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이밖에 해양 인력 양성 학교로 부산해사고등학교, 인천해사고등학교가 있는데, 상기 12개교 중 정식으로 수산고등학교를 관칭하고 있는 학교는 4개교뿐이고, 종합 실업고의 수산 계통 학과도 점차 폐과 예정에 있다. 시대의 흐름을 인력으로 어찌할 수 없는 일이다. 우리 나라는 3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고 단백질 공급의 많은 부분을 해산물에 의존하고 있다. 그런데 수산 인력 양성 교육의 현실이 이처럼 각박해지고 있다는 것은 참으로 뜻밖이었다.
2. 학교 개황
하루 종일 흔들리는 차를 타고 도착한 학교. 그 학교 앞에 서게 된 필자는 방문하려는 학교가 맞는지 잠시 의심스러워 교문에 있는 학교명을 다시 살펴보았다.
바닷가 비탈 위에 언덕을 등지고 서 있던 빈약한 학교 건물로 기억하고 있던 필자에게 넓고 반듯한 운동장을 중앙으로 하여 이를 에워싸고 정연히 서 있는 교사, 기숙사 건물들의 위용이 그저 놀라울 뿐이었다. 교장실에서는 문원호 교장이 필자를 맞아 주었다.
이 분은 1999년 9월에 교장으로 취임한 분이지만, 부산수산대를 졸업하고 이 학교 교사로 부임한 이래 평교사 15년, 교감 5년간을 근무한 경력을 가지고 있으며, 다른 학교 근무 경력이 몇 년 안 되는 특이한 교직 경력을 가진 분이다. 이 정도면 학교가 자신 같고, 자신이 학교 같이 생각되는 것이 당연한 일이리라. 그래서 그런지 초면의 필자를 상대하는 교장은 인사 치레나 학교의 일반적인 사항에 대한 설명보다는 이 학교, 특히 시들어 가는 수산 학교의 어려움을 털어 내고 호소하려는 기색이 역력했다.(문 교장은 본지 교육진흥의 애독자이며, 매호 입수하여 빠짐없이 보관하고 있다 한다)
문교장은 필자가 어떠한 학교 탐방기를 쓰는지 익히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부 사람도, 학부모 대표도 아닌 필자에게 자료를 뒤져 가며 열띤 설명을 계속하였다. 이러한 교장의 열정에 밀린 탓으로 필자가 써오던 탐방기의 일반적인 패턴과는 약간 다를 수밖에 없음을 독자가 양해해 주었으면 한다.
이 학교의 개교는 1951년 10월로 되어 있으니 막 50년이 된 셈이며, 6·25 전쟁 중 설립되었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 동안은 아주 영세 규모로 경영되다가 조금씩 세간의 인정을 받기 시작한 것이 1986년 후반에 들어서이다.
1988년에는 100명 수용의 기숙사가 지어졌는데, 산재되어 있는 도서에서 학생들이 이 학교로 진학하기 때문에 기숙사 설비가 무엇보다 급했다는 사정을 알 수 있다. 1989년 특수 목적 고등학교로 지정됨과 동시에 자영수산과가 설치되서 담·함수 양식장이 설치되었다. 1992년에는 냉동기계과, 수산전산과가 설치되었고, 익년에는 냉동 기계 실습 공장이 준공되었다.(슬라브 2층 건물로 약 200평 정도) 1995년에는 기관과의 선박기관실, 선박전기실이 준공되었고, 1997년에는 동력기계과 실습 공장이 증축되었다. 1998년에는 이 학교의 자랑인 실습선 ‘청해진호’가 건조되어 취항하였다.
이 학교는 1996년에 일본 나가사키 수산고와 2000년에 중국 산동성 웨이하이 수산 학교와 자매 결연을 하여 매년 교환 방문을 하는데, 위풍 당당한 청해진 호에 탑승한 학생들은 큰 자부를 가지고 여러 가지 것을 배워 온다고 한다.
