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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구과극(白駒過隙)
흰 말이 지나가는 것을 문틈으로 보듯이 눈 깜박할 사이라는 뜻으로, 세월이 너무 빨리 지나감을 이르는 말이다.
白 : 흰 백(白/0)
駒 : 망아지 구(馬/5)
過 : 지날 과(辶/9)
隙 : 틈 극(阝/10)
(유의어)
과극백구(過隙白駒)
광음여류(光陰如流)
광음여시(光陰如矢)
극구(隙駒)
극구광음(隙駒光陰)
극사(隙駟)
일촌광음(一寸光陰)
출전 : 장자(莊子) 第22 지북유편(知北游篇)
흔히 세월이 살같이 빨리 지나간다고 한다. 평소 살아갈 때는 느끼지 못하다가 뒤돌아 보면 어느새 이렇게 지났는지 깜짝 놀랄 때가 있다.
한창 바쁘게 생활하는 젊은 층은 느끼지 못하지만 지긋한 나이의 어르신들은 지나간 세월 뭐 했던가 하고 탄식도 한다.
이와 같이 백구과극(白駒過隙)은 세월을 가리키는 흰 망아지(白駒)가 빨리 지나가는 모습을 문틈으로 보며(過隙) 사람의 일생을 잠시라고 느끼는 것이다.
인생이나 세월이 덧없이 짧아 무상함을 이르는 말이다. 여기에서 틈을 나타내는 隙은 일부에선 郤(극)으로도 썼는데 姓(성)의 일종이지만 틈이라는 뜻도 갖기 때문이다.
기원전 403년~221년, 전국시대(戰國時代) 때의 책 종횡무진한 상상과 표현으로 우주본체를 우언우화(寓言寓話)로 설명하는 장자(莊子)에 이 성어가 나온다. 표현이 재미있고 철학적인데 부분을 인용하면 이렇다.
사람이 천지 사이에서 사는 것은 흰 망아지가 달려 지나가는 것을 문틈으로 보는 것과 같이 순간일 뿐이다(若白駒之過郤). 모든 사물들은 물이 솟아나듯 문득 생겨났다가 물이 흘러가듯 아득하게 사라져 간다.
죽음이란 화살이 살통을 빠져 나가고 칼이 칼집을 빠져 나가는 것처럼 혼백이 육신에서 빠져 나가고 몸도 이에 따라 무로 돌아가는 것을 말함이니 이야말로 위대한 복귀가 아닌가!‘ 외편(外篇) 지북유(知北遊)에 전한다.
사마천(司馬遷)의 사기(史記)에는 유비(劉備)의 악독한 왕비 여태후(呂太后)가 한 말로 다음과 같이 실렸다. ‘인생의 한 세상은 마치 흰 말이 달려가는 것을 문틈으로 보는 것처럼 순식간이다(人生一世間 如白駒過隙). 어찌 스스로 괴로워하는 것이 이와 같아서 되겠는가?’
유후(留侯)가 된 장량(張良)을 회유하는 말이다. 가는 세월 잡지 못하고 오는 세월 막지 못한다는 말도 있다. 흘러가는 인생을 막을 수는 없으므로 순간순간을 열심히 살아가도록 하는 가르침이다
■ 백구과극(白駒過隙)
흰말이 문틈으로 지나간다는 뜻으로, 흰말이 지나가는 것을 문틈으로 보듯이 세월이 빨리 지나가는 것을 비유하는 말이다.
백구(白駒)는 흰 망아지의 뜻이고, 과극(過隙)은 틈을 지나다의 뜻이다. 그러므로 흰 망아지가 빨리 달리는 것을 문틈으로 본다는 뜻으로, 인생과 세월의 덧없고 짧음을 이르는 말이다.
장자(莊子)의 지북유(知北遊)와 사기(史記)의 유후세가(留侯世家)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장자(莊子)의 지북유(知北遊)에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있다.
사람이 하늘과 땅 사이에 사는 것은 마치 흰 말이 달려 가는 것을 문틈으로 보는 것처럼 순식간이다. 모든 사물은 물이 솟아나듯 문득 생겼다가 물이 흐르듯 사라져 가는 것이다. 즉 사물은 모두 자연의 변화에 따라 생겨나서 다시 변화에 따라 죽는 것이다.
