로 ‘임대’라고 적힌 건물이 눈에 띄었다. 인근 한 상가 주인은 “작년 11월 3층짜리 상가를 샀는데, 가게를 차리겠다는 사람이 하나도 없어 빈 건물로 놔두고 있다”고 했다.
인근 대학의 원격수업이 장기화하면서 이 일대 음식점과 술집의 매출은 코로나19 사태 전의 절반 밑으로 급감했다. 전용 33㎡ 규모의 곱창집을 운영하는 정모씨(76)는 “작년에 180만~200만원이던 하루 매출이 이달 들어선 10분의 1토막 났다”고 했다.
오피스빌딩과 학원이 밀집해 있는 강남대로(지하철 2호선 강남역~신논현역 사이 700m 구간)는 그나마 사정이 나은 편이다. 이 일대 중대형 빌딩 공실률은 올해 1분기 8.6%로, 작년 4분기(8.7%)보다 소폭 낮아지는 데 그쳤다. 그러나 코로나19 사태 전 이 일대에서 가게를 차리려면 1~2년간 ‘임대 대기’를 해야 했지만, 그런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강남역 11번 출구 앞 전용 165㎡ 상가는 종전 3억원이던 권리금이 ‘0원’이 됐다. Y베이커리는 2년 전 1억원이던 월매출이 작년 말 6000만원으로 줄더니 올 6월 이후엔 4000만원 수준까지 떨어졌다.
상황이 이런데도 상가 임대료는 여전히 높은 수준에 유지되고 있다. 올 1분기 강남대로의 상가 임대료 변화를 보여주는 임대가격지수는 작년 4분기보다 0.02% 낮아지는 데 그쳤다.
최황수 건국대 부동산대학원 겸임교수는 “임대료가 내려가면 건물 시세도 떨어지기 때문에 건물주들이 임대료를 인하하지 않고 버티는 것”이라며 “폐업을 목전에 둔 소상공인을 대상으로 ‘핀셋 지원’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