2000년 11월에는 개교 50주년 기념 학술 발표회를 가졌고, 2001년 2월에 제 48회 졸업생을 배출하였는데, 졸업생 총수는 8,383명으로 되어 있다. 2001년 졸업생 수는 242명이었지만 졸업생 수가 해마다 감소하는 것이 이 학교 최대 고민 중의 하나이다.
교지 면적은 9,000여 평이라 섬에서는 상당히 넉넉한 넓이를 가졌다 하겠다. 보통 교실은 물론 각종 특별 교실 시설도 잘 정비되어 있다. 이밖에 220명 수용의 기숙사와 해양관 설비가 있고, 각종 실습 공장이 잘 구비되어 있다. 각종 실습실 수는 자영해양생산과 5, 자영수산과 5, 식품가공과 4, 동력기계과 5, 냉동공조과 3, 수산전산과 3으로 총 25개실이다. 이밖에 또 양식장 250평(관리실 약 45평)과 천해 양식장이 있다.
이 학교에서 가장 자랑거리는 바로 ‘청해진 호’이다. 이 배는 1998년 45억을 들여 건조한 것(현 시가 60억 원)인데, 총 톤수 444톤(국제 톤 수 667톤), 최대 속력 16.8노트, 항속 거리 6,200마일이다. 배에는 어로 항해 시설 외에 어창, 동결실이 갖추어져 원양 조업도 가능하다.
이 배를 위해 사관 7명, 준사관 3명, 부원 6명으로 16명의 선원이 항상 근무하며, 실습시에는 지도 교사 2명, 실습생 40명이 승선한다. 청해진 호는 본교 학생 실습뿐 아니라 인근 소규모 수산 학교, 도서 소재 중학교 학생의 실습도 담당하고 있다.
이 학교의 교원은 교장, 교감 외에 보통 교과 교사 18명, 전문 교과 교사 20명, 양호 교사 1명이며, 행정 직원 수는 30명으로 다른 학교에 비해 많은 인원이다. 그런데 행정직 중 앞서 말한 청해진 호의 승무원, 각 공장의 정비 요원 등의 기능직 25명을 감안하면 많다고도 할 수 없는 인원이다.
2001년 3월 현재의 이 학교 학과별, 학년별 학생 수는 다음 표와 같다. ( )의 숫자는 여학생 수이다.
위 표를 보면 학생 수의 감소 추세를 뚜렷이 알 수 있고, 여학생의 비율도 함께 낮어져 가는 상황임을 알 수 있다. 학생들의 출신 중학교는 완도중, 완도여중, 군외중, 신지중, 고금중, 보길중, 금일중, 청산중, 소안중 등 9개교인데, 과거 고흥군, 해남군, 진도군 등지에서도 제법 학생이 왔을 때와는 많이 달라졌다.
재학생 598명 중 기숙사에 있는 학생은 128명이다. 가까운 섬에서 선박으로 통학하는 학생도 약 30명이 된다. 이 학교 학생들의 보호자 직업은 수산업 223명, 농업 151명으로 주로 농수산업에 종사하고 있고, 서비스업 58명, 상업 52명이 그 뒤를 따른다. 여기서 수산업에 종사하는 부모가 자식을 수산 학교에 보내는 것이 당연한 것 같은데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생계를 위해 풍파와 싸우면서 일하는 부모치고 자식이 자기 뒤를 이어 자기와 같은 생활을 해 주기를 원하는 부모가 많지 않다는 것이다. 수산업이 시원한 바닷 바람을 쐬면서 고기를 잡아 올리는 제법 멋있는 직업이라는 낭만은 사실상 없다는 것이다.
고등학교를 나오건 대학을 나오건 농촌에 돌아와 농사를 짓겠다는 젊은이가 거의 없다. 이러한 상황이 계속되다 보니 농촌에는 노인들만이 남게 되었는데, 수산업을 한다는 어촌에서도 똑같은 상황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주변 여건 속에서 먼 산을 쳐다보고 있는 학생들에게 ‘수산인이 되라’고 질책하고 격려하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일반 사람들은 잘 알지 못한다.
다음은 이 학교의 최근 5년간의 졸업생들의 진로 상황이다.