人生天地間若白駒之過隙忽然而已.
注然勃然莫不出焉油然流然莫不入焉已化而生又化而生.
공자(孔子)가 노자(老子)에게 크고 넓은 지도(至道)에 대해 묻자, 노자는 이렇게 말을 시작했다.
그대는 먼저 재계(齋戒)하고 마음을 씻어내며, 그대의 지식을 깨뜨려야 합니다. 무릇 도(道)라는 것은 깊고 멀어서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것입니다.
박식하다는 것이 반드시 참된 앎은 아니며, 능변(能辯)이라는 것이 반드시 참된 지혜는 아닙니다. 도를 터득한 성인은 그런 것을 버립니다.
깊은 바다와 같이, 높은 산과 같이 끝나는 데서 다시 시작되어, 만물을 운행하며 다함이 없는 것은 군자의 길입니다. 만물이 모두 이것에 바탕을 두고 있지만 다함이 없으니, 이것이 바로 도라는 것입니다.
사람이 하늘과 땅 사이에서 살고 있는 것은 마치 흰 말이 달려 지나가는 것을 문틈으로 얼핏 보는 것과 같은 순간일 뿐입니다. 모든 사물들은 물이 솟듯 문득 생겨나서 물이 흐르듯 아득하게 사라져 가는 것입니다.
변화하여 태어났다가 또한 변화하여 죽을 뿐인데, 살아있는 것들은 이를 슬퍼하고, 사람들은 이를 비통해 합니다. 죽음이란 활통을 풀고 옷 주머니를 풀듯 흩어지는 것이며, 혼백(魂魄)이 육신에서 빠져 나가고 이에 몸이 따라가는 것이니, 이는 곧 위대한 자연으로의 복귀이다.
삶이란 형체가 없이 흩어졌던 것들이 모인 것이고, 죽음이란 모여 있던 것이 흩어지는 것이니, 이는 사람들이 모두 알고 있는 것이지만 도에 이르려는 자가 힘써 추구할 바는 아닙니다.
도라는 것은 뚜렷이 보려 하면 만날 수 없고, 말로 설명하기 보다는 침묵을 해야 합니다. 도라는 것은 귀로 들을 수 없으니 차라리 귀를 막고 터득함이 더 나은데, 이를 일러 크게 터득했다 하는 것입니다.
사기(史記)의 유후세가(留侯世家)에도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있다. '인생의 한 세상은 마치 흰 말이 달려가는 것을 문틈으로 보는 것처럼 순식간이다. 어찌 스스로 괴로워하는 것이 이와 같음에 이르겠는가.'
人生一世間如白駒過隙何至自苦如此乎.
유후(留侯)는 장량을 일컫는 말이다. 장량은 원래 성(姓)이 희(姬)인데 진 시황제(秦始皇帝)를 암살하려다 실패한 이후 성을 장으로 바꾼 것이다.
이처럼 백구과극(白駒過隙)은 평소에는 빨리 지나가는 것을 느끼지 못하지만 뒤돌아보면 인생이 매우 빨리 지나간 것을 알게 된다는 말로, 덧없는 인생의 무상 또는 순식간에 지나가는 인생을 흘러가는 물에 비유한 고사성어이다.
가는 세월 잡지 못하고 오는 세월 막지 못한다는 말도 있다. 흘러가는 인생을 막을 수는 없으므로 순간 순간을 성실하고 진솔하게 살아가라는 성인의 말이다.
성경(聖經) 시편 90편 10절에서도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 가나이다”라고 우리 인생의 기한이 얼마나 짧은가를 탄식하며 노래하고 있다.
백구과극(白駒過隙)과 같은 우리 인생의 본질을 꿰뚫어 보고 세상에 대한 쓸데없는 집착을 버리는 가운데 아무데도 얽매임이 없는 상태로 나아가야 한다고, 장자(莊子)는 노담(老聃)의 말을 인용하여 어리석은 인생들을 일깨우고 있다.
동의어는 극구광음(隙駒光陰), 비슷한 말은 광음여류(光陰如流), 광음여시(光陰如矢), 일촌광음(一寸光陰)이다.
