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살표를 위하여 1 - 만남 / 함민복
어느 날
일터를 향해 달리다 멈춘 차에서
여기까지 오며 몇 개의 화살표를 만났을까
몇 번 화살표의 지시를 따랐을까
한두 번만 지시를 어겼어도
여기에 다다르지 못했을
어쩌면 치명적인 결과에 놓였을지도 모를
이 세계는 화살표의 숲
화살표가 가리키고 있지 않는 곳은 없네
화살표가 또 다른 화살표로 바통을 넘기고 있는
이 세계는 방향의 숲
시간마저 돈으로 환산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화살표는, 시간의 낭비를 단축할 수 있는
시간을 사냥할 수 있는 화살
속도를 섬기는 신앙
자신은 움직이지 않으면서 다른 모든 것들을 움직이는 으뜸가는 것을 신이라했던가*
그렇다면 자신은 움직이지 않으면서 움직이는 것들을 돕고 있는
화살표의 정체는 무엇일까
혹 우리 시대에 여러 모습으로 현현한 '가라' 메시아는 아닐까
문명에서
갑자기 모든 화살표가 사라진다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
초침 분침 시침이 모두 화살표로 되어 있던
꼬리가 원점에 잡혀 회전하며
방향을 시간으로 전환해 주던
촌각이 방향 속에 있음 일러주던
옛 괘종시계에서
뎅 뎅 뎅
화살표의 울음소리가
시간의 울음소리가 들려온다
나는 조수석에 눈을 감고
차는 화살표 방향으로 다시 출발한다
화살표의 뾰족한 배웅에 찔려
등이 뻐근해지고
화살표의 영혼인 방향과
동행 길에 오른다
* 아리스토텔레스 <형이상학>
- 불교문예 2020년 가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