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주에 도화살이 있다는 말을 듣고는
이대흠
사주에 도화살이 있다는 말을 듣고 처음에는 겁이 났습니다 그런데 가만 생각해 보니 내 운명에 복숭아꽃이 피어있는 것만 같아서 복숭아꽃 피는 봄을 내내 살 것만 같아서 어디서나 꽃밭일 것만 같아서 기뻤습니다
도화살 매화살 이 화살이 꽃살 무늬로 새겨진 방 안에 머물면
당신은 또 꽃 그림자처럼 스미겠지요
묵화로 그린 댓잎 같은 바람이 불어도 좋겠습니다
국화 향이 창호지에 스며 내내 달빛인양 고이면
당신의 도화살과 나의 도화살이 나란히 누워
꽃잎처럼 부드러운 서로의 살을 만지고
봄밤 같은 세월을 바위에 꽃잎 떨구듯 한 잎 한 잎 흘리면
바닥은 얼마나 놀랄까요?
꽃을 입게 될 줄 몰랐을 겁니다
사주에 도화살이 있다는 말을 듣고는 세상의 모든 봄이 내 것이 된 것만 같아서
비 온 뒤 꽃 뿌리처럼 몰랐던 내가 돋아나는 것만 같아서
웃기만 해도 몸속에서 꽃향기가 출렁거렸습니다
그러나를 수신하는 방식
있다는 것만으로도 결은 발생합니다
숨결이거나 물결이거나 바람결이거나 한 번 일어난 결은 번져서 끝까지 지워지지 않습니다
나의 파장과 당신의 파장이 만나는 순간을 파도가 쳤다고 표현해야 할까요
주파수가 맞으면 소리가 나오는 라디오처럼 당신의 신호를 기다립니다
그러나라는 당신, 당신의 그러나
당신의 기척이 내게로 전해질 때 나는 몸 밖으로도 핏줄이 흐른다고 생각했습니다 당신의 호흡에 나의 호흡이 묻혀갈 때 우리들의 심장은 서로를 흉내 내며 뛰었지요 보이지 않더라도 전파처럼 전해지는 것이 있습니다
잠시 지지직거리며 나는 나에게 몰두합니다 이미 온 감기처럼 내 안의 깊은 곳에 숨어있는 당신을 찾아내었을 때 나는
어린 당나귀처럼 마구 나를 흘리고 싶어 견딜 수 없습니다
하품의 전염성
하품에도 전염성이 있다. 한 사람이 하품을 하면 옆 사람도 하품을 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서로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는 경우에는 하품이 더 쉽게 전염된다. 연인끼리, 가족끼리는 하품의 전염성이 더 강하다.
비단 하품만은 아니다. 웃음에도 전염성이 있고, 슬픔에도 전염성이 있다. 전혀 그럴 생각이 아니었는데, 어떤 사람이 슬퍼하는 것을 보고, 내 안의 슬픔이 터져 울었던 적이 있다. 이렇게 어떤 감정이나 기운은 전염된다. 번진다. 연결된다. 시를 읽을 때도 마찬가지이다. 글쓴이를 모르지만, 내 안의 감정을 담고 있는 것 같은 작품을 만나면 깊이 있게 공감을 하게 된다.
내가 직접 겪어보지 않았더라도 타자의 아픔이나 기쁨에 공감할 수 있다는 것은 인간의 능력 중에서 가장 가치 있는 능력이 아닐까. 그런데 정치적 이유에서건 사상적 견해 차이에 의해서건, 자신의 입장을 견지하면서 타자와 단절을 꾀하는 사람들이 꽤 있다. 그런 이들을 볼 때마다 안타깝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결국 무엇일까. 그들은 결국 이기적인 자기 왕국을 건설하려는 꿈을 꾸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인간의 몸이 탄소 결합체라는 건 잘 알려진 사실이다. 즉 무수한 것들의 덩어리가 몸이다. 겉으로는 하나지만, 우리 몸속에는 약 100조 개의 생명체가 있을 것으로 추정한다. 즉 100조 개의 생명체가 연결되어 있는 게 우리의 몸이다. 커다란 눈으로 보면 땅 위에 흩어져 있는 인간의 몸이란 것도 현미경으로 본 분자 결합물처럼 움직이고 있지 않을까.
단절이냐 연결이냐 그것을 고민해야 한다. 우리의 공동체가 지향해야 할 것은 어떤 이념이 아니라, 단절을 극복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들이 각자로 분리될수록 우리는 서로를 배타적으로 대할 것이며, 결국 서로를 죽이게 된다. 반면 우리들이 밀접하게 연결될수록 우리는 서로를 사랑할 것이며, 그것은 서로를 살리는 길이 될 것이다. 이때 중요한 것이 공감 능력이다.
사랑으로 이어져 있는 관계에서는 공감 능력이 커진다. 그리고 그것은 실제적인 현상으로 나타난다. 사랑하는 사람끼리 손을 잡으면 서로의 심장박동수가 같아진다고 한다. 그리고 뇌파의 파동도 같아진다. 사랑의 힘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것으로 서로 연결되어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공감 능력은 서로가 다름을 인정하는 데서 출발한다. 우리는 기질이 다르고 생김새가 다르다. 좋아하는 것도 서로 다르고, 세계관도 다르다. 사주도 다르고, 살아온 환경도 다르다. 이렇게 무수한 서로가 아주 다르다. 그러나 우리는 유전적으로 거의 똑같은 사람들이고, 사람이 아닌 생명체들도 성분이 거의 같은 탄소 결합물들이다. 살아있는 것들은 함부로 할 것이 하나도 없고, 설령 생명이 없다고 여기는 것들도 그렇게 단정하기는 어렵다. 탄소 결합체의 입장에서 그들은 다를 뿐이지, 우주적인 눈으로 본다면 전혀 다른 것이다.
‘내가 하품을 하니, 돌이 하품한다.’ 이것이 마땅한 세계다. 내 시는 그러한 관계를 연결시키려는 꿈이다. 경첩이다. 먼 별의 아픔도 느낄 수 있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