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자를 초서로 풀어낸 무위의 조형 세계
정태수(한국서예사연구소장)
지강 김승민 박사가 2026년 4월 29일부터 5월 5일까지 인사아트프라자갤러리에서 한국박사명가 초대전에 초대되어 개인전을 펼친다. 이번 전시의 주제는 문도(聞道)로 『노자』를 자신의 조형사유로 풀어내고 있다.
♯1.대상 작가에서 박사 작가로의 여정
지강 김승민 박사(이하 지강)와 나의 첫 대면은 십수 년 전 월간 서예문화대전 3차 심사장에서였다. 공정한 과정을 거쳐서 최종심까지 진출한 작가들은 대부분 서예를 전공한 청년 작가 몇 명뿐이었다. 그 가운데 지강은 실력이 출중하여 대상 작가로 선정되었고, 그의 번뜩이는 안광과 비범한 필재는 뇌리에 각인되어 있다. 그는 서단의 굵직한 공모전에서 여러 번 대상을 수상하면서 실기 능력을 검증받았다. 이에 머물지 않고 항목의 「서법아언과 이서 필결의 서예 미학사상 비교연구」라는 논문으로 박사학위까지 취득함으로써 학예를 겸비한 전재형의 중견작가로 주목받고 있다.
♯2.‘무엇’과 ‘어떻게’의 사유
인간은 사유하는 동물이다. 특히 작가는 철학적 사유와 조형적 사유를 작품에 투영하려고 한다. 전자는 인간 존재·자유·윤리·사회·환경 문제 등 ‘무엇이 옳고 의미 있는가’ 등의 질문을 중심으로 시대와 문화에 따라 발전해 왔고, 후자는 조각·건축·서예 등 예술에서 형태·질감·공간을 조합하여 의미를 제시한 작품을 통해 관람자가 존재와 삶의 의미를 성찰하도록 유도한다.
두 가지 사유는 서로 독립적이면서도 상호보완적이다. 철학적 사유가 ‘왜’와 ‘무엇’에 초점을 둔다면, 조형적 사유는 ‘어떻게’와 ‘어떤 감각으로’ 그 사유를 체험하게 할 것인가에 무게중심을 둔다. 따라서 작가는 누구든 ‘무엇’과 ‘어떻게’라는 두 개의 짐을 지고 작업에 임하지만, 신작을 선보일 때 ‘어떻게’란 조형 사유 하나에 집중하기도 버겁다. 두 가지 사유를 병행하기는 실로 쉽지 않다.
♯3.도덕경의 사유와 초서의 형상미
지강은 이번 전시에서 철학적 사유인 노자의 도덕경을 내면에 깔고, 초서를 조형 사유로 삼아 외적 형상미를 추구함으로써 문질빈빈한 작품세계를 보여주고 있다. 즉 이번 전시의 화두인 문도(聞道, 무위로 근원에 가까워지는 실천)를 서체 가운데 가장 자유로운 ‘초서’를 통해 녹여내려는 것으로 살펴진다.
글감으로 취한 노자의 구절은 비움(15장), 19장 소박함(19장), 내면 통찰로 자기 인식(32장), 외적 자극 최소화한 본질 중시(35장), 학문은 더하나 도는 덜어내는 것(48장), 덕은 도의 발현(49장), 대응하는 태도(69장) 등이다. 노자를 텍스트로 고른 지강의 자연과 삶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 엿보인다.
노자 글귀를 초서로 용해해 낸 조형 미감을 보면, 손과정이 『서보』에서 말한 “초서는 유동하면서 통창함을 귀히 여긴다[草貴流而暢]”는 주장을 잘 살려내고 있다. 예컨대 작품 <무위이무불위(無爲而無不爲)>는 초서 ‘무(無)’자 두 글자가 나란히 겹쳐도 농담과 윤갈의 변화로 자유롭고, 연면 초서를 통해 시선을 잇게 하는 숙련미가 보인다. 또한 작품 <행무행(行無行)>은 겉으로 드러나는 움직임 없이 제압하는 무위의 전략이 최선이라는 의미를 살려 좌측 위 초서 ‘행(行)’ 자는 관망하는 듯한 정태미(靜態美)를 살렸고, 우측 ‘무행(無行)’은 초서와 행서를 연접시킨 동태미(動態美)로 화답한다. 좌측 한 글자는 독립된 작품이면서 우측의 글자들과 전체 구도에서 상보 작용을 하여 상생의 묘를 보여주니 시선을 거둘 수 없다. 그 외 전서에 행초의 맛을 넣은 작품에서 탁월한 조형 미감이 돋보인다.
♯4.즐거움 속에서 깊어지는 서예
지강은 서예 창작의 즐거움 속에서도 끊임없는 연구를 통해 어려운 것을 쉽게, 쉬운 것을 깊게, 깊은 것을 유쾌하게 풀어내며 ‘유어예’의 경지에 이르고자 한다. 그의 작업은 봄날의 새순처럼 앞으로도 늘 새롭게 지속될 것으로 기대된다.
2026. 穀雨 日損齋에서
출처 : 서예세상( 서예세상 | - Daum 카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