표를 보면 취업자의 수가 그런데로 상당히 많았었는데, 1999년부터 상황이 바뀌기 시작했다. 2000년에는 진학자가 120명, 취업자 94명으로 진학을 더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교장 이하 전 교직원이 목이 아프도록 설득해도 이 추세는 막을 길이 없는 것이다. 이것이 시설과 설비에 있어서, 교원진에 있어서 가장 우수하다는 우리 나라 수산 학교의 현주소이다. 이 학교에서는 재학 중 하나 이상의 자격증 획득을 장려하고 있고, 그 성과를 거두고 있다. 또한 산학 연계를 통한 희망자는 100% 취업의 발판을 마련하고 있다.
이 학교의 실습선 승선 교육은 실제 어로의 경험을 부여하는 한편, 일본, 중국 학생들과의 우호 증진, 수산 기능 정보의 상호 교환 등으로 성과를 올리고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학생들의 호연의 기상을 북돋아 주는데 큰 역할을 한다. 광어, 우럭, 전복 등을 종자, 치어 때부터 길러 내는 광대한 양식장은 각 학년 학생들이 교대로 관리하고 있는데, 이 또한 이 학교의 장관 중 하나이다.
3. 학교 교육
이 학교의 교과 편성은 실업계 고등학교 중에서도 약간 특이하다. 실업계 고등학교의 교과 이수 단위 중 국어, 수학, 사회, 과학, 체육 등 보통 교과 이수 단위 기준은 3년간 94단위가 기준인데 이 학교에서는 84단위를 이수시키고 있고, 그 중에는 일본어 6단위가 포함되어 있다.
전문 교과의 내용은 학과에 따라 많이 다른데 학과의 이름만 들어서는 무엇을 가르치고 배우는지 짐작하기 어려움으로 6개 학과의 교과 내용을 살펴보기로 한다.
|
이상의 내용을 보면 이 학교가 아주 큰 학교는 아니다. 그렇지만 이론 과학에서부터 각종 실기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내용을 가르치고 있기 때문에 다양한 시설, 기기가 필요하며, 아울러 이론과 실기를 충분히 지도할 수 있는 교사 확보가 문제됨을 알 수 있다. 시설은 자본만 있으면 되지만 교사 인력은 단기간에 확보할 수 있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모든 산업 기술이 그렇지만 수산업 관계 기술도 빠르게 발전하기 때문에 교사들은 꾸준히 최신 산업 기술을 습득해야 한다. 그런데 교육연구소 같은 일반 연수 기관에서 받는 연수가지고는 전문 기술의 갱신 연마가 사실상 곤란한만큼 일반 선진 업체에서의 실습이 요구된다. 그러나 현행 제도 하에서는 교사들에게 그와 같은 기회를 주는 길이 어렵다는 것이 학교측의 호소였다.
교과 지도에 있어서는 더 큰 어려움이 있다. 그것은 학생들의 낮은 학습 능력과 학습 의욕이다. 학교측이 내놓은 자료에 의하면 이 학교 학생들의 지능 지수는 상상 밖으로 저조하였다.
문화적으로 소외를 받고, 사람과 사람과의 접촉이 도시 지역 아이들보다 상대적으로 적기 때문에 도서 지방 아이들의 일반적으로 지능이 낮다는 말을 들었다. 그러나 요즘은 전기 시설이 곳곳에 연결되어 있고, 산간 오지에서도 전화는 물론 TV도 시청할 수 있기 때문에 그와 같은 상황이 없어진 줄 알았는데…….
여기에 장래 수산 기술 근로자가 되겠다는 의욕이 약하다 보니 교과 지도의 성과가 나타날 리 없다. 어떻게 하면 이 아이들에게 한 자라도 더 깨우치게 하고, 기술 하나라도 더 착실히 체득하게 할 수 있을까가 이 학교 교사들의 가장 큰 고민이다. 따라서 이 학교 교사들의 학습 지도 연구와 자체 연수는 다른 어떤 학교에 뒤떨어지지 않는다.