이 고사는 예전에는 많이 쓰였으나 요즘은 그리 많이 쓰이지 않는다. 오히려 이와 유사한 고사로서 세월의 빠름을 의미하는 주마등(走馬燈)이 많이 쓰인다.
■ 짧은 인생, 뭐 있다
순간처럼 지나가는 인생,
삶의 방향은 제각각이나,
내키는 대로 산 인생과
잘 산 인생은 엄연히 달라.
'인생 뭐 있나!'
짧은 인생 하고 싶은 것 하며 살자를 외칠 때 하는 말이다. 심지어 같은 이름의 유행가도 있다. 이를 30초 움짤로 표현한 고사성어가 백구과극(白駒過隙)이다.
장자의 지북유(知北遊) 편에서 장자는 노담(老聃)의 입을 빌려 공자에게 말한다. '인생은 흰말이 문틈을 스쳐 지나가는 것처럼 순간일 뿐이라오(人生天地之間, 若白駒過隙, 忽然而已).'
백구는 흰말로 '햇빛'을 상징한다. 백구과극, 짧은 인생을 말하지만 '어떻게 원하는 삶을 살 것인가'의 해석에선 역사에서 다양하게 변주돼왔다.
첫째는 쾌락 지향 논리다. 간신 조고가 진(秦) 2세 황제 호해를 허깨비로 만들어 권력을 농단하기 위해 억지 논리로 설득할 때 차용됐다. 그는 '짧은 인생, 즐기기에도 부족하다'며 '골치 아픈 정치는 신하들에게 맡기고 쾌락을 즐기라'고 부추긴다.
둘째는 위나라 귀족 위표가 한고조에게 항복하지 않겠다며 한 말로 '어차피 짧은 인생, 내 생각대로 살겠다'는 의미다. 결국 비참한 최후를 맞는다.
셋째는 현실적으로 살라는 회유 논리다. 한고조의 황후 여치(呂雉)는 아들을 후계자로 만들 때 신세를 진 장량을 은인으로 모셨다. 장량이 신선이 되겠다며 곡기를 끊자, 건강을 염려해 식사를 권하며 말한다. '인생은 백구과극인데 굳이 고생하며 살 필요가 있나요.' 장량은 다시 식사를 시작한다.
넷째는 권력도 결국은 허무하다는 것이다. 쿠데타에 대한 경계가 심했던 송태조 조광윤은 혁명 동지들에게 말한다. '인생은 백구과극일 뿐이오. (내가 한 살림 마련해줄 테니) 중앙 직책을 맡기보다 고향에 내려가 편안히 사는 게 더 낫지 않겠소?'
개국공신들은 병권(兵權)을 내려놓고 산관(散官; 실제 근무처는 없는 명목상 직책만의 벼슬)이 될 수밖에 없었다.
'짧은 인생, 뭐 있나'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없다'가 아니라 '있다'다. '하고 싶은 것을 다 하며 사는 것'이 아니라 '하지 말아야 할 것을 지키며 사는 것'이 잘 사는(죽는) 비결이다. 장자가 죽음을 '근본으로 돌아간다(大歸)'고 한 것도 이 때문이었을 것이다.
공자는 70이 되고서야 '마음 내키는 대로 해도 법도에서 어긋나지 않았다'고 했다. 방점을 찍고 살펴야 할 것은 '마음대로'가 아니라 '궤도에서 벗어나지 않음'이다. 힘깨나 쓴던 권력자들이 날개 없이 추락하는 것은 이를 놓쳐서다.
고 클레이튼 M 크리스텐슨 하버드대 경영대학원 교수는 하버드 명문대생들의 말년 동창회 풍경이 행복하지 않은 이유는 '이번 한 번만의 유혹에서 무너졌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 한계비용은 당장 무시해도 좋을 정도로 작아 보이지만, 치러야 할 총비용은 훨씬 더 커서다. '내키는 대로 산 인생'과 '잘산 인생'은 다르다.
