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검초 - 참당귀
본래대로 돌아오게 해서 當歸
▶모든 것은 본래로 돌아간다
산사山寺에 가을 바람이 분다. 산골 작은 암자에 한 노승이 동자와 둘이서 큰절과는 무관하게 독살림을 살고 있었다. 눈 쌓여 길 막히기 전에 겨울 양식을 구해와야 했다. 그래서 노승과 동자승은 함께 먼길로 탁발을 떠났다.
쌀 한말 보리 서되만 동냥하면 겨울석달 하루 한홉반 죽을 끓일 수는 있으니 삼동 三冬을 날 양식은 되겠다. 며칠을 탁발을 해야될지. 해는 저물고 외딴집 문전에서 하룻밤 재워 줄 것을 청했다. 저녁대접을 받고 아래채에서 잠이 들었다. 그러한데 한밤에 누구가 다급히 깨우는 소리에 일어나니 그 집주인이 자기 집 큰며느리가 몇 일째 태기는 있으나 애기를 낳지 못하고 있는데 오늘밤은 그 고통이 위험한 지경에 이르렀으니 순산할 수 있는 염불을 좀 해달라는 것이었다.
노승은 난감했다. 일생을 염불하며 살아왔지만 순산시키는 염불은 못 들어 봤기 때문이다. 상황이 다급하니 노승과 동자승은 일단 마당에 자리를 깔고 윗채를 향하여 부처님 전에서 하듯이 가부좌를 하고 정중히 앉았다. 예불에서는 감초같이 빼놓을 수 없는 반야심경 한편을 목탁을 치며 독송을 했다. 그리고는 산모에게 순산할 수 있는 법문을 들러주어야 하겠는데 할말이 있으야지. 그래서 동자승한테 「나는 산모에게 한마디 이를 것이니 너는 태아에게 한마디 일러 보아라」 하고는 노승이 옴-. 들어간게 안나오랴 사바하하니 동자승이 옴-. 들어가면 나와야지 사바하하고 받았다. 이렇게 해서 목탁을 치며 염불하듯 계속 같은 말을 주거니 받거니 반복을 한다. 들어간게…, …나와야지 노승의 청아한 목소리와 동자승의 꾀꼬리 같은 목소리가 한밤의 허공을 가르고 있다.
산모가 그 고통 속에서도 가만히 들어보니 산고로 죽음의 문턱을 넘나들고 있는 사람에게 한다는 말이 들어간게 안나오랴, 들어가면 나와야지 아무리 땡초라 하더라도 할말이 그렇게도 없나. 저걸 법문이라 하고 있으니 기가 막히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희한한 법문에 웃음이 터져 나와 견딜 수가 없었다. 그렇다하여 금방 죽는다고 뒹굴던 사람이 체면없이 소리내어 웃을 수는 없고 이제는 산모가 웃음을 참느라고 어금니를 악물어야 했다.
하-! 그런데 으앙 앙 앙~애기가 쑥 나온 것이다. 그럼 그렇지 들어갔으면 나와야지 부처님이 거짓말쟁이는 아니었구나 노승은 동자승을 바라보며 빙긋이 웃었다.
사필귀정事必歸正. 자연의 이치야 그렇다 하더라도 세상살이야 어디 그렇던가 콩 심은데 팥도 나고 팥 심은데 콩도 나더라.
▶일본당귀와 구별하여 참당귀
우리 이름 승검초는 한문이름 당귀當歸로 더 알려진 약초. 당귀當歸란 당연히 본래대로 돌아온다는 뜻이다. 미나리과의 월년초越年草 혹은 삼년초식물이다. 고려때 이두향명으로 목귀초目貴草, 단귀초旦貴草, 승암초僧庵草라 했고 조선시대에는 숭엄초, 승검초, 신감채辛甘菜라 했다.