이 학교는 자치 활동을 통한 토론 문화의 정착과 능동적인 참여를 통한 협동적 생활 기풍 조성을 생활 지도의 목표로 삼고 있으며, 구체적으로 학생들에게 그와 같은 기회를 증대하려 힘쓰고 있다. 학생의 개성을 개발하고 자발적이며 개별적인 학교 활동을 통해 건전, 명랑한 학교 풍토를 이룩하는 데 특별 활동만큼 중요한 것이 없다.
특히 이 학교의 경우, 학생들의 이와 같은 생활 자세를 통해 침체되기 쉬운 도서의 어촌 문화와 생활 분위기를 진작하려는 강력한 의지를 담고 있다. 따라서 이 학교의 특별 활동은 예상 외로 다양하며, 활기에 차 있다. 이 학교의 특별 활동 부서를 보면 학예 관계로는 신문부, 관악합주부, 방송부, 컴퓨터부, 향토조사부, 영어회화부, 일어회화부, 중국어회화부, 과학부가 있고, 체육 관계로는 축구부 등 12개 부가 있다. 예능·기타 관계로는 음악감상부, 바둑부, 건전가요부 등 11개 부서로 총 33개의 특별 활동 부서가 있다. 이 정도 규모의 학교에서는 이례적이라 할 수 있다.
생활 지도 면에서 또 하나 눈에 띄게 특이한 것은 철저한 효도 교육이다. 조석으로 부모님께 인사하기, 외출시 인사하기, 생신 축하하기, 개인별 효행 계획서 만들기 등과 같은 프로그램은 이 학교의 입지 조건에서는 매우 큰 의미를 가진 교육이라 할 수 있다.
4. 후기
1988년의 통계를 보면 일반계 고교와 실업계 고교의 학교 수 비율은 61:39, 학생 수 비율은 59:41로 일반계 고교가 훨씬 많았다. 이와 같은 현상으로 기능 인력 부족 현상이 심화되면서 제조업 경쟁력 강화 정책의 일환으로 인문 대 실업의 비율을 5:5로 유지하려는 국가 정책적인 노력이 있었다. 그러나 ’96년 발표된 ‘신교육 체제 수립을 위한 교육 개혁 방안(Ⅲ)’이 발표되면서 실업계 고교 육성 정책은 포기되었다. 그리하여 1999년에는 학교 수에서는 60.8:39.2로 비슷한 것 같았지만 학생 수에 있어서는 62.2:37.8로 대폭 감소했다. 이러한 가운데 수·해양계의 조락은 더욱 심하여 2000년에는 실업계 고등학교 중 수·해양 계열의 학교 수는 14교(1.8%), 학생 수는 6,053(0.7%)명으로 감소하였다.
1915년 군산 수산 학교로 시작되었던 수산 교육은 85년 동안에 많은 수산 기술 인력을 양성해 냈고, 우리 나라가 세계 7위권의 수산 대국으로 성장할 수 있는 밑거름이 되었다. 아울러 원양 어업으로 외화를 획득하여 경제 발전에 일익을 담당하였다. 그러던 수산 교육이 위기를 맞고 있다. 수산 학교에 입학하고자 하는 학생은 급격히 줄어들고, 많지 않은 학교도 점차 쓰러져 가는 형편이 되고 있다.
80년대 이후부터 도서 지방 어촌의 상황은 더욱 악화되었다. 매립과 간척, 산업화에 의한 연안 어장의 축소, 오염, 무분별한 남획에 의한 수산 자원의 고갈로 어촌의 가계 소득은 도시 가구의 74%, 농가 소득의 86% 수준으로 저하되었다. 수산업을 둘러싼 국제 조건도 날로 악화되고 있다. 우리 나라의 WTO 가입으로 1997년부터 390개 품목의 수산품이 개방되어 시장에는 중국 수산품 등이 판을 치게 되었다. 1994년 UN해양법 협약 발효로 주요 연해 국가들의 해양 관할권 확대와 공해상 어업 규제가 강화되고 있다. 여기에 한·일, 한·중 어업 협정으로 국내 어선의 활동 수역은 더욱 축소되어 선박을 소유하고 있는 사람들 스스로가 조업을 포기하는 사태에 이르고 있다. 이처럼 ‘5대양을 누비며 바다의 보물을 건져 온다’던 우리 수산인의 활동 무대는 날로 축소되고, 어촌은 시들어 간다. 이러한 여건 악화 외에도 수산 교육 조락을 더욱 부채질하는 것은 어려운 일을 기피하려는 사회적인 풍조, 즉 3D 산업 기피 현상이다. 여기에 청소년들도 예외일 수는 없다.