■ 백구과극(白駒過隙)
흰 망아지가 빨리 달리는 것을 문틈으르 본다는 뜻으로 인생이나 세월이 덧없이 짧다는 것을 의미하는 말이다. 붙잡으려 해도 잡혀지지 않는 세월이고, 영생불사의 존재는 없으니 아둥바둥말고 자연의 섭리대로 사는게 좋은 일이다.
봄인가 싶더니 어느덧 여름이 되었다. 봄 끝자락을 노랗게 장식하던 기린초마저 지고 여름꽃인 원추리꽃이 피기 시작했다. 이제 나이 좀 드니 장자(莊子)가 말한 '백구과극(白駒過隙)'의 세월이 실감난다. '흰 망아지가 달려가는 순간을 문틈으로 보듯' 순식간에 시간이 지나간다.
옛사람들은 내 의지와 달리 미련없이 흘러가는 세월을 '낙화유수(落花流水)'라고도 표현했다. 문자 그대로는 '지는 꽃과 흐르는 물'을 의미하지만, 가는 봄의 풍경을 비유한 말이기도 하다.
당나라 시인 이군옥(李群玉)은 '봉화장사인송진련사귀잠공산(奉和張舍人送秦煉師歸岑公山)'이란 긴 제목의 칠언율시 말미에서 이렇게 읊었다.
蘭浦蒼蒼春欲暮(난포창창춘욕모)
落花流水怨離襟(낙화유수원리금)
난포의 물 푸르고 봄도 저무는데, 떨어지는 꽃과 흐르는 물 떠나가는게 원망스럽다.
신라의 문장가 최치원이 '토황소격문(討黃巢檄文)'을 써주며 종사했던 당나라 후기 명장이자 시인인 고변(高駢)은 은거한 친구를 찾아갔다 만나지 못하고 돌아오면서 이렇게 노래했다.
落花流水認天台(낙화유수인천태)
半醉閑吟獨自來(반취한음독자래)
꽃 떨어지고 물 흐르는데서 넓은 세상을 알았거니, 반쯤 취해 한가하게 시 읊으며 홀로 찾아왔네.
또한 조선중기 문신인 최립(崔岦)은 1594년 사행길에 명나라 무령 땅을 지나며 이렇게 노래했다.
殘雪斷氷今日路(잔설단빙금일로)
落花流水去年村(낙화유수거년촌)
오늘 길엔 잔설에 얼음이 떠다녀도, 지난해 마을에는 떨어진 꽃잎이 떠갔었네.
한 구절의 성어가 여러 뜻을 담고 있는 경우가 있다. 낙화유수란 말이 바로 그것이다. 이 말은 위 시에서처럼 늦봄의 풍경을 묘사함은 물론 쇠잔영락(衰殘零落)하며 덧없이 흘러가는 세월과 함께 쇠락해져가는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는 뜻도 담고 있다.
또한 어떤 집단의 세력이 약화되고 생활여건이 전과 같지 않다는 비유, 그리고 전쟁이나 정쟁(政爭)에서 패배한 사람의 처지를 비유하고 있기도 하다.
낙화유수란 말은 남녀간의 애정을 표현하는 말로도 쓰였다. 짝사랑, 즉 '떨어지는 꽃은 마음이 있지만 흐르는 물은 무정하네(落花有意 流水無情 낙화유의 유수무정)'란 의미로 쓰이기도 했으며, 서로 사모하며 그리워하는 마음을 비유하기도 했다.
꽃은 피면 지고, 세월이 흐르는 것(落花流水)은 지극히 '자연스러운(自然而然)' 현상이다. 자연을 따르는 것이 도이며 도를 따라 사는 것이 '도법자연(道法自然)'이다.
조선 중기 문신이자 성리학자인 김인후(金麟厚)의 '하서집'에는 '자연가(自然歌)'가 실려있다.
靑山自然自然 綠水自然自然 (청산자연자연 녹수자연자연)
山自然水自然 山水間我自然 (산자연수자연 산수간아자연)
已矣哉 自然生來人生
(이의재 자연생래인생)
將自然自然老(장자연자연로)
산수도 절로절로 녹수도 절로절로
산절로 수절로 산수간에 나도 절로
이 중에 절로 자란 몸이 늙기도 절로 하여라
아마도 절로 생긴 인생이라 늙기도 절로 하여라.