이 식물 몸 전체에는 보랏빛이 돌고 독특한 향이 나며 땅속뿌리는 굵고 살찐데 상처를 내면 흰즙이 나온다. 줄기는 곧게 서서 1~2m 높이로 자란다. 큰 잎은 마디마다 어긋나고 잎줄기 하나에서 세잎으로 갈라지며 다시 잎마다 3~5갈래로 나뉘어진다. 잎마다 가장자리에 거친 톱니가 있다. 잎자루 밑동은 날개처럼 퍼져 줄기를 완전히 감싸는 특색이 있다.
꽃은 진보라빛인데 8~9월경 꽃 지름 3㎜의 자잘한 꽃들이 작은 우산꼴로 뭉쳐 피고 이러한 꽃차례가 다시 모여 커다란 겹우산형 꽃을 이룬다. 늦가을 납작한 타원형 열매가 익으면 넓은 날개가 달려있다.
승검초는 이 나라 곳곳의 깊은 산골짜기 개울가 습지에 자생하고 있으나 약으로 쓰기 위해 널리 심고 있다. 승검초는 예부터 집 울타리 밑이나 텃밭에 심어두고 식용 약용해 왔으며 전통 깊은 고급 산채로, 전래차로도 유명했다. 봄에 돋아나는 승검초 어린순은 볶은나물, 튀김, 생것을 고추초장에 쌈 또는 생무침해서 먹었고 겨울에는 무나 파, 고구마를 저장하듯이 땅을 파고 움속에 묻어두면 은비녀 같은 흰줄기순이 나오는데 부잣집에서 꿀이나 고추장에 찍어 별식으로 먹었다.
승검초 차는 맵고 달고 향기롭다. 승검초 줄기를 잘게 썰어 뜨거운 물에 울궈 꿀을 넣고 잣을 띄워 마신다. 청향이 비길대 없이 상쾌하다고 했다. 그리고 승검초와 송화가루를 꿀에 반죽하여 별미 승검초다식을 만들었고 승검초강정, 인삼과 함께 승검초산적은 우리 고유의 별식이었다.
이 땅에는 승검초와 약효가 비슷한 약초 왜당귀, 기름당귀, 사당귀 일명 바디나물들이 살고 있는데 지금 약으로 흔히 재배되고 있는 당귀는 일본에서 들여온 왜당귀 즉 일당귀가 대부분이며 우리나라 특산 승검초와는 다르다. 그래서 이 왜당귀와 구별하기 위해 한반도에 자생하는 승검초를 조선당귀 또는 참당귀라 부르고 있다.
▶혈허증의 명약, 여성약으로 유명
한방학에서 몸에 병이 침투하면 병사病邪와 정기精氣사이에 투쟁이 진행되는데 이 과정에서 정기가 쇠약해진 증상을 허증虛證이라하고 병사가 결실되어 병증이 우세한 상태를 실증實證이라하며 병의 증상을 크게 허증과 실증으로 나누어 치료하게 된다. 이러한 증상에 따라 허증에는 정기를 도와주는 보약補藥을 쓰고, 실증에는 병사를 몰아내는 사약瀉藥을 쓰는 것이 한방치료법의 대원칙이다.
모든 질환 5장 6부에 대한 보․사약이 따로 있겠으나 일반적으로 우리들의 몸을 음․양․기․혈의 구성체로 보아 이들을 도와주는 약 즉 보음․보양․보기․보혈약을 통칭하여 일상에서 보약이라 부르고 있다.
이중 보혈약이란 혈허증 즉 피가 모자라는 병증에 쓰이는 약이다. 혈허증의 일반적인 증상은 머리가 어지럽고 눈앞이 아찔하며 까닭 없이 불안하면서 가슴이 뛰는 증세와 얼굴 혈색이 창백하고 맥이 약하며 귀가 울고 불면증이 있으며 그리고 여성의 경우 이러한 증상으로 인하여 여러 가지 경의 불순들과 같은 여성특유의 신체적 장애가 오는 것을 말한다.