3D 기피 현상은 이미 농업고, 공업고 등 실업 교육 쇠퇴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러나 수산고는 그 파장이 더욱 심하다. 수산업은 냄새나는 수산물을 직접 만져야 하고, 몸을 사려 쉬어가며 할 수 있는 작업이 거의 없고, 높은 파도와 찬바람 속에 목숨을 걸고 배를 내야 할 때가 많으니 그야말로 3D 산업의 대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러한 수산업에 스스로 뛰어 들려는 젊은이가 점점 줄어드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고 할 수 있다. 어떤 연유인지 우리 나라 사람들은 옛날부터 맨발로 물 속에 들어가는 것을 천시하는 경향이 있었고, 항상 버선을 신고 사는 것을 점잖다고 생각했다. 이러한 것 때문에 신을 벗고 물 속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을 천시하여 ‘뱃놈’, ‘섬놈’ 등의 말을 남기고 있다.
3면이 바다로 둘러 싸여 있기 때문에 배를 타야만 자원을 건져 오고, 남들과 교류하는 입지 속에 살면서도 바다로 향하는 진취 정신, 모험 정신이 매우 취약했다고 말할 수 있다.
전통적 사고 방식, 수산업의 여건 악화, 3D 산업 기피의 사회적 풍조로 우리 나라 수산·해양 고교 교육의 조락은 날이 갈수록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이 때문에 수산 교육을 담당하는 사람들의 심정은 비참함 그 자체이다. 그들은 수산업을 인류 생활에 필요한 식량 자원의 채취, 양식, 처리, 가공으로부터 유통, 판매, 그리고 해양 레포츠까지를 망라하는 종합 산업으로 생각하고, 인류의 생존을 위해 더욱 그 중요성을 더해 가는 산업으로 확신하고 있다. 국가적으로 보더라도 기본 식량의 확보를 위해 더욱 발전해 가야 하는 수산업이지만, 현실은 이에 역행하고 있는 것을 안타까워하고 있다. 그들이 가르치고 있는 학생들의 학습 의욕은 해가 갈수록 저조해지고, 수산 기술자가 되어야겠다는 학생 수 또한 줄어 들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에서도 그들은 현실에 맞게 학과를 통폐합 개설하고, 코스제 등으로 그 운영을 합리화하려 애쓰고 있다. 또한 부족한 종합 학습을 늘리기 위해 경비 예산을 더욱 늘리는 한편, 각종 기술직 공채에서나 병역 제도에서 수산고 출신자의 우대를 호소한다.
그들은 요즘 교육 정책 수립자들 측에서 더러 들려오는 경제 논리, 즉 수요자가 많으면 학교를 더 짓고 수요자가 적으면 자연 도태되도록 놓아둔다는 생각은 국가 사회의 앞날을 도외시하는 안일한 생각이라고 못마땅해 한다.
“한때 잘 나가던 국산 2차 산업 제품이 중국, 동남아 제품에 밀리고, 오호츠크 해협에서 조업하는 꽁치 어선이 일본의 방해를 받는 등 인접 국가들의 경제적 압력 속에서 ‘세계화’만 부르짖고 있어도 살아 남을 수 있을 것인가?” 하고 한탄한다.
이러한 가운데서도 국민의 기본 식량을 확보하기 위해서 기본적인 1차 산업의 진흥, 그를 위한 인력 확보에 특단의 정책적 배려가 절실하다는 것이 문 교장을 위시한 교원들의 소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