이 작품은 중국 송나라때 유행하던 대표적인 운문인 사(詞)의 형식으로 쓴 시다. '이의재(已矣哉)'의 뜻은 '아서라, 말어라, 되었다' 정도로 해석할 수 있는 한탄이 섞인 말이다. 번역시에선 한탄을 대신해서 '아마도'라는 말로 젊잖게 넘어갔다.
김인후는 생전에 기묘사화와 을사사화를 겪은 인물이다. 1544년(중종 39) 11월 중종이 승하하고, 김인후가 가르치던 세자가 인종으로 등극했다. 인종은 그에게 경연의 보도 책임을 맡기고자 제술관에 제수했으나 부모님 병환을 핑계로 본래의 임소인 옥과 현감으로 돌아갔다.
1545년(인종 원년) 7월, 인종이 등극한지 8개월만에 갑자기 승하하고, 을사사화가 발생하자 병을 핑계로 사직하고 고향 장성으로 돌아가 술과 시로 울분을 토로하며 세월을 보냈다. 그후 조정의 부름에도 병을 핑계로 끝내 관직에 나아가지 않고 인종에 대한 절의를 지키며 자연을 벗삼아 생활하니, 마음은 오히려 평안하여 거리낌이라고는 없었다.
이때의 심정을 노래한 시가 바로 '자연가'다. 이 시에서 '자연'이란 단어가 무려 10번이나 등장한다. 여기서 '자연'이란 말은 산과 강과 초목과 동물 등의 존재, 또는 그것들이 이루는 환경을 일컫는 명사(nature)가 아니다.
오히려 인간의 의도적인 노력이나 활동없이 '저절로', 혹은 사물이나 현상이 스스로의 질서나 법칙에 의해 '저절로'라는 의미의 부사적 용법으로 쓰였다. 바로 노자가 도덕경 25장에서 말한 '도는 스스로 그러함에 본받는다'라는 의미의 '도법자연(道法自然)'과 같은 의미로 쓰였다. 그러니까 김인후의 시에서 자연이란 '자연이연(自然而然)'이란 뜻으로 '스스로 그렇게 저절로'라는 의미이다.
과학이 아무리 발달했다 하더라도 영생불사의 존재는 아직 없다. '꽃은 피면 지고, 세월이 흐르는 것(落花流水)'은 지극히 '자연스러운(自然而然)' 현상이다. 이제 나이먹을 만큼 먹었으니 가는 세월 붙잡으려 아둥바둥하지 말자. 그렇다고 붙잡힐 세월도 아니니 그저 흘러가는 대로 놔두자.
▶️ 白(흰 백)은 ❶상형문자로 햇빛이 위를 향하여 비추는 모양을 본뜬 글자로 희다, 밝다를 뜻한다. ❷상형문자로 白자는 '희다'나 '깨끗하다', '진솔하다' 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白자는 촛불을 그린 것으로 해석한다. 갑골문에 나온 白자를 보면 타원형 중심에 획이 하나 그어져 있는데, 이것은 촛불의 심지와 밝게 빛나는 불빛을 표현한 것이다. 그래서 白자는 '밝다'나 '빛나다' 라는 뜻을 갖게 되었다. 白자는 그동안 다양하게 해석되곤 했다. 손톱이나 쌀알을 그린 것이라는 해석도 있었다. 그러나 갑골문에서 白자가 '밝다'나 '빛나다' 라는 뜻으로 쓰인 것을 보면 본래는 촛불을 그렸던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할 것 같다. 白자는 부수로 지정되어 있기는 하지만 상용한자에서는 주로 모양자로만 활용되고 있다. 그래서 白(백)은 (1)백색(白色) (2)백지 (3)백군(白軍) (4)성(姓)의 하나 (5)백국(白國). 