혈허증에는 대표적으로 심혈허와 간혈허가 있고 혈허증에 일반적으로 쓰는 보혈약에는 숙지황, 하수오, 작약, 삼심자, 당귀들이 있는데 특히 당귀는 여성들의 혈허증에 명약으로 쓰여온 전통 깊은 보혈약이다.
승검초는 한방에서 한문 생약명 당귀當歸라 하며 뿌리를 약으로 쓴다. 당귀라는 약초이름이 지어진 중국고사가 있다. 한 여인이 몹쓸 병을 얻어 남편과 헤어져 깊은 산 속으로 들어가 혼자 살게 되었다. 먹을게 없어 어떠한 풀뿌리를 캐어먹고 살았는데 병이 나았다. 그래서 다시 집으로 돌아오니 남편이 아내를 잃고 상심하여 병들어 누워있었다. 그 여인은 자기가 먹었던 풀뿌리를 캐서 먹였더니 남편도 병이 나아 본래대로 돌아왔다. 그리해서 약초이름을 마땅히 돌아온다는 뜻으로 당귀當歸라고 했다는 것이다. 이 이야기는 당귀라는 약초는 여성에게 특히 좋은 명약이면서 남자에게도 두루 쓰이는 약이라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고 하겠다.
당귀의 약성에 관한 기록은 옛 의서 「동의보감」 「향약집성방」 「의방유취」 「방약합편」 「탕액본초」 「제가본초」들 수많은 옛 의서에서 찾아볼 수가 있다.
약성에서 맛은 맵고 달고 성질은 따뜻하며 독이 없다. 간․심․비경에 작용한다. 나쁜 피를 몰아내고 새 피를 생겨나게 하며 피를 잘 돌아가게 한다. 그러므로 여성의 달거리를 고르게 조절하는 탁월한 기능이 있다. 그리고 속을 덮여주고 아픔을 멈추게 하며 5장의 피를 보하여 새살을 돋아나게 한다. 약효는 보혈, 정혈, 신혈, 진정, 진통, 이뇨, 이담, 익기, 익정, 통경, 수태, 자궁기능조절, 억균, 혈압강하 등의 효능이 있다.
적용질환은 혈허증, 어혈, 빈혈, 허약체질, 혈액의 정체, 월경이상, 무월경, 월경통, 자궁출혈, 자궁발육부진, 불임증, 산전후복통, 신경쇠약, 짜증, 우울, 신경질, 두통, 현기증, 관절염, 혈액순환개선, 혈액정화, 혈관질환에 쓰인다.
특히 부인병-월경곤란증, 불임증, 습관성유산 질환치료에 관하여는 현대의학 임상연구에서도 그 효능이 밝혀져 있으며 옛 의서에는 수많은 효능과 처방들이 기록으로 전해오고 있다. 약초채취시기는 늦가을 뿌리를 캐서 잔실뿌리는 다듬어 씻고 썰어 햇볕에 말려두고 쓴다. 줄기가 생긴 당귀뿌리는 약으로 쓰지 않는다. 하루 쓰는 양 6~12g 물로 달여 나누어 복용한다.
일반적 민간처방으로도 잘 알려진 남자들의 보기․보양약은 사군자탕-인삼․백출․백복령․감초 각 5g 하루 2첩 탕액 복용. 여성들의 보혈․보음약으로는 사물탕-숙지황․백작약․천궁․당귀 각 5g 하루 2첩 탕액 복용이 대표적인데 사물탕은 어린아이들에게는 보혈약, 여성에게는 조경調經-월경 조절기능 약으로 유명하다. 기혈과 음양이 모두 허할 때 사군자탕과 사물탕을 합하여 팔물탕을 쓰고 팔물탕에 육계․황기를 더하면 그 누구나 잘 알고 있는 기혈보약 십전대보탕十全大補湯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