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 '올 바이 마이셀프'로 많은 이들의 심금을 울린 미국 가수 에릭 카멘이 74세를 일기로 저하늘로 떠났다. 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협주곡 2번 2악장의 멜로디를 따온 것이 암울한 시대를 살던 이들에게 견딜 힘을 안겨줬다.
2016년 결혼한 부인 에이미 머피는 11일(현지시간) 고인의 홈페이지에 글을 올려 “다정하고 사랑스러우며 재능 많은 에릭이 주말에 잠든 채로 세상을 떠났다. 그를 아는 일은 큰 기쁨이었고, 수십년 동안 그의 음악은 많은 이들에게 감명을 줬다. 그의 유산으로 길이 간직될 것이다. 유족들의 사생활을 보호해주기 바라며 ‘Love Is All That Matters…믿음으로 영원히”라고 밝혔다. ' Love Is All That Matters'는 1977년 솔로 앨범 'Boats Against the Current'에 수록된 노래 제목을 그대로 갖다 쓴 것이다. 정확한 사망 일시와 원인은 알려지지 않았다고 버라이어티 닷컴이 전했다.
오하이오주 클리블랜드 태생인 그는 국내 등에 발라드 가수로 알려져 있지만 원래는 록 밴드 라스베리(Raspberries)의 간판 보컬리스트이며 송라이터였다. 1970년대 초반만 해도 헤비메탈, 글램 록, 프로그레시브 록이 강세였는데 이 밴드는 이런 경향에 반기를 들고 자신들이 들으며 자란 비틀스 음악을 되살리려 했다. 팝과 록을 최대한 접목시키려 했다. 카멘은 폴 메카트니의 작곡과 창법을 전범으로 삼았다. 밴드는 'Go All the Way'와 'I Wanna Be With You', 'Let’s Pretend', 'Tonight', 'Overnight Sensation' 등을 히트시켰다. 때로는 너무 가볍다는 핀잔을 들었다.
하지만 라스베리는 동시대 배드핑거나 토드 룬드그렌 같은 밴드가 따라 할 정도로 나름의 입지를 굳혔다. 1990년대 너바나의 리더 커트 코베인이나 브루스 스프링스틴이 팬을 자처하며 동경했음을 털어놓곤 했다.
이 밴드가 1970년대 중반 해체되자 카멘은 솔로로 전향, '올 바이 마이셀프'를 비롯해 'Never Gonna Fall in Love Again', Hey Deanie'(숀 캐시디의 히트곡) 등으로 유명세를 떨쳤다. 1980년대에는 'Dirty Dancing' 삽입곡 'Hungry Eyes'로 전성기를 이어갔다.
러시아계 유대인 이민자 핏줄이었던 카멘은 어린 시절부터 음악에 빼어난 자질을 보였다. 여섯 살에 바이올린 레슨을 받았다. 이모는 클리블랜드 오케스트라의 바이올린 연주자였다. 나중에 피아노와 기타를 배워 고교에 다니며 작곡을 시작했고 가명으로 록밴드에 가담하기도 했다.
흥미로운 것은 고인이 가명으로 활동한 밴드 Cyrus Erie에 이글스의 주축 조 월시 등도 함께 활동했다는 것이다. 1968년 에픽 레코드에서 나온 싱글 'Get the Message'에서 인연을 맺은 기타리스트 월리 브라이슨, 베이시스트 존 알렉식, 드러머 짐 본판티가 1970년 라스베리를 결성했다.
'올 바이 마이셀프'는 20년이란 세월을 건너 뛰어서도 많은 사랑을 받았다. 1995년 니콜 키드먼 주연 영화 'To Die For'의 결정적인 장면에 삽입됐고, 캐나다 디바 셀린 디옹이 2년 뒤 다시 불러 빌보드 차트 4위까지 올라갔다. 'Go All the Way'는 영화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사운드트랙의 첫 번째 노래로 삽입됐다.
All by myself(1975, 한글자막) / Eric Carmen (youtub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