곧 벨기에 등의 뜻으로 ①희다 ②깨끗하다 ③분명하다, 명백하다 ④진솔하다 ⑤밝다, 밝아지다 ⑥빛나다 ⑦비다, 가진 것이 없다 ⑧아뢰다(말씀드려 알리다), 탄핵하다 ⑨흘겨보다, 경멸하다 ⑩흰빛 ⑪백발(白髮) ⑫대사(臺詞) ⑬술잔 ⑭비단(緋緞), 견직물(絹織物) ⑮볶은 쌀 ⑯소대(小隊: 군대 편성 단위의 하나) ⑰거저, 대가(代價) 없이 ⑱부질없이, 쓸데없이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흴 고(暠), 흴 호(皓), 밝힐 천(闡),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검을 흑(黑)이다. 용례로는 흰 눈을 백설(白雪), 희고 깨끗한 이를 백치(白齒), 빛깔이 흰 종이를 백지(白紙), 흰 빛을 백색(白色), 대낮을 백주(白晝), 흰 빛깔의 기를 백기(白旗), 죽은 사람의 살이 다 썩고 남은 뼈를 백골(白骨), 늙은이를 백수(白叟), 하얗게 센 머리털을 백발(白髮), 숨긴 일이나 생각한 바를 사실대로 솔직하게 말함을 고백(告白), 의심할 것 없이 아주 뚜렷하고 환함을 명백(明白), 깨끗하고 흼 또는 죄가 없음이나 공명정대함을 결백(潔白), 혼자서 중얼거림을 독백(獨白), 텅 비어서 아무 것도 없음을 공백(空白), 스스로의 죄를 고백함을 자백(自白), 검은빛과 흰빛으로 잘잘못이나 옳고 그름을 흑백(黑白), 종이 따위의 글자나 그림이 있는 이외의 빈 부분을 여백(餘白), 죽어도 잊지 못할 큰 은혜를 입음이란 뜻으로 남에게 큰 은혜나 덕을 입었을 때 고마움을 표시하는 말을 백골난망(白骨難忘), 대낮에 꾸는 꿈이라는 뜻으로 실현될 수 없는 헛된 공상을 이르는 말을 백일몽(白日夢), 업신여기거나 냉대하여 흘겨봄을 일컫는 말을 백안시(白眼視), 타향에서 고향에 계신 부모를 생각함 또는 멀리 떠나온 자식이 어버이를 사모하여 그리는 정을 이르는 말을 백운고비(白雲孤飛), 희고 고운 얼굴에 글만 읽는 사람이란 뜻으로 세상일에 조금도 경험이 없는 사람을 이르는 말을 백면서생(白面書生), 아무 것도 없거나 모르는 상태를 일컫는 말을 백지상태(白紙狀態), 예로부터 흰 옷을 숭상하여 즐겨 입은 한민족을 이르는 말을 백의민족(白衣民族), 벼슬이 없는 사람으로 군대를 따라 싸움터에 나감을 이르는 말을 백의종군(白衣從軍), 흰 말이 지나가는 것을 문틈으로 보듯이 눈 깜박할 사이라는 뜻으로 세월이 너무 빨리 지나감을 이르는 말을 백구과극(白駒過隙), 흰 모래와 푸른 소나무라는 뜻으로 흰 모래톱의 사이사이에 푸른 소나무가 드문드문 섞여 있는 바닷가의 아름다운 경치를 이르는 말을 백사청송(白沙靑松), 아무 것도 없이 난봉을 부리고 돌아다니는 사람을 일컫는 말을 백수건달(白手乾達), 서로 백발이 되기까지 사귀어도 마음을 알지 못하면 새로 사귄 것이나 같다는 뜻으로 친구가 서로 마음을 몰랐던 것을 사과하는 말을 백두여신(白頭如新), 백마는 말이 아니다는 말로 억지 논리를 비유하여 이르는 말을 백마비마(白馬非馬), 믿을 만한 출처나 자료를 가지고 하는 선전을 일컫는 말을 백색선전(白色宣傳), 흰 옥이 흠이 없다는 뜻으로 결점이 전혀 없는 사람을 이르는 말을 백옥무하(白玉無瑕) 등에 쓰인다.
▶️ 駒(망아지 구)는 형성문자로 驹(구)는 간자(簡字)이다. 뜻을 나타내는 말 마(馬; 말)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글자 句(구)가 합(合)하여 이루어졌다. 그래서 駒(구)는 ①망아지 ②새끼말 ③짐승의 새끼 ④젊은이 ⑤흩어지고 모여들지 않는 모양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고구려의 다른 이름을 구려(駒驪), 망아지와 말을 구마(駒馬), 베를 맬 때 실을 켕기는 기구를 구판(駒板), 빛깔이 흰 망아지를 백구(白駒), 닫는 말을 틈으로 봄과 같다는 뜻으로 세월이 몹시 빠름을 비유하는 말을 극구(隙駒), 망아지를 길들인다는 뜻으로 서간문에서 감목관의 안부를 말할 때 이르는 말을 공구(攻駒), 천리마로 뛰어나게 잘난 자제를 칭찬하는 말을 천리구(千里駒), 하룻망아지 서울 다녀 오듯으로 무엇이 어떻게 되는 건지 알지도 못하고 무엇을 보거나 무엇을 하거나 함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을 구종경래(駒從京來), 흰 망아지도 감화되어 사람을 따르며 마당 풀을 뜯어먹게 함을 백구식장(白駒食場), 끌채에 매인 망아지라는 뜻으로 남의 속박을 받아서 스스로는 자유를 얻지 못함을 이르는 말을 원하지구(轅下之駒), 하루에 천 리를 달릴 만큼 좋은 말이라는 뜻으로 재주가 남보다 뛰어난 사람을 비유해 이르는 말을 천리지구(千里之駒), 흘러가는 세월의 빠름은 달려가는 말을 문틈으로 보는 것과 같다는 뜻으로 인생의 덧없고 짧음을 극구광음(隙駒光陰), 흰 말이 지나가는 것을 문틈으로 보듯이 눈 깜박할 사이라는 뜻으로 세월이 너무 빨리 지나감을 이르는 말을 백구과극(白駒過隙) 등에 쓰인다.
▶️ 過(지날 과, 재앙 화)는 ❶형성문자로 过(과)는 간자이다. 뜻을 나타내는 책받침(辶=辵; 쉬엄쉬엄 가다)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글자 咼(와, 과; 입이 삐뚤어짐)의 뜻이 합(合)하여 바른 길을 지나쳤다는 데서 지나다를 뜻한다. ❷형성문자로 過자는 ‘지나다’나 ‘경과하다’, ‘지나치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過자는 辶(쉬엄쉬엄 갈 착)자와 咼(가를 과)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咼자는 ‘뼈’를 뜻하지만, 여기에서는 발음역할만을 하고 있다. 過자는 어떠한 상황이나 상태가 지나갔음을 뜻하기 때문에 길을 걷는 모습을 그린 辶자가 ‘지나가다’라는 뜻을 전달하고 있다. 다만 지금의 過자는 ‘초과하다’나 ‘넘치다’와 같이 한계를 넘어선다는 뜻이 확대되어 있다. 그래서 過(과)는 지나치는 일, 통과하다, 도를 넘치다, 과오(過誤) 따위의 뜻으로 ①지나다 ②지나는 길에 들르다 ③경과하다 ④왕래하다, 교제하다 ⑤초과하다 ⑥지나치다 ⑦분수에 넘치다 ⑧넘다 ⑨나무라다 ⑩보다, 돌이켜 보다 ⑪옮기다 ⑫허물 ⑬잘못 ⑭괘(卦)의 이름 ⑮예전 그리고 ⓐ재앙(災殃)(화)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지날 력/역(歷), 지날 경(經), 그릇될 와(訛), 그르칠 오(誤),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공 공(功)이다. 용례로는 일이 되어 가는 경로를 과정(過程), 지나간 때를 과거(過去), 예정한 수량이나 필요한 수량보다 많음을 과잉(過剩), 지나치게 격렬함을 과격(過激),정도에 넘침을 과도(過度),지나치게 뜨거워지는 것을 과열(過熱), 잘못이나 그릇된 짓을 과오(過誤), 지나간 일을 과거사(過去事), 조심을 하지 않거나 부주의로 저지른 잘못이나 실수를 과실(過失), 잘못에 대하여 용서를 빎을 사과(謝過), 통하여 지나가거나 옴을 통과(通過), 어떠한 수량을 표하는 말 위에 붙어서 많지 않다고 생각되는 그 수량에 지나지 못함을 가리키는 말을 불과(不過), 사물의 한도를 넘어섬을 초과(超過), 공로와 과오를 공과(功過), 대강 보아 넘기다 빠뜨림을 간과(看過), 때의 지나감이나 시간이 지나감을 경과(經過), 모르는 체 넘겨 버림을 묵과(默過), 모든 사물이 정도를 지나치면 미치지 못한 것과 같다는 과유불급(過猶不及), 구부러진 것을 바로 잡으려다가 너무 곧게 한다는 교왕과직(矯枉過直), 지난날의 잘못을 고치어 착하게 됨을 개과천선(改過遷善), 인과 불인은 곧 알 수 있다는 관과지인(觀過知仁), 공로와 허물이 반반이라는 공과상반(功過相半) 등에 쓰인다.
▶️ 隙(틈 극)은 형성문자로 뜻을 나타내는 좌부변(阝=阜; 언덕)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글자 (극)이 합(合)하여 이루어졌다. 그래서 隙(극)은 ①틈, 벌어진 틈 ②구멍 ③흠, 결점(缺點) ④겨를, 여가(餘暇), 짬 ⑤원한(怨恨), 불화(不和) ⑥놀리고 있는 땅 ⑦갈라지다, 터지다 ⑧비다, 경작(耕作)하지 않다 ⑨이웃하다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틈을 극간(隙間), 틈이나 틈새를 극혈(隙穴), 빈 집을 극우(隙宇), 달리는 말을 틈으로 봄과 같다는 극구(隙駒), 사물 사이의 틈 또는 사귀는 사이나 의견 등에서 생기는 틈을 간극(間隙), 틈이나 겨를을 가극(暇隙), 틈이 생김이나 사이가 나빠짐을 우극(尤隙), 벽의 갈라진 틈을 결극(決隙), 틈 또는 사람들의 사이가 벌어져서 생기는 불화를 흔극(釁隙), 문의 틈을 문극(門隙), 농사의 여가를 농극(農隙), 서로 원수처럼 지내는 좋지 않은 사이를 구극(仇隙), 시간이나 기화의 틈이 생기기를 기다림 또는 기회를 기다림을 사극(俟隙), 시간이나 기회의 틈을 엿봄을 사극(伺隙), 틈을 탐을 투극(偸隙), 문틈을 호극(戶隙), 겨를이나 틈을 탐을 저극(抵隙), 서로 불화가 생길 틈을 만듦을 구극(構隙), 창문의 틈을 창극(窓隙), 어떤 행동을 할 만한 좋은 기회를 만듦을 수극(脩隙), 빈 틈이나 겨를을 공극(空隙), 개인 간의 불화를 사극(私隙), 광속의 단면을 적당히 제한해서 통과시키기 위한 빈 틈을 세극(細隙), 작은 틈새 또는 사소한 불화를 소극(小隙), 난청자에게 있어서 일정한 좁은 범위의 진동수의 소리밖에 들을 수 없는 그 범위를 음극(音隙), 얼마 안 되거나 짧은 겨를을 촌극(寸隙), 잠시 틈을 탐이나 겨를을 이용함을 승극(乘隙), 한가로운 틈이나 겨를을 한극(閑隙), 틈이나 구멍을 공극(孔隙), 서로 싫어서 벌어진 틈을 혐극(嫌隙), 흘러가는 세월의 빠름은 달려가는 말을 문틈으로 보는 것과 같다는 뜻으로 인생의 덧없고 짧음을 극구광음(隙駒光陰), 기회를 노리고 틈을 엿봄을 승기저극(乘機抵隙), 흰 말이 지나가는 것을 문틈으로 보듯이 눈 깜박할 사이라는 뜻으로 세월이 너무 빨리 지나감을 백구과극(白駒過隙), 우정을 끝까지 잘 지켜 나가지 못함을 비유해 이르는 말을 흉종극말(凶終隙末), 조그마한 틈으로 물이 새어들어 배가 가라앉는다는 뜻으로 작은 일을 게을리하면 큰 재앙이 닥치게 됨을 비유하는 말을 소극침주(小隙沈舟) 등에 쓰인다.